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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20화)
제六장 청보, 풍릉곡에 가다(1)


<1>

다음 날 아침.
단청보와 독고무흔의 사이에는 극심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검신도 짐작했다. 아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솟구쳤다.
밤새 아들을 보며 뒤가 몹시 가려웠다. 그는 아무 내색을 하지 않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객관에서 나와 오랜 친구 장학선에게 말했다.
“자네 제자를 풍릉곡에 한 번 데려가도 되겠나?”
“청보를 말인가? 많이 부족할 텐데…….”
“안전에 관한 문제라면 염려 말게. 내가 책임지지.”
“하하! 그렇다면 청보의 견문도 넓어질 겸 다녀와도 좋겠구만.”
“그렇지. 자네 제자가 언제까지 심산유곡에 숨어 있을 수야 없지. 활동을 해야지, 활동을. 하하!”
장학선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검신은 단청보의 노력 정진과 사심 없는 열의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재능과 자질은 눈에 띄게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피땀이 나도록 노력하는 의지력이 대견했다.
사실, 단청보보다도 장학선이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토록 볼품없는 사람을 차츰 바르게 세우고 있었지 않은가. 장학선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단청보에게 말했다.
“청보야. 너에게도 폭넓은 견문을 쌓을 겸 풍릉곡에 갔다 오려무나. 검신 저 친구가 네 안전을 책임진다고 했으니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게다.”
“예, 사부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독고검성은 단청보와 독고무흔을 보다 더 면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풍릉곡으로 데려가고자 했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법이다. 직접 살펴보면 단청보와 독고무흔의 일장일단을 확연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팔 년 전만 해도 ‘사부님, 밥 주세요.’ 삼 년 동안 그 한마디를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팔 년 동안 사서삼경도 알고 무공도 상승의 성취가 있었다.
장학선이 그를 어떻게 훈육했는지 직접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독고무흔이 한 수 떨어진 것은 자신의 훈육법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스승은 때로 제자를 통해 그동안 간과했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지.’
천지괴협 장학선은 독고검성의 성격과 인품을 잘 알고 있었다. 제자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했으니,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겨도 단청보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 분명했다.
단청보는 사부의 품을 떠나 난생처음 다른 곳에 가게 되었다. 장학선도 언제까지 자기가 품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너도 다른 곳에서 그동안 익히지 못했던 것을 익혀야겠지. 내가 어디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장학선과 헤어진 독고검성은 단청보와 독고무흔을 데리고 풍릉곡으로 향했다.
단청보는 사부인 장학선과 떨어지자 안정감이 위축되었다. 사부님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안정된 기분을 만끽하던 그가 난생처음 사부님의 품을 떠나니 위축되었다. 독고검성이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안심시켰다.
“청보야. 이 검신 할아버지를 믿어 보아라. 네 사부가 맡길 정도면 네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닐 터이니.”
“네.”
사실, 단청보도 독고검성과 같이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사람에게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사부님과 다른 점도 있어 보였다. 사부님은 매우 정감이 있고, 이해심이 많은 것 같은데 검신 할아버지는 꽤나 강직하고, 엄격해 보였다. 인자함 속에 한쪽은 정감이 넘치고 이해심이 많았고 다른 한쪽은 강직하고 엄격했다.

풍릉곡.
천목산 해광림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경치였다. 해맑은 웃음으로 주변을 보니 신이 났다.
독고무흔은 단청보의 모습이 꼭 아이와 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 아니던가.
“자네는 꼭 아이와 같네. 나이에 좀 어울리게 행동을 해야지. 하긴 천지괴협 그 어른이 기이한 분이라 자네가 그분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네.”
“헤…….”
꼭 바보처럼 순수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하고 해맑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다. 이 바보가 천하무림의 영웅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처참하게 짓밟아야 했다.
‘그래. 그렇게 내게 넘어와야지. 너 같은 바보는 결코 천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할 터!’
저토록 순수하고 순박한 모습은 더더욱 부숴 버리고 싶은 증오가 피어올랐다.
단청보 자체는 참으로 선량하고 티 없이 맑았지만 그로 인해 아버지의 마음까지 빼앗으려고 했다. 용납할 수 없었다. 애써 화제를 돌렸다.
“청보, 자네에게 생각지도 못한 매력이 있었군.”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야. 이만하면 바보 딱지 빨리 떼야겠어. 무림에 나가 위풍당당 천지괴협의 제자로서 위용을 좀 떨쳐 봐야지? 자네 사문의 사질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실망스런 모습에 냉대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불식시켜야지.”
“아직 사부님께서 무림에 나가 활동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긴, 이해가 되네. 자넨 너무 순진해서 무림의 더럽고 치졸한 것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겠어. 걱정 말게. 언젠가 자네도 무림에 나와 위용을 떨칠 때가 있을 거네.”
독고무흔은 단청보에게 거듭해서 친근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적당한 시기에 폐인으로 만들든지, 죽이든지 기회를 잡으려면 그래야 했다.
독고검성은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단청보도 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말에 온갖 뼈가 다 들어 있고, 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사부님이 말씀하신 보이지 않는 칼날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청보의 모습을 보며 검신은 사부의 정신과 눈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외로 심계가 깊었다. 세상 경험이 없었지만 순후한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에 진실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할 수 있기에 무서웠다. 예전부터 장학선은 아들을 보는 눈초리가 좋지 않았었다.
‘그래. 청보는 덮어놓고 사부의 무공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사부의 정신까지 배운 것이야. 그 친구가 정말 대단해.’
하루를 푹 쉬게 했다.
단청보는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천목산 해광림이나 사부님의 곁에 있을 때와는 천지 차이로 느껴지는 이질감을 쉽게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했으니 독고검성이 들어와 달래줬다. 덕분에 편안한 밤을 보냈다.
아버지의 정을 단청보로 인해 빼앗기자 독고무흔은 옷과 이불을 죽죽 찢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음 날.
독고검성은 삼 일 비무의 연장으로 무공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서로 비교해 보면 그 특성이 자세하게 드러날 것이다.
“오늘 너희가 무공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미처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지적해 줄 것이다. 무흔이 너도 알다시피 무학의 깊은 경륜으로 말하자면 나를 따를 자는 천하무림에 천지괴협 그 친구밖에 없을 것이야. 하지만 모든 사안에는 일장일단이 있지. 천지괴협과 나는 서로 다른 장기를 갖고 있으니까. 그러니 각자의 무공을 연습해 보거라.”
“예!”
단청보와 독고무흔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독고무흔은 장검을 들었고, 단청보는 금월도를 들었다. 독고무흔은 검식을 삼십 번 정도 반복하여 휘둘렀다. 땀이 나자, 땀을 닦고 물을 마셨다.
단청보는 동, 서, 남, 북, 상, 하, 좌, 우, 중심의 구괘(九卦)에 걸쳐 각 방향과 구간, 괘별로 무려 삼백 번씩 반복했다. 전형적인 비도섬류의 쾌도식(快刀式) 하나를 갖고도 이미 수십 가지의 변화와 다른 초식이 나왔다.
온몸에서 땀이 나고 옷이 다 젖어드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독고무흔은 겨우 삼십 번에 멈추고 쉬고 있었지만, 단청보는 삼백 번이나 반복하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근육이 울긋불긋 솟아오르며 약간은 붉게 달아올랐다. 열기가 몸에서 많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하나의 초식이라도 확실하게 연습했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절대 다음 초식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독고무흔은 삼십 번을 독고비검세를 연마하자, 탄검세를 연마했다. 탄검세는 대략 사십 번을 반복했는데, 단청보는 여전히 쾌도식을 반복했다.
독고무흔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독고대검참을 연습했다.
독고검성이 보기에도 단청보의 연습은 충분했다. 쾌도식은 완전히 달통하다 못해 마음대로 응용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제는 도격식(刀擊式)과 진참식(震斬式)을 사상의 건, 곤, 이, 감의 괘를 밟아 가며 연습했다. 구괘에 이어 사상의 괘를 밟아 가며, 이번엔 칠백 번이나 연습했다.
독고무흔은 단청보의 연습 횟수와 비교하면 십분의 일도 못되는 수준이었다. 이래서는 대결해 봐야 독고무흔이 질 것이 분명했다.
단청보는 절용상기의 내공과 탁월한 외공으로 오천오백 번이나 연습했다.
‘하!’
단청보의 연습을 보니 흠잡을 곳이 없었다. 몸이 완전히 지쳐 진이 다 빠지지 않으면 결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진이 다 빠지는 것같이 힘겨워지면 내공을 수련했다.
‘이래서는 무흔이가 청보를 이기기 힘들군. 청보가 자질이 부족한 것을 완전히 노력으로 매우고 있다. 무흔의 자질로 청보를 능가하려면 삼백 번으론 어림없어. 적어도 하루에 오백 번은 연습시켜야 돼. 아무리 자질이 총명해도 노력이 부족하면 의미가 없는 거야. 총명한 자질이 살아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수인 것.’
하루 종일 단청보는 무려 오천오백 번이나 연습했다. 그런데 독고무흔은 삼백 번의 연습으로 끝냈다.
쉬는 시각이 많은 반면, 단청보는 여섯 시진이 지나도록 쉬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이나 반복했던 단청보에게 이런 것은 별것이 아니었다.
독고무흔의 경우엔 놓치고 있는 변화정수가 많은 반면, 단청보의 경우에는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정수를 착실하게 익혀 나갔다.
단청보에게 부족한 것은 내공이었고, 심잠의 원기였다. 이것만 채워지면 저런 연습의 속도라면 언젠가 가속이 붙어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스스로가 자질과 총명함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확실하게 몸에 익혀질 때까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 무서운 집념과 집중력이 엿보였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독고무흔이 왜 고전을 면치 못했는지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청보야, 정말 대단하구나. 어떤 말로 칭찬을 해 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세상에나, 내가 하루에 검식을 연습할 때 최고 많이 해 본 것이 사천 번인데, 넌 오천오백 번이나 반복을 하다니……. 여섯 시진 동안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연습하다니 너에게 이런 무서움이 있을 줄이야. 넌 아주 무서운 놈이었어. 하하! 정말 대단하고, 무섭구나.”
자신이 열두 살부터 스물여섯 살에 이를 때까지 하루에 삼천 번에서 사천 번을 연습했다. 자신의 자질은 지금의 독고무흔에 버금갔다.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학기재였다. 그때는 그렇게 연습했다. 하지만 최고로 연습할 때도 사천 번에 그쳤다. 정말 지겨워서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단청보는 무려 오천오백 번이나 반복했다. 완전히 지쳐 퍼지기 일보 직전까지 연습하고 파고들어 갔다.
“그런데 청보야.”
“네, 말씀하십시오.”
“네가 연습한 것은 절정, 상승고수들이 여섯 시진 동안에 연마할 수 있는 한계의 끝이란다. 그렇게 연습하면 솔직히 안 질리니?”
“안 질리는데요.”
“……!”
독고검성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같은 짓을 수십 번이나 하면 너무나 질려서 못할 판인데 오천오백 번이나 해도 안 질리다니. 자기도 젊을 적 수없이 수련했지만 육백 번이 넘어가면 너무 질려서 도저히 못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동풍 환자도 아닌데 거품 물고 졸도할 지경이었다.
“아, 안 질려? 네 사부도 그렇게 널 가르쳤더냐?”
“네, 저희 사부님이 그렇게 하랬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지괴협, 대체 이 사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이 제자는 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행동을 수십 번이나 반복하면 질려서 못할 것이다. 체력이나 내공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진저리가 나서 못할 것이다.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하는 사부나 그것을 견디고 따라오는 제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