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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꽃감관님 오시기 전에 얼른 써 보자.”
“그러다 귀먹을꽃 같은 거면 어떡해?”
“아니야. 이건 예쁘잖아. 위험한 꽃들은 다 위험하게 생겼어.”
백우는 더 말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그게 무슨 꽃인지 궁금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호기심과 염려가 반씩 뒤섞인 얼굴을 보자 이서는 어째서인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자, 잘 봐. 그냥 꽃은 이렇게 쓰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이서는 꽃잎 몇 장을 뜯어 머리 위로 훅 뿌렸다. 작은 손에서 해방된 주황색 꽃잎이 나풀나풀 허공을 날다가 이서의 어깨로 떨어졌다.
이서는 그대로 잠시 기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면서.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서는 고개를 갸웃하며 제 어깨의 꽃잎을 톡톡 털었다.
“이상하네. 왜 아무 일도…….”
바로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꽃잎에서 화륵 불꽃이 튀었다.
“아악!”
이서가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주황 꽃도 놓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 꽃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금세 이서와 백우의 옷에 옮겨붙었다. 뜨거웠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이서는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었다.
그때, 백우가 덥석 이서의 손을 붙잡았다. 이서는 백우가 이끄는 대로 달렸다. 샘! 눈이 번쩍 띄었다. 샘 근처에서 놀던 차라 멀지도 않았다. 둘은 망설이지도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은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만 차가웠다. 불에 시달리다 물에 뛰어드니 살 것 같았다. 이서는 눈을 뜨고, 수면 아래서 백우를 보았다. 백우가 자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백우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는데, 물속이라 거품만 쏟아졌다.
‘뭐라고?’
이서도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물속에서, 백우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일렁였다. 이서는 제 머리카락도 저런 모양으로 흔들리고 있을까 궁금했다.
“푸하!”
둘은 거의 동시에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마주 보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웃었다. 백우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주 환하게 웃었다.
예쁜 남자애다, 라고 이서는 생각했다.
“이서야!”
잔뜩 화가 난 듯한 꽃감관 진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이서는 물에 뜬 채로 휙 뒤를 돌아보았다. 진성이 당혹한 얼굴로 둘을 보고 있었다. 그 곁에는 천년장자도 서 있었는데, 진성만큼 놀라지는 않은 듯했다. 진성은 그 자리에 천년장자를 그대로 두고 샘으로 뛰어왔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당장 물 밖으로 나와!”
이서는 일단 물가로 헤엄쳤다. 백우도 뒤를 따랐다. 진성은 이서와 백우를 차례로 안아 샘 밖으로 건져 주었다. 그런 후에는 무섭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버드나무 샘에 들어가다니 무슨 생각이냐! 이 샘이 얼마나 깊은데, 그걸 뻔히 알면서 손님까지 데리고 들어가? 둘 다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쩔 뻔했어!”
좀처럼 화내는 일이 없는 진성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서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백우가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진성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한테 꽃을 보여 주려다가 그랬어요. 갑자기 불이 붙는 바람에…….”
“불붙을꽃을 썼어?”
진성은 더욱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이서가 놀라서 어깨를 움찔했다. 아버지나 다름없는 진성이 전에 없이 흥분해 고함을 지르자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서는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띄엄띄엄 변명했다.
“죄송해요, 무슨 꽃인지, 몰라, 몰라서……. 알려 주려고, 그래서…….”
“꽃을 함부로 쓰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 더군다나 손님도 있는데!”
“꽃감관. 그만하시오.”
가까이 다가온 천년장자가 헛기침을 하며 꽃감관의 말을 끊었다. 천년장자는 물에 흠뻑 젖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백우가 약간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서는 백우가 자기 손을 더 꽉 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니 그런 거 아니겠소. 아이가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지금 꾸짖어 봤자 제대로 들리기나 하겠소.”
진성은 잠시 심호흡을 해야 했다. 진성은 완전히 얼어붙은 이서와 천년장자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백우를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천년장자 쪽으로 몸을 돌려 깊이 허리를 숙였다.
“장자님께는 면목이 없습니다. 아이가 서툴러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그저 빚으로 달아 두면 될 걸 이렇게까지 할 거 있소. 저 아이나 잘 달래 주시오. 나도 이만 돌아가리다.”
그렇게 말하고 천년장자는 뒷짐을 지고 앞서 걸어갔다. 백우에게 함께 가자는 말도 없었다. 백우는 어쩔 줄 모르고 아버지의 뒷모습만 쳐다보다가, 이서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진성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른스러운 말에 진성은 더 화도 내지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백우는 이서에게도 안녕, 하고 속삭였다.
그런 다음 백우는 천년장자 쪽으로 뛰어갔다. 옆에서 뭐라고 말을 붙이는 듯했지만, 천년장자는 고개조차 돌려 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다가, 이서는 어쩐지 마음이 이상해졌다. 조금 슬픈 것 같았다. 단순히 꽃감관에게 혼이 나서는 아니었다.
‘아까 물속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이서는 백우가 또 서천꽃밭에 놀러 와 주기를 바랐다.
천년장자와 백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진성은 이서를 몹시 꾸중했다. 용이 잠들어 있는 샘에 들어간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이었는지, 무슨 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사용한 게 얼마나 경솔하고 무책임한 짓이었는지, 이서는 한참 설교를 들었다.
“웃음꽃도 함부로 쓰면 사람의 숨을 멎게 하고, 길몽꽃도 잘못 쓰면 사람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드는 법이다. 그런데 넌 그게 무슨 꽃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사용했어. 네가 자라서 피면 넌 꽃 자체가 될 텐데,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어쩌려느냐.”
“죄송해요……. 그냥 알려 주고 싶어서…….”
“이서야.”
진성이 이서 앞에 눈높이를 맞춰 앉았다. 그리고 이서의 젖은 두 어깨를 붙잡고 일렀다.
“여러 바람동자들이 왜 서천에 머무는지 아느냐. 꽃씨를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되기 때문에 지키고 있는 거란다. 이 꽃들은, 보기에는 예쁘고 귀하지만 언제든 큰 재앙이 될 수 있어.”
“네…….”
“무슨 일이 있어도 꽃들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렴.”
“네, 꽃감관님.”
이서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진성도 더 말하지 않았다. 이서는 진성의 손을 잡고 터벅터벅 걸어 꽃밭 안쪽까지 들어갔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진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서는 진성이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백우가 다시 올까요?”
“천년장자의 아들 말이니?”
진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진성은, 곧 뜻 모를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는 몰라도, 천년장자는 다시 오겠지.”
이서는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이서는 다시, 백우가 올까요, 하고 물었지만 진성은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백우는 오지 않았다. 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요해지고, 서천꽃밭에는 다른 아이들만 와서 뛰어놀았다. 여러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이서는 백우를 점점 잊어 갔다. 그래도 버드나무 샘을 지날 때면 종종 백우가 떠오르곤 했다.



1장. 멸망을 심고 곧 싹이 트네


그날은 바람 기척이 심상치 않았다. 이서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그 이상스런 기척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바람동자들은 없었다. 허공에 번지는 꽃향기가 무척 진했다.
이서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해 하늘 나이로 열다섯 살이 된 이서는, 아직도 개화하지 않은 이룰싹이었다. 함께 이룰싹으로 난 친우들은 거의 다 각자의 모습으로 개화했다. 이제 서천꽃밭에서 개화하지 않은 이룰싹은 두 명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개화한 건 여울이었다. 여울이 복줄꽃으로 핀 이후, 다른 이룰싹들도 며칠, 몇 달, 몇 년 차이로 계속 피어났다. 모두가 자기만의 향을 지니게 되었고, 벌써 꽃가루받이를 해 씨앗을 품은 꽃도 있었다.
개화할 때마다, 이룰싹들은 기뻐하고 또 낙담했다. 복줄꽃으로 핀 여울은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었다. 흉몽꽃이나 귀먹을꽃, 말못할꽃, 불붙을꽃으로 핀 이룰싹들도 있었다. 웃음꽃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지아는 앉은뱅이꽃으로 피어 사흘 밤낮을 울었다. 복줄꽃이 되어 여울과 꽃가루받이하겠다는 꿈을 품었던 장주는 부러질꽃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바람과는 완전히 다른 꽃으로 핀 이룰싹들은 아직 개화하지 않은 이룰싹들을 부러워했다. 피지 않았을 때는 어떤 꿈이든 꿀 수 있기 때문이다. 꽃감관인 진성도 이룰싹이 장차 어떤 꽃으로 필지는 알지 못했다. 스스로 상상하기 나름이었다.
이서는 꽤 가볍게 걸었다. 향기 나는 방향으로 즐겁게.
꽃들이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람동자들도 보였다. 내가 늦잠을 잤구나. 이서는 걸음을 서둘러 꽃들이 모인 쪽으로 다가갔다.
“이서야!”
이서를 발견한 꽃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몇몇 꽃들이 이서를 돌아보고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이서도 손을 흔들어 주고 꽃들 옆으로 총총 뛰어갔다.
“왜 다들 모여 있어?”
“청현이가 오늘 피었거든.”
개화열은 조짐 없이 갑자기 찾아오곤 했다. 어느 날 돌연 개화열이 올라, 이룰싹들은 심하면 며칠도 앓아누웠다. 그때부터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한번 개화열이 오르면, 이룰싹이든 개화한 꽃들이든 꽃감관이든 그저 손 놓고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고열에 시달리다 어느 새벽 개운한 기분으로 눈을 뜨면, 이룰싹은 마침내 활짝 피는 것이다.
청현은 아직까지 개화하지 않았던 두 명의 이룰싹 중 하나였다. 이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꽃들이 청현 주위에 몰려 있어서 청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정말?”
“응. 꽃감관님이 보고 가셨는데, 지켜줄꽃이래.”
드문 꽃이어서 이서는 깜짝 놀랐다. 이룰싹 중에 지켜줄꽃으로 핀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청현이 지켜줄꽃이었구나! 이서는 발뒤꿈치를 들고 청현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개화한다고 특별히 모습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청현은 수꽃으로, 이서와도 각별한 사이였다.
그때 청현이 다른 꽃들 틈으로 이서를 발견했다. 긴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청현이 이서를 불렀다.
“청현아!”
청현과 눈이 마주치자, 이서가 얼른 꽃들을 헤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청현이 이서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이서가 와락 청현을 끌어안았다.
“드디어 피었구나! 축하해, 지켜줄꽃이라며? 이룰싹 중에는 지켜줄꽃이 없었잖아.”
“고마워. 나도 자고 일어나서 깜짝 놀랐어. 내가 무슨 꽃인지를 몰라서 꽃감관님한테 다녀왔다니까.”
이서는 청현 옆에 앉았다. 다른 꽃들도 곁에서 떠들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꽃들은 또 각자의 자리로 사라졌다. 이서는 청현 옆에 남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현도 오래 기다린 개화에 들뜬 듯,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이 향기 너랑 잘 어울려. 이름도 좋고! 나쁜 꽃이 아니라 다행이야.”
청현은 자기도 지켜줄꽃으로 피어 좋다며 웃었다. 맑은 웃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청현은 잠시 이서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몰라 이서가 물었다.
“왜?”
“그냥, 이제 너만 이룰싹이구나 싶어서.”
이서는 소리 내어 웃고,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이서는 상상할 자유가 좋았다. 개화한 이룰싹 중에 없는, 좋은 꽃이 뭐가 있을까. 복줄꽃도 웃음꽃도 길몽꽃도 환생꽃도 다 피었다. 뼈살이 살살이 피살이, 살이꽃도 종류별로 다 있었다.
물론 이서는 꼭 그런 꽃이 아니라도 좋았다. 하늘날꽃이나 멀리볼꽃도 낭만적이고, 눈밝힐꽃 귀밝힐꽃 같은 밝힐꽃 종류도 상서로웠다.
“네가 피면 제일 먼저 축하해 줄게.”
“응.”
이서는 기분 좋게 대답하고 바닥에 누웠다. 이슬 맺힌 풀밭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지켜줄꽃의 향과 섞여 더 그윽했다. 누워서 흐트러진 이서의 머리카락을, 청현은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청현이 좋아하는 일이라 이서는 가만히 있었다.
“너도 지켜줄꽃이면 좋겠다.”
청현이 중얼거렸다. 이서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같은 꽃이라고 꼭 비슷한 시기에 피는 건 아니잖아. 난 좀 더 기다려야 되려나 봐.”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서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반짝이는 눈으로 청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너한테 꽃가루받이하자고 하는 애들 없었어? 지켜줄꽃이니까, 희귀하기도 하고 길하기도 하고, 많이들 얘기했을 것 같은데.”
서천의 꽃들은 인세(人世)의 꽃과는 또 달라서, 종류가 달라도 꽃가루받이를 해서 씨를 품을 수 있었다. 길하다고 여겨지는 꽃들은 인기가 좋았다. 지켜줄꽃은 어딘지 낭만적인 느낌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청현은 준수하고 다정했다. 암꽃들이 탐낼 만한 수꽃이었다.
“글쎄.”
청현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이서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왜, 핀 지 하루도 안 됐는데 벌써 너무 많아?”
“그런 거 아니야.”
청현은 웃어넘겼고 이서도 더 캐묻지 않았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많은 암꽃들이 청현에게 가약(佳約)을 청했으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로운 꽃들은 암꽃 수꽃 할 것 없이 잦은 구애를 받으니까.
청현은 이서의 짐작대로 정말 많은 구애를 받았다. 사실은 피기 전부터 그랬고, 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서는 청현에 대해 많은 걸 알았다. 그러나 이서가 눈치채지 못한 게 두 개쯤 있었다.

‘네가 피면, 너랑 꽃가루받이하게 해 줘.’

여울이 그렇게 말했을 때 청현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청현은 둔한 편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복줄꽃으로 핀 여울이 자기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잔뜩 긴장한 채 두 손을 꼭 쥐고 말하는 여울에게, 준비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미안해.’

그 대답을 예상한 듯 여울은 울지 않았다. 그래도 그 고운 얼굴이 붉어지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여울은 울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심호흡을 했다. 머리를 하나로 땋은 여울은, 한참 숨만 고르다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어 왔다.

‘왜?’
‘난 아직 피지도 않았고, 어떤 꽃으로 필지도 모르고…….’
‘네가 악몽꽃이어도, 앉은뱅이꽃이어도 상관없어.’
‘왜 상관이 없어. 넌 복줄꽃인데.’

그렇게 말한 청현은 마음이 아팠다. 오랜 소꿉친구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괜한 기대감만 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