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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서른.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어느덧 서른의 문턱에 다다라 있었다.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왈칵, 겁이 났다.
교도소에 있을 땐 다른 사람들과 필요 이상으로 말도 섞지 않고 주어진 일만을 타성적으로 해냈다. 그저 숨만 쉬는 인형처럼,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처럼 버티듯 살아가던 내게, 누군가 핀잔조로 말했었다.
‘이래서 곱게 자란 것들은 안 돼. 고작 한 번 실수로 인생이 끝난 줄 안다니까.’
그의 말이 옳았다. 한 번의 실수로, 아니,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끝나 버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의 궤도가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 또한 사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사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일상의 고단함에 지치기도 하지만 소소한 행복에 웃기도 하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늙어 가는 그런 삶을…….
빗물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신문지를 보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비를 피할 작은 공간조차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비를 맞고 있는 내 자신이 무참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서러움이 복받쳤다.
“시팔.”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확인했다.
키가 큰 남자였다. 여자치고는 큰 편인 나조차 위압감을 느낄 만큼, 남자는 컸다. 이 정도라면 거의 190센티에 가깝지 않을까. 가무잡잡한 피부. 군인처럼 바싹 잘린 머리카락. 폭우 속 파도처럼 거칠고 사나운 눈동자.
“왜 비를 처맞으면서 궁상을 떨고 지랄이야?”
남자가 내가 앉은 벤치를 퍽, 소리 나게 걷어찼다.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신문을 놓쳤다. 나보다 한발 앞서 커다란 손이 공처럼 구겨진 신문 뭉치를 주웠다. 여기저기 잔뜩 표시해 둔 구인란을 훑은 남자가 눈매를 좁혔다.
“여기서 이런다고 일자리가 구해져?”
“…….”
“주둥이가 막혔어?”
“……아뇨.”
무서웠다. 주위를 둘러봐도 인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재깍재깍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가야 할 것 아냐! 여기서 대체 뭘…….”
“이제 그만 가, 갈 생각이었어요.”
남자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졌다. 말꼬리를 잘라 기분이 상한 듯했다. 반사적으로 꾸벅, 인사한 후 걸음을 옮겼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허둥대다 발이 꼬였다. 간신히 균형을 잡아 흙바닥에 엎어지는 사태는 막았지만 문제는 기침이었다. 폐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거센 기침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시팔. 성큼 다가온 남자에게 손목이 붙들렸다. 반항할 새도 없이 손목에 가해지는 우악스런 힘에 이끌렸다.
“누가 팔아먹겠대? 얌전히 안 따라와?”
어떻게 얌전히 따라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음산한 날씨 탓인지 주변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괜히 성질만 돋우어 얻어맞는 건 아닐까. 다시 기침이 터졌다. 남자가 대뜸 가방을 빼앗았다. 강도인가? 가방을 되찾으려 뻗은 손을 낚아챈 남자가 나를 어깨에 둘러멨다. 어, 어, 하는 사이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말귀를 못 알아먹어.”
낮게 중얼거린 남자가 버둥거리는 나를 향해 말했다.
“계속 움직이면 확 던져 버릴 줄 알아.”
남자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단단한 바닥이 눈앞에서 너울거렸다. 멀쩡했던 누군가의 척추를 산산이 부서뜨린 나지만 아픔은 무서웠다. 얌전해진 나를 둘러멘 남자가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공원을 빠져나올 즈음 남자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보며 틈을 노렸지만 엉덩이만 팡팡 두들겨 맞았다.
트럭 앞좌석에 내동댕이쳐지자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웃옷을 내게 던지고서 운전석에 안착한 남자가 흉흉한 기세로 히터를 틀었다.
“빨리 안 덮고 뭐 해!”
“네? 네.”
“벨트는!”
“저기, 그게.”
“벨트!”
시간을 벌기 위해 미적거리니 살벌한 눈빛이 날아들었다. 지시대로 안전벨트를 매고 던져 준 겉옷을 몸에 덮고 나자 취조가 시작됐다.
“사는 데가 어디야.”
“네?”
“귓구멍이 막혔어? 어디 사냐고.”
“그건, 왜요?”
남자의 손이 쾅, 핸들을 내리쳤다. 거칠게 일렁이는 눈빛이, 네가 지금 나를 범죄자 취급 하는 거냐 따져 묻는 듯했다. 믿을 수 없는 가정이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데려다주시려구요?”
“알아 처먹었으면 빨리 말해!”
왜 그런 친절을 베푸는지 궁금했지만 묻는다고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자의 옆구리와 문 사이에 낀, 전 재산이 든 가방만 되찾는다면 진즉에 도망갔을 텐데.
“이 근처에 살아서 굳이 데려다…….”
“그러니까 이 근처 어디!”
틈도 안 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니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꼬리를 흐리자 남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얼마 전 묵었던 여관의 이름을 댔다.
“시팔, 혼자 궁상떨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네?”
“그래서, 지금 여관에 있다 이거야?”
여관이 아니라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긴 하지만…….
“귓구멍이 막혔어! 거기서 사는 거냐 묻잖아!”
“그, 그런데요.”
“시팔, 돈이 썩어 나지 아주! 하룻밤 처자는데 그렇게 돈지랄을 한다고!”
놀란 나머지 다시 기침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기침을 하고선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제대로 안 덮어!”
히터 바람이 한층 더 거세졌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건가? 안일한 건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는 게 무섭긴 해도 이 사람이 내게 해코지를 할 것 같진 않다는. 화를 다스리는 듯 심호흡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절 아세요?”
“시팔, 너처럼 못생긴 기지배를 내가 어떻게 알아!”
나쁜 사람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
남자가 거듭 재촉했다.
“시팔, 빨리 안 걸어?”
굼벵이 새끼를 삶아 먹었나. 등 뒤에서 감시하듯 따라오던 남자가 보란 듯 중얼거렸다. 말없이 걸음을 빨리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르는 동안 고만고만한 높이의 집들이 열을 맞추어 따라왔다. 더 올라가자 담이 솟아 있어도 길의 지대가 높아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집이 생겨났다.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중년 여자의 등을 바라보다 꾸물댄다며 또 혼이 났다.
“빨랑 들어가.”
남자의 집은 골목길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녹이 슨 푸른 대문을 열자 슬레이트 지붕을 씌운 직사각형 모양의 집이 보였다.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긴 했어도 부서지고 금이 간 자국마다 시멘트 특유의 칙칙한 빛깔이 검게 살을 드러낸 뒤였다. 좁은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고무호스를 끼운 수돗가는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듯 주변에 잡초가 가득했다.
“여기서 밤샐 거야?”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남자가 트럭을 출발시켰을 때만 해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한 남자는 나를 배려해 설명을 덧붙일 만큼 다감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트럭이 멈춰 선 순간부터 남자가 뱉은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시팔, 빨리 내려.’
‘시팔, 빨리 걸어.’
‘시팔, 딴 데 보지 말고 빨랑빨랑 걸으라니까!’
남자는 죄수를 감시하듯 나를 앞세우고 뒤를 따라왔다. 말을 꺼내려 할 때마다 살벌한 기세로 ‘시팔, 뭐.’ 하고 되묻는데…….
“빨리 안 들어가?”
암담했다.
대문을 넘어오자 이젠 집 안으로 들어가라 재촉이었다. 이런 성격 진짜 싫어.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여기까지 끌려 들어온 소심함이 원망스러웠다. 마루 아래 놓인 신발을 훑어봐도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슬리퍼가 전부. 이제 와 후회해도 늦었지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단둘이 들어가는 건 꺼림칙했다.
“저기, 일단 얘기를 좀 하고…….”
“셋 셀 동안 들어가. 하나.”
“그래도 이건 좀 아니…….”
“둘!”
“가, 같이 사는 분이 계시면 실례가 될…….”
“같이 사는 놈 없으니까 빨랑 들어가.”
시키는 대로 들어가는 게 더 위험할까, 여기서 달아나는 게 더 위험할까. 어쩌자고 여기까지 따라온 건지. 새삼 스스로의 안이함을 탓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니까짓 거 건드릴 맘 없으니까 좋은 말 할 때 들어가.”
“그게 아니…….”
“셋.”
“이, 있죠. 그게.”
“빨랑 안 들어가!”
서둘러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대여섯이 누울 수 있는 방 안엔 텔레비전과 수납장이 덩그마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왼편엔 다른 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오른편엔 각각 부엌과 화장실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남자가 대뜸 뒷덜미를 낚아챘다.
반항할 새도 없이 화장실로 끌려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밀쳐졌다.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화장실 입구에 놓인 세탁기를 붙잡아 위기를 모면했다. 세, 세이프.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씻어.’ 한마디와 함께 문이 닫혔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요.
얼이 나가 서 있노라니 쾅 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렸다. 성질 급한 남자가 서두르라 문을 걷어찬 게 분명했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좁은 통로 형태의 화장실엔 세탁기와 양변기, 앉아서 씻을 수 있는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젖은 몸에 오한이 일었다. 뜨거운 물로 손발이라도 씻을까, 하는데 오 분이 지나면 보일러를 끄겠다는 고함이 들려왔다. 망설이다 이내 옷을 벗었다.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쪼그려 앉아 씻으니 다행히 문 앞에 위치한 커다란 세탁기가 몸을 가려 주었다.
샤워를 마치고 찬장에서 수건을 꺼내 몸을 닦으려는 순간이었다.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응?
“여기 갈아입을 옷…… 시팔.”
세탁기 옆에 멀뚱히 선 나를 발견한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짧은 침묵 후 옷가지를 세탁기 위에 팽개친 남자가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성난 외침이 들려왔다.
“기지배가 정신을 어따 두고! 씻기 전에 갈아입을 옷 정돈 챙겨야 할 거 아니야! 시팔, 그 나이 처먹고 문 하나도 똑바로 잠글 줄 몰라!”
아니, 잠그는 걸 잊어버린 건 맞지만…… 그보다 그쪽도 나 씻는 거 알면서 들어왔잖아요. 갈아입을 옷 챙길 시간은 주지도 않고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요. 알몸을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억울함이 더 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얼마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한기가 돈다 싶더니 몸이 떨려 왔다. 이제 와 소용없겠지만 문을 잠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내고 벗어 두었던 속옷을 다시 입었다. 남자가 준 티와 바지는 크긴 했지만 그럭저럭 입을 만했다. 흘러내리는 바지를 다시 한 번 접어 올리는데 문득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앉아.”
남자가 차려 놓은 상을 가리켰다. 망설이다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라면 냄비에서 먹음직스러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그뿐이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삼각 김밥 두 개가 전부인데도 목 안이 깔깔해 입맛이 없었다.
정말 날 아는 사람이 아닌가? 보통 처음 보는 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씻겨 주고 밥을 먹여 주진 않잖아. 내가 없던 사이 세상인심이 그렇게 후해졌을 리는 없는데. 대체 왜……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라면을 먹는 시늉을 했다. 먹고 있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과장되게 입 안을 오물거리며 숟가락으로 국물도 떠먹었다.
입맛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저 상대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먹는 시늉을 했을 뿐인데, 그런데, 깨달았을 땐 이미 수저가 바삐 냄비 속을 오가고 있었다. 대체 얼마 만의 라면인지. 목 안을 타고 흐르는 얼큰한 국물 맛에 순수한 감탄이 일었다.
아, 행복하다.
젖은 몸을 깨끗이 씻고 더운 국물을 들이켜자 몸이 노곤노곤 풀어졌다. 냄비 바닥까지 박박 긁어 국물 한 방울까지 말끔히 비우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공원에서 우울감에 허덕이던 게 거짓말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제가 다 먹어 버렸네요.”
걸신들린 것처럼 먹는 내 모습이 딱했던 건지, 아니면 그 모습을 보니 입맛이 떨어진 건지 남자는 진즉에 젓가락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어딘가 질린 듯한 얼굴을 보니 후자에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멋쩍게 웃어 보이니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중에 목마르다고 지랄거리지 말고 물이나 마셔.”
“고맙습니다.”
말은 퉁명스러운데 행동은 자상했다. 물을 마시고 나니 남자가 칫솔을 내밀었다. 양치를 하고 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왜?”
“저기…… 그게, 혹시 제 가방…….”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그깟 푼돈 훔칠 맘 없으니까 잔말 말고 이나 닦고 나와. 그럼 줄 테니까.”
가방을 뒤졌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고한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왜 멋대로 가방을 뒤졌느냐, 따져 물을 용기가 있었다면 이곳까지 끌려오진 않았을 터였다. 얌전히 두 손을 내밀어 칫솔을 받아 들었다.
서른.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어느덧 서른의 문턱에 다다라 있었다.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왈칵, 겁이 났다.
교도소에 있을 땐 다른 사람들과 필요 이상으로 말도 섞지 않고 주어진 일만을 타성적으로 해냈다. 그저 숨만 쉬는 인형처럼,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처럼 버티듯 살아가던 내게, 누군가 핀잔조로 말했었다.
‘이래서 곱게 자란 것들은 안 돼. 고작 한 번 실수로 인생이 끝난 줄 안다니까.’
그의 말이 옳았다. 한 번의 실수로, 아니,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끝나 버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의 궤도가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 또한 사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사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일상의 고단함에 지치기도 하지만 소소한 행복에 웃기도 하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늙어 가는 그런 삶을…….
빗물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신문지를 보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비를 피할 작은 공간조차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비를 맞고 있는 내 자신이 무참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서러움이 복받쳤다.
“시팔.”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확인했다.
키가 큰 남자였다. 여자치고는 큰 편인 나조차 위압감을 느낄 만큼, 남자는 컸다. 이 정도라면 거의 190센티에 가깝지 않을까. 가무잡잡한 피부. 군인처럼 바싹 잘린 머리카락. 폭우 속 파도처럼 거칠고 사나운 눈동자.
“왜 비를 처맞으면서 궁상을 떨고 지랄이야?”
남자가 내가 앉은 벤치를 퍽, 소리 나게 걷어찼다.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신문을 놓쳤다. 나보다 한발 앞서 커다란 손이 공처럼 구겨진 신문 뭉치를 주웠다. 여기저기 잔뜩 표시해 둔 구인란을 훑은 남자가 눈매를 좁혔다.
“여기서 이런다고 일자리가 구해져?”
“…….”
“주둥이가 막혔어?”
“……아뇨.”
무서웠다. 주위를 둘러봐도 인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재깍재깍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가야 할 것 아냐! 여기서 대체 뭘…….”
“이제 그만 가, 갈 생각이었어요.”
남자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졌다. 말꼬리를 잘라 기분이 상한 듯했다. 반사적으로 꾸벅, 인사한 후 걸음을 옮겼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허둥대다 발이 꼬였다. 간신히 균형을 잡아 흙바닥에 엎어지는 사태는 막았지만 문제는 기침이었다. 폐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거센 기침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시팔. 성큼 다가온 남자에게 손목이 붙들렸다. 반항할 새도 없이 손목에 가해지는 우악스런 힘에 이끌렸다.
“누가 팔아먹겠대? 얌전히 안 따라와?”
어떻게 얌전히 따라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음산한 날씨 탓인지 주변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괜히 성질만 돋우어 얻어맞는 건 아닐까. 다시 기침이 터졌다. 남자가 대뜸 가방을 빼앗았다. 강도인가? 가방을 되찾으려 뻗은 손을 낚아챈 남자가 나를 어깨에 둘러멨다. 어, 어, 하는 사이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말귀를 못 알아먹어.”
낮게 중얼거린 남자가 버둥거리는 나를 향해 말했다.
“계속 움직이면 확 던져 버릴 줄 알아.”
남자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단단한 바닥이 눈앞에서 너울거렸다. 멀쩡했던 누군가의 척추를 산산이 부서뜨린 나지만 아픔은 무서웠다. 얌전해진 나를 둘러멘 남자가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공원을 빠져나올 즈음 남자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보며 틈을 노렸지만 엉덩이만 팡팡 두들겨 맞았다.
트럭 앞좌석에 내동댕이쳐지자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웃옷을 내게 던지고서 운전석에 안착한 남자가 흉흉한 기세로 히터를 틀었다.
“빨리 안 덮고 뭐 해!”
“네? 네.”
“벨트는!”
“저기, 그게.”
“벨트!”
시간을 벌기 위해 미적거리니 살벌한 눈빛이 날아들었다. 지시대로 안전벨트를 매고 던져 준 겉옷을 몸에 덮고 나자 취조가 시작됐다.
“사는 데가 어디야.”
“네?”
“귓구멍이 막혔어? 어디 사냐고.”
“그건, 왜요?”
남자의 손이 쾅, 핸들을 내리쳤다. 거칠게 일렁이는 눈빛이, 네가 지금 나를 범죄자 취급 하는 거냐 따져 묻는 듯했다. 믿을 수 없는 가정이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데려다주시려구요?”
“알아 처먹었으면 빨리 말해!”
왜 그런 친절을 베푸는지 궁금했지만 묻는다고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자의 옆구리와 문 사이에 낀, 전 재산이 든 가방만 되찾는다면 진즉에 도망갔을 텐데.
“이 근처에 살아서 굳이 데려다…….”
“그러니까 이 근처 어디!”
틈도 안 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니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꼬리를 흐리자 남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얼마 전 묵었던 여관의 이름을 댔다.
“시팔, 혼자 궁상떨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네?”
“그래서, 지금 여관에 있다 이거야?”
여관이 아니라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긴 하지만…….
“귓구멍이 막혔어! 거기서 사는 거냐 묻잖아!”
“그, 그런데요.”
“시팔, 돈이 썩어 나지 아주! 하룻밤 처자는데 그렇게 돈지랄을 한다고!”
놀란 나머지 다시 기침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기침을 하고선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제대로 안 덮어!”
히터 바람이 한층 더 거세졌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건가? 안일한 건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는 게 무섭긴 해도 이 사람이 내게 해코지를 할 것 같진 않다는. 화를 다스리는 듯 심호흡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절 아세요?”
“시팔, 너처럼 못생긴 기지배를 내가 어떻게 알아!”
나쁜 사람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
남자가 거듭 재촉했다.
“시팔, 빨리 안 걸어?”
굼벵이 새끼를 삶아 먹었나. 등 뒤에서 감시하듯 따라오던 남자가 보란 듯 중얼거렸다. 말없이 걸음을 빨리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르는 동안 고만고만한 높이의 집들이 열을 맞추어 따라왔다. 더 올라가자 담이 솟아 있어도 길의 지대가 높아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집이 생겨났다.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중년 여자의 등을 바라보다 꾸물댄다며 또 혼이 났다.
“빨랑 들어가.”
남자의 집은 골목길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녹이 슨 푸른 대문을 열자 슬레이트 지붕을 씌운 직사각형 모양의 집이 보였다.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긴 했어도 부서지고 금이 간 자국마다 시멘트 특유의 칙칙한 빛깔이 검게 살을 드러낸 뒤였다. 좁은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고무호스를 끼운 수돗가는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듯 주변에 잡초가 가득했다.
“여기서 밤샐 거야?”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남자가 트럭을 출발시켰을 때만 해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한 남자는 나를 배려해 설명을 덧붙일 만큼 다감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트럭이 멈춰 선 순간부터 남자가 뱉은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시팔, 빨리 내려.’
‘시팔, 빨리 걸어.’
‘시팔, 딴 데 보지 말고 빨랑빨랑 걸으라니까!’
남자는 죄수를 감시하듯 나를 앞세우고 뒤를 따라왔다. 말을 꺼내려 할 때마다 살벌한 기세로 ‘시팔, 뭐.’ 하고 되묻는데…….
“빨리 안 들어가?”
암담했다.
대문을 넘어오자 이젠 집 안으로 들어가라 재촉이었다. 이런 성격 진짜 싫어.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여기까지 끌려 들어온 소심함이 원망스러웠다. 마루 아래 놓인 신발을 훑어봐도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슬리퍼가 전부. 이제 와 후회해도 늦었지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단둘이 들어가는 건 꺼림칙했다.
“저기, 일단 얘기를 좀 하고…….”
“셋 셀 동안 들어가. 하나.”
“그래도 이건 좀 아니…….”
“둘!”
“가, 같이 사는 분이 계시면 실례가 될…….”
“같이 사는 놈 없으니까 빨랑 들어가.”
시키는 대로 들어가는 게 더 위험할까, 여기서 달아나는 게 더 위험할까. 어쩌자고 여기까지 따라온 건지. 새삼 스스로의 안이함을 탓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니까짓 거 건드릴 맘 없으니까 좋은 말 할 때 들어가.”
“그게 아니…….”
“셋.”
“이, 있죠. 그게.”
“빨랑 안 들어가!”
서둘러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대여섯이 누울 수 있는 방 안엔 텔레비전과 수납장이 덩그마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왼편엔 다른 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오른편엔 각각 부엌과 화장실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남자가 대뜸 뒷덜미를 낚아챘다.
반항할 새도 없이 화장실로 끌려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밀쳐졌다.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화장실 입구에 놓인 세탁기를 붙잡아 위기를 모면했다. 세, 세이프.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씻어.’ 한마디와 함께 문이 닫혔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요.
얼이 나가 서 있노라니 쾅 소리와 함께 문이 흔들렸다. 성질 급한 남자가 서두르라 문을 걷어찬 게 분명했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좁은 통로 형태의 화장실엔 세탁기와 양변기, 앉아서 씻을 수 있는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젖은 몸에 오한이 일었다. 뜨거운 물로 손발이라도 씻을까, 하는데 오 분이 지나면 보일러를 끄겠다는 고함이 들려왔다. 망설이다 이내 옷을 벗었다.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쪼그려 앉아 씻으니 다행히 문 앞에 위치한 커다란 세탁기가 몸을 가려 주었다.
샤워를 마치고 찬장에서 수건을 꺼내 몸을 닦으려는 순간이었다.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응?
“여기 갈아입을 옷…… 시팔.”
세탁기 옆에 멀뚱히 선 나를 발견한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짧은 침묵 후 옷가지를 세탁기 위에 팽개친 남자가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성난 외침이 들려왔다.
“기지배가 정신을 어따 두고! 씻기 전에 갈아입을 옷 정돈 챙겨야 할 거 아니야! 시팔, 그 나이 처먹고 문 하나도 똑바로 잠글 줄 몰라!”
아니, 잠그는 걸 잊어버린 건 맞지만…… 그보다 그쪽도 나 씻는 거 알면서 들어왔잖아요. 갈아입을 옷 챙길 시간은 주지도 않고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요. 알몸을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억울함이 더 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얼마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한기가 돈다 싶더니 몸이 떨려 왔다. 이제 와 소용없겠지만 문을 잠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내고 벗어 두었던 속옷을 다시 입었다. 남자가 준 티와 바지는 크긴 했지만 그럭저럭 입을 만했다. 흘러내리는 바지를 다시 한 번 접어 올리는데 문득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앉아.”
남자가 차려 놓은 상을 가리켰다. 망설이다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라면 냄비에서 먹음직스러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그뿐이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삼각 김밥 두 개가 전부인데도 목 안이 깔깔해 입맛이 없었다.
정말 날 아는 사람이 아닌가? 보통 처음 보는 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씻겨 주고 밥을 먹여 주진 않잖아. 내가 없던 사이 세상인심이 그렇게 후해졌을 리는 없는데. 대체 왜……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라면을 먹는 시늉을 했다. 먹고 있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과장되게 입 안을 오물거리며 숟가락으로 국물도 떠먹었다.
입맛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저 상대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먹는 시늉을 했을 뿐인데, 그런데, 깨달았을 땐 이미 수저가 바삐 냄비 속을 오가고 있었다. 대체 얼마 만의 라면인지. 목 안을 타고 흐르는 얼큰한 국물 맛에 순수한 감탄이 일었다.
아, 행복하다.
젖은 몸을 깨끗이 씻고 더운 국물을 들이켜자 몸이 노곤노곤 풀어졌다. 냄비 바닥까지 박박 긁어 국물 한 방울까지 말끔히 비우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공원에서 우울감에 허덕이던 게 거짓말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제가 다 먹어 버렸네요.”
걸신들린 것처럼 먹는 내 모습이 딱했던 건지, 아니면 그 모습을 보니 입맛이 떨어진 건지 남자는 진즉에 젓가락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어딘가 질린 듯한 얼굴을 보니 후자에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멋쩍게 웃어 보이니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중에 목마르다고 지랄거리지 말고 물이나 마셔.”
“고맙습니다.”
말은 퉁명스러운데 행동은 자상했다. 물을 마시고 나니 남자가 칫솔을 내밀었다. 양치를 하고 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왜?”
“저기…… 그게, 혹시 제 가방…….”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그깟 푼돈 훔칠 맘 없으니까 잔말 말고 이나 닦고 나와. 그럼 줄 테니까.”
가방을 뒤졌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고한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왜 멋대로 가방을 뒤졌느냐, 따져 물을 용기가 있었다면 이곳까지 끌려오진 않았을 터였다. 얌전히 두 손을 내밀어 칫솔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