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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18화)
제五장 삼일대련(三日對鍊)(2)
챙! 챙! 챙!
단청보는 파도를 상대할 때와 같은 원리로 상대했다. 비도섬류의 도경어도와 비섬광류를 연속으로 펼쳐 독고무흔의 중심을 흔들었다. 단청보의 몸은 갈수록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독고무흔의 검식을 모두 막아냈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지만 독고무흔으로선 회심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이럴 수가!’
불가사의했다. 단청보의 자질은 자신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떨어졌다. 어찌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 아래로 파고들었다. 단청보는 몸을 위로 날려 경공전을 걸었다. 독고무흔도 철저하게 방비하고 있어, 그의 공격을 무산시킬 순 있어도 허점을 드러낼 순 없었다. 그의 경공술과 보법이 전보다 많이 향상됐음이 피부에 와 닿았다. 서로 반 장의 거리에서 금월도와 장검이 매섭게 부딪쳤다.
챙! 챙! 챙!
파도식(破刀式).
검으로 금월도의 칼날을 걸었다. 불꽃이 튀기고 있었다. 단청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실전 경험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단청보가 의외로 침착하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팔십여 합을 부딪쳤다.
비섬광류의 초수를 펼쳐 독고무흔의 장검을 튕겼다.
팅. 팅.
경공으로 허공으로 띄워진 상태에서도 단청보는 독고무흔에게 밀리지 않았다. 매우 팽팽해졌다. 단청보도 그동안 독고무흔이 검술은 정말 제대로 수련하고, 변화를 많이 익혔음을 직감했다. 독고무흔도 아버지의 가르침에 그동안 고된 반복과 훈련을 거듭했다. 덕분에 완력에선 단청보보다 반 수 정도 처지긴 했으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단청보는 내공의 부족을 외공으로 채운 격이었다.
티리리릭.
독고무흔의 검과 금월도가 부딪쳐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청보는 물레방아 돌듯이 몸을 돌려 쾌도식(快刀式)을 펼쳤다. 비도섬류의 도법을 맹렬한 속도로 변화시켜 나갔다. 속도가 빠르면 거센 물결을 훨씬 빨리 쳐 낼 수 있어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독고검법의 파도식으로 단청보의 쾌도식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점 더 독고무흔이 뒤로 밀렸다. 검에 내공을 가해 독고대검참(獨孤大劍斬)의 초식을 전개했다. 독고무흔의 검에서는 매서운 검기가 일어나고, 몸에서의 예기도 광풍폭우와 같이 격랑을 쳤다.
단청보는 비금섬류참과 자섬비류의 초식을 연달아서 펼치고, 원을 그려 도경어도의 초수를 펼쳐 냈다.
대격돌!
처러러렁!
팡! 팡!
서로의 기가 폭발하여 굉음과 함께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단청보는 내공이 자기보다 우월한 독고무흔으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입었다. 몸이 심하게 뒤틀리며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독고무흔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단청보의 급소를 찌르려고 했다.
대격돌이 지나자 단청보는 급격하게 균형을 잃었다. 독고무흔은 이제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매서운 일격전을 펼쳤다. 그때였다. 단청보는 금월도의 칼등으로 독고무흔의 몸을 밀고, 칼자루로 중완혈(中脘穴)을 때렸다.
탁! 탁!
단청보는 심하게 지쳐 있었다. 그는 독고무흔을 해치려는 마음이 솔직히 없었다.
독고무흔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상당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형님께서 지셨네요.”
“어떻게!”
“형님께서 거의 다 이겨 놓고도 무리한 일격을 가하더군요. 그러니 중완혈이 훤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주먹이 꼭 쥐어졌다. 입술을 깨물며 입을 꼭 다물었다. 단청보의 말은 사실이었다. 경공술과 검술이 많이 개선됐지만, 일격에 끝내려고 무리하게 대든 것이 화근이었다.
단청보와 같이 의외로 수가 높은 고수에겐 좀 더 힘을 빼놓고 공격했어야 했다.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허점을 드러냄으로서 급소를 잡힌 것이다.
단청보가 무공을 어떻게 수련했기에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을까. 독고무흔은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속에서는 천불이 끓었다. 단청보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나 진 것은 진 것. 아무리 원수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지.’
더욱이 서슬이 시퍼런 아버지가 보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와 버금가는 천지괴협 장학선이 지켜봤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인정할 것은 깨끗하게 인정했을 것이다. 진 것을 아니라고 우긴들, 아닌 것이 될 수는 없었다. 곱씹으면서도 타오르는 불길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네 말대로 내가졌네.”
미간은 몹시 찌푸려지고 눈빛은 도끼로 내려치듯 격렬했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인정할 것은 인정했다. 심정은 괴로웠으나 지금은 그래야 했다.
독고검성은 단청보가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공은 독고무흔보다 분명 처지는데, 부족한 내공을 외공과 체력으로 보충하고 입신 수준의 보법과 경공술이 채우고 있음을 알았다.
<2>
독고무흔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단청보가 칼날로 들이밀었다면, 치명상을 입고 말았을 것이다. 바보라도 의외의 재능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패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버지와 천지괴협이 없었다면 다시 공격했을지도 몰랐다.
독고검성이 탄복하여 장학선을 응시했다.
“자네 제자의 무공 수련법이 상당히 독특했나 보네. 어떤 방법으로 수련했기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아들놈보다도 더 노련하단 말인가?”
“하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알았네.”
단청보의 성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력에 있었다. 수백 번을 실패하고 깨져도 끝까지 저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조화가 심한 절진이나 파도에서 수련했기에, 단청보의 무공은 끝없는 실전 속에서 무공을 터득한 것이다.
장학선이 말을 덧붙였다.
“내공이 근소한 차이에선 상대의 급소를 누가 더 빨리 점령하느냐에 달렸지. 청보가 자네 양자를 죽일 마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목숨을 잃었을 것이야.”
“자네 제자가 속이 깊은 것 같네. 한때 내 아들놈이 죽이려고 살초를 전개해 부상을 입혔음에도 손속에 사정을 뒀으니.”
“그래도 일방적으로 허공에 장력을 가하던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더군.”
“그날 자네 제자의 발전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 그래서 수년간 고된 수련을 시켰다네.”
독고검성은 솔직히 대답했다. 그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들인 독고무흔은 완전히 허공에 장력을 가하는 격이었다. 제대로 부딪쳐서 싸우지도 못했다. 무공의 변화정수를 단청보가 훨씬 더 많이 터득했음을 알았다.
이후로 독고무흔에게 중수변화의 검술과 장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과 고된 수련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좋은 승부를 관전한 장학선과 독고검성은 만족했다. 독고검성은 삼 년 동안 단청보도 더 열심히 수련했을 것이므로, 독고무흔이 충분한 변화정수를 터득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실히 드러났다. 독고무흔은 그래도 삼 년 전보단 많이 개선되었다.
독고검성과 독고무흔은 객방에 머물렀다. 단청보는 독고무흔을 이기긴 했지만, 기분이 영 아니었다.
“청보야, 내일 또 겨뤄야 해서 그러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럼, 왜 그리도 시무룩한 것이냐?”
“독고 형은 제게 심통을 부리는 것을 봤어요. 지난번보다 실력이 정말이지 말할 수 없이 좋아졌지만, 비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잘 봤다. 너에게 앙심을 품고 있지. 그놈은 겉과 속이 다른 놈이라, 겉으로 뭐라고 해도 가볍게 넘기면서 대비하는 것이 좋아.”
“네, 사부님. 저도 많이 불안했어요. 보고 있노라면, 꼭 무슨 일을 저지를 사람 같아서…….”
장학선도 독고무흔에게 심한 거리감을 갖고 있었다. 단청보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불안해 보였다.
객방에 든 독고검성은 독고무흔을 채찍질하듯이 말했다.
“이번에 대련을 시키는 것은 네가 얼마나 발전했나 보기 위함이다. 삼 년 동안 크게 발전을 했으나, 여전히 부족해. 보아라, 내가 그토록 변화정수를 익히라고 해서 억지로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허점만 잔뜩 드러나 더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독고무흔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일류, 절정고수들은 제게 쉽게 깨졌는데 도대체 저 녀석은 무엇 때문에 강고하단 말입니까?”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청보의 재능이나 자질은 별로라는 것을. 지금이야 정신이 많이 좋아지고, 말문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트였다만 본래부터 동풍을 앓아 정신마저 모자라던 아이였지. 그런 아이에게 이 무공은 무슨 초식 저 무공은 무슨 초식, 이 무공의 구결과 요결은 이렇다 이래서야 수련이 되겠느냐?”
“그야 그렇겠지만…….”
“학선이 그 친구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난 해답을 알아. 단 하나의 초식이라도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수백, 수천 번이고 반복시켰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그 초식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변화정수를 자연스럽게 터득했겠지. 그에 반해 대부분의 일류, 절정고수들은 너처럼 고된 수련은 절박하게 하지 않으려 하니 네게 질 수밖에.”
“……!”
독고무흔은 이제야 깨달았다. 단청보는 아버지의 말처럼 지독한 반복과 고된 수련으로 단련됐기에 강고했던 것이다. 덮어놓고 내공을 쌓아 초식과 구결만 수련하여 다음 단계를 밟아 올라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버님, 그럼 단청보와 같이 강고한 고수가 되려면 어찌해야 되는 것입니까?”
“대부분 초식이나 구결만 연습했던 자들은 변화정수를 별로 터득하지 못했으니, 네가 이기기 쉽겠지. 단청보와 같은 고된 수련으로 단련된 자는 변화정수를 깊이 깨우쳤기에 그런 고수가 되려면, 끊임없는 수련을 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속성으로 익힐 수는 있다만, 단청보와 같이 확실하게 터득한 고수에겐 허점이 전부 보여서 제대로 상대할 수 없겠지. 네가 상대한 일류, 절정고수들의 무공은 단청보와 같은 고된 수련 끝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청허 진인에게 쉽게 패한 것도 그런 사람들은 무척이나 고된 수련과 노력 정진 끝에 얻어진 결과물인 게야.”
“그렇군요. 청보 그놈은 재능도 자질도 없으니, 몸에 확실하게 익혀질 때까지 무수히도 같은 짓을 반복하여 터득했으니, 저렇게 강해질 수 있었군요.”
“바로 봤다. 너는 재능이 있으니, 노력정진을 한다면 앞으로 삼 년만 지나면 단청보가 적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단청보가 그토록 고되게 수련했어도, 넌 불과 삼 년 남짓에 거의 따라잡지 않았느냐? 같은 노력을 할 경우, 재능이 뛰어난 자가 성취가 훨씬 좋지. 반대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노력 정진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
“그럼 그보다 더 빨리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영약을 먹어 환골탈태해야 가능하겠군요.”
독고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이제야 뭔가 좀 깨우쳤다는 것을 느꼈지만 속으로는 개운치가 않았다.
독고무흔이 머리를 쥐어뜯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삼 년이라니……. 단청보야 바보 멍청이라서 몸에 확실하게 익혀질 때까지 미친 듯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지만 자신이 왜 그런 고된 수련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