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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1. 새로운 이름(3)
그에 비해 백작의 평민 부인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중에서 브란트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형님도 있었다.
“헥크만이 올해 31살이고 레너드가 너와 동갑이겠구나. 루크는 너보다 한 살 어리고.”
크라이머 백작은 평민 출신 3명의 아들을 불러 브란트에게 직접 소개시켰다.
“반갑다.”
헥크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브란트는 머리를 숙이며 그 손을 잡았다.
“이야, 동갑인 형제가 생겼군. 반가워.”
레너드가 알아서 헥크만 다음으로 브란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브란트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레너드와 악수를 나누었다.
루크는 헥크만과 레너드와 달리 다소 도전적인 눈빛으로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브란트는 그런 루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루크는 잠시 브란트의 손을 쳐다보다가 크라이머 백작의 눈치를 보고 별수 없이 브란트의 손을 잡았다.
“반갑소. 기사라니 훈련할 때 봅시다.”
브란트는 왜 크라이머 백작이 평민 출신 3명의 아들을 브란트에게 소개시켰는지 곧 크라이머 백작의 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헥크만은 질풍 기사단의 1조장을 맡고 있고 레너드는 2조장, 루크는 3조장을 맡고 있단다. 브란트, 너도 기사니 정식으로 질풍 기사단의 기사가 된다면 당연히 이들을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흥, 지방의 기사 따위가 질풍 기사단의 기사가 될 리 없잖아.”
“모르지. 30살이나 나이를 먹었으니 그냥 예우 차원에서 통과시켜 줄지 말이야.”
오른쪽에 있던 귀족 출신 백작 자제들이 빈둥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크라이머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선언했다.
“질풍 기사단의 기사가 되는데 그 누구도 예외나 예우 따윈 없다. 실력이 되지 않는 자는 죽어도 질풍 기사단의 기사가 될 수 없다.”
크라이머 백작의 말에 평민 출신 3명의 질풍 기사단 기사 조장들은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고, 나머지 아들들 역시 안됐다는 시선으로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질풍 기사단의 4조장을 뽑겠다.”
크라이머 백작의 돌발 발언에 헥크만, 레너드, 루크를 제외한 크라이머 백작의 모든 아들들이 일제히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유일하게 홀 안에서 브란트와 로베르토만이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때 크라이머 백작이 계속 말했다.
“질풍 기사단의 기사라면 누구나 기사 조장이 될 수 있다. 제대로 실력을 갖춘 자라면 말이다.”
크라이머 백작은 잠시 자신의 아들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어 갔다.
“모두들 분발해 주길 바란다. 너희들 중 한 명이 반드시 질풍 기사단의 4조장이 되길 기원하마. 자, 그럼 오늘 가족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겠다.”
크라이머 백작이 퇴장하자 그 뒤를 이어 가족들이 홀 밖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방의 작은 영지 영주들과 달리 휘하에 두고 있는 기사가 많은 귀족가에서는 기사 단장 밑으로 기사 조장들을 두었다.
보통 기사 조장 밑에 20명의 기사를 두었다. 그런 기사 조장이 3명이란 것은 현재 질풍 기사단의 정규 기사의 수가 60명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새로 한 조를 늘린다는 것은 20명의 기사가 늘었다는 것을 뜻했다.
브란트가 아는 질풍 기사단의 기사는 소드마나로 검에 오러를 맺게 만들 수 있는 소드 익스퍼트급의 기사였다.
그렇다면 크라이머 백작가에서 새로 소드 익스퍼트급의 기사 20명을 양성해 냈다는 말이다.
제국에는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를 한 명도 채 거느리고 있지 못한 귀족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한 가문에서 20명의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를 키워 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과연 최고의 명문 귀족가답다.’
그때 로베르토가 브란트에게 다가와서 불쑥 말했다.
“한 달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군요.”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로베르토 총관?”
“하하하, 제가 총관인 것에 많이 놀라신 모양이시군요?”
“나를 한 달 동안 전담해서 치료해 주던 치료술사가 갑자기 가문의 총관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 가지고 놀라시면 곤란한데요.”
“또 나를 놀래킬게 있나 보군요?”
“네.”
“그게 뭡니까?”
“저는 크라이머 백작가 전속 마법사입니다.”
기사를 우대하는 티모스 제국에서 마법사란 존재는 정말 귀했다. 해서 보통 지방 영지에서는 마법사를 구경도 하기 어려웠다.
대영주들과 수도 유력 귀족들이 아니고서는 마법사를 고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법사란 존재가 워낙 고가의 마법 연구를 하는지라 그 뒷바라지를 하려면 웬만한 재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아무튼 로베르토가 그런 대단한 마법사라니 브란트도 많이 놀랐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브란트가 빈정거리는 어투로 말했지만 로베르토는 상관없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그래 봐야 브란트님만 하려고요. 한 달 뒤를 기대하겠습니다.”
로베르토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
브란트는 대답 대신 평소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로베르토는 재미없다는 듯 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브란트 님을 곁에서 모실 하인을 불러 두었습니다.”
잠시 후 열두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록키, 앞으로 네가 모실 브란트 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브란트가 보기에도 제법 영기 발랄한 아이였다.
“하하하, 똘똘한 녀석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바쁜 관계로…….”
로베르토는 브란트와 록키만 남겨 두고 홀 밖으로 나갔다.
“록키, 내 방으로 안내해 주겠니?”
브란트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자신의 방으로 가고자 했다.
“네, 주인님. 저를 따라오십시오.”
록키가 즉시 앞장섰다.
브란트는 록키의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지내게 될 자신의 방으로 움직였다.
2. 수련 기사(1)
로베르토의 말대로 그는 정말 바쁜 사람이었다. 일주일 동안 브란트는 로베르토가 지나가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한 번 보았을 뿐, 그 후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록키, 로베르토 총관은 어떤 사람이냐?”
브란트의 맞은편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던 록키가 고개를 들어 힐끗 브란트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계속 글을 적으면서 말했다.
“로베르토 님은 종잡을 수 없는 분이세요. 그러고 보니 주인님과 비슷한 부분이 많군요.”
록키는 총명하고 근골도 훌륭했다. 마치 어릴 적 자신을 보는 것 같았던 브란트는 록키를 시동으로 삼기로 했다.
30살 노총각이 시동을 들인다면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에 신경 쓸 브란트가 아니었다.
지금 록키는 브란트로부터 글을 배우고 있었다. 영특하게 일주일 동안 록키는 기본적인 글은 모두 배우고, 이제 책 한 권을 통째 베껴 쓰면서 단어와 각종 대화에서의 어휘들의 쓰임을 숙지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로베르토 총관이?”
브란트가 록키 쪽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록키가 바로 말했다.
“네, 두 분 다 괴짜잖아요.”
브란트는 일주일 전 자신의 방을 배정받고 일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거나 가끔 록키에게 크라이머 백작가의 얘기를 듣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록키가 가져온 음식을 먹고 록키에게 억지로 글을 가르쳤다.
대부분의 시간은 멍하니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는데, 록키는 그런 자신의 주인을 가리켜 인간 석상이라고 불렀다.
멍 때리고 있을 때 그의 주인은 마치 석상처럼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주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린 자신보다 더 빨리 말이다.
‘무슨 어른이 저렇게 잠이 많을까?’
록키의 눈에 브란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브란트는 일주일 동안 변화한 자신의 몸에 적응하고 있었다.
화상으로 인해 엉망이 되었던 피부와 신경 조직들과 혈관으로 브란트는 천천히 마나를 주입시켰다.
그러면서 브란트는 소드 마스터의 힘을 하나 둘씩 되찾고 있었다. 서두른다면 더 빨리 예전의 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브란트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브란트가 배운 로가디스 후작가의 가전 검술인 페리어드 펜싱은 원래 오랜 시간 수련이 필요한 검술이었다. 대신 그 검술을 마스터하게 되면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최상급 검술이었다.
그런데 그 수련 기간에 문제가 있었다.
100년!
딱 100년 만 끈기 있게 수련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대략 50년임을 감안한다면 선뜻 배우기가 꺼려지는 검술이다. 그런 페리어드 펜싱을 10년 만에 터득한 검술의 천재가 있었다.
바로 로가디스 후작가의 3대 가주이자 검왕의 칭호를 얻은 티모스 제국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 필로얀이었다.
당시 로가디스 후작가는 공작가였다. 검왕 필로얀 이후 점차 가세가 기울어서 지금은 로가디스 후작가가 되었지만 말이다.
검왕 필로얀이 가전 검술인 페리어드 펜싱을 10년 만에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을 남겨 후손들은 크게 기뻐했다.
10년만 열심히 검술을 수련하면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검술을 익히던 후손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건 익히는 것이 불가능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검식 수련이 가능하단 말인가?”
페리어드 펜싱을 배우겠다고 덤벼들었던 후손들은 결국 모두 포기했고, 페리어드 펜싱이 기록된 검술서에는 먼지가 쌓였다.
그러던 중 현 로가디스 후작이 페리어드 펜싱을 다시 복원해 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휘하 기사들과 가신들의 기사들 중 능력 있는 기사들을 불러 모아 페리어드 펜싱을 가르쳤다.
하지만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는 것은 고사하고 마나역전(Mana―Reverse) 현상이 일어나 마나 홀에 부상을 입는 기사들이 속출했다.
마나 홀에 한 번 상처가 나면 더 이상 검술의 진전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당연히 기사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고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는 것을 줄줄이 포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로가디스 후작도 페리어드 펜싱에 대해 포기하고 있을 무렵, 평민 기사 중 하나가 무려 9년을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고 있다는 소식이 후작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10년이 되었을 때, 그 평민 기사는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 평민 기사가 바로 체드, 즉 현재의 브란트였다.
‘내가 페리어드 펜싱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행운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평민으로 기사가 되기 위해서 브란트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았다.
그때의 그 인내와 노력, 또 기사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티모스 제국의 소드 마스터인 로이터 드 말론 백작에게 전수받은 소드마나 운용법이 브란트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내가 너에게 가르치는 이 소드마나 운용법은 나를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준 그 소드마나 운용법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금 너에게 가르치는 이 소드마나 운용법을 배웠을 것이다.”
각 검술마다 그 검술에 맞는 소드마나 운용법이 있다. 그 운용법을 따르지 않고서 검술을 완성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말론 백작이 브란트에게 전수한 소드마나 운용법은 그 어떤 검술과도 조화를 이루었다.
때문에 말론 백작은 소드마나 운용법이 절전된 것으로 알려진 검술 하나를 브란트에게 전수했다.
그 검술로 브란트는 18살의 나이에 오러를 사용하는 소드 익스퍼트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을 키로프 남작의 기사로 활약하던 브란트는 대영주인 로가디스 후작의 부름을 받고 후작가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란트는 묵묵히 10년간 로가디스 후작가의 검왕 이후 그 누구도 완성해 내지 못했다는 페리어드 펜싱을 익혔다.
브란트는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 오로지 페리어드 펜싱만을 익히는데 열중했다.
브란트도 처음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아니, 검술에 진전이 거의 없어 브란트는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