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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19화)
8. 약탈자의 소굴(4)


“목검 따위에, 그것도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귀혼 강림의 술!”
빡!
“귀혼 강림의 술!”
빠악!
“귀혼 강림의…….”
그다음부터는 간단했다. 인공지능이 낮은 주술사는 오크 약탈자들이 쓰러지는 족족 다시 일으켜 세웠고 브라이트와 레이첼은 느긋하게 그들을 다시 눕혔다. 아니, 사실상 브라이트 혼자서 그들을 다 쓰러뜨렸다.
“취에엑!”
마침내 마나를 모두 소진했는지 주술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휘리릭.
서걱.
마나가 없으면 전투력이 바닥을 기는 주술사였기에 레이첼이 장난하듯 목숨을 거두어 가자 브라이트가 웃으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하. 어떻습니까?”
“으음, 어떻게 된 거죠?”
브라이트의 목검이 코앞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여전히 감을 잡기 어려웠다.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로 만든 목검입니다.”
“아?”
“초반에 돈을 벌기 위해 ‘땔감 구하기’란 반복 퀘스트를 수행하던 도중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를 발견하고 제련했지요.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에 제마의 힘이 들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셨지요?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주술사가 오크 약탈자의 몸에 귀신을 집어넣어 되살린다라는 설정과 맞아떨어진 모양이군요.”
벼락 맞은 나무에 귀신을 물리치는 신성한 힘이 깃든다는 얘기는 나도 들어 본 적 있었다. 그중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를 최고로 치고 그다음이 대추나무라는 것도.
그런 것까지 적용시킨 건가, 이 게임은?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알면 알수록 오묘하다.
“크하하! 재미있군요. 벼락 맞은 나무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해내시다니. 브라이트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아니, 뭐…….”
사실 지금까지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나는 순수하게 그의 발상에 호감이 갔다.
현실의 무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 목검으로 언데드와 영혼 계열 몬스터를 때려잡는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진심을 담아 칭찬하자 브라이트도 쑥스러워졌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퇴마사로 전직하실 생각입니까?”
“퇴마사라고요? 그런 직업도 있습니까?”
내가 퇴마사란 클래스에 대해 언급하자 브라이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관심을 보였다. 퇴마사. 벼락 맞은 나무로 만든 목검을 쓴다는 얘기는 못 들었지만 그 직업에 대한 정보라면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타노트 마을에서 전직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기에 영력을 불어넣어 언데드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더군요. 상대적으로 일반 몬스터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부적 등을 이용한 주술도 사용할 수 있다더군요. 히든 클래스죠.”
히든 클래스라면 이미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조건만 맞으면 전직이 가능한 게 보통이었으므로 브라이트도 큰 흥미를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보조 주문 쪽이 약해지는 대신 공격 면을 강화한 멸마사라는 것도 있다는 것 같지, 아마?
“놀라운 정보로군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자, 그럼 반대편으로 넘어가 볼까요? 이 녀석들이 띄엄띄엄 리젠 되기 전에.”
위험 부담은 조금 있을지라도 한꺼번에 잡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에 우리는 서둘러 반대편 약탈자 무리를 향해 움직였다.
“어때, 경험치는 쓸 만해?”
“응. 이런 식이면 금방 레벨 업 하겠는데? 되살아난 놈들에게선 아이템이 안 떨어지지만 처음 죽으면서 떨어트린 것도 언데드를 잡는 것에 비하면 몇 배는 더 돈이 되고.”
“좋아, 그러면 또 한바탕해 보실까? 파이어 볼!”
화르륵.
콰앙!
또다시 오크 약탈자들의 비극이 시작됐다.



9. 마나 포스 컨트롤(1)


약탈자의 소굴에 진을 친지도 벌써 보름.
어느덧 레이첼과 브라이트의 레벨은 각각 48, 47이 되었고 나도 2레벨이 올라 59가 되었다.
아무리 빠르고 쉬운 사냥이 가능하다고 해도 오크 약탈자뿐이었다면 턱도 없었을 테지만 오크 주술사의 레벨이 생각보다 높은 47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이제 오크 약탈자 따위는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에 기회를 보아 가며 애꾸눈 잭의 호위병인 ‘오크 학살자’를 한두 마리씩 유인하여 잡기도 했다.
“이제 한 번쯤 잭에게 도전해 봐도 좋지 않을까? 호위병인 오크 학살자도 이제 잡을 만하잖아?”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오크 약탈자들을 도륙하며 레이첼이 건의했다.
생각보다 주술사와 약탈자의 리젠 시간이 매우 빨라서 아직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이젠 한두 마리 잡는 것 가지고는 경험치가 오른 티도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화끈하게 한탕하고 사냥터를 바꾸는 게 좋을지 몰랐다.
“이시아의 사용 시간도 다 되어 가긴 하는군.”
가디언 창을 불러 보니 이시아의 사용 시간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도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애꾸눈 잭의 레벨은 63. 거기다 네임드이다. 내가 전력을 다한다면 어찌어찌 해볼 만도 하겠지만 보통의 마법사처럼 행동하는 지금으로썬 승산이 희박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만큼 부하들에 비해 잭의 실력이 월등한 것이다.
“역시 안 되겠어.”
네임드의 위력은 아미르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물론 과거에는 온갖 던전을 초토화시키면서 다 기억도 못할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를 쓰러뜨렸던 나지만 그때는 마도사급의 능력을 지녔을 때고, 지금은 그때에 비해 능력이라 부르기도 창피한 수준이었기에 정공법으론 네임드는커녕 일반 보스 몬스터도 잡기 버거울 터였다.
“응? 저건 뭐하는 거지?”
잠시 딴 생각에 잠긴 사이 주술사가 처음 보는 주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헉! 저건?”
“소환의 비술!”
하는 짓이 신기해서 그냥 바라보고 있을 때 브라이트가 뭔가 아는 것이 있는 듯 파랗게 질려 소리쳤다.
“소환의…… 비술?”
“막아야 돼!”
쐐애액―
푸욱!
황급히 내던진 브라이트의 검에 주술사의 심장이 꿰뚫렸지만 주문은 이미 발현된 뒤였다.
“젠장, 옵니다!”
무엇이 온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브라이트는 주술사의 심장에 박힌 검을 빼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분의 무기를 꺼내 들며 전투 준비를 했다.
“크아아앙!”

[배틀 샤우트에 노출되셨습니다. 위축됨을 느낍니다. 모든 능력치가 3만큼 감소합니다.]

“애꾸눈 잭?”
“제, 제길.”
레벨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나에게는 별 영향이 없었지만 레이첼과 브라이트는 일시적인 경직 효과까지 일어난 것 같았다.
젠장, 어쩔 수 없군.
“라이트닝 볼트!”
치지직.
“후압!”
파직.
“아닛?”
방어 후의 경직 효과를 노리던 내 기대와 달리 잭은 들고 있던 쌍검 중 하나를 던져 브라이트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전격까지 추가해서.
“크아아악!”
“빌어먹을.”
몬스터의 인공지능이 좋아졌다더니 이 정도였나? 젠장!
“파이어 볼!”
푸욱!
휘익―
“미친!”
콰앙!
재차 파이어 볼을 날려 보았지만 잭이란 놈은 더욱 대단한 짓을 해 버렸다.
대쉬를 이용해 브라이트에게 달려들더니 복부에 꽂힌 검을 잡아 휘두르면서 브라이트의 몸을 방패 삼은 것이다.
철퍼덕.
“레서 힐! 레서 힐!”
널브러진 브라이트에게 이시아가 회복 주문을 쏟아부었지만 이미 그의 체력은 바닥을 친 상태였다.
“크흐흐흐. 모두 죽여 주마.”
“흥. 한쪽 눈깔로 날 찾을 수나 있겠냐?”
여유를 부리는 잭을 도발하며 나도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꿈틀.
“명을 재촉하는구나!”
파밧.
“아쿠아 애로우!”
파앙!
“흐흐, 누가 맞아 줄 것 같으냐!”
캐스팅이 아무리 빨라도, 위력이 아무리 좋아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빌어먹게도 애꾸눈 잭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속도 중심형 몬스터였다.
“레이첼, 도망쳐! 여긴 내가 맡는다!”
이시아의 웨이크 업 주문에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레이첼을 향해 소리치며 곧장 잭에게 마주쳐 갔다.
“클클클, 네 걱정부터 해라.”
부아앙!
“어디 이것도 피해 봐라! 파이어 볼!”
콰앙!
잭의 몸이 근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그대로 그와 나 사이에 파이어 볼을 생성시켰다.
데굴데굴.
“쿨럭, 이시아!”
“레서 힐! 레서 힐! 레서 힐!”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의 폭발이었기에 나 역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지만 재빨리 이시아의 회복 주문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덤벼들었다.
“파이어 볼!”
콰앙!
“윽. 파이어 볼!”
콰아앙!
“이놈! 같이 죽을 셈이냐!”
“웃기지 마. 죽는 건 네놈 혼자다! 파이어 볼!”
콰광!
아무리 회복 주문이 뒤를 받쳐 준다고 해도 전사 계열인 녀석과 같은 데미지를 받으면 내가 먼저 위험해질 게 뻔했지만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매직 레지스트! 마법적인 타격이라면 같은 공격에 휘말려도 마법사인 내가 녀석과 같은 데미지를 입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최악의 경우 레이첼이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크으윽. 계속 당해 줄 것 같으냐!”
타닷.
아예 나와의 접근을 포기했는지 녀석은 백스텝을 이용해 빠르게 물러섰다.
“후욱, 후욱. 네놈이 믿는 구석이 저년이렷다? 차핫!”
그러고는 빠르게 이시아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안 돼!”
그에 반응해 나 역시도 빠르게 캐스팅하며 놈의 뒤를 쫓았다.
“흐흐, 걸렸다!”
그때 갑자기 이시아를 베어 가던 잭의 몸이 뒤집히며 독사 같은 찌르기가 펼쳐졌다.
훗. 이럴 줄 알았지. 살을 주고 뼈를 친다!
“파이어 애로우!”
검을 향해 어깨를 내밀며 놈의 심장을 향해 지팡이 끝을 뻗었다.
푸욱.
“……!”
그러나 잭의 찌르기가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다.
“쳇!”
관통당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표가 빗나갔음을 확인한 잭은 빠르게 검을 떨치며 이시아를 마저 베고 자리를 벗어났다.
“어째서, 어째서 도망가지 않은 거야? 레이첼!”
“으으……. 시끄러워.”
레이첼은 잠시 이마를 찡그리더니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헤, 우린 이제 동료잖아? 겨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는데…… 내가 혼자 도망칠 것 같아?”
털썩.
“바보야, 이건 게임이라고…….”
“크크크, 이제 네 뒤를 봐줄 동료 따윈 없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나를 비웃으며 잭이란 놈이 다가와 천천히 검을 내리칠 준비를 했다.
“네놈이, 네놈 따위가…….”
“죽어라!”
“……감히!”
콰과과광!
“커헉!”
그러곤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