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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2. 수련 기사(2)
‘내 능력이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았던가?’
브란트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매일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브란트가 우연히 말론 백작에게서 배웠던 소드마나 운용법으로 페리어드 펜싱을 연마하면서 변화가 있었다.
‘혹시…….’
브란트는 페리어드 펜싱의 소드마나 운용법을 버리고 말론 백작이 가르쳐 준 그 소드마나 운용법으로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장벽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던 페리어드 펜싱에 점차 진전이 있었다. 브란트는 기뻐하며 열심히 페리어드 펜싱을 익혔다.
브란트는 매일 수련 기록을 적었지만 말론 백작의 소드마나 운용법에 대해서는 일체 기록하지 않았다.
때문에 브란트의 수련 기록이 있다 하더라고 로가디스 후작은 10년 만에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브란트의 수련 기록은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용이란 소리였다.
‘나를 믿어 주었다면…….’
로가디스 후작이 브란트를 중용하고 크게 쓸 생각이었다면 브란트도 기꺼이 자신이 10년간 수련해서 터득한 페러어드 펜싱의 수련법을 로가디스 후작의 기사들에게 전수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브란트가 평민 출신이란 이유 때문에 로가디스 후작은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주인님, 다 썼습니다.”
“어!”
상념에 잠겨 있던 브란트가 록키의 말에 정신을 추슬렀다.
록키가 숙제를 브란트에게 보여 주었다. 브란트는 기록된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 말했다.
“그래, 잘 썼다. 그만 나가 봐라.”
록키는 또 주인이 멍 때릴 시간이 된 모양이라 생각하고 브란트의 방에서 나갔다.
록키가 나가고 나자 브란트는 침대 위에 앉아서 천천히 소드마나 운용법으로 마나 로테이션을 시도했다.
우우우웅!
브란트의 몸에 푸른빛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군데군데 막혔던 혈관들이 뚫리면서 브란트의 몸에는 미증유의 힘이 넘쳤다.
화상으로 인해 도려낸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면서 예전에 기사 시절 만들었던 우람한 근육들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힘만은 여전 했다.
마나 로테이션을 마치고 브란트가 눈을 뜨자 그의 두 눈에서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불끈!
브란트는 넘치는 두 팔의 힘을 손으로 내려 보내서 강하게 두 주먹을 쥐었다.
꽈악!
강렬한 기운이 브란트의 척추를 타고 뇌에 전달되었다. 브란트는 그 짜릿한 기분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몸은 거의 회복되었군. 내일부터 근력 훈련을 시작해도 되겠어.”
비록 심장은 꿰뚫리지 않았지만 그 주위 장기가 다치면서 마나 홀에도 자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브란트는 매일 마나 로테이션으로 마나 홀을 정상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했다.
록키가 주인이 석상처럼 굳어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브란트는 마나 로테이션상의 치료법으로 상처 난 마나 홀을 고치고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동안 마나 홀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마나 홀 속의 마나량은 예전에 비한다면 채 절반밖에 차질 않았다.
브란트는 새 술을 새 술통에 붓듯 차근차근 마나를 마나 홀 속에 축적시켰다. 비록 절반밖에 차지 않은 마나 홀이지만 브란트는 그 정도 힘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몸 하나는 지킬 정도는 됐다.
“이만 나가 볼까?”
일주일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브란트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의 방을 나섰다.
크라이머 백작가에는 훈련받는 기사만 500명이 넘었다.
그중에서 질풍 기사단 소속의 정식 기사가 80명이고, 그 밑에 보조 기사가 100여 명, 나머지는 모두 수련 기사들이었다.
수련 기사란 기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는 초보 기사를 말했다.
그러나 수련 기사들이라고 그 실력이 못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크라이머 백작가에서는 말이다.
크라이머 백작가에서는 수련 기사로 검술이 일정 경지에 올라야 소드마나 운용법을 전수했다. 즉, 보조 기사가 되어야 크라이머 백작가의 가전 검술인 파르마잔 펜싱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조 기사가 일정 수준 이상 검술 경지가 올라 오러를 사용하게 되면 비로소 질풍 기사단의 정식 단원이 될 수 있었다.
질풍 기사단의 단장인 가르딘 드 크라이머 자작은 크라이머 백작의 친동생이었다.
그는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로써 소드 마스터에 가장 근접한 경지에 올라 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제국에서 차기 소드 마스터로 가장 기대받고 있는 인물이다.
가르딘 마저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크라이머 백작에 이어 크라이머 백작가는 두 명의 소드 마스터를 배출하게 되는데, 이것은 제국 역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크라이머 백작에 이어 가르딘 단장까지 그 실력이 출중한 관계로 크라이머 백작가의 명성은 최근 들어 가장 높고,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가르딘 단장은 일주일 전 형인 크라이머 백작으로부터 브란트란 조카가 기사 수련을 받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후 브란트란 조카는 일주일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가르딘 단장도 브란트란 이름을 잊어 가고 있을 때쯤 브란트가 불쑥 기사 훈련장에 나타났다.
“네가 형님의 둘째 아들인 브란트냐?”
록키를 통해 복잡한 크라이머 백작가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브란트는 질풍 기사단의 가르딘 단장이 숙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네, 숙부님.”
“이곳은 훈련장이다. 그리고 나는 기사 단장이고. 여기서는 단장님이라 호칭해라.”
“네, 단장님.”
“좋아. 지방 영지의 기사였다고?”
“그렇습니다.”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괜찮으냐?”
“이제 움직일 만합니다.”
“그래? 스레인. 브란트를 수련 기사들의 훈련장으로 데리고 가라.”
가르딘 단장은 별 대수롭지 않게 질풍 기사단의 기사 중 하나를 불러서 브란트를 넘겼다.
기사 훈련에 있어 혈육이라도 예외는 없다. 크라이머 백작가에서 기사가 되려면 반드시 정해진 코스를 밟고 올라와야 했다. 때문에 브란트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따라오시오.”
질풍 기사단의 기사인 스레인은 브란트를 데리고 수련 기사들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브란트를 수련 기사 교관에게 넘겼다.
브란트는 그렇게 크라이머 백작가의 수련 기사가 되었다.
“반갑다. 나는 수련 기사 교관 자카로다. 여기 수련 기사들은 나를 자칼이라고 부르지.”
자칼은 일종의 늑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운 녀석으로 유명했다. 교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브란트를 노려보며 계속 말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아서 생긴 별명이다. 여기서 지킬 규칙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교관의 명령에 복종할 것. 그것만 지키면 열심히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란트가 수련 기사로 등록을 마치자 교관이 서슬 퍼런 눈으로 브란트에게 한 말이다.
브란트는 이런 수련 기사 생활을 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흥미 있게 수련 기사 훈련에 임했다.
“헛둘! 헛둘!”
통나무 하나를 통째 어깨에 얹고 구호에 맞춰서 브란트는 열심히 연병장을 뛰었다. 그리고 회전하는 칼날들을 피하고 장해물을 뛰었다. 짝을 이루어서 목검으로 번갈아 가며 수련 기사들과 손에 쥐가 나도록 검을 섞었다.
수련 기사 교관인 자카로는 처음부터 브란트를 수련 기사들과 동일한 훈련을 시켰다.
특별 대우를 원치 않았던 브란트는 묵묵히 자카로가 시키는 대로 훈련에 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카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촌놈이 근성 하난 제법이로군.”
첫날부터 힘들 만도 하련만 브란트는 아무 불평 없이 힘든 수련 기사 과정의 훈련을 받았다.
‘땀을 흘리니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브란트는 오히려 자카로가 힘들게 훈련을 시키면 시킬수록 더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소드 마스터인 브란트에게 육체적인 피로 따윈 있을 수 없었다.
훈련할 당시는 잠시 힘들어도 그의 유연한 근육은 곧 피로를 풀어 버리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전 수련이 끝나자 각자 수련 기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브란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한 수련 기사가 브란트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덩치가 상당히 컸다.
“이봐.”
브란트도 180센티의 비교적 작지 않은 키였는데 수련 기사는 그런 브란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2미터를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브란트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힘들지? 나도 며칠 죽는 줄 알았어. 하지만 계속 하다 보니 곧 익숙해지더라고. 아, 나는 제이콥. 평민 출신이야.”
큰 키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제이콥은 브란트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브란트다.”
브란트는 왠지 이 자리에서 자신이 크라이머 백작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래서 간단히 이름만 밝혔다. 그러자 제이콥도 대충 브란트를 평민 출신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며칠 만 견뎌. 그럼 기회를 잡을 수 있어. 우리 같은 평민이 출세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아. 그런 점에서 크라이머 백작가의 수련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브란트도 크라이머 백작가에서 신분을 따지지 않고 수련 기사들을 뽑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질풍 기사단의 기사가 되고 싶은 건가?”
브란트의 질문에 제이콥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이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아. 저들을 봐. 수련 기사 생활만 벌써 5년째야. 하지만 아직 보조 기사도 못되고 있지. 5년 안에 보조 기사가 되지 못한 수련 기사들은 여기서 쫓겨나. 때문에 올해가 저들에게 마지막 기회인 셈이야.”
제이콥이 점심 식사 후에도 검술 훈련을 하고 있는 10여 명의 수련 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는 건 여기서도 치열하군.’
브란트는 새로 사귄 친구 제이콥의 손에 이끌려 검술 수련을 해야 했다.
수련 기사들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수련하는 그들의 모습이 브란트는 보기 좋았다. 그런 수련 기사들과 어울리며 브란트의 얼굴에도 점점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브란트는 쉽게 수련 기사들의 훈련에 적응했다. 교관 자카로도 그런 브란트의 적응력에 감탄했다.
“지방 영지 기사치고는 기본기가 충실하군.”
수련 기사들에게는 항상 보조 기사로 승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조 기사들은 순번을 정해서 의무적으로 수련 기사 훈련장을 방문해서 수련 기사들과 대련을 해 주었다.
그 대련에서 보조 기사에게 인상적인 실력을 선보인 수련 기사는 보조 기사로 승급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보조 기사 데런은 자기 차례가 오자 수련 기사들의 훈련장을 찾았다.
대련 방식은 간단했다. 선착순으로 덤비되 그 수는 5명으로 제한되었다.
“자, 누가 나서겠나?”
데런이 주위를 둘러보자 몇 명의 수련 기사가 손을 들었다. 그중에는 제이콥도 있었다.
보조 기사는 소드마나 운용법과 크라이머 백작가의 최상승 검술을 배우고 있다. 때문에 수련 기사와 보조 기사 차이의 실력 차는 컸다.
수련 기사들은 이기겠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보조 기사들에게 인상에 남을 대련을 벌이지를 고심했다. 제이콥 역시 보조 기사가 되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손을 들었던 것이다.
“거기 너!”
데런이 제이콥을 가리켰다. 데런은 며칠 전 질풍 기사단의 기사인 피터슨과 대련 중 창피를 당했다.
피터슨은 제이콥처럼 키가 2미터를 넘고 덩치도 컸다. 제이콥을 보자 피터슨이 생각난 데런은 그 화풀이를 제이콥에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전혀 모르는 제이콥이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쳇, 피터슨보다 더 커군.”
제이콥과 마주서자 데런이 제이콥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며 말했다.
수련 기사 교관인 자카로가 제이콥에게 물었다.
“제이콥, 준비되었나?”
“네, 교관님.”
긴장한 제이콥은 마른침을 삼키며 외쳤다.
“좋아. 보조 기사 데런과 수련 기사 제이콥의 대련을 실시하겠다.”
자카로의 선언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데런이 제이콥을 피터슨으로 생각하고 먼저 실컷 욕설을 퍼부었다.
“덤벼, 이 오우거 새끼야. 검이 크다고 싸움 잘하는 줄 알지? 미련한 놈.”
크라이머 백작가의 기사들이 사용하는 대련 용 검은 비록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그 길이와 크기, 그 무게가 그들이 사용하는 검과 똑같았다.
제이콥은 덩치에 어울리게 대검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대련용 목검도 거대했다.
보조 기사 데런의 욕설에 발끈한 제이콥이 괴성을 지르며 먼저 달려들었다.
“이야앗!”
부우웅!
거대한 대검이 거센 기세로 허공을 가르며 데런의 몸을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