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라이크 가드 1권(16화)
6. 숲의 제왕 오우거(4)
다리는 카이론으로 인해 못 쓰는 바람에 일어서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두 팔은 멀쩡했다. 그런 팔 중 하나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기사 한 명을 잡아챘다.
“크헉!”
“제드나른!”
오우거의 손에 잡힌 기사는 제드나른이었다. 제드나른은 터져 나갈 것 같은 오우거 암놈의 악력에 결국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우거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단순하게 잡고 있다가는 자신의 목이 먼저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콰득!
츄아아악.
“제드나른! 이놈!”
“죽어! 죽어어어!”
마일드는 오우거 암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하지만 제드나른의 반대편에서 접근한 기사는 이미 목이 떨어진 오우거의 시체를 난자하듯이 검을 휘둘렀다.
마일드는 그런 기사의 행동을 잠깐 지켜보고는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멈춰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마일드의 말에 오우거의 벌려진 입에서 신체의 반이나 뜯겨져 나간 상체가 오우거의 침에 범벅이 된 상태로 빠져나왔다.
오우거의 시체를 난자하고 있던 기사는 제드나른의 주검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는 조금씩 죽어 가고 있는 새끼 오우거의 싸움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오우거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한 것같이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새끼 오우거를 노려보았다.
“크랑, 조심해서 접근해라! 아무리 새끼라 하여도 오우거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크랑의 불안한 정신 상태를 걱정해 마일드가 그를 말리려 하였지만 그는 그런 말을 듣지 않은 듯 무섭게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카이론은 크랑의 행동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속마음이 이해가 되긴 하였다. 베른은 아직 생사를 알 수가 없었고, 제드나른은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었다.
시골 영지이기에 기사도를 지키는 것도 적당히 융통성 있게 행해 왔지만 기사로서의 자긍심은 있었다. 그런 것은 제드나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너무 어이없게 죽어 버렸다. 그것도 오우거에게 산 채로 뜯겨져서 말이다. 같은 기사도를 추구하는 기사로서 그의 죽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어!”
크랑은 연신 위험한 상태로 검을 휘둘렀다. 카이론은 그런 크랑과 크랑을 걱정하며 남은 새끼 오우거를 노리고 있었다.
“지지는 않겠군.”
카이론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크랑이 오우거를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하기 전에 베른이라도 구해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살아 있으십쇼. 베른 님.”
카이론의 몸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
“베른 기사님! 베른 기사님∼ 살아 계십니까!”
이런 곳에서 소리를 친다는 것은 좋지 않았지만 일단은 베른의 무사함이 먼저라는 생각하였기에 이왕 저지르는 것 카이론은 당당하게 저지르자는 생각으로 목청을 최대한 올려 베른을 불러댔다.
카이론이 향하는 방향은 아마 베른이 별 탈 없이 날아갔다면 날아갔을 것이라 짐작되는 방향으로 나름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러며 베른의 이름을 힘차게 불렀다. 가급적 그가 자신의 부름에 대답하길 바라며 말이다.
“시, 시끄럽다.”
얼마간 베른을 부르며 달렸을까?
돌에 의해 숲의 나무 이곳저곳 상처가 난 곳을 더듬어 가던 중 돌연 거대한 나무의 뒤에서 베른이 튀어 나왔다.
허리춤에는 덜렁거리는 검을 잊지 않고 메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보다는 부러진 것인지 덜렁거리는 왼팔을 그냥 방치한 상태로 걸어오는 베른의 모습에 카이론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부목 먼저 대어서 팔을 고정시켜야지 칼만 날름 주워서 꽂아 넣으면 다입니까?”
카이론은 기사들의 저런 행동에 질렸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부목으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았다. 나뭇가지를 찾아온 카이론은 갑옷을 벗고는 옷을 찢어냈다.
“하하하! 네 녀석이 내가 오우거의 돌을 날렵하게 피하는 것을 보았어야 하는데 말이야.”
“입을 다치셨어야 한 것 같습니다.”
“거 녀석,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정말로 죽을 뻔했단 말이다. 이 자식아!”
카이론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돌연 표정을 바꿔 조금 전에 있었던 위험천만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도 살 떨릴 법한 순간이었다. 오우거가 던진 돌을 몸을 살짝 틀어 왼팔을 희생해 막지 않았다면 아마 가슴이 함몰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했다.
“이크, 발목도 좀 부탁하마.”
“아픈 것인지 실로 의심이 들 정도로 목소리는 건강하시네요.”
카이론의 능숙한 조치에 베른은 조금 놀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뒤늦게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갑자기 발목을 살펴보는 카이론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오우거는!”
“컥! 바로 앞에 있는데 왜 그렇게 크게 소리 치십니까!”
카이론은 멍멍한 귀를 후비며 버럭 베른에게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카이론은 베른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베른의 말에 다시 제드나른의 죽음과 오우거 암놈에게 당한 기사가 떠올라 버렸다.
“누구냐.”
“…….”
갑작스럽게 무거워지는 카이론의 분위기에 베른은 좋지 않은 일이 생김을 알아차렸다. 그랬기에 질문하였지만 카이론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입을 닫고 베른의 발목을 치유해 주었다. 하지만 결국은 입을 열었다.
“제드나른 기사님입니다.”
“그래, 제드나른. 그 녀석 조금 있으면 검술의 능력이 오를 것이라 단장님이 기대하고 있던 녀석인데 말이야.”
직접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기에 아직 제드나른이 살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베른이지만 그것은 생각만이었다.
이미 몸은 그리고 생각의 깊은 곳에서는 제드나른의 죽음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다른 이들에게는 별다른 이상 없냐?”
“모르겠습니다. 제가 올 때에는 일단 오우거 암수는 모두 죽었고, 남은 것은 새끼 한 마리였습니다. 일단 베른 님을 찾았으니 서둘러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베른 님은 쓸데없이 튼튼하니…….”
“컥, 뭐라는 거냐. 이 자식이!”
“일단 응급조치는 했으니까 저는 가서 다른 다친 분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천천히 걸어오십시오.”
“야, 이 자식아! 날 데리고 가야지!”
자신만을 휙 놓고 사라지는 카이론을 향해 베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그의 목소리에는 숨기려 하였지만 숨겨지지 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카이론은 애써 베른이 당한 뒤 오우거 암놈에게 당한 기사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신의 탓이라 생각할 것을 걱정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그 기사를 까먹고 있었지.’
오우거 암놈에게 당한 기사는 순간 카이론의 머릿속에서 잊여진 상태였기에 베른을 먼저 찾아 나선 것이다.
오늘 오우거의 수놈을 단번에 쓰러트린 것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를 해내는 카이론이었다.
7. 사람을 봐 가면서 건들어야지(1)
오우거 사냥을 끝으로 소소한 전투를 몇 번 더 치른 모논 영지의 병사들은 귀환했다. 물론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고 귀환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목표치만큼 토벌을 행하지 못했지만 빠른 귀환을 원하는 카이론의 잔머리에서 나온 작전으로 인해서 토벌대는 귀환을 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단순히 오우거를 잡았을 때,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생각만을 하였지만 카이론은 그런 그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물론 이런 토벌로 잡은 것이 아닌 혼자서 잡았다면 지금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정해진 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겠구나. 이번 작전까지 해서 영주님이 확실하게 보상한다고 했으니 말이야.”
“지금 당장은 그런 것보다는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좋을 뿐입니다.”
카이론의 입은 귀에 걸린 상태였다. 다른 이들이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일단 자신은 작은 찰과상을 빼고는 딱히 심한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아리아가 자신을 보고 울 일은 없다는 것으로 기뻤으며, 그 이전에 아리아를 만난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또한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카이론이 생각해 낸 작전으로 인해 자신이 받을 포상이 더욱 늘어났다는 점도 있었다. 카이론이 생각해 낸 작전.
그것은 오우거의 피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트롤이라는 오우거보다는 위험도가 낮게 측정된 몬스터가 있다.
하지만 그런 트롤도 오우거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우거를 뛰어넘는 엄청난 회복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트롤의 피는 포션 제작에 사용되어 오고 있다.
그렇다고 트롤의 피만이 포션 제작에 사용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트롤의 피보다는 못하지만 오우거의 피로도 충분히 포션 제작이 가능했다.
카이론이 생각해 낸 방법은 그런 몬스터의 피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포션 제작에 중요한 재료이기에 비싼 가격을 갖는 오우거의 피를 다른 이들은 누구에게 얼마로 팔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카이론이 은근히 지나가는 투로 말을 했다.
“오우거의 피로 몬스터를 충분히 쫓아낼 수 있을 텐데…….”
이 단 한마디로 인해 지금과 같은 회군이 결정된 것이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이번에 사냥한 오우거가 무려 세 마리였기에 충분한 수익을 얻은 상태였고, 덩치에 맞게 많은 양의 피를 채취할 수 있어서 더 깊게까지는 토벌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베른 기사 님 외 세 분은 괜찮을지 걱정입니다.”
카이론이 베른을 찾으러 갈 때 카이론에게서 잊혀졌던 기사 한 명과 오우거 암놈에게 당한 제드나른을 제외하고도 마지막까지 저항을 하던 새끼 오우거에게 결국 두 명의 기사가 더 상처 입고 말았다.
즉사 당하는 등의 위험한 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디 한 군데가 꼭 부러졌다. 팔과 다리가 부러졌기에 제대로 뼈가 붙지 않으면 기사로서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카이론은 걱정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기사가 많은 영지가 아니었기에 기사 한 명 한 명의 부재는 영지에 큰 타격을 주는 일이었다.
“걱정 말거라. 영지 내에 나름 뛰어난 치료사도 있고, 네 녀석이 빠르게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
“흠. 얼마씩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뭐겠습니까, 치료비지? 크크.”
장난스럽게 말하는 카이론의 행동에 마일드는 멀찍이 보이는 영지의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뒷일은 오우거에게 피해를 입은 기사들이 알아서 행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마 카이론은 그들에게 돈을 받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에 부상을 입은 이는 크랑과 이성을 놓친 크랑을 보호하려 하였던 데콘푸라는 기사였다.
그들의 부상과 제드나른의 죽음으로 인해 귀환을 즐기는 병사들과는 다르게 영주와 기사들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특히 마일드의 기분은 정말로 착잡했다. 기사단장이라는 자리도 자리거니와 기사단원들 하나하나는 그에게 있어 가족이고 아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죽어도 그다지 여한이 없을 자신은 살고, 제드나른은 죽었다. 거기에 카이론에게 괜찮다는 듯이 말했지만 베른을 비롯한 부상당한 기사들에 대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병사들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는 귀환하는 동안 겉으로 귀환을 반기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조금 무거운 분위기로 귀환을 마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거운 분위기도 끝이 났다.
“영주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성문이 열리며 정가운데에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 남성이 다른 영지민들보다 앞서 영주를 반겼다.
“모두 다 내 자랑스러운 병사들과 기사들 덕분이지.”
대대로 차지리 남작 가문을 보필해 온 집사, 파브랑이 안쓰러운 눈으로 영주를 바라보았다.
“드시지요.”
“알겠다.”
대답은 하였지만 영주는 그런 그를 잠시 물리고는 영지로 들어가기에 앞서 병사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올해 토벌로 우리는 많은 동료를 잃거나 그들의 부상을 지켜보아야 했다.”
무거운 분위기에 영주다운 카리스마를 보이며 말을 하자 집에 왔다는 생각에 더욱 들뜨려던 병사들은 한순간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다. 아니, 그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죽어 준 것이었다.’라고 말이다.
“토벌로 인해 그들의 죽음을 기리지 못했고, 토벌로 인해 눈물 흘려 주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고, 비겁하게나마 그들의 죽음으로 살아남았기에 그들의 목숨 값에 맞게 앞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오늘은 모두 그간 쌓인 피로와 귀환으로 인해 많이 지쳤을 터이니 연회는 내일로 미루겠다. 하지만 알아 두어라 내일 열리는 연회는 우리들을 대신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린 이들을 위한 연회이다. 그런 그들과는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니 슬프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회를 즐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이만 해산이다. 모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푹 쉬도록 하여라.”
“와아아아!”
“영주님 만세!”
기쁨에 의한 함성일까? 아니면 슬픔을 감추기 위한 노력일까? 병사들은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함성을 내질렀다.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수고하셨습니다, 영주님. 모두 수고했어요∼”
“영주님 만세! 모논 영지 만세!”
병사들의 함성 속에 담긴 슬픔을 감추기 위해 파브랑이 밖의 상황을 모르고 있는 영지민들을 이끌었다. 그러자 각 연령대별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병사들의 슬픔을 감싸 안아 주었다.
“모두 수고했다!”
“추웅!”
처음보다는 보이지 않는 병사가 많았지만 살아남은 병사들은 영주의 수고했다는 한마디에 다시 절도 있는 모습으로 영주에게 군법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