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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17화)
8. 약탈자의 소굴(2)
[검과 마법의 또 다른 세계. 그곳에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레스.”
[확인되었습니다. 그대의 진리의 길에 마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캐릭터와의 하이파이브까지 순식간에 해치우자 마지막으로 접속을 끊었던 방어구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꽤나 격한 전투를 치른 탓에 방어구 수리를 하고 로그아웃을 했었지, 참.
“리타는 가 버린 건가?”
로그아웃한 동안 나머지 파견 기간이 다 되었는지 함께하던 견습 프리스트가 사라져 있었다. 게임 시간은 현실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니까.
잘된 건가? 근접 전투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녀석의 보조를 받고 내가 전사처럼 뛰어다녔으니. 끄응.
“아차, 늦겠다.”
이런저런 점검도 잠시. 일의 우선순위를 깨닫고 중앙 분수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헥헥, 늦으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후욱, 후욱, 에고고. 죽겠다. 에…… 미희?”
약속 장소엔 1분 남기고 세이프. 가슴을 쓸어내리고 둘러보자 토들러 나이트쯤 되어 보이는 여성 유저 한 명이 분수대 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저게 맞겠지?
“아, 왔구나.”
생긋.
“헉! 언데드다!”
“뭐? 죽을래?”
미희가 돌아서는 순간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뭐, 뭐지? 분명 목소리는 맞는데……?”
목소리는 미희가 분명한데 몰골은 언데드라 해도 믿을 만큼 처참했다. 버서커마냥 빨간 눈에 리치보다 퀭한 눈두덩이와 다크서클. 이건 나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못하진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혹시 히든 클래스로 리치나 뱀파이어가 된 건…….”
딱!
“죽는다? 그리고 여기선 레이첼이라고.”
결국 실없는 소리를 하다가 한 대 맞고 말았다.
“끄응, 그런데 너 얼굴이…….”
원래 예쁜 편이어서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툭 건드리면 픽 하고 쓰러질 것만 같은 몰골이었다. 걱정도 됐고 미희가 이 정도로 게임 폐인은 아니었기에 조심스레 묻자, 창피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말했잖아. 바빴다고.”
“그거야 그랬지만……. 쩝.”
정말 게임하느라 이렇게 된 거란 말이야? 헐! 공부 때문이라면 믿어 주겠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고…….”
미희, 아니 레이첼은 홀로 중얼거리더니 곧 기운을 되찾았다. 회복이 빠른 녀석.
“에헴! 이래 봬도 내 레벨이 37이야. 더 월드 전체로 따져도 상위권에 들걸.”
오호, 37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진 선두권이 겨우 40 초반 대의 레벨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야 조금 특별한 경우라 진작 50을 넘기고 견습 마법사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아, 이어 실시한 승급 심사에서도 당연히 S랭크를 받았다.
“넌…… 몇이야?”
57……이라고 솔직히 말하려다가 왠지 레이첼의 기를 죽이기 싫어서 약간 낮추었다.
“나도 비슷해. 41.”
2서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40 이상으로 살짝 올려놓고 반응을 살폈다.
잠시 표정이 굳는가 싶더니 이내 안도하는 레이첼.
역시 낮춰 말하길 잘한 건가?
“뭐, 나야 예전에도 랭킹 200위 안에는 들었으니까. 너도 대단한데?”
“나도 익스퍼트급까지는 갔다, 뭐. 휴우! 역시 매드 메이지는 다른 건가? 나도 정말 열심히 했는데…….”
삐질.
넌 왜 그렇게 레벨이 높냐고,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높으랬냐고 평소처럼 버럭 소리라도 지르면 편할 텐데, 레이첼이 침울해 하는 모습을 보자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끄응. 차라리 사냥을 하는 게 쉽겠군.
“뭐, 괜찮아. 아직은 얼마 차이 안 나니까. 41이면 2서클도 익혔을 테니 데리고 다니면서 잔뜩 부려 먹지, 뭐.”
“그래……. 에잉? 뭐라고?”
금세 기운을 차리는 레이첼을 보니 뭔가 당한 기분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헤헤, 도망가면 죽는다?”
“컥.”
말려들었다. 끄응, 전부 연기였던 건가?
“휴, 알았어. 알았다고. 직업은? 무슨 클래스인지 알아야 사냥터를 고르든 하지.”
“전하고 똑같아. 소드 임팩터.”
“오호? 그렇다면 당연히 스피드 타입일 테고. 할 만하겠는데?”
소드 임팩터. 과거 마왕전쟁 때의 영웅인 바움 왕국의 왕자와 공주가 가졌던 직업으로 널리 알려진 이 클래스는 순수한 검술과 오러의 힘을 숭배하는 일반 기사 클래스와 달리 검술과 육체적 능력의 취약함을 마나를 가미한 기술들로 커버하는 꽤나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찾기 어려운 히든 클래스도 아니었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고려해 파워 타입과 스피드 타입의 기술로 나뉘어져 있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더구나 마나양만 충분하다면 초반부터 매우 강력한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어 빠른 성장이 가능하기도 했다.
아무리 내가 무빙 캐스팅이 가능하다고 해도 파워 타입의 전투 직종이라면 2인 파티가 무척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로군.
이제 힐러만 있으면 딱이겠는데?
“좋아. 그럼 능력치 분배는?”
“잠깐만. 공유해 줄게.”
[레이첼]
레벨 38 직업 : 토들러 소드 임팩터
칭호 : 없음 학파 : 아델식 환영검
힘 : 62
민첩성 : 80
체력 : 58
마력 : 40
정신력 : 25
행운 : 5
보너스 포인트 : 0
“어차피 한 방을 중시하는 파워 타입이 아니니까 마나양은 일단 최소한으로 했어. 스킬을 쓰면 사냥 시간이야 단축되겠지만 거기에 너무 의지하면 마나 없이는 사냥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어때?”
이 방면엔 내가 더 전문가라서일까, 레이첼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좋아. 아주 좋아. 네가 말한 것처럼 초반부터 무작정 마나양만 늘여서 스킬 난사해 대다 보면 컨트롤도 늘지 않을뿐더러 마나 타임(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시간. 일명 마나탐.)이 길어져서 오히려 실제 레벨 업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거든. 거기다 일반 전투에서도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할 때나 갑작스런 리젠 때는 파티 플레이가 아닌 이상 꼼짝없이 목을 내놓아야 할걸. 요즘처럼 제대로 된 파티 구하기 어려운 때에 그것만큼 최악도 없지. 새로 만난 파티가 조금이라도 실력이 떨어지면 바로 1레벨 다운일 테니.”
“다행이다.”
제법 길다면 긴 나의 설명에 비로소 레이첼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사냥 준비는 다 마친 거지? 그럼 어디 보자…….”
저번에 사냥하고 남은 포션도 몇 개 있었고 잠시 신전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맵을 살폈다. 익스퍼트까지는 갔다고 하니 40 초반대의 사냥터가 좋겠지? 썩은 땅으로 할까? 아냐, 거긴 너무 질렸어. 그렇다면…….
“저기…….”
“응?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일행이 한 명 있는데…… 같이 가도 괜찮을까?”
“일행?”
“응. 그동안 쭉 파티 해 온 분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아서…….”
미간 사이에 잠깐 생겼다 사라진 주름을 본 건지 레이첼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사실 지금 내가 40레벨 초반대의 몬스터를 잡아도 들어오는 경험치는 별로 티도 안 날 정도이다. 거기서 둘로 쪼개지나 셋으로 쪼개지나 큰 차이는 없지만, 그렇게 되면 얼른 레이첼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 주고 마그리드로 튀려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이거 참…….
“레벨하고 클래스는?”
“레벨은 37. 클래스는 기사……쯤일까?”
37이면 다행히 나와 딱 20레벨 차이였다. 즉, 경험치 균등 파티를 맺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는 이야기. 자칫했으면 레벨을 속인 게 들통 날 뻔했다.
그런데…….
“기사면 기사지 기사쯤은 또 뭐야?”
“그게, 기사는 기사인데 조금 특이하다고 할까?”
어떤 사람인지 레이첼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뭐, 만나 보면 알겠지.”
어차피 만나 보면 알게 될 것 이러쿵저러쿵 말로만 떠들어 대는 건 내 성격에 안 맞았다.
나의 허락을 얻고 레이첼이 메시지를 날리자, 10분쯤 뒤에 식량을 구입하러 갔다던 그가 나타났다.
흠, 그냥 보기엔 평범한 기사인데?
“혹시…… 숨겨 둔 애인?”
퍽.
레이첼보다 약간 나이는 많아 보였지만 꽤 준수한 용모의 그를 본 내 소감에 레이첼은 주먹으로 답했다.
“까불래?”
콜록콜록.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지 왜 꼭 주먹질이야?
남들 앞에선 그렇게 조신한 척하는 애가. 쩝.
“이쪽은 브라이트 오빠. 브라이트 오빠, 얘가 그 아레스예요.”
“오, 이분이 그 유명한? 정말 예…… 큼큼, 잘생기셨네요. 반갑습니다.”
“예에. 반갑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기에 악수는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흥. 그래도 약간은 분별이 있는 놈이군. 끝까지 말했으면 뒤통수에 파이어 볼을 한 방 꽂아 주려고 했더니.
“일단 가면서 얘기하죠.”
어차피 사냥터로 가려면 마을을 나서야 했고 가는 길에 신전에도 들러야 했기에 일단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아직도 1골드면 꽤 큰돈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제 실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힐러도 없이 기사 둘을 서포트 하자면 위험 부담이 많이 따르니까.
“음, 40대 초반의 사냥터지만 이 정도 파티면 썩은 땅이 적당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비록 무빙 캐스팅 덕분이긴 했지만 썩은 땅이라면 40레벨도 되기 전에 이아손을 달고 나 혼자서도 쓸었던 곳이다. 그러니 저 둘의 컨트롤이 극악하지만 않다면 안정적이고 빠른 레벨 업이 가능할 터였다. 비록 지겹고 돈 안 되는 사냥터이긴 하지만.
“하……하……. 그게 좀…….”
그때 레이첼과 브라이트라는 사내가 동시에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혔다.
“무슨 문제라도?”
“사실 말이야, 우리가 계속 언데드만 상대하면서 레벨 업을 했거든. 그래서 이제는 좀…….”
‘지겨워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레이첼의 말 속에 숨은 뜻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피니 둘의 장비가 어떻게 이 정도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악한 것이다. 언데드만 잡았으니 좋은 장비를 얻지도, 장비를 마련할 만한 돈도 구하지 못한 거겠지.
이거 이거, 레벨은 어떻게 올린 건지 신기할 지경이군.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확실히 지금 상태로는 썩은 땅도 무리겠군.”
그 말에 둘의 고개가 다시 푹 숙여졌다.
“어디 보자. 팔지 않은 장비가 몇 개쯤 있던 것 같은데……? 아, 있다.”
[썩은니 오크 정찰병의 레더 아머]
썩은니 오크 정찰병들이 입는 레더 아머.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간편하게 만들어졌지만 꽤 질기다.
방어력 : 45 내구력 : 180/180
제한 : 30레벨 이상
[썩은니 오크족 시미터]
썩은니 오크 전사가 애용하는 시미터. 오크 특유의 강한 힘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공격력 : 40-45 내구력 : 250/250
제한 : 35레벨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