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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6화)
3. 카브 길드(3)


푸왁!
“꾸, 꾸룩…….”
“취익! 침입자다!”
초반 일점사로 순식간에 세 마리의 오크가 죽어 나가자 오크들도 위기의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일곱 명은 제각기 퍼지면서 오크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까앙! 깡!
“으음.”
아무리 왕년에 고수였고 숏소드를 지녔다고는 해도 전직 이후 유저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놈들인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녹슨’ 그리고 ‘낡은’의 타이틀이 붙은 최하 품질의 무기일지라도 금속제 무기를 사용했고 전직하는 순간 유저들의 능력치는 직업에 맞게 상승하기 때문에, 전직자용 몬스터인 그들 역시 초보자용 일반 몬스터에 비해 높은 능력치를 지닌 것이다.
유저들 역시 병기의 유리함과 뛰어난 컨트롤로 그 차이를 메우고는 있지만 2대1로 평수를 이루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세로군. 어떻게 하나 볼까?”
역시라는 둥, 여기저기서 탄식과 비웃음 소리가 들렸지만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쯤은 예상했을 게다.
그에 대한 대비책도.
그렇지 않다면 나머지 일곱도 전직할 때까지 기다렸겠지.
근데 왜 이렇게 무리하는 거지?
“첫 사냥의 어드밴티지 때문인가?”
보스급 몬스터의 경우 첫 공략자에 한해 더 많은 경험치와 더 좋은 아이템을 주고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녀석들이 무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인 듯. 리셋 된 더 월드에서 먼저 이름을 떨치고 한발 먼저 매직 아이템을(보스급은 매직급 이상의 아이템을 1개 이상 준다) 차지하려는 것이다.
휘익, 휙.
퍼억!
“취익?”
그때 지켜보던 나머지 42명의 길드원들이 준비한 돌멩이들을 오크들에게 던져 대기 시작했다.
“취이익!”
별 데미지가 들어가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돌팔매질이 계속되자 오크들도 거칠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2대1의 팽팽한 구도에서 서로 별다른 피해도 주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이 신경을 긁자 몇몇은 눈앞의 적을 팽개치고 달려들기까지 했다.
역시 오크는 머리가 나빴다.
“꾸윅!”
“커헉.”
레벨도, 방어구도, 그들과 맞설 무기조차 변변치 않았던 길드원들은 오크의 공격에 간단히 절단 났다.
오크들이 덤벼들자 나름대로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워낙 능력치의 차이가 큰 탓에 몇 걸음 못 가 붙잡히고 마는 것이다.
휘리릭.
서걱―
물론 그들도 넋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2대1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들은 서둘러 눈앞의 오크를 격살했고 길드 마스터 녀석도 덤벼들어 흩어진 오크들을 도륙했다.
42명의 길드원 모두가 일종의 미끼였던 셈이다.
스스로가 미끼인 걸 알면서도 기꺼워하다니, 너희들이 무슨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냐?
“흐응, 뜻대로 하게 둘 순 없지. 하압!”
쐐액―
내 손을 떠난 큼지막한 짱돌이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막사를 향해 날았다.
퍼억.
“빙고.”
이어 들려오는 둔탁한 타격음.
“크아아앙.”

[워 크라잉에 노출되셨습니다. 과도한 레벨 차이로 심한 공포를 느낍니다. 힘이 20% 하락합니다. 민첩성이 20% 하락합니다. 방어력이 20% 하락합니다.]

“헉!”
“제기랄!”
상태 이상을 동반한 추방당한 오크 전사의 화려한 등장에 모두가 긴장했다.
남은 허기진 오크들의 숫자는 열둘.
숏소드 유저는 일곱 그대로이니 곧 정리할 수 있을 테지만 문제는 그때까지 보스 몬스터인 추방당한 오크 전사를 막을 수 있느냐였다.
“크르륵! 감히 내 영역에 침범하다니, 다 죽여 주마!”
부아앙―
퍽!
“끄그극…….”
과연 보스급의 힘은 남달랐다. 허기진 오크를 상대하는 길드원에게 시선이 안 가도록 돌을 던지던 녀석들이 일격에 세 명씩, 네 명씩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다.
부르르.
“모두 비켜라! 강격.”
채앵―!
미끼로서의 효용조차 못 느껴질 만큼 빠른 속도로 길드원들이 죽어 나가자 보다 못한 길드 마스터가 직접 달려들었다.
그러곤 곧장 스킬 발동.
하지만 본디 힘이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것이 오크였다.
“크륵! 모두 네놈이 벌인 일이구나. 크오!”

[분노의 외침이 시전되었습니다.]
[시전자의 파티원들에게 분노 효과가 적용됩니다.]

분노라면 지능과 행운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 10% 상승이다. 이로써 다시 비슷해졌군.
“제길, 어떤 놈이 끌고 온 거야?”
“안 돼. 이길 수 없어.”
“큭. 여기는 저희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일단 피하십시오, 마스터!”
전직을 마친 녀석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듯싶지만 나머지들은 줄어든 능력치가 실감나는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악에 받쳐 검을 휘둘렀다.
“이익, 그럴 순 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비웃음거리밖에 안 돼! 모두 힘을 내라!”
암, 웃음거리지. 아주 크게 비웃어 주마. 흐흐흐흐!
길마란 녀석이 꽤나 헛된 명성을 쫓는 스타일인지 패색이 짙어졌음에도 오기를 부렸다.
“우와아악!”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길드 마스터의 결정에도 나머지 길드원들은 입술을 깨물며 고군분투했다.
눈물겹구먼, 아주.
“건방진 것들.”
부우웅!
그들의 결연한 의지가 도리어 녀석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오크 전사의 공격 또한 매서워졌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소리치던 길드 마스터란 녀석도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고 애꿎은 미끼들의 수만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느새 반 이상 줄어든 미끼들.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뒤따라온 자들의 눈빛이 음흉해졌다.
저들이 최대한 힘을 빼놓으면 어떻게 자신들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아니면 허기진 오크들이 남긴 아이템 몇 개를 슬쩍해 볼 요량이거나.
“안 되겠다. 몸으로 막아라!”
대롱대롱.
누군가의 외침에 미끼 다섯이 일제히 오크 전사의 몸에 매달렸다.
“꺼져라. 취익!”
쿠당탕!
그러나 매달린 보람도 없이 일시에 나가떨어졌다.
“쾌검!”
그래도 아주 쓸모없는 시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의 틈새를 낚아챈 길드 마스터가 스킬을 발동시키며 빠르게 검을 찔러 간 것이다.
푸욱!
“됐……. 커헉.”
투웅.
길드 마스터의 검이 오크 전사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지만 그 역시 오크 전사의 강한 주먹질에 사지를 쭉 뻗은 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노옴!”
“마, 막아!”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놈이 벼락같이 달려들자 다급해진 길드원들이 몸을 날려 길을 막았다.
“숄더 차지.”
쿠당탕탕!
하지만 스킬까지 발동시킨 오크 전사 앞에선 위태로운 볼링 핀에 다름없었다.
“오우, 스트라이크!”
일말의 저항감조차 없이 막아서는 이들을 날려 버린 오크 전사는, 다시금 검을 힘껏 치켜들었다.
“크크. 죽어랏!”
“제길! 뿌드득.”
부웅!
“커헉.”
……뭐냐? 길드 마스터 녀석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려는 찰나, 내 뒤통수를 때렸던 머더러 녀석이 몸을 날려 대신 검을 받아 냈다.
대번에 회색빛으로 물드는 몸뚱이.
그러나 용케도 녀석은 쓰러지지 않고 버텨 섰다.
“거슬리는 눈빛이군. 흥.”
콰앙!
생명력이 다해 가는 순간까지 노려보는 녀석의 독한 눈빛에 오크 전사는 무심히 반응하며 검면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머리는 나빠도 전사로서의 긍지가 강해 의기가 높은 자를 높이 평가하는 오크였지만 힘없는 자의 객기에는 냉정하기도 했다.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오크 전사의 검은 여전히 차가워 보였다.
“그렇겐 안 돼!”
“날파리 같은 것들!”
그때 웬 녀석 하나가 또 한 번 오크 전사에게 엉겨 붙었다.
덜렁덜렁.
“길마 형, 지금이에요!”
힘이 좋은 건지 끈기가 좋은 건지 오크 전사의 주먹질에 낯빛이 파리해지면서도 녀석은 오크 전사의 얼굴을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았다.
“큭, 미안하다. 발 구르기.”
파밧!
엉겨 붙은 녀석의 체력이 다하는 순간 길드 마스터가 ‘파워 스텝’의 하위 스킬인 ‘발 구르기’를 시전하며 오크 전사에게로 돌진했다.
푸욱!
“……아니?”
그러곤 길드원의 시체와 함께 꼬치 꿰듯 오크 전사의 심장을 찔러 버렸다.
“강격.”
이어지는 스킬 시동어.
부욱!
매정한 길드 마스터는 심장을 찌른 롱소드를 잡은 채로 스킬의 힘을 더해 내리그었다.
“크와아아악!”
몸부림치는 오크 전사. 그 발광에 가까운 움직임에 길드 마스터의 몸은 튕겨 나갔지만 롱소드는 단단히 박힌 채 오크 전사의 체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이럴…… 수가……. 쿨럭.”

[공포 상태가 해제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이, 이겼다!”
마침내 회색으로 변하며 무릎을 꿇는 오크 전사를 보며 미끼 중 하나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쳇, 아깝군. 동료의 시체까지 같이 찌르다니. 꽤 매정한 녀석들인걸.”
저벅저벅.
아직도 길드원들은 허기진 오크들과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지만 길드 마스터란 녀석은 천천히 오크 전사의 시체로 다가가 전리품을 회수했다.
“부츠와 나무 방패쯤인가?”
처음 사냥당한 녀석이라 그런지 상당히 실용성 있는 귀한 아이템들을 내놓고 사라졌다.
전부 다 당장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 땡잡았군.
“보아라. 이것이 우리의 시작이다!”
그래, 그래. 처참한 시작이지.
“우와아아!”
그러나 저들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다른가 보다. 길드원들은 길드 마스터의 외침에 격렬히 반응했고 사기충천하여 단숨에 남은 오크들을 무찔렀다.
“꿀꺽.”
오크들의 처리가 모두 끝나고 전리품 회수만 남자 구경꾼들의 눈에 서서히 탐욕의 빛이 서렸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반영하듯 카브 길드와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카브 길드원들도 이쪽을 경계하며 재빨리 손을 놀렸지만 이 미묘한 기류는 서서히 고조되어 갔다.
“취익.”
그때 허기진 오크 한 마리가 길드 마스터와 유저들 사이로 리젠 됐다.
“어서 정리하지.”
휘익.
길드 마스터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꼈는지 철수 명령을 내리며 오크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이 화전민 마을은 그들이 클리어 했으니 이곳에서 리젠 되는 몬스터들에 대한 권리도 당연히 당분간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아닛?”
타다닷!
푸욱!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유저 하나가 갑자기 튀어 나가 그의 검 앞으로 머리를 디밀었다.
“무슨 짓이냐!”
그러곤 저렙이었던 듯 냅다 죽어 버렸다.
놀람으로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차올랐다.
“머더러다. 죽여!”
“큭, 제조(의도적으로 살인을 유도하여 상대를 머더러로 만드는 행위)였나?”
한패가 있었는지 PK 제조범이 죽기 무섭게 몇몇의 유저가 주위를 선동하며 달려들었다.
다른 이들 역시 욕심이 머리끝까지 차 있던 터라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세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길드 측의 반응도 결코 느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