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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2. 수련 기사(3)


데런은 그런 제이콥의 공격을 일부로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대련용 목검을 들어 막았다.
터엉!
보통 사람이라면 검을 든 팔이 다칠 정도의 강한 공격이었는데 데런은 그것을 흘리지도 않고 또 밀리지 않으면서 단지 힘으로 막아서 멈춰 세웠다.
마나의 힘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마나를 사용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바로 나타났다.
“오우거 새끼가 힘도 별로군.”
히죽 웃어 보이며 말하는 데런의 목소리에 제이콥의 얼굴이 불에 타듯 붉게 변했다.
“이야압!”
제이콥은 다시 힘으로 데런의 검을 밀어내며 옆으로 돌면서 순식간에 데런의 왼쪽 다리를 노렸다. 긴 팔과 긴 대검의 장점을 이용한 훌륭한 공격이었다.
휘릭!
그러나 데런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훌쩍 뛰어오르며 오히려 제이콥의 머리를 내려쳤다.
“헉!”
제이콥은 기겁해서 급히 대검을 끌어당겨 위로 치켜올렸다.
상대의 다리를 베려다가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 다행히 제이콥의 거검이 데런의 검을 막아 냈다.
터엉!
“헉!”
데런은 마나의 힘을 팔에 잔뜩 실어 있는 힘껏 내려쳤고, 그 힘에 제이콥은 다리가 휘청하면서 꺾였다.
데런의 목검에 실린 미증유의 힘에 제이콥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휘리릭!
제이콥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물러나며 어떡하든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승기를 잡은 데런의 목검은 그런 제이콥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날카롭게 빈틈을 찾아 찔러 들어왔다.
제이콥은 자신의 대검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자 바로 몸을 옆으로 던져 땅 위를 두어 바퀴 구르며, 대검을 길게 휘저어 추가적인 데런의 접근을 막았다.
지금까지 보여 준 제이콥의 실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보조 기사 데런은 그런 제이콥을 칭찬하기는커녕 비웃었다.
“바닥을 구르다니 너는 기사로서 긍지도 없나?”
며칠 전 기사 피터슨에게 데런이 들었던 말이다.
데런은 그때를 생각하며 그 분풀이를 제이콥에게 제대로 하고 있었다.
데런은 그런 제이콥을 쫓으려고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비웃었다.
제이콥도 대련 중엔 아무리 화가 나도 냉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기사가 목표인 자신에게 기사의 긍지도 없다고 하니 화가 날만 했다.
“이 자식이……!”
제이콥은 결국 이성을 끈을 놓고 말았다. 그는 크게 괴성을 지르며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올린 채 데런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데런은 냉정하게 살짝살짝 뒤로 물러나며 잔뜩 힘이 실린 제이콥의 목검 공격을 교묘히 흘렸다.
붕! 붕!
제이콥은 미친 듯 대검을 휘둘렀고 데런은 차분히 피하거나 검으로 흘려서 제이콥의 공세를 막았다.
그러나 제이콥도 인간이고 곧 지쳐, 그 검세가 약해지자 이를 보고 데런이 즉시 오른손으로 왼손을 포개어 잡았다.
그리고는 공격해 오는 제이콥의 대검 안쪽을 양팔에 마나를 주입시켜 있는 힘껏 검으로 후려갈겼다.
터엉!
“크윽!”
제이콥의 대검이 뒤로 튕겼다. 이번에도 데런이 검을 흘릴 줄 알았던 제이콥은 당황해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이미 공세로 전환한 데런의 움직임은 날카로웠다.
슈슉! 슉!
검을 상하로 번갈아 가며 연속으로 찔렀다.
타타타타탓!
속도와 파괴력에서 제이콥은 데런의 상대가 아니었다. 데런은 제이콥을 훈련장 구석으로 몰아넣고 정신없이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데런의 전력이 담긴 연속 공격에 제이콥은 꼼짝도 못하고 데런의 목검을 막기에 급급했다.
이미 승부는 난 상태였다. 제이콥은 데런의 목검을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해 몸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데런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브란트는 데런의 눈빛이 더 살기등등해지는 것을 보고 수련 기사 교관인 자카르를 쳐다보았다.
자카르 역시 그것을 눈치챘는지 대련을 멈추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데런은 자카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쳇, 여기서 끝내야겠군.’
데런은 가능한 폼 나게 또 멋있게 제이콥의 대검을 박살내고 검을 놓친 제이콥을 무릎 꿇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수련 기사들에게 보여 줄 계획이었다.
그를 위해 데런은 두 팔에 잔뜩 마나를 주입시켜 제이콥의 대검을 후려쳤다.
퍼억!
데런의 예상대로 제이콥의 대검은 박살이 나서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런데 제이콥은 무식하게 끝까지 대검을 잡고 있었다. 충격에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지만 제이콥은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기사에게 검은 생명과 같았다. 그만큼 제이콥의 목숨에 대한 집착이 크다고 봐야 했다. 기사로써 훌륭한 기본 자세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제이콥에게는 독이 되었다.
“이 오우거 새끼가!”
멋지게 쓰러져서 자신의 우위를 주위 수련 기사들에게 보여 줘야 할 녀석이 버티자 화가 난 데런이 그대로 제이콥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거구의 제이콥이 허공으로 부웅 떠서 뒤로 넘어졌다.
“크흑!”
바닥에 쓰러지며 제이콥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런 제이콥의 머리 위로 데런의 목검이 다시 날아들었다.
그때 수련 기사 교관인 자카르가 외쳤다.
“그만!”
데런의 목검이 제이콥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제이콥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주먹 하나 차이로 멈춰선 데런의 목검을 보고 완전 얼어붙은 상태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데런은 목검을 회수하며 제이콥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자카르는 제정신이 아닌 제이콥을 물러나게 했다. 데런의 손속이 조금 심한 면이 있었지만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니 자카르도 뭐라 할 수 없어 일단 참았다. 그리고 대련을 계속 속개시켰다.
“자, 다음은 누가 나서겠나?”
데런의 파격적이고 잔인한 손속과 월등한 기량에 압도된 수련 기사들이 머뭇거렸다.
그때 브란트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브란트는 보조 기사 데런의 행동에 화가 나 있었다. 대련에서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브란트는 보조 기사 데런이 왜 제이콥에게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데런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란트가 크라이머 백작가에서 처음을 사귄 친구 제이콥의 입에서 피를 토하게 한 데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련 기사 교관 자카르는 브란트가 나서자 얼굴을 찌푸렸다. 수련 기사 훈련에 참여한 지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감히 겁도 없이 대련을 하겠다고 나섰다.
제이콥이 당하는 것을 봤을 텐데도 나서다니 그 용기는 가상했지만 자카르는 일단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라.”
하지만 자카르가 나서기 전에 보조 기사 데런이 브란트와의 대련을 승낙해 버렸다.
‘저런 어리석은…….’
별수 없이 자카르는 경솔한 브란트를 노려보며 대련 시작을 알렸다.
“보조 기사 자카르와 수련 기사 브란트의 대련을 시작하겠다.”
데런은 제이콥과 달리 브란트에게는 과격하게 공격을 퍼붓지 않았다. 천천히 브란트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텅! 터엉! 텅!
데런는 브란트를 상대로 벌써 100여 초 이상을 싸우고 있었다. 제이콥보다 더 빨리 끝날 거라는 주위 예상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브란트는 주위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맹렬하게 데런을 공격했다.
타타타탓!
하지만 이제 슬슬 보조 기사와 수련 기사 간의 실력 차이가 나야 정상인데, 브란트의 목검은 여전히 예리했다.
데런은 자기보다 확실히 고수인 상대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하나하나 섬세하게 공격하고 또 막고 있는 브란트의 검술 실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수련 기사로 있기에 아까운 실력이다.’
데런은 브란트에게 보조 기사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 승부를 결정지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크게 목검을 휘둘러 브란트의 목검을 후려쳤다. 두 팔에 마나를 주입시켜서 말이다.
터엉!
“으윽!”
그런데 신음 소리를 지른 것은 브란트가 아니라 데런이었다.
데런은 목검을 든 팔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브란트의 공격은 한손으로 검을 통해 가해진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력이 강했던 것이다.
슈슈슈슉!
연속적으로 찔러 들어오는 브란트의 날 선 공격을 데런은 가까스로 피했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반격을 가했다. 이제 사정을 봐 줄 단계는 지난 것이다.
슈우욱!
데런의 목검이 날카롭게 브란트의 오른쪽 어깨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브란트의 빈틈을 정확하게 노린 공격이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어느새 왼손으로 목검을 고쳐 잡아 힘껏 데런의 목검을 후려쳤다.
퍽!
“헉!”
데런은 자신의 찌르기 공격을 브란트가 바깥쪽으로 튕겨내자 순간 중심이 무너졌지만 옆으로 다리를 뻗어 가까스로 몸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면서 브란트의 재차 공격에 대비했다.
데런의 예상대로 브란트의 목검이 그의 머리 위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데런은 지체 없이 목검을 들어 브란트의 목검을 막았다.
텅!
그 순간 데런은 양팔에 마나를 주입시켜 브란트의 목검을 밀어 내고 브란트의 왼쪽 허리를 노리며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브란트가 막더라고 데런이 두 팔에 잔뜩 마나가 주입시켰기 때문에 데런의 목검에 브란트의 목검이 박살 날 것이 분명했다.
브란트는 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들고 있던 목검으로 데런의 목검을 막았다.
‘됐다.’
데런은 이제 대련이 끝났다고 안도했다.
빠각!
두 목검이 부딪쳤다. 그런데 브란트의 목검이 박살난 것이 아니라 데런의 목검이 부러졌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브란트의 목검이 데런의 옆구리로 날아갔다.
“헉!”
퍽!
데런은 치명적인 장소인 옆구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어깨로 브란트의 검을 받았다.
“크윽!”
데런의 비명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수련 기사들의 연병장을 뒹굴었다. 어깨뼈가 부서진 듯 데런은 더 이상 목검을 잡고 있지 못했다.
기사가 검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패배한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런 데런을 보고 수련 기사들과 교관인 자카르의 시선이 일제히 브란트를 향해졌다.
수련 기사가 보조 기사를 쓰러뜨린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수련 기사들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교관인 자카로는 달랐다. 즉시 후속 조치가 취해졌다.
“보조 기사 데런을 어서 치료술사에게 데리고 가라. 그리고 브란트는 지금 즉시 내방으로 오도록.”
자카르는 휑하니 교관실로 들어갔고, 브란트는 데런에게 당해 정신이 나가 있다가 이제 브란트에 의해 반쯤 넋이 나간 제이콥에게 가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교관실로 향했다.

“도대체 너의 정체가 뭐냐?”
자카르의 신경질적인 물음에 브란트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브란트 드 크라이머요.”
“뭐?”
자카르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젠장, 크라이머 백작가의 혈족이라 진작 말해 줄 것이지.”
자카르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뭔가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브란트에게 건네며 말했다.
“승급관으로 가라. 가서 당장 테스트 받아.”
“지금 말입니까?”
“그래.”
“내일 하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
자카르가 단호히 거절했다.
“왜요?”
“내일까지 네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다.”
브란트는 자카르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내일 수련 기사 훈련장에 브란트가 다시 나타나면 자카르가 정말 그를 물지 몰랐다.
“알겠습니다.”
브란트는 자카르가 건넨 서류를 받아 들고 승급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