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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18화)
7. 사람을 봐 가면서 건들어야지(3)


모논 영지 정규군 4소대 소대장을 맡고 있는 에가밀은 입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는 상대를 대했다.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토벌도 있었고, 피해를 입은 병사들 따위를 처리하라고 해서 말입니다.”
“커흠, 아니네. 그래도 나름 영지민들을 위해 노력해 준 이들인데 따위라는 말은 조금 그렇지 않은가?”
“아이고, 요것, 요것 제 주둥이가 또 병사들 사이에서만 쓰는 언어를 쓰고 말았습니다. 듀론 님의 앞인데 말입니다.”
평소 신경질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에가밀은 듀론이라 부른 사람의 말에 조심스럽게 반응하였다. 그런 에가밀의 행동에 듀론은 살짝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칙칙한 초록빛의 윤기도 없고, 숫도 없는 머리칼에 두툼한 입술과 두꺼운 턱살, 그리고 흔히 배 나온 사람들이 핑계로 대는 인덕이라는 것을 잔뜩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모든 면에서 볼 때, 듀론은 그다지 첫인상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거기에 푸른 눈동자는 상당히 음침해 보였고, 그런 음침함을 더해 주는 작은 눈은 상당히 거북스러울 정도였다.
“여기 많지는 않지만 받아 주십시오. 듀론 님을 한동안 못 봐서 조금 몰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으로 포도주라도 사 드십시오.”
“허허허. 뭐 이런 것을 다 준비했는가.”
‘빌어먹을 돼지 자식! 항상 처 받아먹으면서 잘도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군!’
에가밀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였다. 그것은 아마 에가밀 만이 아닐 것이다. 듀론을 만나는 이들이라면 모두 그럴 것이다.
돈에 미친 것 같아 보이는 욕심이 지독한 인물로 인식되어 있는 인물이 듀론이었다. 하지만 셈 계산에 빨라 모논 영지의 자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영지에 행사할 수 있는 힘도 상당했다. 물론 상당한 자만심이 깃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들의 많은 칭찬으로 인해 ‘자신이 없다면 영지의 자금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인물이었다.
“저기 그건 그렇고 저번에 부탁드렸던 것은…….”
에가밀이 손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듀론에게 자신이 찾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 병사에 대한 것 말인가? 걱정 말게나 자네가 조금만 증거를 준비해서 온다면 내 확실하게 자네 편에 서 주도록 하지. 그리고 자네의 말을 들어 보니 상당한 가식을 떨고 있는 인물인 것 같던데 그런 병사는 이 깨끗한 모논 영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않겠나? 으하하하!”
“물론입죠. 물론이고 말입니다. 듀론 님은 웃는 모습도 호탕하십니다.”
턱살이 부들부들 떨리며 웃는 듀론의 모습에 에가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는 거짓이 없었다.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기에 저런 보기 싫은 얼굴이라 하여도 지금은 그에게 그 어떤 것보다 천사 같은 얼굴로 보였다.
“아, 이거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만 잊고 있었군. 미안하지만 할 이야기는 다 끝났는가?”
“그렇습니까? 이런, 제가 방해가 된 것 같군요. 아무튼 저의 부탁을 들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거 저는 바로 나가 볼 테니 급한 볼일은 보시도록 하십시오. 나중에 다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듀론의 축객령에 에가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입에는 간신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듀론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탁.
고급스러운 문이었기에 문이 닫히는 소리는 상당히 듣기 좋았지만 문을 빠져나온 에가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돼지 자식! 언젠간 네 녀석은 네가 부리는 욕심만큼의 벌을 받을 거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에가밀은 듀론에 대한 험담을 계속하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슬쩍 듀론과 닮은 미소를 지었다.
“카이론 네 녀석은 끝이다! 키키킥.”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녀석이었다. 자신은 악착같이 비굴한 모습을 보여 가며 인맥을 늘리는 것에 비해 그 녀석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자신과 같았다. 기사들에게는 굽실거리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병사들을 막대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심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주변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간사하다. 비열하다. 재수 없다.
이런 호칭은 자신에게 붙는 호칭이었고, 카이론에게는 재미있다. 호탕하다. 남자답다라는 등의 호칭이 따라붙었다.
자신과 다를 바가 없는데.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병사일 뿐인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소대장이 되었던 녀석들은 벌써 저만치 높은 계급에 올라 있거나 자신이 원하는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 나름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벌써 몇 년째 소대장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원흉은 모두 다 카이론! 카이론 네 녀석 때문이다!’
에가밀도 귀가 있어서 소문을 듣고 알고는 있었다. 카이론이 자신의 공적을 소대장들에게 넘기는 대신 돈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공적으로 인해 같은 소대장 계급에 있던 녀석들은 막힘없이 계급이 올라갔다.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솔직히 언젠가는 자신의 차례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차례는 오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해 술에 취해 카이론을 찾아가 화를 냈다가 오히려 한순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린 일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카이론이 자신에게 뱉었던 단 한마디.

“누구냐?”

말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몇 번이나 본 적이 확실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 한마디로 자신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그의 행동에 소대장의 계급인 에가밀이 가만히 있을 리는 물론 없었다. 하극상이라며 바락바락 소리쳤지만 그 다음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지금 나는 휴가 중이야. 새끼가 미쳤나? 나 일반인이라고. 나랏돈 처먹고 살면 돈값해, 이 자식아! 술 처먹고 와서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그 일이 있은 뒤, 휴가에서 복귀한 카이론을 만났지만 그 녀석은 뻔뻔하게도 자신과 있었던 일을 싹 잊은 듯 행동했다. 한 번은 몰래 불러 그런 것을 다그치려 했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날 술을 마신 것은 기억이 나지만 소대장님이 계신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카이론의 두꺼운 철판은 절대로 벗겨지지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싫어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모두 얄밉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 것이 결국 쌓이고 싸여 지금과 같은 일을 만들었다.
‘내가 저 악마를 반드시 처리해 그에게 속고 있는 모든 이들을 구제해 내고야 말겠다!’
에가밀의 머리는 이미 카이론에 대한 분노로 인해 조금씩 무너져 내린 것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며.
“크크크큭.”
에가밀의 음침한 웃음소리에 그런 그의 주변을 지나가는 이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말이 많은 인물이 저러니 구제해 줄 생각보다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에가밀과 카이론의 접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카이론은 이번 토벌의 성과로 많은 포상과 긴 휴가를 얻었다. 그런 휴가를 이용해 영지에서 가까운 호수로 아리아와 놀다 오는 행운을 누릴 수가 있었다.
“아아∼ 또 놀다 오고 싶다.”
창을 대충 어깨에 기댄 상태로 옆에는 7소대 고문관 대표인 케일을 낀 카이론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곳으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볼 일이 있었기에 아리아와 점심을 먹고 난 다음 다른 병사들과 근무지를 바꾼 상태였다.
“이쯤인 것 같은데 말이야.”
“어디를 가시는 것입니까?”
“네 녀석이 알아서 뭐하게?”
“죄송합니다.”
“자식 숫기 없기는…….”
자신의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리는 케일의 행동에 자신이 너무 케일을 짓눌렀는지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갖는 카이론이었다.
‘난 정말 너무 바람직하게 사는 인간 같단 말이야.’
하지만 카이론의 반성하는 시간은 곧 자화자찬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자화자찬의 시간은 결국 반성하는 시간보다 더욱 길어지고 있었다.
“됐으니 돌아가라고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카이론은 뾰족한 여성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제길 또 일인가. 이쪽도 분명 브론카 녀석의 범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벨가 거리의 브론카가 모논 영지의 뒷골목을 거의 다 접수하고는 있었지만 말 그대로 거의 다였다. 완벽한 것은 아니었고, 너무 넓은 범위를 담당하다 보니 결국 수하들 간의 불화도 있는 것은 당연했다.
카이론은 이번 일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살짝 귀찮아졌다.
‘지금의 나는 병사이지만 저 녀석들이 저지르는 일에 끼어들자니 그렇고.’
국가와 뒷골목 간의 정반대되는 곳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카이론은 이런 일이 정말로 싫었다. 하지만 그런 카이론의 고민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나오는 인물로 인해 싹 달아났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이제 너를 지켜 주는 녀석은 없으니까. 흐흐흐. 음?”
작은 집에서 나온 인물은 카이론을 보고는 살짝 멈칫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카이론 역시 상대방을 보고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다가갔다. 상대방이 카이론을 싫어하는 만큼 카이론은 스스로 그보다 더욱 상대방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인지 카이론의 목소리에서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차가움이 묻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에가밀 씨.”
“씨? 씨라고? 나는 네 녀석보다 높은 계급에 있는 상관이다! 어디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은 있어서 조금 있는 척을 하는군.’
카이론은 속으로 에가밀의 행동에 살짝 비웃음을 날려 주고는 병사로서 같을 수 있는 최강 기술인 살살 갈구기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에가밀 씨는 근무가 끝난 상태이지 않습니까? 복장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아니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당장 상부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거기에 제가 질문은 한 것은 그쪽이 아닌 저쪽 여성한테 한 질문입니다만 왜 끼어드십니까? 귀찮게끔.”
“…….”
냉정하게 말을 한 카이론은 에가밀의 어깨를 슬쩍 밀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론의 그런 행동에 에가밀은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집 안에는 조금은 작은 체구에 피부가 창백해 어딘가 몸이 좋아 보이지 않는 여인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카이론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논 영지 정규군 7소대 소속 상병 카이론이라 합니다. 레이디, 무슨 일인지 불편하지 않으시면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네 녀석! 나를 무시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기사들이 네 녀석을 조금 돌봐 준다고 감히 하늘 높은지 모르고 설치는구… 허억!”
“한마디만 더 주둥이를 놀리신다면 공무 집행 방해로 바로 연행토록 하겠습니다. 나름 군에서 근무하니 잘 아시겠죠?”
카이론은 차갑게 말을 하며 창끝으로 에가밀의 미간을 가르켰다. 그런 차가운 행동으로 인해 카이론이 내뱉은 언어적인 측면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행동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에가밀이었다.
“네, 네 이놈!”
“만약!”
카이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에가밀이었기에 분을 참지 못하고 카이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입을 열려 하였지만 카이론이 더욱 빨랐다.
“반항을 할 경우 무력으로 진압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되니 뒤에서 얌전히 찌.그.러.져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레이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조금 힘을 주어 말하자 에가밀은 카이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전과 같았다. 몬스터 토벌을 나섰을 때, 카이론이 자신을 협박했었을 때와 비슷한 공포가 신체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몸이 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은 잠시 카이론의 뒤편에 있는 에가밀을 힐끔 바라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후후, 후하하하! 거봐, 내가 뭐라고 했나? 아무 일도 아니라 했지. 네 녀석도 잘 알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민간인을 핍박하는 것도 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에가밀의 말에 여인의 표정이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자신으로 인해 괜한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