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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3화)
2. 모두 다 초보는 아니다(2)
“아니,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와 있단 말입니까? 길이라도 잃은 모양이군요. 이거 참…….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이 근처에는 위험한 몬스터가 극히 적으니까요. 이게 다 마그리드의 훌륭한 마법진의 기운이 이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아, 여기가 어딘지 물으셨나요? 이곳은 샤그나스 왕국 남동쪽에 위치한 시작의 마을 메테오입니다. 유성이 떨어진 곳에 마을을 세워서 그렇게 지었다더군요.”
“빙고!”
마법사의 도시 마그리드가 근처라면 전직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기사들의 도시인 류벤이나 신성도시 마리우스 쪽에서 시작했다면 전직은커녕 쓸 만한 마법을 배우거나 마법서를 구하는 것조차 애먹었을 텐데.
근데 메테오라고? 무슨 초보자 마을 이름이 이렇게 거창해?
“빙고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흠흠, 그럼 수고하세요.”
먹을 것도 적당히 샀고 필요한 정보도 얻었으니 이곳에 더 머물 필요가 없었다.
음, 전부 나 같은 이유로 이곳을 찾은 건 아닌 모양이군.
하긴 웬만한 정보야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오히려 초반에 돈벌이가 괜찮은 배달 퀘스트나 보조 스킬인 요리 스킬 때문에 찾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건가?
“휴우, 좋은 위치에서 시작한 건 좋은데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문 밖으로 나오니 다시 현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무리 넓은 대로에서도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구 밀집 현상. 곧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들(아마도 예전 고수 캐릭터들)이 생겨 어느 정도의 분산이 이루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간단한 퀘스트 하나, 동물형 몬스터 한 마리 구경하기도 어려울 게 뻔했다.
업데이트 내용 중에 새로운 스타팅 포인트의 추가가 있긴 했지만 유저 수가 어지간해야 말이지.
망할 게임사, 어쩔 셈이야?
“일단 나가 보는 수밖에.”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방법이 없다. 나가 보는 수밖에.
먼저 향한 곳은 동문.
어렴풋이 푸른 숲이 보인 탓이다.
토끼나 개구리 같은 기본 몬스터는 나오는 족족 사라질 테니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숲 쪽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겠지.
“떴다!”
“내 거야!”
“어디서 스틸질이야?”
마을 밖으로 나오자 예상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리젠 되는 토끼나 개구리, 기타 최약체 동물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몰리고, 다른 공격형 몬스터를 잡을 만큼 레벨을 올려 이곳을 탈출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아무리 리젠 속도를 대폭 상승시켰더라도 열 명, 스무 명이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차라리 낫지. 성격 급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차례고 나발이고 일단 공격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어서 필드에는 온통 흉흉한 기운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으아악!”
“제길, 어떻게든 잡아라!”
상황이 이렇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파티를 이뤄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동물 계열이라고는 하나 레벨 3, 4는 족히 될 수사슴에 공격을 가한 것이다.
대부분 뿔에 받혀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다 보면 언젠가는 쓰러질 테고, 그렇게 사슴을 쓰러뜨린 운 좋은 자가 자신이 된다면 적어도 2레벨 상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계산이겠지.
그러나 내가 보기엔 바보짓일 뿐이다.
“아무리 고레벨이었던 사람이라도 이렇게 뻥 뚫린 공간에서는 무리라고.”
지형지물을 이용한다면 모를까 저렇게 해서는 백날 덤벼 봐야 개죽음일 뿐이다.
계속해서 뿔에 받혀 공중 부양하는 바보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숲 쪽으로 난 길에는 이미 적지 않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요행을 바라고 들어간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리셋 전 한가락씩 하던 사람들일 게다.
때문에 나는 길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발자국이 적은 샛길로 몸을 돌렸다.
“파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어야지.”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떨어져야 그만큼 내 몫의 몬스터가 늘어난다. 물론 실력자들과 파티를 맺는다면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레벨 1의 무직업 캐릭터일 현 시점에서 실력자를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차! 나도 무기가 있어야겠군.”
샛길로 십여 발자국을 옮겼을 때 지금 내가 맨손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정석대로라면 무기점이나 잡화점에서 제일 싼 몽둥이라도 사 들고 나왔어야 했지만 그 줄을 다 서서 기다리느니 쪼개진 장작 하나 몰래 훔쳐 내는 편이 나았다. 상점에서 파는 거라고는 해도 쓰기 쉽게 손질만 잘되어 있다 뿐 각목보다 크게 나은 점이 없으니까.
“어디 보자……. 아, 저거 괜찮네.”
마음먹고 주변을 뒤지자 생각보다 금세 무기 대용으로 쓸 만한 부러진 나뭇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굵지도 않고 생긴 것도 구불구불하지만 속이 단단해서 잔가지를 조금 쳐내니 훌륭한 무기로 탈바꿈했다.
이런 식의 무기는 인벤토리 창에 넣지 못하지만 잘만 숨겨 두면 전직하기 전까지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물론 상점에서 연마를 받으면 정식 아이템으로 인정되어 인벤토리에도 보관 가능하지만, 고작 나뭇가지 하나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좋았어.”
거기에 이동하면서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챙기자 주머니(인벤토리와 다른 개념. 직접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가방, 배낭 등이 있다.)가 어느새 불룩해졌다.
그리고 그것들을 쓸 기회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첫 희생물은 토끼다.
“자아,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 둘…… 흡!”
퍼억!
[스킬 ‘투척’이 생성되었습니다.]
[스킬 ‘조준’이 생성되었습니다.]
돌멩이에 맞은 토끼가 기절함과 동시에 두 개의 스킬 생성 알림음이 떴다. 좋았어.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만…… 쩝, 잘 가라.”
퍼억! 퍼억!
아무리 체력이 약한 토끼라도 조준에 신경 쓰느라 위력이 떨어진 돌팔매질 한 방에 죽었다 생각하기는 어려웠으므로 다가가 몽둥이로 확인 사살을 했다.
조금 잔인하긴 하지만 할 수 없지. 쩝.
“스킬 확인. 조준.”
조준. 패시브. [0.1%]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모든 형태의 공격에 명중 보정치를 준다.
“흐흐, 좋군.”
조준 스킬이 없다고 해서 맞을 게 안 맞는 일은 없지만 이 스킬이 높으면 대충 던져도 다 맞는다. 크리티컬이 뜰 확률도 높아지고. 게다가 설명에도 적혀 있듯이 이 스킬은 모든 형태의 공격, 즉 마법에도 적용된다. 모든 마법에 유도 기능이 달린 것은 아니기에 이 스킬은 내게도 꼭 필요한 스킬 중 하나다.
부스럭.
“응?”
원래대로면 푸줏간 퀘스트를 받아 토끼 가죽과 고기까지 가져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취익…… 취익…….”
젠장, 오크다. 이곳이 초보자 마을인 것을 감안할 때 약화 몬스터인 ‘굶주린 오크’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마저도 레벨 5는 족히 된다.
아직 고블린과 코볼트 같은 놈들도 못 봤는데……. 생각보다 깊이 들어온 모양이군.
놈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무 뒤로 몸을 숨기긴 했지만 지금의 능력치로 도망이나 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기다. 고기. 취익. 취익.”
과연 이름 그대로 굶주린 오크인 것인지 놈은 내가 잡은 토끼의 시체에 관심을 보였다.
다행히 내가 있는 곳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군. 이 틈에 도망칠까?
“젠장, 죽기밖에 더 하겠어.”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을 때 도망가는 편이 옳았지만 그러자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며칠 전까진 분풀이로 오크 대부족을 몰살시키고 다니던 나다!
“후읍.”
쐐액―
퍽!
“꾸엑!”
입에 피를 잔뜩 묻히고 허겁지겁 토끼 고기 시식에 열을 올리던 오크의 뒤통수에 불이 번쩍였다.
앞으로 꼬꾸라지는 오크.
그 틈에 나는 다시 몸을 숨겼다.
“취익! 취익!”
고통이 상당했는지 잠시 뒤통수를 부여잡고 신음하던 오크가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흥, 하지만 이미 난 네 뒤에 있다고.
쐐애액―
퍽!
“꾸엑!”
두리번거리던 오크가 또 한 번 번쩍이는 별을 보며 휘청거렸다.
“취에에엑!”
그러고는 바로 몸을 돌려 분개해 하며 달려왔다.
휴, 큰일 날 뻔했군.
휘익―
툭.
한 번 더 놀려 먹고 싶지만 생각보다 민첩한 오크의 움직임에 이번엔 다른 쪽 수풀로 돌을 던졌다.
“취엑! 췻췻췻!”
격렬하게 반응하는 오크.
그 단순함에 실소를 머금으며 또 한 번 뒤통수를 노렸다.
딱!
“젠장.”
빗나갔다. 마법을 쏘아 내는 데는 익숙하지만 무언가를 던지는 일에는 그리 익숙하지 못한 탓에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제기랄.
“취익, 취익!”
“이런!”
재빨리 몸을 숨겼음에도 오크의 징그러운 콧김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몽둥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위치 노출이다.
“취익!”
부앙!
잔뜩 골이 난 오크는 나무를 돌자마자 들고 있던 굵직한 몽둥이부터 휘둘렀다.
빠각!
쿠웅!
그러나 빈 나무만을 때리고 말았다.
“취, 취익?”
부르르르―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그 반탄력에 부르르 몸을 떠는 사이, 나는 몸을 피했던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기합을 터트렸다.
“하압!”
푸왁!
“끄……그그그극.”
풀썩.
오크의 이마를 향해 내리찍은 건 다름 아닌 짱돌이었다.
그것도 끝이 아주 뾰족한.
“뒈져라. 뒈져. 크하하핫!”
부들거리는 오크의 이마를 몇 번 더 짱돌로 문질러 주자 녀석의 몸이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오호?”
짱돌을 통해 전해지는 묘한 손맛에 심취해 갈 때쯤 레벨 업을 알리는 알림음이 두 번이나 동시에 울렸다.
한 번에 2 업이라. 경험치가 꽤 짭짤한데?
“상태창.”
[아레스]
레벨 3 직업 : 없음
칭호 : 없음 학파 : 없음
HP : 50/50 MP : 40/40
힘 : 10
민첩성 : 10
체력 : 10
마력 : 10
정신력 : 10[수동]
행운 : 5
보너스 포인트 : 10
아직 3레벨에 직업도 없는 터라 능력치는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대신 보너스 포인트는 1레벨당 5씩 총 10이나 쌓여 있었다.
이 처참하기 그지없는 능력치들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보너스 포인트들을 힘과 민첩성에 3과 2씩 나누어 올렸다. 체력에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한 대 맞고 죽거나 두 대 맞고 죽거나. 이 둘보다 더 좋은 건 안 맞고 안 죽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