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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15화)
제四장 청보, 천목산으로 가다(2)


<2>

절강, 천목산(天目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봉우리. 울창한 숲은 바다의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싱그러움을 간직했다.
단청보는 답답했던 영봉장을 벗어나 이곳으로 들어오자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사부의 말대로 너무 눈에 띄는 발전을 추구하여 사질들의 인정을 받으려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
그 천목산의 숲으로 들어가니 해광림(海洸林)이 나타났다. 마치 바닷물이 용솟음을 칠 것 같은 형세의 숲이었다.
주변의 경광을 보니 가히 절진의 형상이다. 평지도 있어 밭을 일굴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과수도 많이 심어져 열매도 많이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단청보는 마냥 신이 났다.
“와! 이런 곳도 다 있다니…….”
“하하! 기분이 좋은가 보구나. 그래, 지금은 신이 나게 놀도록 하려무나.”
그는 숲을 돌아다니며, 잠영비공술의 경공술을 마음껏 펼쳤다. 철장공의 초식을 바위에 쓰기도 했고, 연음신도장의 장력을 돌에 찍기도 했다. 마냥 신이 나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에 장학선은 가슴이 미어졌다.
‘녀석도 그 일을 알 때가 되긴 했는데 저토록 여리니. 그보다도 저 상태로 무림에 나갔다간 하류배들의 암수에 걸려 살아남지 못할 터.’
아무리 미수기(微修氣)의 내공밖에 쌓지 못한 이삼류의 하류라고 해도 그들에겐 무공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초월적인 장기가 있었다. 바로 암수와 독수였다.
오십 년 전, 장학선 자신도 무시무시한 암수에 당해 죽을 뻔했다. 수십 명이 조직적으로 함정을 파고 암수를 쓰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급격한 암수는 설령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해도 말려들 수 있었다. 왕년에 천하무적으로 날리던 고수들도 생각지도 못한 암수에 죽음을 맞이했다. 무림은 그런 곳이다. 화려하고 낭만만 깃들어진 곳은 필경 아닌 것이다. 음험한 암수와 계략도 판을 치고, 온갖 사악함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간혹 무공이 높으면서도 수단도 높은 악질적인 사파 폭군이 나올 때도 있었다.
수십 년 전 독고검성과 함께 쓰러뜨린 천마신교에는 수단과 무공이 높았던 사파 폭군이 있었다.
친구인 독고검성과 함께 협공을 해서 쓰러뜨렸을 정도로 최악의 난적이기도 했다. 그는 바로 흑천마군(黑天魔君) 백천기(白闡起)였다.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을 무자비한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악성이었다.
요새는 늙어 노파심이 나는지 왜 자꾸 그 역겨운 인간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의 단청보는 스스로의 뜻을 세울 수 있는 이립(而立)의 단계에 오르지 못했다. 심계가 부족하여 소인배들의 작은 함정과 암수에도 쉽게 걸릴 수 있었다. 그것이 장학선의 가장 큰 고심이다.
단청보는 스승에게 자신의 무공이 성장하였다는 것을 사실 보여 주고 싶었다. 사부의 마음속에선 자신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꼈다. 자기가 자길 봐도 많이 모자라다보니 앞이 캄캄했다.
“왜 신나게 놀지 않고?”
“사부님께서 중대하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녀석, 너도 느끼고 있었느냐?”
“제가 모자라고, 미천하지만 느낌이 없진 않습니다. 제 앞날이 걱정되시지요?”
“그래. 나도 네 앞날이 심히 우려된다. 이것 하나는 알아 두어라. 무림은 네가 실력만 있다고 해서 되지 않는단다. 심모원려(深謀遠慮). 이것이 부족하면, 한순간에도 잘못되기 쉬운 것이 무림이란 곳이다.”
“깊은 꾀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구나.”
해광림에는 집과 동굴이 있었다. 장학선이 미리 구비해 놓은 것이다. 영봉장에서는 몇 달 전부터 만년옥침상을 본 적이 없었다. 해광림의 동굴에는 절진이 깔려 있었고 단청보는 쉽게 들어왔다. 칠 년이 넘게 지겹도록 수련하고 경험했으니 어지간한 것은 척하면 척이 됐다.
“이곳으로 만년옥침상을 갔다 놓으셨군요.”
“아주 잘 봤다. 너도 알다시피 과거에 영단보희를 먹었지만, 약발의 효험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따라서 너는 아무리 좋은 영약이라고 해도 한두 알 먹어서는 결코 효험이 없을 것이 자명해. 천험의 영약으로도 널 완벽하게 바꿀 수 없다면 오직 네 노력과 의지력에 모든 것이 달렸다. 해서 이 만년옥침상을 너에게 주는 것이야. 이 옥침상에서 수련하면, 일 년을 수련해도 이십 년의 수련과 맞먹는 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 처음 진일원기의 내공을 터득하고 절용상기의 내공을 터득했을 때까진 막힌 경혈이 없어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 하나 네 경혈 중에 뚫리지 않는 것이 있어, 효율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야. 그러니 혼자 덮어 놓고 심법 수련을 해선 공력이 상승할 수 있는 효과를 얻지 못할 터. 해서 이 옥침상을 너에게 주는 것이다.”
“사부님…….”
단청보는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제자를 위해 앞날을 안배하고 있었다. 문중의 중역들에겐 일 년 동안 외유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일 년간 단청보와 해광림에서 지내려고 작정한 것이다.
자신은 점점 늙어 갔고, 단청보는 앞으로 무림에서 활동해야 했다. 이렇게 느림보 거북이 신세로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단청보의 눈에 옥침상 쪽으로 두 자루의 칼이 들어왔다.
장학선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두 자루의 칼을 집었다. 하나는 비교적 짧은 도이고, 하나는 사 척은 족히 되어 보이는 도였다.
“받아라.”
“네, 사부님.”
장학선은 두 자루의 칼을 단청보에게 줬다.
단청보는 사부가 주는 두 자루의 칼을 받았다. 하나는 겨우 삼 척이 채 되지 않을 짧은 칼이었고, 하나는 사 척이 넘을 정도로 긴 칼이었다. 날은 굽고, 물결이 박힌 것이 꽤나 날렵하면서도 예기가 매서웠다. 독고무흔이 검법을 펼쳤을 때, 병기의 예기를 실감했다.
“예기가 강함을 느낄 수 있지?”
“예, 사부님.”
“그 무기는 신병이기는 아니다. 네가 신병이기를 갖고 있어 봤자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패도(佩刀)와 금월도(昑月刀)라 도명한 칼을 주마. 이 두 칼은 서로 날렵하고, 예리하며 눈썹처럼 휘어 있지. 사부의 본 사문은 남해파로 본시 송나라 시대부터 동영(東瀛), 고려(高麗)와 활발히 교류했었다. 해남도를 중심으로 활발히 교류했고, 그들의 무기가 실전에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채용했지. 네가 내 제자인 이상 적어도 사문의 유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터, 해서 패도와 금월도는 동영왜도나 고려환도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척 육 촌의 패도는 근접 거리로 날아드는 암기를 막고, 단병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단다. 금월도는 사 척 일 촌으로, 도법의 모든 무예를 응용할 수 있는 실전 병기라고 할 수 있지.”
“앞으로 도법을 수련하는 것입니까?”
“아주 잘 보았다. 패도와 금월도를 사용하는 무공은 이렇게 올라간다. 세법(勢法)과 참식(斬式)으로 이뤄진 진산도법(鎭山刀法)을 기본으로 고단무공인 사상쾌도(四象快刀)는 도격(刀擊), 진참(震斬), 타척(打斥), 자공(刺攻), 쾌도(快刀)를 사상의 원리에 따라 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달통하면 상승 무공인 비도섬류(飛刀剡流)를 익히도록 하고, 그것이 다되거든 최고의 절세도법인 낙영일섬도(落影壹閃刀)를 익히면 된다. 너의 경우는 진산도법과 사상쾌도에 필요한 모든 변화와 초식, 요결은 절진에서 다 배웠다. 이제부터 비도섬류의 초식, 변화, 요결을 시작하면 될 것이야.”
“그럼 철장공과 연음신도장 등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도 함께 익혀야 한다. 도법이 최고경지에 달하여 그것이 주가 되더라도 철장공과 연음신도장은 반드시 그에 근접하는 경지까지 이끌도록 연마해야 한다. 장권무예는 쌍수호박술(雙手互博術)을 기초로 오행권(五行拳)이 고단이고, 철장공이 상승이지, 연음신도장은 최고의 절세장법이고. 네가 단계별로 장권과 도법을 익혀 나가면 된다. 그러니까 너의 경우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상승도법인 비도섬류를 시작하면 된다. 즉, 비도섬류와 철장공 위주로 수련하여 내공이 상명화기를 돌파해 순청극기에 달하면 연음신도장과 낙영일섬도 위주로 수련하면 될 것이고, 현천기경에 달하면 그때부턴 유공수련(留功修鍊:깊이 있게, 담아 두는 수련)을 하면 된다.”
“연음신도장과 낙영일섬도는 왜 순청극기에 달했을 때, 본격적으로 수련하라는 말씀이죠?”
“그것은 내공과 외공의 차이다. 넌 외공에 있어서 상승고수의 성취를 능가하고 있지만 내공은 아직까진 절정 단계야. 내공으로만 말하면 넌 비도섬류와 철장공을 익힐 수 없다가 정석이지. 하지만 본시부터 내공이 부족하니 외공을 다지는 훈련을 오랫동안 해 왔다. 게다가 진에서 무공의 상승 요결을 터득하였으니 비도섬류와 철장공을 더 깊이 수련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도섬류와 철장공을 위력적으로 깊이 사용할 수 있다야. 하나 궁극의 상승 위력이 나오려면 내공이 필히 상명화기에 도달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낙영일섬도와 연음신도장을 연마하면 지금까지 쌓아 온 것까지 잃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성취하려는 집착은 버리는 것이 너에게 이로울 것이다. 이점 명심하도록.”
“네, 사부님.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장학선은 단청보에게 무공의 체계를 하나하나 잡아 줬다. 청보는 매우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수련을 통해 상승해야 하는 제자였다.
영약의 효과도 미비하여 기대하기 어렵고, 고작 몇 달치기로 압도적인 수련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십 년을 바라보고 해야 할 수련이다.
그날부터 사부와 함께 절정 단계의 절용상기의 내공 성취를 바탕으로, 권법과 도법의 상승 무공을 나란히 수련했다.
장학선은 밥을 해 먹는 법, 사냥하는 법, 낚시하는 법, 요리하는 법, 열매를 구분하고 약초를 따 먹는 방법을 가르쳤다.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많이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단청보는 생활에 유용한 것들은 수년 전과는 달리 그렇게 오래 반복하지 않아도 쉽게 터득했다.

무학에 깊은 자질이 없었기에 철장공과 달리 비도섬류는 참으로 애를 먹었다. 진산도법과 사상쾌도는 절진에서 아주 죽자 살자 수련했으니, 몸에 완벽하게 체득되어 있었다. 요결과 구결, 초식만 알려 주어 정립해 줬다. 그러나 비도섬류가 가장 애를 많이 먹였다.
패도와 금월도를 하루에 오천 번씩 휘둘러야 했고, 절진에서 그 위력을 숱하게 시험했다. 장학선은 무림의 암수에 대해 주의할 것을 가르쳤다. 단청보의 머리가 아직까진 깊이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암수에도 쉽게 말려들 수 있었다. 물가에 놓은 아이처럼 불안한 것이 청보였다.
불안하지만 그것까지 모두 이겨 내야 청보는 비로소 무림제일의 호걸이 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성과나 발전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지금 단청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노력 정진과 의지력이 있었다.
‘넌 어차피 영웅호걸이 되어야 할 팔자니까.’
보면 볼수록 흐뭇했다.
사부의 그런 정성을 단청보도 알았다. 그에게는 꿈이 생겼다. 세상에 우뚝 서서 더는 놀림을 당하지 않으리란 것과 사부의 정성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