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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15화)
6. 숲의 제왕 오우거(3)
카이론이 오우거의 손에서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았다. 카이론의 신체 능력이 일반인들과 다르게 뛰어나긴 했지만 오우거의 살기로 인해 그런 신체 능력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마나가 실린 마일드의 부름으로 인해 굳어진 몸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으로 오우거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머리 바로 위까지 떨어져 내린 오우거의 손을 피할 정도의 능력을 카이론이 갖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론은 피해냈다. 흔히 위기의 순간에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이상의 힘을 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카이론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마일드에게 받은 마나 연공법으로 인해 몸속에 잠들어 있던 마나가 눈을 조금씩 뜨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위기감을 느낀 몸이 카이론의 신체 능력을 순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멀리 멀어진 것도 아닌 오우거의 공격을 겨우 피할 정도였다. 그랬기에 오우거의 손이 떨어지며 주변으로 튀어 오른 파편으로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
그러나 그런 상처는 카이론에게 아무런 통증을 주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으로 인해 심장이 거칠게 뛰었고, 본능적으로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
생각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있음과 동시에 카이론의 몸은 이미 손에 들고 있던 단창을 오우거의 왼쪽 눈을 향해 쏘아 버린 상황이었다.
푸욱.
섬뜩한 소리였지만 그 결과는 카이론에게 있어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좋은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튀자!’
자신이 힘껏 던진 창이 오우거의 가죽을 뚫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해 한 번 더 공격을 해볼 법하긴 했지만 위험했다.
단숨에 머리를 완벽하게 부수지 않는 이상 심장을 꿰뚫려도 한동안 움직인다는 글을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거기에 오우거의 가랑이 사이로 마일드가 보이자 그들이 처리를 할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오우거가 쓰러지면 자신의 위로 쓰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도주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카이론의 기대와는 달리 기사들은 오우거를 놓아 주고 말았다.
“미친!”
카이론은 자신의 뒤를 무섭게 쫓아오는 오우거와 그런 오우거의 뒤를 뒤늦게 쫓아오는 기사들을 싸잡아 욕하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쿵!
오우거의 첫 번째 걸음 소리에 카이론 자신이 몸을 숨긴 나무에서 멀어졌다.
쿵!
오우거의 두 번째 걸음 소리에 카이론은 몸을 돌려 여전히 놓지 않고 있던 창을 오른손으로 꼭 쥐었다.
쿵!
콰자작.
오우거의 세 번째 걸음 소리와 동시에 자신과 오우거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나무가 부서지는 것을 보며 작은 생각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누군 죽어라 뛰었는데 누군 단 세 걸음 만에 도착하는구나.’
“후읍! 이거나 처먹어!”
한 호흡을 깊게 마신 카이론의 몸에서 다시 금광이 살짝 어렸다.
푸훙.
카이론의 손을 떠난 단창은 빠르게 카이론이 목표로 삼은 오우거의 신체 부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카이론이 던진 단창은 오우거의 뇌나 심장이 있는 가슴의 정중앙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머리는 안 그래도 단단한 오우거의 뼈와 다른 뼈들보다 단단한 두개골로 인해 이중 방어막이 처진 것과 같았고, 심장 부분에도 많은 뼈들로 보호받고 있었다.
거기에 두 신체 부위는 생명을 갖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랬기에 야성의 본능이 그대로 물들어 있는 오우거가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끼고 피할 수가 있었다.
그랬기에 선택한 부분.
푸학.
크어엉!
쿵.
나무를 부숨으로 인해 카이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오우거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땅에 제대로 발을 대지 못하고는 앞으로 꼬구라졌다.
아마 다른 몬스터였다면 몇 마리라도 뚫고 지나갈 법한 힘이었지만 질긴 오우거 가죽 때문에 제대로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카이론이 던진 단창이 맞춘 부위가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단창이 맞춘 곳은 오우거라는 것을 떠나 모든 종족을 통틀어 남성만이 갖고 있는 약점에 명중한 것이다.
거대한 오우거의 동체가 쓰러지며 큰소리를 냈다. 오우거의 뒤를 쫓던 기사들도 기회라는 것을 알았는지 쓰러진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쓰러진 오우거를 향해 카이론은 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저, 저곳에 맞을 줄이야.’
같은 남성으로서 괜히 미안해지는 카이론이었다. 카이론이 노린 부분은 무릎부터 허벅지였는데 오우거가 나무를 부수며 자세를 낮추었고, 오우거가 카이론을 제대로 못 보았듯이 카이론도 오우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만큼 카이론이 숨은 나무는 굵은 굵기를 자랑했다. 이런저런 운으로 터진 한 방으로 인해 오우거는 말로 형언하지 못할 고통을, 카이론의 소심한 가슴의 한구석에서는 작은 미안함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둘과는 다르게 기사들은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몰랐지만 오우거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어디를 다쳤는지 알게 되어 인상을 찡그리긴 하였지만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쓰러진 오우거를 향해 달려드는 기사들은 단번에 목숨을 끊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모한 도박을 하지 않았다.
단지 암놈을 맡고 있는 다섯 기사들을 뺀 나머지 세 명의 기사는 쓰러진 오우거와 주변에 숨어서 바위나 나무를 투척하고 있는 오우거를 경계하며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오우거를 조여 들어갔다.
캬아아앙!
수놈의 위기를 알아차린 암놈이 괴성을 지르며 몸의 이곳저곳에 자잘한 상처를 입으면서도 수놈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위협적인 몬스터가 방어를 배제하고 공격만을 행하니 이만저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악착같이 암놈을 막고 있던 기사들이었으나 결국 암놈을 놓치고 말았다.
몬스터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가족의 정은 있었다. 물론 한철임에 변함이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 가족이었다.
카이론은 잘 나가던 상황이 또다시 위험해질 것을 염려했다. 오우거 같은 몬스터는 인간과는 싸우는 방법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확연히 다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카이론의 생각은 무식하게 돌격해 오는 오우거 암놈으로 인해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흐하압!”
오우거 암놈이 돌연 달려들자 조급함을 느낀 베른이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힘겹게 참아 가며 기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팔과 다리를 휘두르고 있는 오우거 수놈의 목을 베어내기 위해 적당한 거리가 되자 단 일보에 강력한 힘을 주어 쏘아져 나갔다.
일격에 끝낼 생각이었는지 땅을 박차는 그의 힘은 더 이상 진로를 바꾸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되돌릴 수 없는 큰 실책의 시작점이었다.
쾅!
말 그대로 한순간이었다. 빠르게 쏘아져 나가는 베른의 옆으로 거대한 돌이 날아와 그의 몸을 때리는 것으로 부족해 베른을 붙인 상태로 숲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니, 조금은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상황임에도 오우거가 돌을 던져 맞출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다.
“베, 베른님!”
돌과 베른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자니 살아남아 있다면 신에게 골백번 감사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소리였기에 기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우거와 기사들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일어나는 기사들의 피해였다.
“이 자식들!”
한 젊은 기사가 돌연 숲속으로 몸을 돌렸다. 숨어서 돌을 던지는 오우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베른이 당하자 분노한 기분을 참지 못해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이탈했다.
그런 그의 행동은 또 다른 실수를 불러왔다.
“커헉!”
숲을 향해 돌진하던 기사는 멀어졌던 오우거 암놈이 언제 돌아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기사에게 접근하여 한 공격을 피해내지 못하고는 볼썽사납게 베른과 비슷하게 숲속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모두 정신 차려라! 부상자는 오우거를 쓰러트리고 난 다음이다!”
마일드가 자신의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정신력이 흩어진 기사들의 정신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쿠오!
쿵. 쿵. 쿵.
자신의 눈앞에서 거치적거리는 기사 한 명을 날려 버리자 속이 시원한지 오우거 암놈이 피어를 마구 뿌리며 수놈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당하는 것으로 인해 잠시 멈추어 서 있던 마일드는 그런 오우거 암놈의 행동에 단창을 뽑아내지 못했지만 나름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수놈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과연 마일드가 먼저 오우거 수놈을 베어 버릴지 아니면 암놈이 구하게 될지. 하지만 막 칼을 휘두르려던 마일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뒤늦게 생각한 것이지만 자신 역시 너무 성급하게 오우거 수놈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그를 더욱 흔들리게 만든 것이다.
자신들의 오우거 처리가 늦는다면 방금 당한 두 기사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음에도 못 살려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와 공격하는 오우거 암놈으로 인해 마일드는 갑작스럽게 두 오우거의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이 녀석만이라도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아주 찰나의 순간 마일드의 선택은 수놈을 계속 노리는 것이다. 방어를 배제한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은 마일드의 눈에는 이제야 자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오우거 수놈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흐아압!”
마일드의 몸이 날렵하게 움직여 공포로 인해 무섭게 반항하며 팔을 내뻗는 수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는 그런 수놈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쿠르륵.
츄아아악.
쿵!
단단한 오우거의 목뼈라 하여도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마일드가 작정하고 뿜어낸 오러를 견뎌내지 못하고 목이 베어졌다.
베어진 목으로부터 거대한 몸뚱이에 맞게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한 마리의 오우거를 쓰러트린 것이다.
오우거 한 마리를 쓰러트렸다는 것에 잠시 안심을 하던 마일드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에게 느껴져야 할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우거 수놈의 목숨을 노린 결과였는데 그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마일드의 몸이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간에라도 놓여 있는 것 같이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 그런 마일드의 귀로는 이제 몇 자루 남지 않은 단창으로 어딘가를 가르키는 카이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저 오우거를!”
힘겹게 다 돌아간 마일드의 시선에는 오우거 암놈의 두꺼운 목에서는 철철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손으로 막고는 있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이 연신 비명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목에 상처를 입어서인지 소리를 들려오지 않았고, 오히려 피만 더욱 쏟아지는 꼴이 되었다.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기사들은 곧 카이론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는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그 순간만큼은 기사들은 가장 중요한 부동심을 잊고는 오우거 암놈에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
“나왔다!”
오우거 암놈을 처리하려 달려드는 순간 결국 숲속에 있던 오우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싸웠던 두 마리의 오우거보다는 한참이나 작은 오우거였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뒤쪽에 배치해 놓았던 것이군. 오우거가 전혀 머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카이론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뒤로하고는 빨리 오우거들을 처리하고는 부상당한 기사들을 돌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님들을 치료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말을 하긴 했지만 이미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사들을 본 카이론은 베른이 날아간 곳을 잠시 바라본 뒤 다시 전장에 눈을 돌렸다.
남아 있는 두 마리의 오우거는 기사들만으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오우거 암놈은 목에 입은 상처로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었고, 새끼 오우거는 전투의 경험이 없는 게 눈에 띄었다.
기사들은 비겁하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새끼 오우거를 바로 처리하지 않고, 오우거 암놈의 정신을 분산시켰다.
캬아아아앙!
오우거 암놈은 처절한 울부짖음을 내뱉었다. 목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소리를 지르는 것이 가능해 보였지만 방금 지른 것으로 인해 목에서는 다시 피가 심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오우거 암놈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우거라 해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오우거의 눈에 자신의 새끼가 위험에 처한 것이 보였는데 상처 따위가 방해가 될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키우면서 단 한 번도 고통이라는 것을 못 겪어 보고 자란 새끼였다. 그런 새끼가 기사들의 검에 몸 이곳저곳 상처를 입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팔 한 번 잘 휘두르면 그 약한 몸뚱이를 부수어 버릴 것 같은 인간 기사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크캬아아아!
캬아앙!
오우거 만이 통하는 말인지 아니면 가족이기에 통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두 오우거는 서로를 바라보며 처절하게 소리를 질렀다.
‘잔인하다 하지 말아라. 나는 내가 살기 위함이고 네 녀석들은 우리를 사냥감으로 생각할 뿐이니!’
방금 전에 지른 새끼의 울부짖음에 오우거 암놈은 결국 눈이 돌아갔는지 등 뒤는 텅 빈 상태로 기사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후웅!
푹!
카앙!
쿵!
카이론의 단창이 다시 한 번 오우거의 무릎 뒤쪽을 파고들어 갔다.
“잘했다! 흐하압!”
카이론의 정확한 공격에 마일드가 감사를 표하며 다시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마일드 혼자만 달려드는 것이 아니었다.
두 명의 기사가 오우거의 양옆에서 마일드는 바로 등 뒤에서 오우거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위험해!”
쓰러진 뒤 잠시 미동이 없던 오우거였기에 기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 방심하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조금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카이론은 오우거의 움직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