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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2
“이름은 차예준. 나이는 너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서른둘. 양심 없지? 그리고 저기 결혼사진 보여? 두 사람은 1년 전에 결혼했어. 아, 맞다. 저 인간이 너 죽자고 따라다녀서 간신히 결혼했다는 건 팁. 한마디로 두 사람 관계에서만큼은 하윤이 네가 갑이라는 거지.”
하윤을 앉혀 놓고 신나게 떠들어 대는 지해를 뒤에서 지켜보던 예준의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남의 연애사 왜곡시키지 마라?”
아까부터 계속 자신과 하윤의 러브 스토리에 MSG를 팍팍 뿌려 대는 지해가 거슬렸던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조금 억울했다.
먼저 죽자고 따라다닌 건 자신이 아니라 하윤이었다.
예준의 바람둥이 이미지 때문에 남들은 그가 어린 여자애 꼬셔서 임신시켰다며, 그 바람에 억지로 결혼을 했네 마네 각종 썰들이 많았지만, 사실과 전혀 달랐다.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차지해. 너 집에 안 가냐? 빨리 가. 나머진 내가 설명할 테니까.”
“하윤이가 가지 말라잖아. 오빤 못 믿겠다고.”
예준은 자신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예준과 눈이 마주친 하윤은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을 낯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예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지금 내 아내의 기억 속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그는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로 났다.
후진하던 차에 부딪혀 쓰러질 때 머리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김 박사와의 통화 내용이 떠오른 예준은 하윤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뚫어지겠네. 오빠가 계속 그런 눈으로 보니까 하윤이가 겁먹었잖아.”
“너 신났냐? 지금 농담이 나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깐족거리는 지해의 행동에 예준은 화가 났다. 당장에라도 지해를 끌어다 밖으로 패대기쳐 버리고 싶었다.
그런 그를 눈치챈 지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지해가 손바닥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은 방법이 있어!”
지해의 하이톤 목소리에 골이 흔들려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이를 악물고 협박조로 말했다.
“너 집에 가라고 했다?”
“에이. 좀 들어 봐. 진짜 좋은 방법이라니까?”
“죽을래?”
“결혼식 때 찍은 영상을 보여 주는 거야. 그럼 기억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거 보면 두 사람이 부부였다는 거 하윤이가 확실하게 믿을 거 아니야. 결혼사진을 보고도 못 믿는 눈치니까.”
지해의 제안에 솔깃해진 예준은 못 이기는 척 말했다.
“그 영상 있어?”
“당연하지. 내 엔드라이브에 있어. 잠깐만.”
자신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예준의 태도에 지해는 뿌듯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지해는 핸드폰과 TV를 능숙하게 연결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다운받은 영상을 TV로 재생시켰다.
리모컨으로 볼륨을 높이던 지해는 예준을 향해 윙크를 했다.
예준은 그런 지해를 가볍게 무시하고 TV로 시선을 돌렸다.
― 키스해! 키스해!
환호하는 하객들 뒤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하윤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발그레한 볼을 한 채 수줍게 웃는 하윤 옆엔 턱시도를 입은 예준이 애정이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준이 하윤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퍼붓자 식장 안이 들썩였다.
적나라한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이 계속됐다.
예준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민망하기는 기억이 없는 하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하윤을 지그시 바라보던 예준은 그녀가 귀여워 피식 웃어 버렸다.
기억은 잃었어도 부끄러울 때 하는 행동은 그대로였다.
허공을 바라보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하윤의 모습이 반가웠던 예준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 이 결혼 반대야!
갑자기 산통을 깨는 소리에 예준의 시선이 다시 TV로 향했다.
물을 마시러 잠깐 주방으로 갔던 지해도 거실로 달려왔다.
카메라는 피로연장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 만취한 지해가 예준을 향해 삿대질을 하더니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우는 지해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 엉엉. 하윤아. 이 결혼 꼭 해야 돼? 너 아직 이렇게 어리고 예쁜데. 네가 너무 아깝다구! 차예준 이 도둑놈아!
급기야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오바이트를 하려고 입을 벌리는 지해의 모습에서 영상은 정지되었다. 지해가 재빨리 리모컨으로 TV를 꺼 버렸기 때문이다.
예준은 이제야 알았다. 자신이 왜 이 귀중한 결혼식 영상의 존재를 잊고 지냈는지.
결혼식 당일, 만취한 지해를 하윤이 달래느라 신혼여행도 다음 날로 미뤘었다는 것까지 생각이 난 예준의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일찌감치 이상 기운을 감지한 지해는 예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가방을 껴안았다. 그리고 후다닥 현관으로 달렸다.
“아이고, 오빠님. 동생이 너무 눈치가 없었죠? 피곤하실 텐데 늦은 시간까지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지해가 다급히 신발을 신으며 인사를 하자, 하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 오늘 여기서 자고 간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그랬는데…….”
지해가 예준을 흘끔 보더니 하윤을 향해 말했다.
“하윤아. 방금 증거 영상 봤잖아. 저 사람 네 남편 맞아. 그리고 머리로 기억이 안 나면…… 몸에 맡겨 보든지. 히힛. 그럼 울 오빠 힘내!”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워하던 지해가 예준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러곤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시끄럽게 떠들던 지해가 나가고 거실엔 정적이 흘렀다.
하윤은 거실 한가운데에 망부석처럼 굳어 서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예준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지 머리가 아파 왔다.
침착하자.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모습을 뚱하게 보던 예준은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곤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그녀를 바라보는 예준의 시선이 뜨거웠다. 하윤은 고개를 돌려 예준을 피해 버렸다.
“미치겠네.”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제게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예준은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보드라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마, 만지지 마세요.”
당황한 그녀가 움찔거리더니 아예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예준은 양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잡고서 억지로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를 보고 있으니 예준은 갑자기 허기가 졌다.
그녀의 작고 도톰한 핑크빛 입술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윤의 입술을 먹어 버렸다. 그녀의 마음처럼 꽉 닫힌 입술을 빨아 억지로 열었다. 파고든 혀로 치열을 훑으며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손은 자연스럽게 원피스 안을 침범했고, 그녀를 세게 끌어당겨 하반신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키스는 더 농밀해져 갔다.
“으흣.”
엉덩이를 주무르던 예준의 손이 그녀의 팬티 안으로 침입했다. 순간 예준은 의아했다. 그곳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싫어. 못 놔. 지해 말대로 머리가 안 되면, 몸에 맡겨 봐. 네가 나를 기억을 못 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예준에게는 그게 가장 용납이 안 되는 지점이었다. 지금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
이러다 영영 그녀가 날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떠나겠다고 하면? 사라져 버리면?
언제나 가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감이 그를 집어삼켰다.
예준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는 저항하는 그녀를 번쩍 안아 소파에 눕혔다. 예준의 표정과 행동이 뭔가 필사적인 것처럼 보였다.
예준은 바동거리는 그녀의 다리를 허벅지로 고정시켜 단숨에 팬티를 발목까지 내렸다.
“아흣, 안 돼!”
“정말 내가 기억 안 나?”
“하지 마! 그만!”
“하윤아, 난 말이야. 하지 말라면 더 해. 목숨 걸고 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그러니까 기억해. 어서.”
축축한 그곳 주변을 어루만지다가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윽! 읍!”
그녀의 신음을 키스로 막은 예준은 적당한 속도로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곧 그녀의 골반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절정에 다다를 것 같았다. 하윤은 당황해하며 예준의 탄탄한 가슴을 밀어 거부했다.
하지만 예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개수를 늘렸다. 그리고 평소 만져 주면 그녀가 미치게 환장하는 스팟을 공략했다. 여지없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꿀이 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아흑, 으흐…… 싫……어……. 싫어! 싫다고!”
그녀의 몸을 즐겁게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예준은 하윤의 흐느끼는 소리에 놀랐다. 그는 돌연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으며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본 예준은 어딘가 한 방 맞은 표정이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제발…….”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고 있었다. 겁먹은 얼굴로.
예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 미안…….”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2
“이름은 차예준. 나이는 너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서른둘. 양심 없지? 그리고 저기 결혼사진 보여? 두 사람은 1년 전에 결혼했어. 아, 맞다. 저 인간이 너 죽자고 따라다녀서 간신히 결혼했다는 건 팁. 한마디로 두 사람 관계에서만큼은 하윤이 네가 갑이라는 거지.”
하윤을 앉혀 놓고 신나게 떠들어 대는 지해를 뒤에서 지켜보던 예준의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남의 연애사 왜곡시키지 마라?”
아까부터 계속 자신과 하윤의 러브 스토리에 MSG를 팍팍 뿌려 대는 지해가 거슬렸던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조금 억울했다.
먼저 죽자고 따라다닌 건 자신이 아니라 하윤이었다.
예준의 바람둥이 이미지 때문에 남들은 그가 어린 여자애 꼬셔서 임신시켰다며, 그 바람에 억지로 결혼을 했네 마네 각종 썰들이 많았지만, 사실과 전혀 달랐다.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차지해. 너 집에 안 가냐? 빨리 가. 나머진 내가 설명할 테니까.”
“하윤이가 가지 말라잖아. 오빤 못 믿겠다고.”
예준은 자신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예준과 눈이 마주친 하윤은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을 낯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예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지금 내 아내의 기억 속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그는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로 났다.
후진하던 차에 부딪혀 쓰러질 때 머리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김 박사와의 통화 내용이 떠오른 예준은 하윤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뚫어지겠네. 오빠가 계속 그런 눈으로 보니까 하윤이가 겁먹었잖아.”
“너 신났냐? 지금 농담이 나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깐족거리는 지해의 행동에 예준은 화가 났다. 당장에라도 지해를 끌어다 밖으로 패대기쳐 버리고 싶었다.
그런 그를 눈치챈 지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지해가 손바닥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은 방법이 있어!”
지해의 하이톤 목소리에 골이 흔들려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이를 악물고 협박조로 말했다.
“너 집에 가라고 했다?”
“에이. 좀 들어 봐. 진짜 좋은 방법이라니까?”
“죽을래?”
“결혼식 때 찍은 영상을 보여 주는 거야. 그럼 기억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거 보면 두 사람이 부부였다는 거 하윤이가 확실하게 믿을 거 아니야. 결혼사진을 보고도 못 믿는 눈치니까.”
지해의 제안에 솔깃해진 예준은 못 이기는 척 말했다.
“그 영상 있어?”
“당연하지. 내 엔드라이브에 있어. 잠깐만.”
자신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예준의 태도에 지해는 뿌듯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지해는 핸드폰과 TV를 능숙하게 연결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다운받은 영상을 TV로 재생시켰다.
리모컨으로 볼륨을 높이던 지해는 예준을 향해 윙크를 했다.
예준은 그런 지해를 가볍게 무시하고 TV로 시선을 돌렸다.
― 키스해! 키스해!
환호하는 하객들 뒤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하윤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발그레한 볼을 한 채 수줍게 웃는 하윤 옆엔 턱시도를 입은 예준이 애정이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준이 하윤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퍼붓자 식장 안이 들썩였다.
적나라한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이 계속됐다.
예준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민망하기는 기억이 없는 하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하윤을 지그시 바라보던 예준은 그녀가 귀여워 피식 웃어 버렸다.
기억은 잃었어도 부끄러울 때 하는 행동은 그대로였다.
허공을 바라보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하윤의 모습이 반가웠던 예준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 이 결혼 반대야!
갑자기 산통을 깨는 소리에 예준의 시선이 다시 TV로 향했다.
물을 마시러 잠깐 주방으로 갔던 지해도 거실로 달려왔다.
카메라는 피로연장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 만취한 지해가 예준을 향해 삿대질을 하더니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우는 지해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 엉엉. 하윤아. 이 결혼 꼭 해야 돼? 너 아직 이렇게 어리고 예쁜데. 네가 너무 아깝다구! 차예준 이 도둑놈아!
급기야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오바이트를 하려고 입을 벌리는 지해의 모습에서 영상은 정지되었다. 지해가 재빨리 리모컨으로 TV를 꺼 버렸기 때문이다.
예준은 이제야 알았다. 자신이 왜 이 귀중한 결혼식 영상의 존재를 잊고 지냈는지.
결혼식 당일, 만취한 지해를 하윤이 달래느라 신혼여행도 다음 날로 미뤘었다는 것까지 생각이 난 예준의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일찌감치 이상 기운을 감지한 지해는 예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가방을 껴안았다. 그리고 후다닥 현관으로 달렸다.
“아이고, 오빠님. 동생이 너무 눈치가 없었죠? 피곤하실 텐데 늦은 시간까지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지해가 다급히 신발을 신으며 인사를 하자, 하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 오늘 여기서 자고 간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그랬는데…….”
지해가 예준을 흘끔 보더니 하윤을 향해 말했다.
“하윤아. 방금 증거 영상 봤잖아. 저 사람 네 남편 맞아. 그리고 머리로 기억이 안 나면…… 몸에 맡겨 보든지. 히힛. 그럼 울 오빠 힘내!”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워하던 지해가 예준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러곤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시끄럽게 떠들던 지해가 나가고 거실엔 정적이 흘렀다.
하윤은 거실 한가운데에 망부석처럼 굳어 서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예준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지 머리가 아파 왔다.
침착하자.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모습을 뚱하게 보던 예준은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곤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그녀를 바라보는 예준의 시선이 뜨거웠다. 하윤은 고개를 돌려 예준을 피해 버렸다.
“미치겠네.”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제게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예준은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보드라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마, 만지지 마세요.”
당황한 그녀가 움찔거리더니 아예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예준은 양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잡고서 억지로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를 보고 있으니 예준은 갑자기 허기가 졌다.
그녀의 작고 도톰한 핑크빛 입술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윤의 입술을 먹어 버렸다. 그녀의 마음처럼 꽉 닫힌 입술을 빨아 억지로 열었다. 파고든 혀로 치열을 훑으며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손은 자연스럽게 원피스 안을 침범했고, 그녀를 세게 끌어당겨 하반신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키스는 더 농밀해져 갔다.
“으흣.”
엉덩이를 주무르던 예준의 손이 그녀의 팬티 안으로 침입했다. 순간 예준은 의아했다. 그곳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싫어. 못 놔. 지해 말대로 머리가 안 되면, 몸에 맡겨 봐. 네가 나를 기억을 못 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예준에게는 그게 가장 용납이 안 되는 지점이었다. 지금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
이러다 영영 그녀가 날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떠나겠다고 하면? 사라져 버리면?
언제나 가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감이 그를 집어삼켰다.
예준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는 저항하는 그녀를 번쩍 안아 소파에 눕혔다. 예준의 표정과 행동이 뭔가 필사적인 것처럼 보였다.
예준은 바동거리는 그녀의 다리를 허벅지로 고정시켜 단숨에 팬티를 발목까지 내렸다.
“아흣, 안 돼!”
“정말 내가 기억 안 나?”
“하지 마! 그만!”
“하윤아, 난 말이야. 하지 말라면 더 해. 목숨 걸고 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그러니까 기억해. 어서.”
축축한 그곳 주변을 어루만지다가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윽! 읍!”
그녀의 신음을 키스로 막은 예준은 적당한 속도로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곧 그녀의 골반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절정에 다다를 것 같았다. 하윤은 당황해하며 예준의 탄탄한 가슴을 밀어 거부했다.
하지만 예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개수를 늘렸다. 그리고 평소 만져 주면 그녀가 미치게 환장하는 스팟을 공략했다. 여지없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꿀이 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아흑, 으흐…… 싫……어……. 싫어! 싫다고!”
그녀의 몸을 즐겁게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예준은 하윤의 흐느끼는 소리에 놀랐다. 그는 돌연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으며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본 예준은 어딘가 한 방 맞은 표정이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제발…….”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고 있었다. 겁먹은 얼굴로.
예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 미안…….”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