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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16화)
7. 레벨, 그것이 문제라면(2)


[홀락]
레벨 53 직업 : 마법사
HP/MP : 31/453

“31? 흥, 그냥 뒈져라. 다연발 매직 미사일!”
“커헉! 어떻게…… 갑자기…….”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나의 성장이 믿어지지 않는지 홀락은 끝까지 의문에 쌓은 눈빛으로 쓰러져 갔다.
이거 참, 너무 허무하군.
마법을 난사해 대는 바람에 마나가 20%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첫 격돌과는 반대로 손 한 번 써 보지 못한 채 녀석이 죽어 버리자 뭔가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겨우 이렇게 끝내자고 이를 갈았던가.
“절대로 이렇게 끝낼 수는 없지.”
씨익.
나는 전리품을 회수한 뒤 제자리에 주저앉아 메디테이션을 행하며 빠르게 마나를 회복시켰다.
감히 이 어르신의 심기를 거스르다니. 몇 번이고 죽여 주마, 이놈!
결국 홀락의 이동 경로에 있던 모든 갈기털 오크와 홀락을 일곱 번이나 더 죽이고 나서 마을로 돌아왔다.

[기도하는 여신상][레어]
기도하는 여신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 세심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신의 축복을 받았다.
소지 시 클래스에 상관없이 3서클까지의 모든 신성 주문 사용 가능.
신성력 +30 정신력 +15

“흠, 역시나로군.”
역시나 홀락이 사용하던 신성 주문은 모두 이 여신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레어라니! 쩝. 그냥 먹고 튈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잠시 퀘스트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다고 여신상을 손에 넣을 수 있지는 않았다. 당장에 이아손이 공격해 올지 모르고 이 녀석을 해치운다 해도 신전에서 더 강한 놈들을 끊임없이 보내올 테니까. 그게 아니라도 단박에 수배령이 내려질 테고.
“또 그림의 떡인 건가?”
스트라이킹, 레서 블레스 등 3서클 신성 주문에는 쓸 만한 게 많은데. 보통 아쉬운 게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퀘스트 종료까지 시간도 촉박했고.
“여기, 가져왔습니다.”
“오오! 이건 분명히 기도하는 여신상이로군. 드디어 되찾았어!”
별수 없이 베르곤에게 여신상을 가져다주자 뻔한 반응을 보이며 사제들을 모아 대번에 통신구를 정화해 버렸다.
뭐야,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뭔가 속은 기분이군. 끄응.”

[칼라일 신전에 대한 기여도가 10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마리우스 신전에 대한 전체 기여도가 3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자네에게는 모두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게. 힘닿는 데까지 돕도록 하지. 아, 그리고 자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신전의 제자를 파견해 주겠네.”
“예? 정말입니까?”
레벨 업에 있어서 이아손의 효능은 이미 몸으로 확인했기에 투덜거리던 입이 쏙 들어갔다.
이게 웬 떡이냐?
“물론이네. 단, 파견 나간 제자는 보름 뒤에 반드시 복귀해야 하네. 대신 다른 제자를 파견해 줄 수는 있네만.”
“좋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하지요.”
그렇다면 보름 단위로 재파견 받으면 그만이다. 파견되는 제자의 클래스가 매번 랜덤하게 적용될 테지만 무엇인들 어떠랴? 경험치도, 아이템도 안 먹는 든든한 우군이 생기는 것을.
“1골드네.”
그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가 들렸다.
“예에∼?”
“험험. 우리도 공짜로 파견해 주고 싶네만 우리 쪽 손실이란 것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 1골드만 받지.”
……돈을 먹는구나. 에휴,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인심 후하게 쓴다 했지.
“……필요하면 말씀드리죠.”
일단은 퀘스트의 완료와 갈기털 오크, 홀락에게서 얻은 아이템을 정리하는 것이 더 급했으므로 그의 제안은 보류해 놓았다.
신전을 나와 벤에게로 가자 그 역시 베르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날 맞이했다.
이것들, 형제 아니야?
“흠, 그런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군. 그동안 인편을 이용하느라 지부의 예산을 상당히 써 버려서 보상이 좀 어렵겠어.”
이런 돈 귀신 같으니. 고작 20실버뿐인 보상을, 그마저도 후려치려고 하냐?
“괜찮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마력의 벨트였기에 울컥 치미는 분노를 참아 누르며 평판과 마력의 벨트를 손에 넣었다.
에휴, 이건 상인 길드인지 마법사 길드인지…….
“더러워서 안 받는다.”
그깟 20실버.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안 받고 만다. 이미 내 인벤토리에는 갈기털 오크들의 장비 다수와 홀락을 몇 번이고 뭉개 버리면서 얻은 마법 아이템들이 가득했으니까. 아깝긴 해도 목맬 금액은 아니다.
“어디 보자…….”

[홀락의 참나무 지팡이][매직]
홀락이 애용하던 지팡이. 약간의 마력이 깃들어 있으나 어째서인지 신성력이 침범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공격력 : 40∼50 내구력 : 180/180 마력 +10 정신력 +3

[때 묻은 마법사의 반팔 후드][매직]
꼬질꼬질한 반팔 후드. 냄새는 조금 나겠지만 후드를 뒤집어쓰면 얼굴을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신비주의를 원한다면 착용을 권장한다.
방어력 : 25 내구력 : 80/80 마력 +6 정신력 +4

[때 묻은 마법사의 반바지][매직]
때가 반질반질한 반바지. 마력이 깃들어 있지만 심한 냄새 때문에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방어력 : 18 내구력 : 80/80 마력 +5 정신력 +2

홀락이 마법 계열 몬스터이다 보니 떨어지는 아이템도 거의 마법사용이었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종류가 많지는 않은지 같은 것을 반복해서 떨어뜨릴 때가 많았지만 저 세 개만으로도 나에게는 아주 유용했기에 고이 접어 인벤토리 한쪽에 모셔 두었다.
아쉽지만 양 끝에 추를 받은 튼튼한 단봉과도 이젠 작별이군.
“후드라, 좋아.”
여성스런 외모 때문에 시비가 잦은 나로서는 후드의 출현이 그저 반가웠다. 냄새가 코를 찌르긴 했지만 여관에 들러 무려 10번이나 재차 세탁을 맡기자 깨끗하게 빨린 데다 정신력 상승이 1씩 추가되기까지 했다. 이 또한 더 월드의 숨은 묘미 중 하나지.
모두 네 벌이나 되는 때 묻은 마법사 세트를 확인 및 세탁하자 주머니가 다시 빈곤해졌지만 어차피 당분간 돈 쓸 데도 없었다. 금방 3서클에 오르리라 생각되긴 하지만, 마법사의 3서클에는 생각만큼 쓸 만한 스킬들이 많지 않아서 그리 많은 돈이 나가지 않을 거란 예상이다.
물론 3서클 마법은 개당 1골드라는 다소 재앙스러운 몸값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 다시 광렙을 시작해 보실까?”
티잉.
핑그르르.
그 말과 함께 하나 남은 1골드짜리 동전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8. 약탈자의 소굴(1)


띠리리리―
띠리리리―
딸칵.
―최종현, 너 지금 게임 안 하는 거 다 알아. 빨리 받앗!
벌떡.
밤새 사냥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갈 지경이었지만 미희의 목소리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으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받지 않았다간 언제 집으로 들이닥쳐서 날 고문할지도 몰라.
“그때만 생각하면……. 으으윽.”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옛 기억을 떠올려 버렸다.
“받았어. 받았다고.”
―누가 이렇게 시간 끌래? 너 일부러 안 받은 거지? 그렇지?
“끄응, 엄마처럼 잔소리는…….”
―뭐어?
가늘게 눈을 흘기는 미희의 모습이 수화기 너머로 보이는 듯했다. 이크!
“아니야.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보고 싶었다고.”
―음……. 정말이야?
“응, 정말이고말고.”
황급히 둘러댄 말에 미희가 조금 누그러지는 반응을 보이자 잽싸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난 오래 살고 싶다고.
“그런데 어쩐 일이야?”
―뭐? 난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해야 돼?
윽. 정말이지 여자의 변덕은 알 길이 없다.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 방학하고 요 얼마간 연락이 없었으니까설라무네…….”
―좀 바빴어.
“응, 그래.”
―…….
“…….”
―그게 다야?
“응? 뭐가?”
―대답이 그게 다냐고!
“아니, 그게 그러니까…….”
―흥! 됐어. 네가 그렇지 뭐.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혼자 화내고. 뭐가 뭔지 알기나 해야 대꾸를 하든 반성을 하든 할 텐데 미희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고 토라져 버렸다.
으, 정신없어.
“아! 알았다.”
―뭘?
“너…… 그날이지?”
―너 죽을래!
이크! 이게 아닌가? 미희는 소리를 꽥 지르며 노발대발했다. 쳇, 그날 맞구먼 뭐.
―씩씩. 어쨌든 너, 오늘도 더 월드 할 거지?
“응. 당연히!”
―언제 할 건데?
“깼으니까…… 지금 바로?”
―뭐? 지금 일어났는데 씻지도 않고 밥도 안 먹고 게임부터 하겠다고? 너 죽을래? 나 지금 간다?
“아, 아니. 물론 씻고 밥도 먹고 준비운동까지 한 다음에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미희의 협박에 나도 모르게 손까지 휘저으며 도리질 쳤다. 윽. 이 정도면 거의 조건반사 수준이야. 그래도 이렇게 챙겨 주는 건 미희밖에 없군. 우리 집은 부모님이 워낙 방목형이라……. 쩝!
―좋아. 그럼 지금이 11시니까 12시 반까지 정신 차리고 칼라일 중앙 분수로 와.
“뭐? 칼라일?”
―알았지? 그럼 끊는다. 아, 그 전에 접속하면 죽어. 안 나와도 죽는다? 그럼 이따 봐.
딸칵.
“여보세요? 미희야? 야!”
뚜― 뚜―
뒤늦게 소리쳐 봤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뭐지? 미희도 다시 더 월드를 하는 건가? 예전에 더 월드를 한다기에 몇 번 도와준 적은 있지만 레벨은 별로 높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익스퍼트도 되지 못했던가?
“끄응. 어쨌든 죽기 싫으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12시 반이랬나? 그동안 뭘 해야 하려나…….”
미희의 불호령에 차마 더 월드는 접속하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컴퓨터 전원을 켰다.
아무래도 홈페이지에 등록된 친구 설정 기능으로 내 위치를 파악한 것 같은데 그 전에 접속했다간 대번에 들통 나겠지. 쩝.

먹다 남은 국에 반찬 몇 가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희 덕에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보고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샤워도 하면서 근육의 피로를 풀었다.
“아아, 개운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간단하게 방 정리를 하고 나자 이제 좀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윽. 내가 이렇게나 폐인 생활을 했나?
“접속.”
마지막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냥터와 퀘스트에 관한 정보를 더 얻고 접속용 고글을 쓰자 시간이 딱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