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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14화)
6. 기도하는 여신상(2)


“그럼 금액은 얼마 정도…….”
“대략 10골드 정도?”
“헉!”
당장 먹고 죽으려도 수중에 1골드조차 없는데 10골드를 내라고? 그것도 ‘기부금’으로? 벤 영감이나 이놈이나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이 정도 되는 물건을 정화하고 나면 상당한 휴식이 필요하기에……. 그게 곤란하시다면 다른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뭡니까, 그게.”
선심 쓰는 척 운을 띄우는 베르곤의 말이 미끼일 건 알았지만 알면서도 덥석 물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빈곤한 마법사인 것을.
“동쪽 숲에 있는 갈기털 오크 일족이 약탈해 간 저희 신전의 보물을 되찾아 주십시오. 그것만 있으면 정화쯤은 가뿐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놈의 오크들은 또 동쪽 숲이냐?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릅니까?”
“소문에 따르면 갈기털 오크 일족의 마법사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녀석은 하루 세 번 숲 외곽 순찰을 도는데 그때를 노리면 될 겁니다. 하시겠다면 만일을 위해 저희 신전의 제자를 붙여 드리지요.”

[신전의 보물 회수][퀘스트]
동쪽 숲의 갈기털 오크 일족 마법사 홀락이 가지고 있는 [기도하는 여신상]을 빼앗아 오자.
녀석은 하루 세 번, 외곽 숲을 순찰한다고 한다.
특별히 베르곤이 신전의 제자를 파견해 주기로 했다.
[견습 프리스트], [견습 몽크], [견습 클레릭] 중 랜덤.
보상 : 통신구의 정화.
제한 : 15일.

그의 제안에 퀘스트 창을 열자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떴다.
엥? 시간제한이라고?
“하지만 15일 안에는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신전의 제자를 언제까지고 밖으로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자기네 보물 찾으러 가는 일에 되게 쫀쫀하게도 구네. 이거, 제자를 붙여 준다는 것도 내가 보물을 갖고 튈까 봐 감시 역으로 보내는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쉬운 놈이 참아야지.
그런데, 견습급이라고?
“이아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억.
베르곤의 퀘스트를 수락하자마자 옆방에서 전사를 연상케 하는 복장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헐, 정말 견습 클레릭인가?
“대박인데?”
사제 계열 직업은 대개 ‘프리스트’, ‘몽크’, ‘클레릭’, ‘템플 나이트’로 분류된다. 세세히 따지면 온갖 관련 히든 클래스들이 더 있겠지만 대표적인 게 이 넷이다. 그마저도 프리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전직 방법이 널리 알려졌다 뿐 히든 클래스로 분류되고.
이들은 각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먼저 기본형인 프리스트.
회복과 축복, 온갖 전투에 도움 되는 보조 주문에 정통한 서포터들이다. 고레벨이 되면 공격력을 지닌 신성 주문도 사용하는데 그중 최강 주문인 ‘홀리’는 마법사 최강 주문들과도 비견될 만큼 강력하다.
그다음 프리스트에 가까운 것은 몽크.
이들은 프리스트이면서 스스로의 몸을 단련하여 맨손 격투에 능한 자들이다. 때문에 보조 주문 쪽으로 능력이 특화되어 있고 회복도 적당히 할 수 있지만 축복에는 조금 떨어지는 능력을 보인다.
그리고 프리스트의 마지막 선을 지키고 있는 클레릭.
이들은 ‘신을 섬기는 자로서 남을 상하게 하는 날이 있는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나름대로의 마지막 선을 지키고자 철퇴류의 타격계 무기를 사용하여 적을 섬멸하지만, 내가 보기엔 때려죽이는 쪽이 더 잔인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몽크만큼은 아니지만 보조 주문에 능하고 회복 능력도 괜찮은 편이지만 축복에는 약한 편이다.
템플 나이트는 사제 계열임에도 검을 이용해 적을 처단하는데, 온갖 신성 보조 주문이 잔뜩 걸린 장비를 착용할 수 있는 대신 그 자신의 신성 능력은 전체적으로 아주 낮은 편이다.
아, 어쩌다 보니 히든 클래스 소개 순서가 되어 버렸군.
“아레스입니다.”
이아손과 악수를 하며 슬며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몽크까지도 괜찮지만 프리스트였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마법사와 프리스트. 어느 한쪽도 근접전에 능하지 못한 클래스니까. 클레릭이라면 셋 중 공격력과 방어력이 제일 좋으니 베스트라고나 할까?
“가디언 상태창.”

[이아손]
레벨 53 직업 : 견습 클레릭
힘 : 75
민첩성 : 65
체력 : 70
신성력 : 55
정신력 : 40
행운 : 15

일단 퀘스트를 해결하려면 적의 정보는 물론 우리 쪽의 전력도 파악해야 했기에 이아손의 레벨을 살폈다. 능력치는 고루 분배된 편이고, 3서클은 아직인가?
“갈기털 오크라면 40대 중후반의 레벨이었지, 아마?”
가까워지는 동쪽 숲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50대 초반의 클레릭과 40대 중후반의 오크. 더 볼 것도 없는 결과겠지만 오크의 동족 의식과 겨우 34레벨의 마법사인 내가 변수였다.
2서클 마법만 배웠어도 고민할 필요가 없을 텐데. 끄응.
“일단 실력 좀 볼까? 이아손, 공격.”
진짜 사람처럼 대해도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이아손은 NPC다. 내가 반말을 하든 존대를 하든 퀘스트를 마치기 전까진 무조건적으로 내 말을 듣는 내 편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좀 더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 명령어만 이용하는 것도 좋았다.
“취익!”
쿠웅!
홀로 떨어진 갈기털 오크가 이아손을 발견하고 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돌진력과 합쳐진 일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무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어 내리꽂히는 메이스.
“꾸, 꾸윅!”
콰직!
황급히 수그린 갈기털 오크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나무껍질이 터져 나갔다.
와우, 힘이 장사인걸.
“흐압!”
뻑!
쿠웅!
“……뭐냐, 저놈.”
털썩.
조금 전까지 자신의 머리가 있었던 자리를 보며 오줌을 찔끔 저리는 갈기털 오크를 향해 이아손의 박치기가 작렬했다.
그대로 허물어지는 갈기털 오크.
인공지능이 높은 건 좋은 일이지만…… 클레릭이 이래도 되는 거야? 끄응.
퍽! 퍽! 퍽!
이어지는 매타작. 복날 개 패듯 이아손의 메이스가 갈기털 오크의 몸으로 신들린 듯 날아들었다.
“처리했습니다, 형제여.”
투구 위로 갈기털 오크의 피가 주르륵 흐르는 가운데 환하게 미소 짓는 사제의 모습이라니! 우리 편이지만 왠지 섬뜩해졌다.
“수, 수고했습니다.”
그래도 전투력은 합격점이었다. 조금 엽기적이긴 해도 전투 센스가 상당한데? 스킬과 보조 주문으로 무장하고 싸운다면 갈기털 오크도 세 마리 정도는 가뿐하지 않을까 싶었다.
“길목부터 살펴봐야겠군.”
이아손의 전투력도 확인했으니 이번엔 홀락이라는 녀석이 순찰을 도는 길을 파악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래야 다른 갈기털 오크들을 부를 수 없는 곳에서 기습할 수 있을 테니.
때문에 나는 이아손과 함께 베르곤이 준 지도를 펴 들고 동쪽 숲 탐방에 나섰다.
“꿀꺽, 잠입하는 건 어렵겠군.”
지도를 따라 돌고 돌아 도착한 갈기털 오크 일족의 마을. 아니, 이건 성채에 가까웠다. 함께 생활하지 않는 부족 단위 200여 마리가 숲속 곳곳에 퍼져 있음에도 중앙 마을의 갈기털 오크 숫자는 얼추 300마리. 20마리 단위로 그들을 관리하는 갈기털 오크 전사도 15마리나 있었고 그들 위로 갈기털 오크 마법사가 셋. 그 위로 갈기털 오크 족장이 있다. 그다지 강한 것은 아니나 미개한 오크들이다 보니 마법사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마법사의 숙소도 마을의 중앙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역시 순찰 나올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흠, 어쩔 수 없겠어.”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순찰로 점검에 나섰다.

홀락이 다니는 길을 사전 파악하고 또 실제와 얼마나 동선이 일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꼬박 3일을 투자하였다. 그리고 찾아낸 최고의 공격 지점.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갈기털 오크 무리도 처리해 놓은 상태였다.
“온다.”
멀리서 윤곽을 드러내는 홀락과 그 호위들을 보며 이아손과 함께 숨을 죽였다. 소족장의 호위는 모두 다섯. 다행히 오크 전사는 따라붙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호위였다. 갈기털 오크 다섯이면 내가 매직 애로우로 시선을 끌어 둘이나 셋을 달고 돈다는 전제하에 이아손과 내가 큰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는 숫자였으니까. 그러니 홀락까지 합세할 경우 정면 승부로는 필패였다. 더구나 직접 부딪혀 보지 못해 홀락의 능력에 관해선 알아낸 바가 없는 상태였다.
주술사라는 직업을 통해 사용하는 스킬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뿐이다.
“준비.”
“스트랭스. 퀵 무브.”
내가 손을 슬며시 들어 올리자 이아손이 일러 준 대로 자신과 나에게 강화 주문을 걸었다.
레벨이 낮아서 걸 수 있는 주문이 몇 개 없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하지.
“가라!”
타핫.
“성스러운 일격!”
콰직!
숨어 있던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며 발동한 이아손의 스킬에 방심하던 갈기털 오크의 머리가 그대로 뭉개져 버렸다. 황급히 전투태세를 취하는 오크들. 하지만 이아손은 거침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죽여라!”
그 매서운 기세에 홀락은 뒤로 물러서며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성스러운 일격!”
그 걸음에 따라 이아손의 메이스가 다시 한 번 빛에 휩싸였다.
“취익!”
까앙!
스킬까지 발동시켰건만 고작 갈기털 오크 한 마리를 넘어뜨리는 데 그쳤다. 그리고 그 틈은 나머지 오크들이 재빨리 메웠다.
음, 어렵게 됐군.
“……나의 적을 멸하라. 비켜라! 파이어 볼!”
화르르륵.
그때 물러섰던 소족장의 손에서 새빨간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크윽.”
콰앙!
이런 식의 협공은 자주 해 봤던 듯 오크들은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오크들의 등판에 시야가 가린 이아손은 그대로 화염탄에 노출되고 말았다.
비틀.
“감히 신전에서 나온 인간 나부랭이가 혼자 나를 기습하려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크크크.”
사제 계열의 패시브 스킬은 레지스트 스펠(항마력) 덕분에 데미지가 줄어들어 치명상은 면했지만, 기세가 확 꺾여 비틀거리는 이아손을 보며 홀락이 조롱하기 시작했다.
“누가 혼자래?”
“아닛?”
홀락이 방심하는 사이, 뒤로 돌아갔던 내 몸이 빠르게 튕겨지며 단봉을 뻗어 냈다.
“잘 가라. 파이어 애로우!”
화르륵.
나의 비기, 애로우 찌르기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목표는 녀석의 심장. 각도 좋고!
“흥! 디바인 실드!”
우웅.
푸쉬쉿.
“……엥?”
“크크크. 생각은 좋았다만 이걸 몰랐나 보군, 인간 마법사.”
녀석은 파이어 애로우를 간단히 소멸시킨 반투명한 막을 없애고 여유롭게 부하들의 틈으로 몸을 숨겼다. 한 손에는 못 보던 조각상을 들고서.
“저게…… 기도하는 여신상?”
홀락이란 녀석이 오크답지 않게 신성력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저것 때문인 듯싶었다.
베르곤, 이 자식!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제기랄.”
“자, 그럼 이제 잠시나마 날 놀라게 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가라! 모두 죽여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