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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13화)
6. 숲의 제왕 오우거(1)
전날 동료를 잃었다는 것을 잊기 위해 잔뜩 술을 마신 토벌군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천막에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계급이 낮은 병사들만 힘겹게 몸을 일으켜 평소 하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드물게도 카이론은 일찍이 일어나 한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흠, 마나 연공법이라… 어렵지는 않지만 조금 이상한 것도 있고.’
사전에 오늘 기사들을 오우거가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안내하기 약속했기에 카이론은 전날 병사들과 같이 마음껏 음주를 즐기지 못했다.
공짜임과 동시에 아리아가 없었기에 죽을 듯이 마시고 싶었지만 반강압적인 마일드의 표정에 결국은 추가 수당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하고는 음주의 유혹을 힘겹게 뿌리쳤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인해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 것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마나 연공법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뭘 잘못 먹은 적이 있던가? 연공법 시행할 때마다 이상 할 정도로 마나가 심각하게 요동을 친단 말이야.’
오늘도 어김없이 몸속에서 일어나는 마나로 인해 연공법이라고 하기 무안할 단계인 호흡법에서 멈추고 말았다.
“일찍 왔군 그래.”
“몬스터도 아침에는 잠을 자는 녀석들이 있어서 그 사이에 빠르게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어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거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져서 말이야.”
“하하하. 단장님이 늙다니요. 아직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그것보다 카이론, 요즘에는 조용하다?”
“하하. 제가 언제나 사건을 터트리고 다녔다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럼 아니라는 말이냐?”
마일드의 옆에서 같이 카이론을 기다리고 있던 바일이라는 기사가 털털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것보다 가기 전에 영주님을 뵙고 가야 할 것 같다.”
“끙. 어떻게 좀 안 되는 것입니까?”
“불가능하니 빨리 만나 뵙고 오거라.”
“쳇!”
다른 영지 같았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목이 떨어질 법한 건방진 태도를 보인 카이론은 자신의 무장을 풀기 시작했다.
“아아, 됐다. 영주님이 그냥 들어와도 된다고 하셨으니 그냥 들어가 보거라.”
“추웅∼”
잘 막아 주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인지 카이론이 건들거리며 군법 인사를 하고는 마일드의 뒤쪽에 있는 영주가 머무는 천막 앞에 섰다.
“상병 카이론. 영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들어오라.”
천막 안에서 들리는 차지리 남작의 목소리에 카이론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왕 만나는 것 소심한 모습보다는 조금은 남자답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좋겠다는 계획이었다.
“충!”
천막 안으로 들어선 카이론은 조금 전 마일드에게 했던 군법 인사와는 정반대될 정도로 깔끔하고 절도 있는 자세로 자신의 가슴에 주먹을 갔다대며 차지리 남작에게 인사를 올렸다.
“자네가 마일드 경이 칭찬하던 그 병사인가?”
“무슨 칭찬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긴 합니다.”
“그런가?”
차지리 남작은 카이론을 조금이라도 알아보기 위함인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전신을 쓰윽 훑어보았다.
“건강하게 잘생긴 청년이군. 긴 말은 하지 않겠다. 내 기사이자 영지의 기사인 그들을 오우거의 앞까지 잘 안내해 주도록. 혹여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바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도 잊지 말도록.”
“충! 상병 카이론. 영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나가 보도록.”
카이론이 마지막으로 군법 인사를 다시 한 번 멋들어지게 날려 주고는 영주의 천막에서 나왔다.
“후우∼”
“왜 그러느냐? 영주님의 카리스마에 반한 것이냐?”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단지 영주님은 제가 좋아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크크, 녀석 걱정 말아라. 분명 이번 일만 무사히 끝난다면 단장님이 확실하게 챙겨 주실 것이니 말이야.”
바일이 카이론의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듣고는 킥킥거리며 모든 일을 마일드에게 넘겨 버렸다.
“허허. 나만으로도 괜찮겠나? 나보다는 자네들이 조금 더 모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나야 혼자서도 잘 살아 나갈 수 있겠지만 자네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윽, 두고 보십쇼. 언젠간 반드시 단장님을 뛰어넘고 말 테니 말입니다.”
“허허, 젊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야.”
마일드의 말에 바일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지금 당장에 있어서는 마일드에게는 꼼짝 못하는 바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슬슬 가 보도록 하지. 빨리 끝내고 돌아와야 우리들도 푹 쉴 것이 아닌가.”
“저야 괜찮지만 오히려 기사님들이 숲속에 들어가면 저 따라오기 바쁠 걸요?”
“이것 봐라? 많이 컸다. 카이론.”
“내기 하시겠습니까?”
“좋다! 한 번 하지. 반드시 네가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내가 정정당당하게 심판을 봐 주도록 하지.”
두 사람의 대화에 마일드가 돌연 끼어들어 스스로 심판을 자처했다.
“기사단이라 해서 바일 기사님에게 손을 들어 주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허허, 이 나를 어찌 보는 것이냐. 오히려 네 녀석에게 손을 들어 줘서 기사단을 한 번 빡 쎄게 굴리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인데 말이야.”
“반드시 마일드 기사님의 뜻을 이루게 노력하겠습니다.”
카이론이 씨익 웃으며 바일을 돌아보았다. 그런 카이론의 미소에 바일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바일 기사님, 오우거와 싸우기 위함도 있고, 또다시 오우거가 몬스터를 불러 모을지 모르니까 마나는 가급적 사용하지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절대 자신에게 유리한 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바일은 느꼈다. 하지만 나름 영지 내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바일이었다.
그랬기에 카이론의 방금과 같은 태도는 그런 바일을 도발함에 있어 충분했다.
“흥! 네 녀석이나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럼 내기에서 승리한 쪽이 패배한 쪽의 한 달 치 봉급를 싹 갖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내가 불공평하자나!”
“저는 일반적인 병사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불공평하다니요? 누가 뭐라 해도 한 달 치 봉급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 않습니까. 기사님에게도 한 달 치의 봉급이고, 저에게도 한 달치 봉급입니다. 설마 제 한 달치 봉급인 20실버는 돈도 아니라는 것입니까?”
“끙.”
“제가 내기로 건 것은 한 달간의 봉급 없는 생활입니다.”
바일의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허허, 거 좋겠구만. 왜 그런가 바일, 이제 와서 빠지겠다면 특별히 나도 같이 카이론을 설득해 주지.”
“저 쉽사리 설득당하는 사람 아닙니다.”
“됐습니다, 됐어요. 마음에도 없는 말은! 좋다. 까짓것 이기면 되는 거니 그 내기 다시 한 번 더 받아들여 주마.”
둘의 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일은 곧 엄청난 후회를 하고 말았다. 가벼운 경장 차림이었기에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도 말이다.
***
“바일 기사님, 땀 좀 닦으실 시간을 드립니까?”
“됐다. 단지 내가 땀이 많은 체질이라 그런 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바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사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산맥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면서 여러 번 몬스터를 마주했지만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단 한 명의 기사가 나서도 충분할 정도로 소규모의 몬스터들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유가 합당했다.
피 냄새가 다른 몬스터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합당한 말이었기에 아무도 반박할 수가 없이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기사답지 않게 몬스터가 지나갈 때까지 나무에 올라가 있거나 풀숲에 몸을 숨기는 등의 행동까지 하였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후각이 발달되어 있었기에 걸릴 수도 있기는 하지만 카이론이 챙겨 온 약초를 몸에 발라 둠으로 인해 몬스터들에게 걸리지는 않았다.
“슬슬 오우거의 영역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느냐?”
“몬스터가 아까부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이곳이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우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제 있던 싸움의 장소와 비교해 볼 때, 아마 오우거의 영역일 것이 분명합니다. 뭐, 아니라 하여도 강력한 몬스터의 영역일 것이니 미리 처리해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네 녀석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너무 대충하는 거 아니냐?”
바일이 조금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말은 않고 있었지만 이미 내기에서 스스로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패배. 그 말은 곧 한 달간의 봉급이 사라지는 것이니 당연하게도 바일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근데 이 단창은 정말로 네가 사용할 거냐?”
카이론을 비롯해 다른 기사들의 모두 같은 공통점이 있다면 등 뒤에 메고 있는 짧은 두 개의 단창이라는 점이었다.
“예, 나름 투척하는 것에는 자신 있어서요. 멍하니 기사님들 싸우는 거 지켜보기 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오우거에게 제 힘이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거든요.”
“우리는 앞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너는 뒤에서 깔짝거리겠다는 거냐?”
“에이∼ 목숨은요. 기사님들인데 오우거 한두 마리는 수프 건더기 감으로 만들고도 남을 것 아닙니까.”
“빌어먹을 놈.”
말은 저렇게 하였지만 칭찬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기사들은 조용히 킥킥거렸다. 그렇게 잠시 바일의 투정을 들어주던 카이론은 전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등골을 써늘하게 만드는 오싹함.
움찔.
카이론이 갑작스럽게 몰려온 오싹함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언가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마일드 기사님. 무언가 불안합니다. 주변에 오우거기 있을지도 모르니 경계에 신경 써 주십시오.”
“흠?”
마일드는 카이론의 말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기사나 뛰어난 마법사들은 살기나 마나의 유동 등으로 상대방의 위치를 찾는다.
하지만 카이론은 그렇지를 못했다. 마나 연공법을 이제 막 시작했기에 그런 것에 벌써 예민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단순한 감.
무언가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런 것이 카이론에게는 있었다. 남들이 웃으며 말도 안 된다고 말할 법함에도 감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했다.
가끔은 그런 감이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의 예민한 기감보다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랬기에 기사들은 카이론의 말에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는 카이론은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빈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카이론의 말 때문일까?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한 기사들은 확실히 잠시 떠드는 사이 주변이 너무 조용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문드문 숲속에서 들리던 새나 벌레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심지어는 간간히 불던 바람조차 숲을 내리 누르는 무거운 기운에 모습을 감춘 것 같았다.
꿀꺽.
누군가의 목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다른 이들의 귀에 크게 들렸다. 그 순간.
“산개!”
콰구구!
콰직!
나무에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던 카이론과 기사들이 있는 나무로 거대한 바위가 날아와 나무를 순식간에 부러트려 버렸다.
“너무 뭉쳐 있지 말아라! 바위가 날아오면 바로 소리쳐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어라! 베른, 기사들을 지휘해라! 내가 오우거를 찾아보겠다!”
“충!”
방금 전까지 카이론과 바일의 대화에 킥킥거리고 있던 40대 중반의 진한 갈색 머리칼을 갖고 있는 남성이자 기사단에서 삼인자를 차지하고 있는 베른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연이 없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그는 오우거를 제대로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많은 수의 사람들과 같이 사냥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본 실력의 반도 꺼내 보지 못했다.
그랬기에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숲의 제왕 오우거. 그 이름이 주는 위엄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기사들은 거짓 없이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기도 하였지만 일단은 수가 적어 오우거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올 확률이 높았다.
“단장님, 잘 몰아 오십쇼!”
“걱정은 안 하는 것이냐?”
“드레곤이 아니고서야 단장님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몬스터가 있기는 한 것입니까.”
“하하하. 늙은 푸채가 더 쓴 법이지 않습니까.”
기사들은 마일드를 향해 한마디씩 던져 주었다. 장난스럽게 건네는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심으로 조심하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마일드는 그런 기사들의 말을 다 들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물론 단순히 기사들의 말을 듣기 위함은 아니었다.
마일드.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숲속에서 쏘아져 날아오는 굵은 나무였다. 마일드는 가볍게 날아오는 거대한 나무를 피하고는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것으로 대충이나마 오우거가 있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기에 저런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제 사냥을 하는 것인지 사냥을 당하는 것인지는 싸움이 끝난 다음의 결과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