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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17화)
7. 사람을 봐 가면서 건들어야지(2)
해산이라고는 했지만 입구는 하나였기에 병사들은 영주를 따라 영지로 들어섰다. 영지민들은 그런 영주와 기사, 그리고 병사들을 반기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모두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병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보이지 않는 병사들로 인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슬픈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편을 잃은 여성, 애인을 잃은 여성, 자식을 잃은 부모 등등 무사히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던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이와 같은 분위기에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얼싸 안으며 즐거워했다. 거기에 자신들이 펼친 영웅담까지 몇 배로 이야기를 불리며 자랑을 늘어놓는 그들의 미소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우!”
그런 그들과는 다르게 카이론은 기사들과 떨어져 자신의 소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크람드와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아리아의 목소리에 목에 무리가 갈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아리아를 찾기 시작했다.
이 커다란 함성 속에서 아리아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인데 곧이어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아리아를 단숨에 찾아내는 신기까지 보였다.
“리아야!”
몸에 피 냄새가 나기 때문에 아마벨라 거리에 있는 브론카에게 절대로 아리아가 못나오게 하라고 당부를 해놓았는데 아리아가 이 장소에 있는 것에 놀람과 동시에 기쁨을 느꼈다.
‘날 걱정해 주었구나!’
볼이 홀쭉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아의 표정을 보니 자신을 걱정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아리아에 대한 카이론의 망상은 하늘을 꿰뚫을 정도였다.
아리아의 작은 고마움 표시도 카이론에게는 세상 모든 것을 얻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를 부득부득 가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유는 다른이 아니라 아리아가 지금 이 장소에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였다. 단순히 자신의 피 냄새 때문에 아마벨라 거리에 있는 이들에게 아리아를 이곳에 나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다.
지금과 같이 영주가 병사들을 귀환시키면 사람들이 막 달려들기 때문에 아리아 같이 작은 아이들은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리아는 별 탈 없이 카이론에게 다가왔다. 물론 아리아가 운이 좋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아리아를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를 말이다. 그랬기에 사람들이 알아서 아리아를 피한 것이다.
“아우.”
아리아는 카이론에게 접근하기가 무섭게 폴짝 뛰어 카이론에게 안겼다. 카이론은 그런 아리아를 피할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아리아가 어린 나이에 상처 입을 것을 생각해 두 배로 꼭 안아 주었다.
“어디 보자. 오빠 없는 동안 키도 많이 컸고 훨씬 더 예뻐졌는데.”
“아우아우.”
팔을 팔랑거리며 아리아 역시 카이론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카이론은 그런 아리아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리아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여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고 있던 카이론은 갑작스러운 짐승의 울부짖음에 깜짝 놀라 아리아와 동시에 그런 소리가 들린 곳을 노려보았다.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온 방향에는 크람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한쪽에 조심스럽게 서 있는 여성인 에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끄럽지 않습니까, 두…….”
두두두두.
카이론의 귀로는 그렇게 들렸다. 한 마리의 거대한 야수가 대지를 질주할 때 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크람드가 에린이 있는 곳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장해물도 되지 못했다. 크람드의 육중한 몸과 표정에 먼저 기겁하여 길을 터주었기에 크람드와 에린의 사이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 몸은 괜찮아? 아니, 그전에 식사는 꼬박꼬박했지. 아니아니, 무리해서 무슨 일을 한 건 아니지.”
“호호호. 저는 괜찮답니다.”
무슨 질문을 먼저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것인지 크람드는 에린의 앞에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런 크람드의 모습은 에린에게는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역겨워 할 법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크람드는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이었다. 그랬기에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이 사람은 평생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으니.
거기에 최근에는, 아니,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남자는 성장해도 애라는 말을 크람드로 인해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에린이었기에 웃는 일이 상당히 많이 생기고 있었다.
“형수님, 그간 별일 없으셨죠?”
아리아를 안아 든 상태로 자신이 없는 동안 아리아를 돌봐 준 에린에게 안부를 물으며 카이론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크람드는 즐거운 재회의 시간을 방해하는 카이론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자신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오는 에린의 손길에 바로 표정이 바뀌며 헤헤거리기 시작했다.
‘야수를 조련하는 미녀 조련사 같군.’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헤실거리는 크람드를 뒤로하고 카이론은 조금 더 볼록해진 에린의 배를 힐끔 바라본 뒤 대뜸 말했다.
“형수님, 힘을 내서 반드시 남아든 여아든 형수님 닮은 아이를 낳도록 노력해 주십쇼! 이건 대륙을 위한 일이니까요.”
“어머? 호호호. 열심히 노력은 해 볼게요.”
카이론의 말에 에린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크람드가 다시 카이론을 향해서만 발끈하려 하였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두목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비, 빌어…….”
“그런 욕은 태교에 좋지 않습니다. 아이가 배속에 있어도 좋고 나쁜 것은 다 구별하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로 리아야. 리아가 아이, 이쁘다 좀 해 줘.”
“아우우.”
카이론의 말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에린의 배를 아리아가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리아 같은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네요.”
아리아는 에린의 배를 에린은 아리아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선 저희 집으로 가도록 하죠. 요기할 것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죄송하지만 먼저 집에 가서 씻고 있다 저녁에 때 찾아뵙고 싶은데…….”
“아, 상당 기간 집을 비웠으니 정리도 좀 해야겠군요. 그럼 있다가 저녁에 뵙도록 해요.”
“예, 형수님. 두목은 형수님 힘들게 하지 좀 마시고 잘 좀 돌봐 주십쇼. 홀몸도 아닌데 물을 받아달라, 배고프다는 등의 말은 꺼내지도 마시고 말입니다.”
“내가 그럴 것 같냐!”
크왕.
“두목 피어입니까? 태교에 좋지 않다니까. 쯧쯧쯧. 그래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발끈했지만 얻는 것 없이 보지 않아도 될 에린의 눈치를 혼자 보고는 카이론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에린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을 싹 다 지워 버리고는 덩치에 안 맞게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당신 힘들지 않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아니, 내가 업어다 줄까?”
“어머, 정말로 업어 주실 건가요?”
“물론이지. 아, 아직 몬스터의 피 냄새가 남아 있을 것 같은데.”
“호호호.”
자신의 몸에 코를 갔다대어 킁킁거리며 허둥대기 시작하는 크람드를 에린이 이끌고는 집으로 향했다.
‘아무튼 애라니까.’
크람드의 얼굴에도 그리고 에린의 얼굴에도 행복하고 달콤한 신혼 생활의 미소가 걸렸다.
***
“오랜만에 집에 왔네.”
“아우!”
카이론은 자신의 말에 자신도 그렇다는 듯이 아리아도 밝게 대답을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카이론의 집은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상당 기간을 카이론의 손을 거쳐 대륙의 다른 집들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집이었다.
신을 신고 생활하는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카이론과 아리아의 집은 바닥을 다 깔았기에 신을 벗고 들어가는 현관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가끔씩 손님을 데리고 올 때를 대비해 현관의 바로 옆에는 작은 욕실이 있었다.
잘 씻지 않는 경향도 있고, 씻어도 신는 신발 자체가 상당히 지저분했기에 준비해 놓은 것이다. 딱히 대륙의 평민들은 신발이 달아 없어지기 전에는 여유분으로 사놓거나 하지 않았으니 항상 신는 것만 신는 이들이었다. 전부 그러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흠, 청소는 꾸준히 해 놓은 것 같은데.”
에린이 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카이론의 집은 평상시와 같이 깨끗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브론카가 사람을 보내 청소를 시킨 것이 분명했다.
카이론은 폴짝거리며 집안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아리아를 뒤로하고 제대로 씻기 위해 준비를 했다.
“리아야. 오빠는 좀 씻을 테니까 위험한 짓하면 안 된다.”
“우우우!”
“네가 그럴 나이는 아니라고? 예예. 리아는 예쁜 숙녀님이시죠.”
아리아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카이론은 아리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욕실로 향했다. 넓은 통 모양이 아닌 기억 속에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든 욕조였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깊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반쯤 누워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형태였다. 거기에 나무 장작으로 불 세기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었다.
카이론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마법에 대한 이론이 있어 그것을 활용한 마법진을 그려 놓은 상태였다. 그 마법진을 이용하여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으면 데울 수가 있었다.
“뭐, 물을 직접 채워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야.”
펌프의 원리를 알기는 하지만 마법사도 아닌 자신이 깊숙이 지나가는 지하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땅을 파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랬기에 아직까지 물을 길어다 써야 했지만 그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카이론 같이 물을 길어다 사용하고 있으니.
다행히 브론카가 보내 놓은 사람이 물도 꾸준히 받아 놓은 것인지 아니면 병사들이 귀환한다는 말을 듣고 빠르게 받아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쪽에 물을 길어 모아 놓는 곳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카이론은 그곳에서 물을 퍼 욕조로 옮겨 담았다. 멀지 않았기에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고,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목욕을 시작하자 카이론은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몸을 씻었다. 평소 잘 씻는 카이론이었지만 토벌 기간 동안 씻지 못했던 것이 있기에 한이라도 맺힌 듯이 씻는 그의 모습은 실로 비장할 정도였다.
“아주 쏟아지는 군아. 쏟아져∼”
자신의 육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분비물을 바라보며 카이론은 찡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얼거리며 좋아했다.
상당한 시간 정성을 들여 몸을 정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카이론은 자주 느끼지 못할 뿌듯함을 느끼며 욕실을 나섰다.
욕실을 나오자 눈에 보인 것은 작은 병아리를 안고 있는 아리아였다. 삐약거리는 병아리들은 상당히 귀여웠지만 카이론의 눈에 그런 병아리는 아리아의 귀여움을 강조하는 부과적인 조명밖에 되지 않았다.
“꼬돌이 가족이 또 늘어났나 보네?”
“아우.”
테이머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아리아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리아는 동물에게 사랑받은 아이였다.
심지어 동물들은 아리아의 말을 알아들었다. 단순히 ‘아우아우’라는 말만 하는데도 동물들은 그런 아리아의 말을 알아듣고 움직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운이라 생각했지만 아리아와 함께 살면서 절대 그것이 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카이론은 그런 것을 자신과 아리아만의 비밀로 해 놓았다.
동물을 마음껏 조종하는 능력. 아니, 조종까지는 못해도 소통하는 능력은 엘프나 갖고 있을 아주 희귀한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아리아의 능력으로 인해 카이론의 집 뒤뜰에는 시장에서 사온 동물이나 가끔 사냥을 나선 카이론이 잡아 온 동물들이 있었다.
그중 꼬돌이라는 닭은 가장 처음 아리아에게 선물해 준 닭이었다.
카이론은 아리아와 함께 병아리와 놀며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락함을 마음껏 느꼈다. 그 어떤 곳보다도 집이 가장 편한 곳이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말이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고 저녁 때, 두목님 집에 가서 배부르게 얻어 먹고 오자.”
“아우.”
카이론의 말에 병아리를 다시 닭장에 넣어 놓고 온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긴 하지만 카이론이 지금은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리아였다.
아쉽게도 이번 아리아의 생각은 카이론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단지 씻고 나니 피곤함이 밀려왔기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잠시 눈이라도 붙일 생각이었다.
저녁 초대에 응했기에 그때 가서 힘이 없이 해롱거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나름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이번 휴가 동안 리아랑 어디라도 놀러 갔다 올까.”
토벌에 참가한 병사들은 귀환한 날을 포함하여 삼 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하지만 카이론에게는 조금 더 긴 시간이 주어져 그간 갖지 못했던 아리아와의 시간을 갖을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