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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9화)
4. 추수철 몬스터 토벌―토벌의 시작(4)
몬스터 토벌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필요에 의해서는 산에 불을 놓기까지 하며 몬스터를 몰살시키기까지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태까지 처리한 몬스터의 수에 비해서는 피해가 없다 해도 될 정도로 미비했다.
“아∼ 언제쯤이 되어야 토벌이 끝날라나.”
벌써 토벌을 시작한 지 보름이나 지났지만 많은 몬스터를 처리한 것에 비해서 이동한 양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네 녀석이 빨리 좀 끝내 봐라.”
“제가 무슨 소드 마스터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해냅니까? 두목이야말로 애들을 끌고 확 밀어 버리십쇼.”
“닥쳐!”
현재 토벌은 나온 이들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 이 위의 인물들임을 자청하는 카이론과 크람드는 멍하니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블루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블루문이 아닌 자신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 하는 이의 얼굴이 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돌아가면 탈영이니 미치겠네.”
“내 윗선임에게 들었지만 너는 매년 몬스터 토벌에 나오면 그 말을 꼭 한다고 하더라. 나도 작년에 들었던 기억이 있고 말이야.”
“그러는 두목은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저와 같은 생각이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시작되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웃음은 금방 뚝 그쳤다.
“아니, 두목,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솔직히 두목이 형수님 같은 여성을 만난 것은 제 덕이 아닙니까?”
“뭐? 네 녀석이 뭘 했다고! 전부 내가 행한 건데.”
“다 제가 작전 지시를 내려주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제가 아니었으면 형수님에게 말도 못 걸어 봤을 거면서.”
“미친! 네 녀석 때문에 첫인상 안 좋게 박혀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냐!”
카이론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다.
과거 크람드는 아내인 에린의 자태에 항시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것도 항시 어딘가에 숨어서 말이다.
그런 것을 보다 못한 카이론이 에린이 듣게 크게 한마디를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두목, 언제까지 그렇게 여자 뒤꽁무니만 따라다니실 겁니까? 그냥 확!”
크람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에린이 듣기에는 실로 섬뜩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카이론이 아무 이유 없이 크람드를 두목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위치도 위치지만 크람드의 얼굴은 두목이란 말을 들어도 충분하다 못해 남을 정도로 험악하게 생겼다. 그런 상황이니 당연하게도 에린이 겁먹고도 남을 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아∼ 그때의 두목은 상당히 귀여웠는데 말입니다.”
“허허, 저 얼굴에 말인가?”
“충!”
뒤에서 들려오는 마일드의 목소리에 크람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크람드를 따라 주변에 있던 소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찍이 소대원들이 먼저 마일드가 오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만류로 인해 아무도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렇게들 하고 있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가. 계속해 보게나.”
“…….”
마일드의 말에 크람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카이론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병사들은 기사들이 아무리 잘해도 그들을 두려워했다.
일종의 후임 병사가 선임 병사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았다. 기사들이 자신들을 함부로 해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기사들이 병사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훈련 시간이었다. 기사들에게 잘못 찍혔다가는 말 그대로 하늘을 노랗게 만듦과 동시에 입에서는 열심히 갈아 넘긴 음식을 뱉어낼 것이며, 모든 일이 끝난 뒤에는 녹초가 되어 집에서 실신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들은 이만 자야 하지 않겠나? 내일도 움직여야 할 것이니 말이야.”
“옙! 모두 취침!”
“충!”
말과 동시에 크람드를 비롯해 경계를 서야 할 병사들을 빼고는 빠르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취침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 비해 카이론은 느릿하게 움직이며 다른 병사들에 비해 상당히 튼실해 보이는 침낭으로 걸어갔다.
“카이론 병사.”
“상병 카이론, 부르셨습니까. 마일드 기사님.”
“잠깐 이 늙은이랑 대화하지 않겠나? 나이가 드니 잠만 없어져서 말이야.”
“크흠,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기사님의 말씀이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훗.”
카이론의 배짱 좋은 말에 마일드는 피식 웃고는 등을 돌리고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병사들의 수가 적지는 않았기에 자리를 옮기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화를 할 거면 이렇게까지 멀리 오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뭐, 잠깐 산책한다 생각하며 대화하면 되지 않겠나?”
“그렇습니까?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녀서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말해 본 것입니다.”
마일드가 뭐라 해도 변명도 못할 법한 말을 카이론은 대수롭지 않게 꺼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마일드가 용건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이미 마일드가 무엇을 원해서 자신을 불렀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카이론이 마일드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자신에게 해 왔던 제안.
자신의 종자가 되어 기사가 되라는 제안일 것이 분명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둘도 없이 좋은 기회이며 원하는 자리였다.
거기에 어중간한 기사가 아닌 익스퍼트 상급의 인물이었다. 대륙에 있는 모든 기사들의 수로 비교해 볼 때, 많지 않은 능력자 중 한 명임이 분명했다.
“자, 이걸 자네에게 주고 싶어서 불렀네.”
이번에는 어떻게 거부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카이론은 뜻밖에도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닌 전개에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은 주는 것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뻗어져 나갔다.
공짜에 대한 주부(?)로서의 본능이 순간 깨어난 것이다.
“음.”
하지만 카이론의 손은 뻗어진 상태 그대로 멈추어 섰다. 왠지 마일드가 건네는 책자를 받아들기가 부담스러웠다.
“잠시 받기 전에 무슨 책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냥 작은 선물이라네. 만약 자네가 받지 않는다면 내 특별이 영주님께 말씀드려 자네는 내 종자로 받아주도록 하겠네.”
“끙.”
“허허. 왜 그런가? 내가 듣기로는 자네는 공짜로 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말이야.”
“마일드 기사님도 아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공짜도 공짜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거, 녀석.”
본능적으로 자신이 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하다는 것을 느낀 것 같은 카이론의 행동에 마일드는 왠지 손자가 있다면 이런 아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 책을 건네주었다.
“다 암기하도록 해라. 내 이번 토벌이 끝난 뒤 확인하도록 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 보고 난 뒤에는 확실하게 처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투르르륵.
카이론이 빠르게 책을 쭈욱 넘겼다. 대충이나마 책의 내용을 본 카이론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무엇입니까?”
“너에게 기사가 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네가 무엇 때문에 기사가 되기 싫어하는지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마일드는 카이론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였기에 자신이 유리한 상황임에도 왠지 모르게 살짝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너에게 내 이야기는 했던 적이 없었지?”
“그, 그렇습니다만.”
“요즘 늙어서 내가 무슨 말을 누구한테 했는지 잘 잊어 먹어서 말이야. 아무튼 길게 말하지는 않으마. 아마 지금쯤이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본래 카인 제국의 백작가의 귀족이었다.”
자유 기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일드가 귀족가의 핏줄임과 동시에 대륙에서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동부의 제국인 카인 제국의 백작가 자손이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불안감에 카이론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어떻게 자리를 빠져나갈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가문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더구나. 힘이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차단되니 말 그대로 한순간에 모든 것이 풍비박산이 났지. 엄하지만 영지를 세상 그 무엇보다 아끼는 아버지, 엄한 아버지를 대신해 항시 따스한 미소를 지어 주시던 어머니. 형제는 없었지만 항시 형제 같았던 영지의 기사들.”
과거의 그림자를 찾는 것일까? 왠지 마일드의 눈가가 달빛에 살짝 반짝이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족 같던 이들을 희생시키며 살아남기 위해 도주하는 것뿐이었지. 아아, 물론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리다. 기사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는 너무나도 다르니 말이야.”
마일드의 말에 카이론은 수긍하고 말았다. 조금 털털한 면만을 뺀다면 마일드는 전형적인 기사였다.
“거기에 왠지 모를 죄책감에 가족을 만들지도 못하고 세월이 흘러 이 모논 영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뭐, 시시한 이야기이지.”
“아닙니다.”
카이론은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한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렸다. 이렇게 된다면 왠지 자신이 무거운 짐이 짊을 스스로 짊어진다고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눈치는 빠르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틀렸다.”
“크흠.”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카이론은 헛기침을 하였다.
“너에게 가문을 세우라는 등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야. 오늘은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은 늙은 기사로서 하는 부탁이다. 나름 대륙에서 나의 검술 능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 누구에게도 나의 기술을 전수해 준 적이 없어서 말이야. 네가 그것을 익히고 있다가 적당한 사람을 만나면 대가 끊기지 않게만 해 주었으면 한다.”
“끙. 왜 하필 저입니까? 마일드 기사님이 소문만 조금 낸다면 몰려들 사람들이 상당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허허. 방금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기사라고, 말 그대로 고지식한 인간이지.”
마일드의 말에 카이론이 뜨끔했다. 전에 한 번 기사들의 고지식함을 놓고 소대원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마일드에게 들킨 적이 있었는데 마일드는 그것을 아직까지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모집해서 능력이 된다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너는 그나마 내가 보아 왔던 이들 중 가장 자질이 뛰어난 아이이니 말이야. 거기에 네 성품이라면 내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을 했을 경우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 분명하니 너에게 이렇게 고개 숙여 부탁하마.”
“기, 기사님.”
갑작스럽게 고개까지 숙이는 마일드의 행동에 카이론이 당황했다. 상당히 건방져 어른들에게도 거침없이 행동 할 법한 카이론이었다.
물론 전혀 어른스럽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침없이 행동하긴 하지만 마일드 같은 이들에게는 달랐다. 마일드는 흔히 말하는 인간 말종 같은 이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러실 것까지야…….”
“그럼 내 고개를 들어도 되겠나?”
“물론이지 않습니까!”
현재 병사들이 머물고 있는 곳과 그다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혹시라도 누군가가 이런 장면을 본다면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럼 내 부탁을 들어줬다고 믿고 이만 가 볼 터이니 자네도 가서 푹 쉬게나.”
“헐?”
카이론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자신이 고개를 들라고 한 말을 이용한 이주 교묘한 마일드의 공격이었다.
“참고로 나의 본명은 프리첸 마일드였다. 백작가였지.”
씨익 웃으며 사라지는 마일드의 미소에 카이론의 머릿속에는 벼락이 떨어졌다.
‘다, 당했다!’
늙은 생강이 맵다는 것을 이번에서야 확실히 깨달은 카이론이었다.
***
차지리 남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크라진 산맥을 노려보았다. 생각했던 것에 비해 몬스터 토벌에 있어 전진하는 것이 상당히 더뎠다.
그렇다고 몬스터를 많이 토벌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해에 비해서 많은 양을 처벌하였다.
“올해는 유독 몬스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마일드 경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아마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병사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흠…….”
생각했던 것보다 긴 시간 토벌을 하는 것으로 인해 사기가 떨어질 것이 걱정이었다.
“역시 보급 부대에 연락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오늘 토벌을 끝내고 나면 작은 파티 식으로 술과 고기를 베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마일드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토벌에 앞서 그런 것에 대해 병사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덤으로 조금 강하게 몰아붙여서 내일 하루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슬슬 모일 때가 된 것 같군. 미안하지만 마일드 경은 사람을 하나 구해 보급 부대에 연락을 해 주게나.”
“충!”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것이었기에 차지리 남작은 모논 영지의 주민들이자 자신의 병사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부스스하게 일어나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전연승이라 하여도 쌓여 가는 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평소보다는 상당히 늦은 기상으로 피로를 회복시켜 주려 하였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미 평소와 같이 일어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차지리 남작은 왠지 모를 미안함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꼈다.
‘조금만 더 고생하거라!’
가장 앞에서 싸우기에 다른 이들보다 더욱 힘들 법한 차지리 남작이긴 하지만 그래도 수발드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병사들만큼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미안해지는군.’
“영주님.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자리에 드시지요.”
병사들이 와서 전해도 될 법한 말을 한 기사가 간단한 무장을 한 상태로 다가와 차지리 남작을 모시기 시작했다.
기강 같은 것을 따지기 이전에 한 명의 기사로서 자신의 주군을 존경하는 것이었기에 행한 행동이었다.
“알겠다. 든든하게 먹어 둬야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