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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10화)
5. 마법사 길드의 의뢰(2)


“상황이 이 지경인데 겨우 조사 의뢰라니. 어지간히도 엉덩이가 무거운 양반들이군.”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의뢰소에 의뢰를 넣는 판인데 마법사 길드는 이제야 조사를 의뢰하고 있었다. 그것도 귀찮은 듯이 매우 짠 보상을 내걸고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라 하긴 한다만 해도 너무하는군.
꼬르륵.
“끄응, 서둘러야겠다.”
하지만 어쩌랴. 먹고 살려면 아니꼬워도 해야지. 7일간이나 걸어오는 바람에 사 놓은 음식도 바닥을 보이고 가진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
“좀비가 된 마을 주민이라. 레벨이 17 정도던가?”
서쪽 공동묘지로 가는 동안 홈페이지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가늠해 봤다.
좀비이니 날이 선 무기로 공격했다간 칼이 박힌 채 쉽게 빠지지 않아 낭패를 볼 테고, 속도는 꽤 느린 편일 테고, 살이 썩어 물러서 방어력 또한 낮을 테고…….
레벨은 추방당한 오크 전사에 필적하지만 보스 몬스터가 아닌 데다 꽤나 불편한 특성을 많이 가져서 실제론 13, 14레벨의 오크와 비슷한 전력으로 보면 될 것이다. 놈들은 그나마 지능이 있으니까.
“사제 클래스의 신성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겐 다른 게 있지. 다연발 매직 애로우.”
퍼버벅!
“끄그극.”
타깃팅 된 세 발의 매직 애로우가 차례로 머리를 연타하자 좀비가 된 마을 주민이 허우적대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흠, 이거 너무 싱거운데.”
신성력만큼은 아니지만 언데드에게 추가 데미지가 있는 불 계열 파이어 애로우를 녀석의 머리에 꽂아 넣자 왠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나 포스 컨트롤이 뛰어난 탓이긴 하지만 이렇게 쉬워서야 좀비 처치 퀘스트도 조사 퀘스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야 마력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지만 전직 후 레벨 업을 하면서부터는 대다수의 보너스 포인트를 마력에 쏟아부어 마나도 넘쳐나는 판이다.
“경험치는 짭짤한 편이지만.”
대체로 언데드는 쓸데도 없는 자신의 신체 일부나 저주받은 아이템을 많이 내놓는 편이라 돈이 되지 않지만 경험치만큼은 비슷한 레벨 대의 여느 몬스터들보다 많이 주는 편이다. 물론 듀라한이나 데스 나이트 같은 고위 몬스터들이 떨어트리는 장비는 저주가 걸렸더라도 비싼 값에 거래되긴 하지만, 그 드랍률이란 아주 극악할 정도다.
“그래도 재미없어.”
일일이 숨넘어가게 긴 캐스팅 시간을 소모하며 마법을 날리는 다른 마법사들이 들으면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지만, 캐스팅이 없다시피 한 나에게 좀비는 그저 허수아비처럼 재미없는 연습 상대에 불과했다.
“어디, 이렇게 해 볼까? 다연발 매직 애로우.”
푸슈슛.
“큭?”
“크극.”
“캬악!”
세 갈래로 쪼개진 매직 애로우들이 각각 한 마리씩의 좀비를 끌고 왔다.
“파이어 애로우!”
“케헥!”
화르륵.
순식간에 피어오른 불꽃의 화살이 굼뜬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좋았어. 제아무리 언데드라도 머리에 치명타가 터지면 살아남기 힘들지!
“캬악.”
“배고프냐? 이거나 처먹어라.”
그러곤 이내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 줄지어 오는 두 마리의 좀비를 마중했다.
퍼억!
“끅끅.”
탐스러운 내 단봉 끝이 썩어 문드러진 좀비의 이빨을 몽땅 부러뜨리며 침투하자 놈이 당황해 버둥거렸다.
“라이트닝 애로우.”
파직.
퍼억!
마법 속성 중 한 점에 대한 파괴력이 가장 강한 전격계의 마법이 펼쳐지자 놈의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며 무너져 내렸다.
“꺽?”
거기서 끝이 아니다.
놈의 머리를 터트리고 뻗어 간 라이트닝 애로우는 뒤따라오던 다른 녀석의 명치에 틀어박히며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퍼억!
그리고 이어지는 단봉 휘두르기.
주춤거리던 좀비는 두개골이 함몰되며 쓰러졌다.
“자, 조금 더 빨리!”
또다시 희뿌연 마법의 화살들이 묘지 위를 날았다.
“빨리.”
“빨리!”
“더 빨리!”
한번 흥이 난 내 몸은 나조차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기민하게, 알아서 움직여 댔다.
녀석들을 바닥에 눕히는 데 필요한 마법은 결정적 한 방이면 족했으므로 소모되는 마나도 극소량. 설사 마나가 바닥나더라도 단봉을 들고 조금만 날뛰다 보면 어느새 다시 한 발 쏘아 낼 만큼의 마나가 채워지곤 했다.
“헥헥. 응? 여기가 어디다냐.”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좀비들을 모두 바닥에 눕히고 나니 비로소 주변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 묘지 깊은 곳까지 들어온 건가? 에구구! 뭐 어때. 오랜만에 날뛰었더니 삭신이 쑤시는군. 조금만 쉬었다 나가야겠다.”
모르긴 몰라도 퀘스트쯤은 진작 완료가 떴을 게다.
꾸욱.
드르르륵.
“오잉?”
한숨 돌리기 위해 비교적 멀쩡한 비석에 걸터앉자 비석이 땅으로 들어가며 파헤쳐진 묘 속의 석관이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드러나는 비밀 통로.
“빙고……라고 해야 하나?”
긁적긁적.
뭔가 얼떨떨했지만 일단 통로 안쪽으로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윽. 라이트는 배워 둘걸.”
빛의 구를 소환해서 주위를 밝히는 라이트 마법 역시 1서클로 지금 배울 수 있었지만 초반에 던전 갈 일이 뭐 있겠냐 싶어 배우지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칼라일에 오는 동안 얻은 잡템들이라도 팔아 배워 둘걸 싶었다. 통로 안쪽의 공간은 횃불 하나 없는 암흑천지인 것이다.
“대체 얼마나 거창한 놈이 나타나려고…….”
눈이 어느 정도 어둠에 적응되자 투덜거리면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소모됐던 마나가 반 정도 차올랐을 때, 멀리서 작은 빛이 보였다.
윽! 눈부셔.
“에…… 사람?”
아직 마나가 다 차려면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멀리서 보이는 그림자가 사람의 것임을 확인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난 또 어두침침한 걸 좋아하기에 리치라도 되는 줄 알았네. 하긴 리치라면 최하급도 100레벨이 넘는데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지.
“웬 놈이냐!”
“그러는 넌 뭐하는 놈이냐? 이런 어두침침한 곳에서 그런 거적때기 같은 로브나 입고. 리치 지망생이라도 되는 건가?”
“수상한 놈이군.”
“공동묘지에 땅굴 파고 숨어 있는 네놈이 더 수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냐? 저 위에 돌아다니는 고름 덩어리들도 네 짓이겠지?”
“죽어라. 레이즈 스켈레톤!”
“끄응, 이래서 음침한 놈들은 안 된다니까.”
제대로 된 답변은 하나도 없이 제 할 말만 하고 공격을 시작하는 녀석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녀석이 손을 뻗자 두둥실 떠오르며 제 위치를 찾는 하얀 뼈다귀들. 가만, 레이즈 스켈레톤이라고?
“그거 네크로맨서 2서클 마법이잖아?”
레이즈 스켈레톤이라면 2서클의 네크로맨서 마법이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최소 40레벨 이상의 네크로맨서란 소린데? 아니, 어쩌면 견습 네크로맨서일지도.
“가라! 나의 종이여. 저자를 죽여라!”
“히끅! 2대1이라니. 이건 반칙이야!”
덜그럭덜그럭.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쯤의 레벨일 스켈레톤이 삭아 빠진 뼈다귀를 휘적거리며 달려들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방 안을 도망 다녔다.
“딱딱딱딱.”
“……어둠의 화살이여. 적의 심장을 꿰뚫어라. 다크 애로우!”
기분 나쁜 이빨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쫓아다니는 스켈레톤과 보조를 맞춰 네크로맨서가 어둠의 화살을 쏘아 보냈다.
“정말 치사하게 이러기냐! 파이어 애로우!”
파츠츠츳.
신경질적으로 단봉을 휘두르자 두 마법의 화살이 서로 부딪치며 상쇄됐다.
“딱딱딱딱.”
“네놈도 듣기 싫엇! 다연발 매직 미사일!”
이어 펼쳐진 매직 애로우가 정확하게 녀석의 무릎 관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빠바박.
“끼륵?”
“헉? 재생!”
마법적 힘으로 약하게 연결된 관절 부위가 충격을 받으며 이탈해 가자 네크로맨서가 깜짝 놀라 복구 스킬인 ‘재생’을 외쳤다.
뚜두둑.
빠르게 자리를 찾아가는 관절.
그러나 내 단봉은 이미 스켈레톤의 머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풀스윙이다!”
뻐억!
재생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간 머리통은 네크로맨서 녀석을 향해 직격으로 꽂혀 들었다.
“컥!”
재생 스킬의 재사용 시간은 차치하고라도 마법 계열의 빈약한 육체적 능력 때문에 녀석은 피해 내지 못하고 스켈레톤의 머리통에 맞아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라이트닝 애로우!”
“아, 안 돼.”
빠각!
머리를 잃고 홀로 버둥거리는 스켈레톤의 몸을 발로 밀어 버리고 라이트닝 애로우를 쏘아 내자 네크로맨서는 급한 대로 들고 있던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들어 막았다.
반으로 쪼개지는 두개골.
그러나 재생 스킬 한 번이면 말끔해질 게다. 쳇!
“재, 재…….”
“끝까지 시체를 가지고 장난질이냐! 라이트닝 애로우!”
“이런! 큭!”
네크로맨서는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전격의 화살 때문에 스켈레톤의 재생을 포기했다. 재생 스킬을 시전하면 들고 있던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몸체를 향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해 줄 유일한 도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빠득! 이놈이 끝까지?”
빠악!
나는 부들거리는 네크로맨서의 손에서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멀리 차 버리고 그대로 있는 힘껏 단봉을 휘둘렀다.
“끄극…… 마법사가…… 어떻게…….”
털썩.
2서클인 주제에 공포 상태에 빠진 네크로맨서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놈들은 살려 둘 필요가 없지.
“라이트닝 애로우.”
파지지직.
퍼억!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쥐어짜 내어 네크로맨서 녀석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촉망받는 네크로맨서 수련생이 죽음으로써 3시간 동안 칼라일 서쪽 공동묘지에 좀비가 출현하지 않습니다.]

“헉?”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알림음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레벨이 높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이거 얼떨떨하군.
“상태창.”

[아레스]
레벨 28 직업 : 토들러 메이지
칭호 : 없음 학파 : 없음
HP : 100/100 MP : 30/220
힘 : 35
민첩성 : 30
체력 : 20
마력 : 55
정신력 : 15[수동]
행운 : 5
보너스 포인트 : 50

아까 미친 듯이 좀비를 사냥하면서 3레벨이 올랐으니 이 한 번으로 10레벨이 오른 셈이다.
이거…… 원래 지금 잡힐 몬스터가 아닌 것 같은데?
“전직 퀘스트용 몬스터라도 되는 건가?”
녀석이 얕봤기에 망정이지 사실 진지하게 싸웠다면 꽤 어려운 싸움이 될 뻔했다. 마나 포스 컨트롤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지지야 않았겠지만 일반 유저라면 마법사는 물론 기사나 기타 클래스로도 견습급이 되기 전에는 패배를 점치는 게 쉬웠을 것이다.
“흐흐, 아무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