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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8화)
4. 부활! 매드 메이지(1)
마을로 돌아와 잡화점 앞에 선 나는 방금 얻은 두 마법 아이템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놓고 고민에 빠졌다.
“가진 돈이라곤 24실버 15쿠퍼가 전부인데, 매직 아이템 하나를 감정하려면 20실버가 필요하단 말이야. NPC에게 직접 감정을 맡겨도 15실버는 들고.”
하급 감정 스크롤의 가격은 20실버. NPC 직접 감정가는 15실버이다. 즉, 내가 가진 돈으로는 이 두 개의 아이템을 감정조차 못한다는 얘기.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법사의 왕국 샤그나스의 영향권에 있는 마을이라서 시작의 마을임에도 일반 상점들이 마법 아이템을 취급한다는 것쯤일까?
“별수 없지.”
일단은 돈이 궁하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테스와 카브 길드 녀석들이 알면 통곡을 할 일이지만 두 개의 아이템 중 나무 방패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상점에 되팔았다. 약간의 능력치 상승과 1%의 확률로 데미지를 반사하는 능력이 담긴 방패였지만 내겐 별 의미 없는 나무판자에 불과했다.
“끄응. 간당간당하군.”
‘외톨이의 나무 방패’라는 이름부터 우울한 나무 방패의 상점 처분가는 50실버. 상점에서 물품의 가격을 반 토막 내 사들이는 것을 생각할 때 꽤 비싸게 팔린 것이지만 이래저래 돈 들어갈 곳 많은 마법사인지라 넉넉하지는 않았다.
“어디 보자…….”
그렇게 얻은 약간의 돈으로 다시금 감정을 실시하고 남은 돈은 44실버 15쿠퍼. 남은 마법 아이템을 처분하면 1골드에 가까운 목돈이 될 테지만 경험상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배울 수 있다고 무턱대고 사들이다간 개털 되기 십상이지.”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마법사 길드, 혹은 마탑에서 배울 수 있는 마법 중에는 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실용성이 전무한 마법이 부지기수였다.
나도 처음에 그걸 모르고 돈을 탈탈 털어 부었다가 파산 직전까지 갔지. 쩝!
“뭐, 이 정도면 능력치도 훌륭하고.”
[구멍 뚫린 낡은 가죽 부츠][마법]
오래된 데다 험하게 신기까지 한 가죽 부츠. 미약한 마법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너무 오래돼서 언제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방어력 : 30 내구력 : 50/50 힘 +1 민첩성 +3
극초반에 얻을 수 있는 마법 아이템 중에서는 꽤 좋은 편이었다.
“이제 전직을 해 보실까?”
마법사 길드의 지부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메테오 마을 자체가 크지도 않을뿐더러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길드 사무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스으윽.
역시 마법사 클래스가 인기일 수밖에 없는 위치여서인지 나무문은 삐거덕거리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오오! 우리 지부 첫 방문자로군. 어서 오게.”
안으로 들어서자 지부장 NPC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봐야 추가 혜택 같은 것도 없으면서. 쳇.
“진리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그래, 그러니 이곳을 찾았겠지. 성격이 급한 친구로군.”
지부장은 핀잔을 주면서도 빙긋 웃으며 종이를 한 장 건넸다. 그리고 그걸 집어 드는 순간.
“10실버네.”
흡사 상인과 같은 눈빛으로 다른 한 손을 펴 내밀었다.
“끄응. 아주 부자 되시겠습니다.”
짤랑.
달랑 전직시켜 주면서 돈을 받아먹다니. 아무리 마법이 돈 많이 들어가는 학문이라지만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닌가? 다른 클래스들은 그냥 발품 몇 번 팔면 되는 퀘스트로 전직시켜 준다던데.
물론 그만큼 빨라서 좋긴 하다만.
“험험. 자네도 알다시피 마법이라는 학문이 아주 고상하고 고지식하지 않나. 더 높은 경지를 위해선 꽤 많은 돈이 연구에 투자되지. 또 금세 어렵다고 포기하고 달아나 버리는 자들이 많아서 말이야.”
“예,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크흠! 작성 다 했으면 이리 주게.”
작성이야 진작 끝났다. 돈을 지불하고 서류를 받아 드는 순간 자동으로 캐릭터 정보가 기술되도록 만들어졌으니까.
지부장은 서류를 슬쩍 살피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기사나 전사에 가까운 능력치 분배 때문이겠지.
“자네는 앞으로 마나 수련에 힘써야겠군. 어쨌든 축하하네. 이로써 자네는 토들러 메이지가 되었네.”
[토들러 메이지로 전직하셨습니다.]
[스킬 ‘스태프 마스터리’를 익히셨습니다.]
[스킬 ‘피스트 마스터리’를 익히셨습니다.]
[스킬 ‘킥 마스터리’를 익히셨습니다.]
[스킬 ‘메디테이션(명상)’을 익히셨습니다.]
…….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나를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업에 따라 능력치가 변화합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전직과 함께 내 몸의 변화에 대한 많은 알림음들이 울려왔다.
“상태창.”
[아레스]
레벨 10 직업 : 토들러 메이지
칭호 : 없음 학파 : 없음
HP : 95/95 MP : 80/80
힘 : 33
민첩성 : 28
체력 : 19
마력 : 20
정신력 : 15[수동]
행운 : 5
보너스 포인트 : 0
다른 능력치에는 큰 변동이 없지만 마력이 10이나 늘었다. 정신력도 5나 늘었고. 아직까지 보너스 포인트를 마력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사냥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진리의 길을 걷게 된 기념으로 가장 기본적인 마법인 매직 애로우를 가르쳐 주지.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약하지만 다연발로 쏘아 내는 게 가능하고 유도 기능까지 있어 마법에 대한 감각을 높이는 데 아주 제격이지. 원리는…….”
[마법 ‘매직 애로우’를 익히셨습니다.]
지루한 이론 강의가 끝나자 반가운 스킬 생성 알림음이 떴다. 흐흐흐, 좋았어.
“자, 이제 얼마나 이해했는지 볼까? 매직 애로우를 사용해서 저기 있는 나무판자를…….”
“타깃팅 매직 애로우.”
피융―
무슨 말을 할지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지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법을 발동시켰다.
“……맞혀 보게.”
퍼억.
주문의 영창도 없이 극히 짧은 캐스팅 시간으로 나무판자를 쓰러뜨리자 지부장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보통의 초보들이라면 더듬거리느라 마법의 발동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집중력이 흐트러져 다른 목표물을 맞히기 일쑤인 것이다.
“아, 아니 어떻게……?”
하지만 그걸 나에게 바라는 건 무리지. 더구나 이 몸은 마나 포스 컨트롤을 매뉴얼로 놓고 사용하거든. 흐흐!
더 월드의 숨겨진 기능 중 하나. 바로 능력의 수동화이다.
힘이나 체력 같은 능력은 오토로 놓고 수치상의 값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좋지만 이렇게 마나 포스의 컨트롤을 수동으로 설정해 놓으면 주문을 읊을 필요 없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한자리에 못 박혀 있을 필요도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른바 무빙 캐스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단, 내부의 마나를 특정 경로를 따라 자신의 의지로 직접 움직여야 하기에 도중에 집중력이 약해지거나 경로가 틀리면 마법이 취소되고 주문을 외워 사용할 때보다도 마법 발동이 느려질 수도 있었다.
물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 몸이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 없지만.
“뭐, 가르쳐 준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런 사실을 가르쳐 줘 봐야 알아들을 리 없으므로 가볍게 겸양을 떨고 말았다. 하지만 지부장의 놀람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 모양이다.
“대, 대단한 재능이로군. 다시 봤네.”
[전직 평가에서 S랭크를 받으셨습니다.]
[마법사 길드 내의 평판이 5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좋았어!”
마법사 길드 내에서의 평판이라면 환영, 대환영이다. 필요한 것만 골라 익힌다 해도 막대한 돈이 빠져나가는 마법서 가격이 평판이 높을 경우 상당 부분 할인되는 것이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평판의 상승은 당장의 10실버, 20실버보다도 가치가 높았다.
“더 필요한 마법 있나? 자네에겐 특별히 개당 10실버에 가르쳐 주지.”
거짓말. 1서클 마법의 가격은 원래 10실버다.
“파이어 애로우와 라이트닝 애로우 부탁합니다.”
짤그랑.
나는 또다시 눈물을 머금고 피 같은 20실버를 건넸다.
“다른 건 필요 없나? 자네 같은 초심자에게 필요한 마법이 많이 있다네. 도움이 되는 장비도 아주 많지.”
“됐습니다.”
나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는지 지부장이 슬쩍 상인적인 기질을 내비쳤다.
킁, 이런 돈 귀신 같은 녀석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예, 예. 그렇게 합죠.”
“그럼 파이어 애로우부터 시작하지. 파이어 애로우는…….”
[마법 ‘파이어 애로우’를 익히셨습니다.]
“라이트닝 애로우는…….”
[마법 ‘라이트닝 애로우’를 익히셨습니다.]
“휴우! 드디어 끝났군.”
지루한 마법 이론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건물을 박차고 나와 무기점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가지고 있던 조잡한 몽둥이를 팔고 튼튼한 단봉을 구입한 뒤, 다시 대장간으로 이동해 5실버를 지불하고 양 끝에 추가 박힌 튼튼한 단봉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켰다.
덕분에 수중에는 2실버가 조금 넘는 돈만이 남았을 뿐이다.
[양 끝에 추가 박힌 튼튼한 단봉][강화]
튼튼한 단봉을 제련해 양 끝에 추를 박아 넣었다. 덕분에 공격력은 증가했지만 무리한 강화로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 같다.
공격력 : 15-20 내구력 : 90/90
“그래도 쓸 만은 하네.”
이 정도면 목검을 넘어 숏소드에 육박하는 공격력이다.
목제 무기에 강화를 한 탓에 내구력이 10이나 떨어지긴 했어도 한동안 버티기에는 무리 없겠군. 목제 무기는 수리도 어렵고 수리를 한다 해도 총 내구력이 크게 떨어져서 안 좋단 말이야. 철제 장비는 집중력을 떨어뜨려서 마법을 쓰기 어렵고.
그래서 전에도 스태프 안에 미스릴 심을 박아 사용했지만.
윽, 그러고 보니 그게 얼마짜린데…….
“나도 진작 현금화나 해 둘 걸 그랬나? 아, 그럴 게임 머니도 없었구나.”
그러고 보니 마법서 값으로, 스태프 제작에 필요한 미스릴 값으로 가진 돈 탈탈 털었지.
“어쨌건 지금도 필요한 건 돈, 돈, 돈, 돈이구나. 아∼ 궁핍한 마법사의 삶이여!”
당장에 약간의 식량만 사면 주머니에서 먼지만 나올 정도니 어떻게든 밥값을 해야 했다.
뭐, 괜찮아. 다시 마법을 익힌 이상 주위에 굴러다니는 게 경험치요, 돈 덩어리니까.
“자, 대마법사 아레스 님의 부활이다.”
손에 들린 단봉을 휘돌리며 다시 동쪽 숲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