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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21화)
10. 상인 쥬안(2)


“얼씨구?”
레이첼이 밀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여유 있게 관전하던 중 퀘스트 창에서 퀘스트가 일부 수행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설마…… 라이라!”
띠리띠―

[삐쩍 마른 산적]
HP : 103 MP : 50
[포만감]상태. 전체 능력치 +5
상태 이상 [과식] 상태. 민첩성 -3

“이게 무슨…….”
“얏! 더블 소드.”
그때 레이첼의 검이 전보다 더욱 큰 변화를 보이며 산적의 목을 갈랐다. 그리고 완료에 한 걸음 더 다가간 퀘스트.
그럼 여기가 라임산이 맞단 말이야?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킁킁. 난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아직까지 퀘스트 창을 확인하지 못한 레이첼은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끄응, 설명이 필요하겠군.
“헤…… 그러니까 결국은 저놈들을 잡으면 된다는 거지?”
“뭐, 그런 셈이지.”
“그럼 됐네, 뭐.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지만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던데? 떨어트리는 장비는 몰라도 경험치는 같이 상승한 것 같은데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
“잘된…… 건가?”
상승한 능력치에 비해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 경험치였지만 레이첼이 괜찮다니 일단은 문제될 것 없어 보였다. 조금만 조심한다면 위험한 일도 별로 없을 테고.
“그래. 일단은.”
그렇게 정리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파이어 볼, 보로볼, 볼, 볼!”
“일루전 스텝, 더블 소드!”
콰과광!
스르륵.
샤락!
아끼지 않고 마법을 난사한 덕에, 그리고 업그레이드 된 산적들의 패턴에 익숙해진 덕에 이제는 동시에 다섯이나 되는 산적 무리도 너끈히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퀘스트 완료 수치인 30명은 진작 넘긴 상태였다.
부우― 부우―
“젠장, 또냐?”
레이첼의 실력 향상을 위해 잠시 틈을 내준 사이 살아남은 한 녀석이 뿔피리를 불어 동료들을 불렀다.
쿵쾅쿵쾅!
요란뻑적지근한 소리와 함께 비탈을 뛰어내려오는 산적 무리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그들을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파이어 스트라이크.”
슈아아앙―
쿠과과과광!
“크악!”
“오우, 스트라이크∼!”
대량의 마나가 빠져나가며 커다란 공백감이 느껴졌지만 열을 지어 달려오던 녀석들이 일시에 전투 불능에 빠졌기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뿌아아앙∼!
그때 코끼리 울음소리 같은 커다란 호각 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뭐야, 설마 또?”
설마하니 두 번이나 연속해서 동료를 부를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서둘러 마나 포션을 들이키며 적습에 대비했다. 물론 빌어먹게도 폐활량 좋은 산적 놈의 대갈통을 부숴 버린 다음이었다.
“자, 이번엔 몇 놈이 올 테냐?”
구조 신호를 듣지 못한 건지 멀리 있어 시간이 걸리는 건지, 소리가 퍼진 뒤에도 한참이나 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나의 감은 뭔가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조심해!”
부아앙!
“칫, 백스텝!”
촤라락.
묵직함이 느껴지는 산적의 기습을 물러서 피해 냈지만 뱀의 혓바닥처럼 낭창거리며 파고든 장창의 일격에 레이첼은 옆구리를 내주고 말았다.
“꺄악!”
“떨어져! 더블 라이트닝 애로우.”
타닷.
레이첼과의 간격을 생각해 폭발형의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고 견제의 의미로 두 발의 라이트닝 애로우를 쏘아 내자 방향을 바꿔 이번엔 나를 향해 놈들이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아쿠아 스파이크!”
감히 이 몸을 얕보고 덤벼들어?
주인을 문 개를 대하듯 차가워진 얼굴로 3서클의 아쿠아 스파이크를 쏘아 내자 성난 물줄기들이 원추형으로 회전하며 짓쳐 들어갔다. 눈에 불이 번쩍이긴 했어도 순간적으로 놈들이 지금까지의 녀석들과는 다르단 것을 알아챈 것이다.
“크, 크아아악!”
비교적 파괴력이 약하다는 수계 마법이지만 워낙 근거리였기에 맨 앞에 있던 놈의 옆구리가 그대로 찢겨 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아쿠아 스파이크의 파괴력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재빨리 동료를 방패 삼았음에도 뒤따라오던 창을 든 녀석 역시 온몸이 난자당한 채 쓰러진 것이다.
“후욱, 후욱.”
녀석의 숨통을 마저 끊어 놓고 싶었지만 마나 포션을 마시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증원으로 온 것은 녀석들 둘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레이첼, 라딘, 모두 모여!”
추가로 나타난 산적들과 대치하며 레이첼의 상처를 봐주던 몽크 라딘에게 소리친 뒤 그들에게로 몸을 날렸다.
“실드!”
그러곤 재빨리 4서클의 방어 주문을 펼쳤다.
지이잉.
티잉. 팅.
곧이어 무자비한 산적들의 무기들이 쏟아졌지만 굳건한 마법의 벽은 우리를 향한 산적들의 공격을 모두 무위로 돌렸다.
“……미안.”
“일단 회복부터 해.”
어느새 주위를 둘러싼 산적들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레이첼의 상처부터 살피고 천천히 적들을 둘러보았다.
“많이도 불러왔군.”
산적의 숫자는 모두 열둘. 그중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이미 전투 불능에 빠졌으니 우릴 포위한 숫자는 모두 열이었다. 그중에 조금 전 상대한 녀석들과 같이 특수한 녀석이 둘이었고 나머지 여덟은 지금까지와 같은 평범하게 업그레이드 된(?) 놈들이었다.
“곤란하군. 곤란해.”
정말 곤란한 것은 놈들의 숫자가 아니었다. 이마에 떡하니 ‘보스’라고 써 붙여 놓은 듯한 산적 두목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들의 뒤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보호막이 사라지면 저 마법사 놈부터 족쳐라. 감히 사천왕 중 둘을 저 꼴로 만들어 놓다니. 설령 네가 대마법사라 해도 오늘 여기서 살아 나가진 못하리라. 빠득!”
두목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쓰러진 두 녀석 중 살아남은 하나가 온몸에 약초와 붕대를 휘감고 회복 중이었다.
쳇, 구조받은 건가.
“레이첼, 라딘, 내가 신호하면 있는 힘껏 점프해.”
“뭐?”
“이 아레스 님이 저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내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둘이 마지못해 끄덕였다.
“칫, 확실히 한계이긴 하군.”
츠츠츠즛.
레벨에 맞지 않은 무리한 마법 운용 탓에 5분은 지속되어야 할 실드가 3분 남짓 만에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저벅.
그걸 알기라도 한 듯 한 발 다가오는 산적들. 그때 실드가 힘을 잃고 해제되었다.
“지금!”
“파워 스텝!”
실드가 해제됨과 동시에 산적 두목은 기사 4단계 스킬인 파워 스텝을 발동시키며 달려들었다.
맙소사, 그럼 100레벨이 넘는단 말이야?
“쇼크 웨이브!”
쿠구궁!
출렁∼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 모든 마나를 담은 지팡이가 바닥을 찍었다.
큰 진동과 함께 파도처럼 출렁이는 땅거죽.
갑작스런 진동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산적들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튀어!”
“퀵 무브, 퀵 무브, 퀵 무브!”
어느 정도 충격이 가라앉은 땅에 내려선 둘은 금세 내 의도를 알아채고 산적이 가장 적은 방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큭, 쫓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견제용 마법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무리한 마나 운용으로 마지막 한 줌까지 끌어 쓴 탓에 쫓고 쫓기는 지루한 추격전이 한동안 계속됐다.
“에고고고, 오랜만에 몸을 썼더니 삭신이 쑤시는군.”
일정한 영역이란 게 있는 건지 다행히도 10분여를 내달리자 산적들은 추적을 포기했다. 그 덕분에 불행히도 우리는 길을 잃었지만.
“끄응,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니 지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군.”
현실적 요소가 반영된 탓에 지도에 내 위치가 직접 표시되지는 않았다. 물론 게임사에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 자신의 위치까지 표시되도록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길을 찾아가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지라 신청하지 않은 상태였다.
“포션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 돌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퀘스트도 진작 완료했겠다, 인벤토리를 정리하던 레이첼이 물어 왔다.
음, 확실히 퀘스트 완료 수치보다 배는 더 잡았지만…….
“이대로는 뭔가 억울한 걸. 조금 더 돌아다녀 보자. 그래도 근처에 작은 마을이 몇 개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재정비할 수 있을 거야.”
어차피 포션을 사용하는 것은 조금 전처럼 산적들이 증원군을 부를 때뿐이었고 그마저도 연속된 전투로 내 마나가 부족할 때에 한 했으므로 몽크인 라딘이 역소환될 때까진 여유가 있었다. 슬슬 한계에 달하는 인벤토리도 마을만 발견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테고. 어쩌면 회복 아이템도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쉿, 들어 봐.”
그때 뭔가를 발견한 레이첼이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매직 애로우!”
“강격.”
“방패치기.”
“뀌익∼!”
귀를 기울이자 익숙한 몇몇의 스킬 명과 함께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유저인가?”
“가 보자.”
라임산의 평균 레벨과 들리는 스킬들이 모두 1단계인 것을 감안할 때 유저로 보기 어려운 감이 있었지만 일단은 달려가 보았다.
“어럽쇼?”
도착한 곳에는 피 흘리며 뻗어 있는 어린 멧돼지와 레벨에 비해 꽤 괜찮은 장비들로 무장한 파티가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들은 아무리 뜯어봐도 NPC라는 것이었다. 죽은 멧돼지의 시체가 회색으로 변하지도 않았고 떨어진 아이템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냐!”
“매직 애로우!”
적의를 드러낸 것도 아니건만 이들은 우리를 경계하면서 선공을 취했다.
이런 이런, 곤란한 녀석들이군.
“실드!”
토옹.
가냘픈 매직 애로우가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아스라이 사라졌다.
“저, 저건 4서클의 마법?”
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단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한 번 실드를 발동시키자 토들러 메이지인 듯한 자를 필두로 경악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꽤나 리액션이 강한 녀석들이군.
“혹시 산적이십니까?”
“무슨 헛소리냐! 어디 그따위 놈들과……!”
산적이냐는 물음에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NPC들. 그 반응이 도리어 달가웠다.
“그렇다면 적이 아니군요. 저희는 산적 소탕 의뢰를 받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와 함께 아이템화 된 의뢰서를 꺼내 펼치자 그들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러고는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어이쿠, 그러셨군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이 근처 작은 약초꾼 마을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을?”
그 대답에 레이첼이 그들만큼이나 반색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