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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21화)
제六장 청보, 풍릉곡에 가다(2)


<2>

“그 친구가 제자를 아주 제대로 골랐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제자를 구했지만, 그 제자가 이토록 바로서고 있으니 나도 흡족하구만.”
독고검성은 단청보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장학선의 말대로 이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다. 초인적인 수련광인 단청보와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독고무흔. 정말이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승부였다.
장학선의 말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일생은 수십 년을 두고 생각해야지, 그 몇 년을 보고 수십 년을 단정 짓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독고무흔을 향해 시선을 응시했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소질이 있어도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수련이 부족하면 제대로 살아날 수 없는 법. 앞으로는 하루에 오륙백 번씩 꾸준히 연습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아버님.”
단청보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이 왜 밀렸는지 깨달았다.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단청보는 하나라도 확실하게 터득하기 전까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 초인적인 수련광이었다. 이토록 대단한 의지력과 노력을 할 수 있는 초인적인 수련광이라면, 단순한 소질로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가 이토록 의외의 성취를 이룬 것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검신 독고검성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단청보의 수련은 감동 그 자체였다.
“청보야.”
“네, 말씀하십시오.”
“강호를 한 번 경험해 보지 않겠느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너도 강호에서 위풍당당한 천지괴협의 제자로서 무명을 떨쳐야지. 아직도 우두미종이네 바보로 알고 있는 미련한 무림인들의 콧대를 꺾고 말이야. 아니 그러하냐?”
“아직 거기에는 특별히 뜻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역시 넌 여리구나. 장학선 그 친구의 판단이 옳아. 너에게는 무명을 떨치는 일보단, 실력을 쌓는 일과 네 주변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순서일 터니.”
“네?”
단청보는 독고검성의 말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공부도 익히고 무공도 많이 익혔지만 주변의 사리 분별을 깊이 있게 이해할 정도로 지혜롭진 못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무척이나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신수명조 흑표에게 알아본 단청보의 주변 일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단청보가 무명을 떨치기에 앞서 필요한 일이 있었다.
스스로의 실력과 지혜가 충실하게 다져져야 한다는 것과 자기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정리해야 할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학선도 잘 알고 있지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동풍의 병기가 완전히 가신 것이 아니니, 주변 상황에 대한 명확한 사리 분별과 지혜는 부족한 면이 있어. 이래 갖고선 너무나 어이없는 암수에 쉽게 말려들 위험도 크고……. 무엇보다 이 아이가 이토록 초인적으로 수련하니 언젠가는 나와 학선이 그 친구의 반열에 오를 것이야. 넘쳐 나는 힘과 역량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무림에 크나큰 화근이 되는 법. 지금의 청보에겐 강호에서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무명을 올리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겠어.’
단청보가 멀뚱하게 의문에 빠져 있자 독고검성은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해맑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단청보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공연한 말을 했구나. 그런 것까지는 네가 알 것이 없고… 청보야, 너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수련하는 것이냐?”
“음, 음…….”
단청보는 독고검성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부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고, 독고무흔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무공을 익힐수록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지는 청량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감정적인 것이 많아 뭐라 꼬집기가 어려웠다.
“그럼, 왜 그런 수련을 힘들게 하는지 확실하게 세운 뜻이 없다는 것이구나.”
“전… 그게…….”
“말하지 않아도 표정만 봐도 알 것 같구나. 첫째, 내 양자에게 맞지 않으려고 무공을 시작했을 터. 수십 번이나 어릴 적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음…….”
“역시 내가 본 것이 정확했어. 둘째, 네 사부가 너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니 부족함을 알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 그랬겠지. 지금까지 그것이 너의 초인적인 수련을 이끈 힘이라면 그렇게 축적된 힘을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 그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림을 파괴시키는 우환거리가 되고 말아.”
단청보의 초인적인 수련은 독고검성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했다. 이토록 초인적인 수련을 하는 단청보가 언젠가는 주체할 수 없는 힘과 역량이 쌓여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어떤 뜻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관건이다.
“제 주변에는 어떤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독고검성의 말이 있자 단청보는 궁금해졌다. 공부를 배우고 머리가 조금씩 트여지면서 자신의 출신과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항상 백치에 가깝게 살아 기억도 가물가물 정신도 오락가락했다. 검신 할아버지의 말처럼, 자기가 그토록 초인적인 수련광이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문제는 나보단 네 사부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겠구나. 물론 네 출신과 정체를 알고 있고, 주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자세히 알고 있단다. 하나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너의 일신을 심하게 망가뜨리게 되는 쪽으로 갈 것이 우려되어 말하기가 그렇구나.”
“그래도 제가 알아야 할 것이라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막상 단청보의 의문을 듣자 뜨끔했다. 단청보는 이제 막 공부와 무공이 충실해지고 있는 단계였다. 서서히 자신의 출신과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단계에 왔을 것이고, 차차 일생을 살아가는 열망을 품어 볼만 한 시기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니 동풍에서 언제 벗어날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진즉부터 생각하고, 품었어야 했을 것이 정립되지 못했다.
일생의 십삼 년을 병마에 시달리며 보냈다. 이제야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놈의 급한 성질이 문제였다. 너무 빨리 말했다. 단청보는 독고검성이 그렇게 말하자 느긋해졌다. 무공을 익히면서 그런 상황엔 익숙해졌다. 지금 알아야 하거나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면, 그 단계에 이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겠지. 하나 그 문제에 대해선 당장 알아야 할 것이 없구나. 아아∼ 그런 것은 이제 접자. 심각한 이야기는 길게 끌어 좋을 게 없어요. 마침 이 할아버지에게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이참에 같이 가서 구경해 보겠느냐?”
“네! 감사합니다. 검신 할아버님! 헤∼”
마냥 아이처럼 좋아라 했다. 갖고 있던 고민은 어디론 가로 싹 달아나 버렸다.
독고검성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단청보가 자기 출신과 주변 문제에 깊이 빠지기 전에 얼렁뚱땅 넘어갔다.
듣고 있던 독고무흔도 생각하자니 이상했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때는 단청보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문제가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청보 저 친구의 주변에 어떤 은원의 고리가 있는 것 아닐까? 아버님이 무언가 아시는 것 같으면서도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가 있어.’

<3>

양부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의구심이 들었으나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차피 그 일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었다. 천목산에서 단청보와 사흘 동안 대련했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고 망치는 타도해야 할 적일 따름이었다.
모처럼 아버지가 단청보를 데리고 볼일이 있다고 했다. 자기도 고된 수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졌다.
“아버님. 소자, 밖으로 출타를 해도 되겠습니까?”
“출타를 하겠다고? 어디로 말이냐?”
“무림을 좀 주유하고 싶습니다. 대련도 좀 하고, 실력도 가늠하고 싶습니다.”
“그래? 고되게 수련을 했을 것이니 너도 심기일전이 필요한 때도 있겠지. 다녀 오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냈다. 답답한 수련이 계속되다 보니 심신이 고되고 진절머리가 났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단청보의 노력만큼은 신기했다.
며칠이면 모를까, 몇 달, 몇 년, 그리는 못할 것만 같다.
독고무흔은 수련을 잊고 하산하여 무림을 주유했다. 여러 후학들과 대련을 하기 위함이었다.
독고검성은 단청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청보야, 앞서도 말했지만 힘을 축적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단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너의 수련에 대해선 흠잡을 곳이 없으나, 두 가지의 단점이 드러났지. 하나는 내공의 부족이고, 또 하나는 유연함과 탄력의 부족이었어. 이런 점은 어차피 네가 수련하며 충분히 다듬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기까지 해 두자꾸나.”
단청보의 수련과 노력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다만 말한 그대로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어떤 일이든 일장일단이 있다. 단청보는 독고검성의 지적과 가르침을 새겼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깊은 지적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래. 내가 너무 무게를 잡았구만. 그럼 우리도 하산해 볼까?”
“네!”
단청보는 마냥 신이 났다. 몸집은 크고,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이 가득했다.
독고검성도 단청보를 보고 있노라면 귀여운 손자의 재롱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산동, 추성(鄒城).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큰집으로 몰려갔다. 으리으리하니 큰집은 단청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귀밑을 긁적이며 아름드리 큰 나무를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독고검성은 순수한 아이와 같은 단청보의 모습에서 지나쳤던 웃음을 발견했다.
“하하! 저 큰 나무는 성황나무라고 해서 마을이나 집안의 수문장으로 삼는 것이지. 하긴 태어나 제대로 세상 구경을 못했으니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신기하겠지.”
“헤.”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져 아름드리 큰 나무를 한 번 끌어안아 봤다. 하도 신기했는지 나무껍질을 만지작거리고, 돌을 들었다가 놓고 했다. 독고검성은 단청보의 입에 전병을 하나 물려 줬다.
“자, 어떠냐?”
“달아요!”
눈빛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달고 맛있는 전병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독고검성은 전병을 하나 더 물려 줬다.
단청보는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다. 신기할 것도 참신할 것도 없는 전병 한두 개가 저렇게 재주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가득한 아이였다.
‘이거, 이거. 아주 날 휘어잡는구만. 내가 이 녀석에게 이렇게 빨려들다니. 이 녀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순식간에 깊이 빠져들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까마득하게 잊을 뻔했다.
토실토실 까마귀고기. 일백 근 구워 잡수시고, 기억은 저 멀리 언저리로 달아나 세상만사 귀찮아… 신선놀음 세월아 내월아 하니,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