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라이크 가드 1권(7화)
4. 추수철 몬스터 토벌―토벌의 시작(2)


자일이 죽은 뒤로도 며칠간 선발대는 변함없이 정찰 업무를 행했다. 그런 그들의 정찰 업무로 인해 크라진 산맥의 초입 부분을 비롯해 몇몇 산등성이에 있는 몬스터들의 서식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타닥, 타다닥.
나무가 적당히 불에 타오르며 조금은 싸늘해진 저녁의 차가운 밤공기를 녹여 주었다.
“나도 좀 줘라, 자식아!”
혼자 그 누가 보더라도 절대 물이 아닌 음료를 마시고 있는 카이론에게 크람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 선발대는 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방심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많은 피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게 사망자가 생겨났는데 대부분이 카이론과 제법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런 그들의 죽음에 카이론은 그다지 내색하지는 않았다. 소대가 다르기 때문에 거의 만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거나 혹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이들이 하나둘 나올 때마다 카이론의 행동이 조금씩 굳어 가는 것을 크람드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같은 소대에 있는 상당수의 고참급에 속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쳇, 소대장이 이런 것을 마셔도 되는 겁니까?”
“시끄러! 네 녀석은 벌써 처마시고 있잖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가만히 있다 보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 것인지 카이론의 손에 있는 물통을 빼앗고는 바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댔다.
“크으∼ 막내! 가서 안주 좀 적당히 가져와.”
“이병 케일! 예, 알겠습니다.”
몸이 십여 개라도 바쁠 정도로 고참급들은 심심하면 막내인 케일만을 찾아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소대장도 끼어 있었다.
“적당히 부려 먹으십쇼, 두목. 후발대가 왔을 때, 다 꼰지르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시끄러, 너나 잘하지? 나보다 네 녀석이 먼저 감옥에 기어들어 갈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안 그래? 케.일.”
“…….”
“얼라? 이 자식 봐라? 혼자 꿀이라도 처먹었나. 주둥이를 안 떼네?”
“죄, 죄송합니다!”
“나도 알아 임마! 네가 죄송한 짓한 거.”
카이론의 갈구기가 시작되자 이곳저곳에서는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다지 길게 케일을 데리고 장난치지 않았다.
“됐다. 케일아, 오늘은 이 엉아가 힘이 없으니 그만하고 가서 푹 쉬어라.”
“으음…….”
카이론의 말에 케일은 대답을 하지 않고는 오히려 카이론의 눈을 평소와는 다르게 마주 바라보았다.
“뭐야?”
“어, 어디 아프신 거 아, 아닙니까?”
“…….”
“…….”
순간적으로 7소대에는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크, 크하하하!”
“푸히히히.”
“아프답니다. 아퍼.”
“아이고, 저 자식 역시나 재미있는 놈이라니까. 크크.”
오늘도 역시 늘어난 부상자로 인해 무거운 기운이 흐르던 선발대는 금방 웃음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영지가 그다지 큰 곳이 아니어서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었기에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는 서로들 키득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병사들을 소대장들이 말리지는 않았다. 너무 무거운 상태로만 있으면 자신의 소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게 될 수가 있다.
거기에 분명 단순히 사기가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은 끝났지만 다음에 있을 명령에 소대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에가밀 역시 그런 소대원들을 가만히 놔두었다. 물론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카이론을 노려보며 말이다.

***

“잘 있었나?”
“물론입니다. 그것보다 가지고 오신 것은 없습니까?”
평소의 행동과는 다르게 복장도 단정히 하고는 카이론의 눈앞에는 모논 영지의 최고의 기사이자 최고 노장 기사인 마일드가 서 있었다.
“거, 녀석 이럴 때만 급하구나. 옜다.”
마일드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품속에서 서신을 한 통 꺼내어 카이론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카이론의 뒤에는 크람드가 조용히 마일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네 것도 여기 있다.”
“감사합니다. 기사단장님!”
휙 사라진 카이론과는 다르게 크람드는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하고는 카이론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자 병사들이 없는 곳으로 쏙 하니 사라졌다.
이럴 때 보이는 은신 능력은 최고라 해도 될 법했다. 자신에게 편지를 받기가 무섭게 사라진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고는 마일드는 회의장으로 몸을 옮겼다.
선발대에 그들을 이끌 인도자가 한 명은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선발대에 관한 일은 고지식한 기사들보다는 병사들이 더 잘 알고, 알아서 잘해 왔기에 다른 인도자는 없었다.
가장 앞선 소대의 소대장이 정찰에 관한 보고를 올리게 되어 있었다. 뼛속까지 기사 정신이 강한 차지리 남작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을 자리는 빠지도록 하였고, 이런 선발대의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기사들은 최대한 영지에서 휴식을 취하다 중심 전력과 같이 움직여 선발대와 합류를 한 뒤 항시 가장 선두에서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거 나도 늙었는지 최대한 쉬어 두어야 하지만 회의가 있으니…….’
항시 다른 이들 앞에서는 아직 정정하다고 떠들고 다니긴 하지만 마일드는 스스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쯧, 그 녀석만 허락하면 조금 늦기는 했지만 내 모든 것을 알려 줄 터인데 말이야.’
주군을 섬기지 않고 돌아다녔기에 자신의 검술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마일드였다.
그랬기에 뒤늦게 정착한 모논 영지에 적응한 뒤로 제자를 거두려 하였다. 아니, 제자로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 보여 제자로 점찍었던 이가 먼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시간을 내려고 하면 상대방이자 자신이 점찍은 인물은 어떻게 해서든 그런 자리를 빠져나갔다.
결국 시간을 끌수록 자신이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직접적으로 제자가 되지 않겠냐는 말까지 하였지만 결과는 거절.
바람의 기사 마일드의 이름이 한순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이었다.
‘카이론 고얀 놈, 크흐흐.’
자신의 제의를 거절하는 맹랑한 모습을 보인 뒤로는 카이론과는 악연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가만히 있었지만 카이론에 대한 말이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까지 들어왔다. 그러던 사이에 소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그런 대부분의 소문 중심에 서 있는 카이론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조금 어색하던 카이론과의 사이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카이론에 대해 알아 가자 전혀 얄밉지만 얄밉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저 녀석은 내 제자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단 말이지.’
마일드는 카이론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을 했을 때 그에 대한 것을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이론과 친해지고 난 뒤로는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해서든 그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용병으로 수없이 많은 전장을 누벼 우연히 마나를 느끼게 되어 익스퍼트에 이르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세상에 둘도 없을 천재이며 운이 좋은 이라 할 수 있다.
전장이라는 곳이 그날 바로 죽을 수 있는 곳이기에 그런 곳을 수없이 돌아다니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둘도 없는 운이 따라야 했다.
거기에 다른 귀족 가문의 기사들같이 무언가를 배운 상태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돈이 없어 돈을 벌기 위해 전장에 나가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그들이 전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냥 가도 위험한 전장인데 대부분이 화살받이로 사용되니 말이다.
‘뭐, 저 녀석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지만 말이야. 큭.’
보면 볼수록 자신을 놀랍게 만드는 카이론의 능력을 떠올리자 그 어떤 위험한 전장에서도 자신보다 오히려 더 잘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일드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마일드 경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회의가 열리는 천막 안에서 무언가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차지리 남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일드는 천막까지 걸어오며 하던 생각을 모두 날려 버렸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다가온 몬스터 토벌이 먼저이니 말이다.

***

“저곳이군. 각 기사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충!”
놀 부락이 모여 있는 곳을 확인한 차지리 남작이 자신의 은빛 투구를 눌러쓰며 주변에 모여 있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몬스터를 한곳으로 유인해서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몇몇 곳에 미리 병사들을 대기시켜 놓았는데 그런 그들을 이끄는 이들이 모논 영지에 몇 없는 기사였다.
기사들은 남작의 명령에 자신들이 배정받은 위치로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모두 간 것은 아니었다.
영지의 최고 실력자인 마일드만은 영주의 옆에 자리해 있었다.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군. 그렇지 않은가?”
“허허허. 그렇긴 하지만 놀들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흠.”
이제 곧 일어날 몬스터 토벌에 앞서 차지리 남작이 조금 들뜬 모습을 보였지만 마일드는 그런 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단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놀들의 움직임이 무엇인지 모르게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군. 하지만 적들이니 오히려 우리에게는 잘된 일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이 병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주변에서 오크들의 시체가 발견된 것 같습니다.”
“오크 말인가?”
“예. 거기에 놀들과 싸운 것 같은 흔적이 있는데 아마도 영역 싸움 같습니다. 영주님의 명령이 없었지만 이미 오크들의 움직임이 있을 것을 대비해 병사들 몇몇을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가? 잘 처리했네. 괜히 놀과 싸우는 도중에 오크까지 끼어들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아, 생필품이 있는 곳의 경계를 철저히 하라 전령을 내보내 두게. 물론 막지 못할 정도의 오크가 온다면 무리하지 말고 물러나라는 말도 잊지 말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마일드는 영주의 명령에 제법 발이 빠른 병사 한 명을 불러 전령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는 멀찍이 보이는 놀의 부락을 지그시 노려보며 자신의 검을 살며시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