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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9화)
4. 부활! 매드 메이지(2)


카브 길드의 동쪽 숲 보스 레이드가 기점이기라도 한 듯 비교적 한산했던 동쪽 숲에 활기가 돌았다. 어느 정도 컨트롤에 자신이 있는 유저들이 파티를 이뤄 사냥을 하거나 기사로 전직한 몇몇의 유저가 홀로 사냥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다.
마법 왕국에 소속되었다고는 하나 초반 능력이 전무한 마법사 지망생보다는 왕년 기사 계열 유저들의 전직이 훨씬 빠른 것이다.
“다연발 매직 애로우.”
퍼버벅!
“꾸엑!”
“잘 가시게, 친구.”
퍼억!
하지만 그들조차 나의 사냥 속도에는 따라오질 못했다. 기초 중의 기초인 애로우 계열 마법쯤은 캐스팅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굶주린 오크 따위에게는 마나가 아까울 정도로 업그레이드 한 단봉의 데미지가 높은 것이다.
“오호?”
그렇게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며 도착한 곳은 좀 전 카브 길드와 시비가 있었던 오크 화전민 마을. 그곳에는 아직 떠나지 않고 한 마리씩 리젠 되는 허기진 오크를 사냥하는 무리가 있었다.
“숫자가 꽤 준 것 같은데 전직하러 간 건가?”
구경꾼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실력이 그럴싸해 보였던 자들 중 몇몇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7, 8레벨 정도 되는 자들이 적지 않아 보였는데 이곳에서 착실히 허기진 오크만 잡았어도 그럴 만한 시간이긴 하지.
“어디, 자리가 있으려나?”
슬금슬금.
한자리 차지할 만한 곳이 있는지 물색하고 있을 때 날 알아본 몇몇의 유저들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내줬다.
흐흐, 이럴 것까진 없는데…….
“그럼 몸 좀 풀어 볼까? 매직 애로우.”
또 한 마리의 허기진 오크가 리젠 되자마자 매직 애로우를 쏘아 내며 달려들었다.
티잉―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황급히 무기를 들어 방어하는 녀석. 하지만 두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선 후엔 이미 다음 공격에 노출된 상태였다.
“멍청한 녀석, 애초에 타깃이 네 무기였다!”
부웅!
우두둑!
자세를 낮추고 다리를 쓸어 가는 공격에 허기진 오크는 맥을 못 추고 팽그르르 돌아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곤 이어지는 몽둥이찜질.
“꾸, 꾸엑…….”
“흐흐흐. 이거 손맛도 꽤 괜찮단 말이야.”
물론 수입도 괜찮았다. 무기류가 가장 비싸게 팔리긴 했지만 허기진 오크들은 질긴 나무줄기나 낡은 가죽 계열의 방어구를 심심치 않게 내놓았기 때문에 몇 개는 착용하고 나머지는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돈 버는 덴 큰 거 한탕이 제일이지.”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하던가. 허기진 오크들을 1시간 넘게 족치면서 자잘한 아이템들을 얻다 보니 한탕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 녀석은 리젠 안 되나?”
“크아아앙!”

[워 크라잉에 노출되셨습니다. 힘이 10% 하락합니다. 민첩성이 10% 하락합니다. 방어력이 5% 하락합니다.]

“헉! 큰일 났다.”
“어떻게 하지?”
“빙고.”
녀석도 양반은 못 되나 보다. 투덜거리기가 무섭게 보스 몬스터, 추방당한 오크 전사가 나타나며 능력치 하락 메시지가 떠올랐다.
확실히 전직을 하니까 하락폭이 적어지는군.
“대쉬!”
“이, 이런!”
현재 오크 화전민 마을에는 나 이외에도 전직자가 세 명이나 있어 오히려 아까보다도 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좋은 아이템을 선사하는 보스 몬스터 앞에서는 모두가 경쟁자. 때문에 누구도 쉽사리 협공에 대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이, 추방당한 오크 전사가 선수 쳐서 가까이에 있는 토들러 나이트에게 검을 내리그었다.
채앵―
“큭.”
너무 놀라 스킬조차 발동시키지 못한 상대는 오크 전사의 힘에 밀려 바닥에 패대기쳐졌고, 다른 두 전직자들은 여전히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채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다.
“강격.”
“가, 강격.”
쿠웅!
그러는 사이 필살을 다짐했는지 또 한 번 오크 전사의 스킬이 발동됐다.
바닥에 처박힌 기사도 놀라 스킬로 맞대응했지만 힘을 받을 수 있는 자세도 아니었고 기본적인 힘 수치의 차이도 현격했다.
“커헉.”
결국 바닥에 내리꽂힌 사내는 피를 토하며 힘겹게 말을 쥐어짜 냈다.
“도, 도와…… 도와줘! 아이템 따윈 필요 없으니까 제발!”
타닷.
절규에 가까운 그의 외침에 비로소 의견 일치를 봤는지 다른 두 전직자들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쾌검.”
하지만 그마저도 추방당한 오크 전사의 계략이었다.
쐐애액!
“헙!”
콰앙!
폼을 잡은 사실이 민망하게 전직자 중 한 명이 도로 튕겨 나가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역시 그 모습에 놀라 주춤거리다가 공격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와우, 실력이 제법인데?
“버러지 같은 것들, 모두 죽어라.”
차갑게 검을 들어 올리는 오크 전사의 모습에 세 전직자들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다연발 매직 애로우.”
파바방!
“큭. 쥐새끼가 한 마리 늘었나.”
세 발의 매직 애로우 중 무려 두 발을 쳐낸 터라 추방당한 오크 전사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돋운 정도일까.
“헤에, 제법인데? 처음에 너무 쉽게 잡혀서 패치가 된 건가? 아니면 이게 원래 실력?”
“뭐라고 떠드는 거냐, 계집.”
뚝.
녀석의 대꾸에 내 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시라고라?”
“마법사인 건가, 계집.”
띠이―
다시 한 번 퓨즈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저놈 이제 큰일 났다. 매드 메이지에게 여자 같다는 말을 하다니. 그건 녀석의 뇌관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 그럼 매드 메이지를 폭주하게 만든다는 금기의 단어가 여자 같다는……. 헙!”
한 녀석의 설명에 어렴풋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던 녀석이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포, 폭주하는 건가, 이제. 하지만 아무리 매드 메이지라 해도…….”
나에 대해 들은 소문이 있는지 주위에 있던 몇몇 녀석들이 떠들어 댔다.
“킥킥킥. 그거 아나? 네 녀석, 방금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렸어. 다연발 매직 애로우.”
파바밧!
눈 깜짝할 사이 캐스팅 된 매직 애로우가 각기 머리와 명치, 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흥. 숄더 차지.”
의외로 녀석은 강공을 택했다. 숄더 차지를 발동시키며 매직 애로우의 위력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면서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내가 아니다.
“라이트닝 애로우.”
숄더 차지의 공격 방향은 오직 직선뿐. 나는 투우하듯 살짝 몸을 비틀어 공격을 흘려버리고 재차 마법을 날렸다.
파직.
“크윽.”
스킬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날린 공격이었기에 녀석도 완전히 피해 내진 못했다. 몸을 틀어 치명상은 피한 데다 전격의 일부가 검을 통해 흩어져서 큰 데미지를 면하기는 했으나, 전격계 마법의 특징인 경직 효과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내 단봉의 끝이 뱀처럼 놈의 심장을 노렸다.
“뒈져라!”
“큭. 강격.”
부웅!
내가 품으로 파고들자 녀석은 스킬의 힘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마비를 풀어냈다.
머리를 쪼개 오는 검날.
하지만 그따위 것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작게 읊조렸다.
“파이어 애로우.”
화르르륵.
“커, 커헉?”
푸왁!
녀석의 힘 빠진 검이 내 어깨 깊숙이 박혔지만 그것보다 구멍 뚫린 자신의 심장 어림을 움켜쥐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관통 효과를 이용한 내 비기 중의 하나, 애로우 찌르기다!
“흥. 곱게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퍽! 퍽! 퍽! 퍽!
나는 어깨에 전해 오는 고통도 잊은 채 단봉 끝에 달린 추를 이용해 녀석의 몸이 찰져지도록 떡방아질을 해 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헐…….”
음. 조금 잔인했던가? 지켜보던 일련의 무리가 못 볼 걸 본 표정을 하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딴짓에 열중했다.
“쳇, 입을 함부로 놀린 놈이 잘못한 거라고.”
추방당한 오크 전사의 시체에서 전리품을 회수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번에 나온 매직 아이템도 외톨이의 나무 방패. 허기진 오크를 잡아 모은 잡다한 방어구들을 정리하니 간신히 감정비는 나왔고 이번에도 감정 후 바로 처분해 50실버를 받았다.
그리고 그 돈을 다시 탈탈 털어 최하급 체력 포션 하나와 최하급 마나 포션 두 개를 구입하고 나머지 돈으로 몽땅 빵과 건량 등의 음식을 사들였다.
“이로써 다시 빈털터리 신세로군.”
아, 왜 항상 내 주머니에는 먼지만 날리는 거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 그럼 떠나 볼까?”
신발 끈을 동여매고, 나는 천천히 걸어 메테오의 북쪽 경계를 벗어났다. 더 이상 이 작고 번잡한 마을에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5. 마법사 길드의 의뢰(1)


한두 시간 거리로 연결된 몇 개의 시작의 마을을 지나고 게임 시간으로 꼬박 7일을 걸어 도착한 곳은 중간 규모의 도시인 ‘칼라일’이었다.
중간 규모라고는 하나 메테오를 열 개쯤 합쳐 놓은 것보다 커다란, 영주 성까지 있는 건실한 도시이다. 덕분에 상권도 활발하고 의뢰소와 메테오엔 없는 여러 종류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소개소까지 있어서, 나보다 한발 먼저 이곳을 찾은 유저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렇군. 초기 정착금이 10실버나 되니 음식을 충분히 사서 먼저 이곳을 찾는 것도 좋은 레벨 업 방법이겠어.
“중소 도시뿐 아니라 수도나 마그리드 같은 대도시에도 초보들을 위한 몬스터와 사냥터는 어느 정도 존재하니까 말이야.”
상대적으로 적은 경쟁자의 수 덕분인지 돌아다니는 유저 중 상당수가 이미 전직을 마친 상태로 보였다. 장비도 마법 아이템에는 못 미치지만 시작의 마을 평균 장비보다는 질이 좋아 보였고.
“하여튼 머리들도 좋아.”
나는 상황 판단 빠른 그들의 머리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의뢰소와 마법사 길드를 차례로 방문했다. 뭔가 쓸 만한 일거리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공동묘지에 나타난 좀비 처치하기][퀘스트]
[무덤지기 론]이 무덤들이 파헤쳐진 것을 발견했다. 원인을 알아보려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좀비들 때문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마을로 도망쳤고, 이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좀비가 된 가족들에게 안식을 줄 것을 의뢰했다.
[좀비가 된 마을 주민] 10명 처치.
보상 : 5실버

[서쪽 공동묘지 조사하기][퀘스트]
서쪽 공동묘지 쪽에서 마법사 길드 칼라일 지부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작은 기운이지만 그냥 두기엔 아무래도 찜찜해서 당신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서쪽 공동묘지를 조사하고 길드에 보고하도록 하자.
보상 : 평판 +5. 30쿠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