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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13화)
5. 마법사 길드의 의뢰(5)


“쥐새끼 같은 놈!”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물러서고, 대쉬나 파워 스텝도 경직 시간만 만들어 낼 뿐 통하질 않자 조금 냉정을 되찾나 싶던 아미르가 다시 열을 내기 시작했다.
파츳.
“흐흐. 과연 누가 쥐새끼일까?”
“아닛?”
치직.
치지직.
폭발하려던 아미르는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저릿한 느낌에 깜짝 놀라 두리번거렸다.
“네놈 모습이 꼭 물에 빠진 생쥐 같구나. 캬캬캬캬!”
당황하는 아미르의 표정을 감상하며 하나 남은 최하급 마나 포션을 음미했다.
“이럴 수가…….”
츠츠츠츳.
“크, 크악!”
아쿠아 애로우를 박살 내느라 물을 수십 바가지나 뒤집어쓴 아미르는 제가 뿜어낸 전기에 감전되어 괴로워했다.
쯧! 그러게 평소에 심보를 곱게 써야지.
“넌 이제 내 밥이야. 라이트닝 애로우! 라이트닝 애로우! 라이트닝∼!”
파직!
파직!
파지지직!
공격을 당할수록, 속은 것에 분노할수록 녀석의 고통은 더해져만 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자멸하고 말았다.
오∼ 예스!
“상태창!”

[아레스]
레벨 34 직업 : 토들러 메이지
칭호 : 없음 학파 : 없음
HP : 175/175 MP : 340/340
힘 : 35
민첩성 : 45
체력 : 35
마력 : 85
정신력 : 15[수동]
행운 : 5
보너스 포인트 : 20

이대로면 2서클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러다 랭킹 1위 되는 거 아니야? 흐흐흐흐!

[아레스]
레벨 34 직업 : 토들러 메이지
칭호 : 없음 학파 : 없음
HP : 175/175 MP: 380/380
힘 : 40
민첩성 : 50
체력 : 35
마력 : 95
정신력 : 15[수동]
행운 : 5
보너스 포인트 : 0

민첩성과 힘에 5포인트를 더하고 나머지는 마력에 몽땅 때려 박았다. 던전을 단독 돌파해서이긴 하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마나양 덕분에 비싼 마나 포션을 네 개나 사용한 것이다. 마나 포션 네 개면 무려 6실버다. 쩝!
“아차, 아이템!”
아미르는 보스 몬스터이다. 게다가 네임드. 그리고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최소 1개의 마법 아이템이 떨어진다. 최초 공략자에게는 상당한 어드밴티지가 붙기도 하고.
고로…… 심 봤다!
“……조금 기다려야겠군.”
하지만 보기만 해도 전기가 찌릿찌릿 올라오는 저 물바다 속에서 건져 내려면 잠시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룰룰루∼ 아차.”
차분히 기다려 통신구까지 모두 4개의 아이템을 집어 올리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난관을 발견하고 말았다. 아미르를 잡고 아이템을 수거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동굴의 코볼트가 대부분 리젠 된 것이다.
“망했다.”
다행히 보스 방의 코볼트 삼인방은 아미르와 함께 리젠 되는지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혈의 바깥쪽에는 이미 되살아난 동굴 코볼트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하하하……. 달리자. 달리는 거다. 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꾸욱.
마지막 남은 최하급 체력 포션 병을 움켜쥐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에이 씨!
훌쩍.



6. 기도하는 여신상(1)


병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포션까지 혀로 핥아 가며 죽을 동 살 동 돌아온 마을.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마법사 길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사용할 수 없겠군.”
……뭐시라?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렇게나 멀쩡한데?”
벤의 손에 들린 통신구를 빼앗아 살펴봤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실금 하나, 흠집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깨끗한데 사용할 수 없다니? 이 노인네가 지금 장난하나…….
“겉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너무 오래 방치해 둔 모양이군. 통신구에 사악한 기운이 스며들었어.”
꿈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당신 잘못이잖아!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딱 봐도 곱게 보상을 내어 줄 마음이 없어 보였기에 나는 참을 인 자를 새기며 연계 퀘스트가 있는지 물었다.
빠득!
“간단하네. 마법과 상거래가 주축이 되는 이곳에도 신전은 있지. 마을 동쪽에 있는 신전에 가서 이 통신구를 정화해 오게.”
“알겠습니다.”
부르르.
그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통신구를 받아 건물을 나왔다.

[통신구 정화][퀘스트]
어렵게 통신구를 찾아왔지만 몬스터의 품에서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마을 동쪽에 있는 신전에서 통신구에 스며든 사악한 기운을 정화해 오도록 하자.
보상 : 평판 +30. 20실버. [마력의 벨트][매직]

“추가 수당도 없나? 이런 짠돌이 영감탱이!”
퀘스트가 ‘통신구 찾아오기’에서 ‘통신구 정화’로 바뀌었지만 보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마을 안에 있는 신전이라……. 그래도 발품 파는 퀘스트라 다행이네. 쳇, 일은 자기가 벌여 놓고 무지하게 부려 먹는구먼.
“윽. 내 피 같은 돈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신전에 가기 전에 먼저 무기점을 찾았다. 동굴 코볼트들이 남긴 아이템을 처분하고 매직 아이템을 감정하자 순식간에 홀쭉해지는 돈주머니.
아, 내 마음까지 홀쭉해지는 것 같다.

[아미르의 시미터][매직]
돌연변이 코볼트 아미르가 애용하던 시미터. 검을 감싸고 있는 푸른 기운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마법 [샤프니스] 영구 발동
공격력 : 83-97 내구력 : 300/300 힘 +3 민첩성 +3 체력 +3 제한 : 소드 계열

[물결무늬 가죽 캡][매직]
신비한 힘이 감춰진 가죽 캡. 덧대어진 가죽이 아름다운 물결무늬를 이루고 있다.
하루 한 번 [마인드 클리어] 사용 가능.
방어력 : 50 내구력 : 150/150

[무뎌진 너클][매직]
실력 있는 격투가가 사용했던 너클. 하지만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아서 많이 무뎌졌다.
공격력 : 50-55 내구력 : 120/120 힘 +2 민첩성 +3
제한 : 격투가 계열

“헉!”
감정된 아이템들을 받아 본 나는 대번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무리 네임드 보스 몬스터라지만 아이템의 능력이 너무 엄청난 것이다. 무뎌진 너클은 그렇다 쳐도 비전투 상황에서 빠르게 마나를 회복시키는 기술인 ‘메디테이션’과 병용할 경우 두 배까지 빠르게 마나를 모을 수 있게 해 주는 마인드 클리어가 사용 가능한 물결무늬 가죽 캡이나 최고 데미지가 100에 육박하고 능력치를 10 가까이, 그것도 전투 계열에게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올려 주는 아미르의 시미터는 정말 억 소리 나게 좋았다. 어쩌면 아미르의 시미터는 더 월드 내 현존하는 최고의 검일지도?
“그림의 떡이구먼. 쩝!”
하지만 제한이 걸려 있었다. 제한이 걸려 있는 장비도 기타 클래스가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내구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이 반 이하로 뚝 떨어져 버린다.
저 예리하기 짝이 없는 아미르의 시미터도 내가 착용하면 절대 데미지 50을 넘기지 못하는 그저 그런 매직 아이템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소리다. 더구나 철제 장비는 마나의 유동을 방해해 마법 발동에 지장을 주니 영락없는 장식용 검이었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저걸 제값 주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고. 이거 참…….
“지지리 복도 없지.”
코볼트 따위 원 샷 원 킬로 처리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도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한다니. 나처럼 재수 없는 놈도 드물 거다.
일단 마법사용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물결무늬 가죽 캡을 눌러쓰고 나머지 물품은 품에 찔러 넣었다.
“어디 가 보실까.”
그래도 어디엔가 쓸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에 상점에 처분하지는 않기로 했다. 곧 40레벨을 찍고 2서클 마법들을 익힐 수 있게 되면 가진 것 박박 긁어모아도 턱없을 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좋은 물건을 상점에 처분하는 건 더 월드를 위해서도 안 좋았다.
암, 그렇고말고. 곧 현금으로 게임 머니를 대거 사들이는 사람이 나올 텐데 기다렸다 경매라도 올려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내 발은 신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으음? 마나의 길을 걷는 분이시군요.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마나와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청년 사제는 금방 나를 알아차리고 경계했다. 아무리 마법사와 사제 클래스가 서로 탐탁지 않게 여긴다지만 대놓고 쫓아내지는 않겠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부탁……이라고요?”
이쪽에서 정중하게 나가자 그도 조금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예. 정화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음, 그건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군요. 따라오십시오.”
자신의 능력이 정화 스킬을 펼칠 수 있을 만한 실력에는 못 미치는지 청년 사제는 나를 옆방으로 안내했다.
“베르곤이라고 합니다. 정화가 필요하시다구요?”
“예. 이것에 몬스터의 사악한 기운이 스며들었다더군요.”
터억.
40대쯤으로 보이는 베르곤이란 사제가 나서자 그의 앞으로 통신구를 내려놓았다. 말로 여러 번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 주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설마하니 NPC가 들고 튈 리도 없고.
“으음.”
통신구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베르곤이 다시 통신구를 내려놓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렵……겠습니까?”
순간, 안 좋은 예감이 스쳤다. 벤 영감에 대한 살의와 함께.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시간이 꽤 걸리겠군요.”
“그럼 얼마나…….”
“한 달 정도?”
“에엑? 그렇게나 많이 걸립니까? 달랑 코볼트의 기운이 스민 정도인데? 뭐, 평범한 놈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오해를 하시는군요. 어둠의 기운이 단단히 뭉치긴 했어도 힘을 쏟아부으면 하루나 이틀 만에 말끔히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저희 사정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작은 신전이라 정화 주문을 쓸 만큼 높은 능력의 사제를 한 가지 일에만 집중시킬 수 없지요. 더구나 밀린 성수의 납품 때문에 한창 바쁠 때라서…….”
“끄응,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험험. 이런 얘길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부를 하시는 것이겠지요. 성수를 판매하는 일도 다 신전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함이니 그 일을 하게 되는 동안 손실되는 만큼의 금액을 형제께서 기부해 주신다면 영주님께 바칠 일정량의 성수만 만들면 되니 기쁘게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