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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8화)
4. 추수철 몬스터 토벌―토벌의 시작(3)


이제 이 애검에 끈적이는 몬스터의 피를 묻힐 시간이 바로 코앞이었다.
잠시 놀의 부락을 노려보던 마일드는 자신이 이끌어야 할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몬스터 토벌이 처음인 신임 병사들도 있겠지만 모두 긴장하지 말고, 평소 연습하던 것 그대로 움직이면 된다. 그리고 부족한 신임 병사들을 경험이 있는 선임 병사들이 잘 이끌어 주도록!”
“충!”
마일드가 맡은 병사들이 행할 일은 놀들을 지정된 장소까지 이끌어 오는 것이었다. 그다지 생각이 없는 몬스터였기에 활을 몇 번 쏘고 도망치면 알아서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오크와는 다르게 활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놀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몬스터에 비해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놀이었기에 조금만 잘못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금방 놀들에게 붙잡힐 수가 있었다.
“네 녀석은 또 나서는 것이냐?”
“저만큼 빠른 병사가 어디 있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선발대 일도 했으니 적당히 뒤에서 쉴 것이지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
다른 선발대에 속했던 이들은 현 상황에서 최고 후방이라 칭해지는 곳에 있었지만 카이론만은 달랐다.
“열심히 일해서 젊을 때 바짝 벌어 두려는 것이니 걱정 마십쇼.”
“킁, 알았다. 하긴 네 녀석은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테니.”
“출발 신호가 올라왔습니다. 마일드 기사님.”
“응? 그런가?”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출발 신호를 알리는 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한 마일드를 대신해 카이론이 알려 주었다.
“좋다. 출진이다!”
작지만 강하게 말을 한 마일드의 명령을 따라 50여 명의 병사들이 간편한 무장을 한 상태로 산 중턱에 위치한 놀의 부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조심스럽지만 전혀 느리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너무 느리게 움직이면 자칫 잘못하여 바람이 불 경우 냄새를 맡은 놀이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모두 활을 장전해라!”
다행히도 그들이 접근할 때까지 바람은 심하게 불지 않았다. 그렇게 접근한 그들은 적당한 위치가 되자 모두 활을 꺼내어 놀의 부락을 향해 시위를 매겼다.
병사들은 긴장한 자부터 시작해 앞으로 일어날 싸움으로 인해 조금 광기가 들려는 이들도 보였다. 전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광기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라! 그럼 발사!”
살짝 기운을 흘려 병사들의 정신을 다시 되찾아 준 마일드는 토벌의 시작을 알렸다.
슈슈슈슉!
마일드의 말에 병사들이 힘껏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자 병사들의 숫자에 맞는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놀의 부락에 쏟아져 내렸다.
꺄아!
컁!
대부분의 놀들은 중앙에 암컷과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놀들을 몰아 놓고 생활을 하였다. 그랬기에 병사들의 화살이 날아간 곳은 중앙이 아닌 외각에서 돌아다니는 놀들이 목표였다.
암컷이든 아직 성체가 되지 않았든 모두 몬스터임에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성체가 된 수컷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싸움에서는 유리했다.
거기에 유인을 위한 것이었기에 분명 쫓아오는 것은 수컷 놀들일 것이라는 생각에 행한 선공이었다.
슈슈슈슈.
다시 한 번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몇몇 놀이 기습에 본능적으로 움직여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놀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화살이 쏘아지고 나서야 전투가 가능한 놀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지정된 위치로 이동한다!”
앞에서 먼저 달려오던 놀들을 가볍게 빠르게 베어내던 마일드가 놀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바로 퇴각을 명령했다.
그런 마일드의 명령에 병사들을 뒤도 안 돌아보고 지정된 위치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가장 뒤에서는 마일드와 카이론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달리고 있었다. 다행히 위태로워 보이는 이들이 없자 카이론은 간간히 뒤를 돌아보며 활을 쏘아댔다.
단순히 위협용으로 쏘아내는 것이 아니었는지 카이론이 활시위를 놀 때마다 짧은 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잘도 쏘아대는구나.”
“몬스터를 잡는 수대로 돈을 더 준다면 아마 배는 더 잡았을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일드가 볼 때에는 지금 이상으로는 쏘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이론은 빠르게 활을 쏘아대고 있었다.
“모두 다 왔으니 조금 더 힘을 내라!”
처음 출발할 때에 비해서 조금 느려진 병사들을 다그치며 마일드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놀의 목을 가볍게 베어 넘겼다.
그러던 순간 잠시 하늘에서 쏟아지던 햇빛이 약해졌다.
캬악!
캬르르.
캬∼
뒤를 이어 놀들의 비명이 산맥을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 소리에 뒤를 잠시 돌아보던 병사들의 눈에는 주변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는 놀들의 머리 위로 활을 쏘아대는 모습이 들어왔다.
“방패병은 방패를 열어라!”
어느새 자리를 잡고 대기하고 있는 방패병들이 놀을 유인해 오는 이들이 지나갈 수 있게 방패를 벌려 길을 터 주었다.
“와아아아!”
“한 놈도 남기지 말아라!”
“모두 쓸어 버려!”
학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병사들은 놀들을 몰아붙였다. 그런 병사들 사이에서 가장 빛을 바라는 것은 역시 기사들이었다.
단순히 창으로 먼 거리에서 합심하여 놀들을 찌르는 병사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몸에 익숙해진 검으로 깔끔하게 놀들을 처리하는 기사들의 위엄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기사들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가 있었는데 그자는 다름 아닌 카이론이었다.
다른 병사들과는 다르게 제법 많은 양의 철을 넣어 만들어 묵직할 법한 창을 가볍게 휘두르는 카이론은 신위 역시 대단했다.
단지 기사들과는 다르게 화려한 면은 없었다. 거기에 필요하면 카이론 전용의 단검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 흙 등을 뿌려댔다.
퍼벅!
다른 병사에게 시선이 쏠려 있는 놀의 비어 있는 옆구리 부분을 카이론의 창이 망설임 없이 꿰뚫었다.
“어이, 고맙수다∼”
“됐으니 몸이나 잘 사려라 자식아!”
카이론이 도움을 준 인물은 카이론과 제법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서로 여유 있게 인사까지 주고받은 카이론은 다시 놀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생각보다 많은 동료를 잃은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그다지 소득이 없을 행동이기에 뒤쪽에서 조금씩 움직였겠지만 이번 토벌은 달랐다.
퍽, 퍼벅.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카이론은 다시 창을 휘둘러 두 마리 놀의 머리를 쳐 냈다. 카이론의 공격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인지 쓰러진 놀은 일어나지 못하였고, 그런 놀들에게로 카이론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달려들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그런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아니었다.
피를 봄으로 인해 생긴 광기.
푹, 푹, 푸북.
이미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놀의 사체를 연신 찌르는 병사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광기에 휩싸인 후임 병사들을 선임 병사들이 다그쳤다. 하지만 그런 말에 단번에 반응하는 이들은 몇 없었다.
결국 일어나는 일은 작은 폭력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놀의 사체를 찌르는 병사들의 뒤통수를 광기에 휩쓸리지 않은 이들이 가차 없이 후려쳤다.
“정신 차리라고!”
머리를 맞고 적인 줄 알고 창을 겨누려 하던 한 병사가 자신을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것 같이 노려보는 선임병의 시선에 순식간에 광기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그런 병사에게 남은 것은 복귀 뒤에 있을 선임병의 끝없는 갈굼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던 카이론은 잠시 자신의 앞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도주하려는 놀들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조금 넓게 전장을 살펴보았다.
‘어디 있냐!’
얼마 전에 자신이 죽인 붉은 놀을 대신해서 분명 그 자리를 차지한 녀석이 있을 것이라는 게 카이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분명 새로이 우두머리가 된 놀은 다른 놀들과는 다르게 조금이라도 강할 것이 분명했다.
‘설마 죽은 건가?’
전장이라는 것이 워낙 알 수가 없는 곳이었기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놀이 보이지 않자 죽었다고 빠르게 판단한 카이론은 다시 놀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카이론의 판단은 옳은 판단이었다. 인간의 귀족들과는 다르게 놀들은 우두머리가 가장 선두에 서서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유인할 때 조금 뒤늦게 따라오던 새로이 부락의 우두머리가 된 놀은 중간에서 기습적으로 나와 활을 쏘아대던 병사들에 의해 아무런 활약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끝났군.”
카이론이 승패가 확연해지자 도주하려 하는 놀의 등에 창을 꽂아 넣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
“휘익∼”
한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은 놀과의 싸움으로 인해 가슴속에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던 불안감을 털어내기 위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개자식들.”
하지만 카이론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상당히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상황에도 듬성듬성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거친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후웅. 퍼벅!
자신의 옆에서 목이 쉬어라 소리를 치고 있던 한 병사의 창을 빼앗아 살아남아 도주하는 몇 안 되는 놀을 향해 투척하였다.
카이론이 던진 창에는 마치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 같이 놀의 등판을 꿰뚫었다.
몇 개의 창을 투척하여 도주하는 놀을 처리하였지만 카이론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때, 영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정렬!”
놀의 전사들을 처리하긴 하였지만 아직 부락에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었기에 잠시 승리의 맛을 느끼게 해 준 뒤 차지리 남작은 계획했던 대로 이번에 부락까지 밀어 버릴 생각을 하였다.
차지리 남작의 명령에 병사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렬에 대한 것은 이미 영지 내에서도 많은 시간을 훈련했기에 각 소대에서 한 병사가 기준점을 잡기 시작하자 어지럽게 자리해 있던 병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힘들겠지만 조금 서두르겠다! 이미 이곳에 없는 다른 너희들의 동료가 놀 부락을 습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도록 한다.”
짧게 연설을 한 차지리 남작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방금 싸움을 끝내고도 흔들림도 없어 보이는 병사들의 모습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차지리 남작이었다.
“그럼 놀 부락으로 이동한다!”
“추웅!”
모든 병사가 한목소리로 대답하자 크라진 산맥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다른 몬스터들이 접근할 것을 대비하여 이런 행동을 말리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사기가 오른 병사들을 다그치는 것 역시 좋지 않았기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병사들은 질서 정연하게 선두에서 움직이는 기사들을 따라 조금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이 놀 부락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놀들의 시체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몇몇 병사들도 피해를 입었는지 뒤로 물러나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놀 부락에 남아 있던 놀들은 몬스터이긴 하지만 비전투 놀들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지 않은 피해로 놀 부락을 정리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차지리 남작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병사들을 투입시켰다.
“한 마리도 살려 두지 말아라!”
“와아아!”
“모두 쓸어 버려!”
일방적인 학살과도 같을 정도로 병사들은 놀의 성체나 새끼 할 것 없이 모두를 처리했다. 마지막으로 전리품이라 할 법한 놀의 가죽을 챙기기 시작했다.
잔인하다 할 법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과 몬스터.
몬스터와 인간.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이기에 잔인하다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