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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3. 두 번째 기사(1)
질풍 기사단의 정규 기사 테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테스트는 간단하게 전대나 전전대 기사들과의 대련으로 결정되었다.
크라이머 백작가의 가신이며 전대 질풍 기사단의 조장이었던 로테시 남작은 승급 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자긍심이 컸다.
“기사란 모름지기 검을 놓으면 기사라 할 수 없다.”
다른 기사 조장들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모두들 작위를 받고 크라이머 백작령의 가신으로 지방 영주들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테시는 작위는 받되, 계속 크라이머 백작가에 남기를 원했다.
자신은 죽을 때까지 질풍 기사단의 기사라는 것이 로체시 남작의 뜻이었다.
크라이머 백작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 로테시 남작을 승급관의 관장으로 삼았다.
로테시 남작은 질풍 기사단의 기사를 뽑는 테스트를 제외한, 보조 기사로의 승급에 대한 결정권을 크라이머 백작으로부터 부여받았다.
따라서 로테시 남작의 승인이 있으면 수련 기사는 바로 보조 기사로 승급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승인을 쉽게 해 줄 로테시 남작이 아니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로테시 남작은 자신과 대련을 해서 100초를 견디지 못하는 수련 기사는 보조 기사로 승급시키지 않았다.
물론 로테시 남작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비록 늙었다고는 하지만 노련한 로테시 남작의 검술을 100초나 견뎌 낼 수련 기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보조 기사 교관이 요청해서 올해부터 그 절반인 50초만 견뎌내면 보조 기사로 합격시키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그러나 올해 벌써 50명이 도전했지만 50초를 견뎌 낸 수련 기사는 5명밖에 되지 않았다.
“오호, 오늘은 없을 줄 알았는데.”
로테시 남작은 수련 기사 하나가 테스트 신청서를 들고 나타나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로테시 남작은 목검 하나를 브란트에게 던졌다. 그리고 한 손으로 목검을 들어 정면의 허공을 비스듬히 베면서 외쳤다.
“와라!”
로테시 남작은 당연하다는 듯 수련 기사에게 선공을 양보했다.
브란트는 로테시 남작이 목검을 던지자 그것을 잡았고, 또 대뜸 덤비라고 해서 그것을 사양하지 않고 곧장 정면으로 찔러 들어갔다.
슈우욱!
브란트의 찌르기의 기세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오호!”
로테시 남작은 감탄성을 발하며 급히 한 걸음 옆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목검을 틀어 브란트의 목검을 튕기려 했다.
그때 브란트의 검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더니 어느새 다시 로테시 남작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쉬익!
방어라고는 일체 고려하지 않고 번개처럼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브란트의 공격은 위협적이며 힘이 넘쳤다.
‘괜찮은 녀석이군.’
수련 기사라고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데 브란트의 공격에 방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타타탁!
로테시 남작은 벌써 브란트와 100초가 아니라 1,000초나 싸우고 있었다. 로테시 남작은 신이 나서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브란트는 로테시 남작의 목검을 막아내는 척하다가 목검끼리 부딪치는 순간 그의 목검이 힘을 잃고 튕겨나게 했다.
툭!
잘 싸우다가 갑자기 브란트가 목검을 떨어뜨리자, 로테시 남작이 오히려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로테시 남작에게 브란트가 말했다.
“졌습니다.”
브란트는 비록 소드 마스터지만 지는 것을 그렇게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식의 거짓으로 지는 것에 대해서도 비교적 무덤덤했다. 브란트는 특히 나이 많은 기사를 상대로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끄응, 오랜만에 몸 좀 푸나 했더니.”
로테시 남작은 브란트가 일부러 검을 놓은 것을 알고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목검을 치운 후 그는 빠르게 서류를 작성해서 브란트에게 건넸다.
“내일부터 보조 기사들의 훈련소에서 수련을 하도록.”
브란트는 로테시 남작이 건넨 서류를 챙겨 들고 승급관을 나섰다.
그런 브란트의 뒷모습을 보고 로테시 남작이 중얼거렸다.
“어디까지 실력을 감추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노련한 로테시 남작도 브란트가 소드 마스터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수련 기사 때는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보조 기사 때는 달랐다. 사흘 만에 수련 기사 생활을 청산하고 보조 기사 과정에 올라온 브란트를 보조 기사 동료들은 경계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엇보다 브란트는 보조 기사인 데런을 대련으로 이겼다.
그 말은 적어도 보조 기사 데런보다는 실력이 위란 점이었다. 데런은 보조 기사 중에서도 중상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데런보다 위 실력의 보조 기사들은 브란트를 보고 긴장한 눈빛을 지었고, 그 아래 기사들은 약간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보조 기사 과정부터 소드마나 운용법을 배우고 크라이머 백작가의 가전 검술을 배웠다. 때문에 기사로써 진짜 실력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 된다고 보면 됐다.
보조 기사 교관인 라울은 브란트에게 갑옷과 날을 세우지 않은 강철 검을 건네며 말했다.
“소드마나 운용법은 저곳 정신관에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두 가지다. 정신관에서는 조용히할 것. 그리고 교관의 말에 절대 복종할 것. 알겠나?”
“네.”
브란트는 라울이 건넨 갑옷과 강철 검을 받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갑옷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흉갑과 무릎 보호대가 다였는데 그 무게만 20kg은 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브란트는 말없이 갑옷을 착용하고 강철 검을 들었다.
라울이 처음 보조 기사에게 갑옷을 지급하면 신입 보조 기사는 그 무게에 깜짝 놀라거나 투덜거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브란트는 일체의 표정 변화 없이 갑옷을 착용했다. 그것을 보면서 라울은 생각했다. 보조 기사 과정에 거물이 하나 들어왔던지 아니면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멍청이가 들어왔든지 말이다.
“보조 기사는 수련 기사들과 달리 무식하게 훈련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체력 단련을 반드시 해야 한다.”
라울은 보조 기사들의 일정표를 브란트에게 건넸다. 브란트는 그 일정표를 받아서 보다가 라울에게 물었다.
“수영? 이게 왜 있습니까?”
기사와 수영이라니? 브란트의 기사 수련 상식으로는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브란트의 물음에 라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일단 해 보고 나서 며칠 후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때 내게 물어보도록.”
무성의한 라울의 답변에 브란트는 다시 일정표를 살폈다. 기본적인 승마 훈련과 검술 훈련을 제외하고 나면 보조 기사들은 자유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자유 시간이 말 그대로 자유 시간일 리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보조 기사들은 개별 검술 훈련과 소드마나 운용법을 익힐 터였다.
“곧 정규 검술 수업이 있을 거다. 무도관으로 가도록.”
브란트가 무도관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100여 명의 보조 기사들이 브란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때 교관 라울이 무도관에 나타났다.
“너희들이 배우고 있는 크라이머 백작가의 가전 검술인 파르마잔 펜싱은 제국에서도 인정한 최상급 검술이다. 이 검술은 상, 중, 하 3단계로 나눠진다. 그중 너희들은 하급 과정의 검술을 익힌다. 그리고 오러를 사용하게 되면 그때 중급 과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 그럼 숙달된 조교의 검술 시범을 보도록 하겠다.”
조교는 질풍 기사단의 정규 기사들이 맡았다.
휘리리릭, 파파파팟!
조교들이 파르마잔 펜싱을 시전하자 무도관에 검영이 난무하고 기사들의 손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비록 오러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절도 있는 동작과 힘이 넘치는 검술은 100여 명의 보조 기사들의 넋을 빼놓기 충분했다.
조교들의 시범이 끝나자 교관 라울이 다시 말했다.
“기본 동작부터 천천히 시범을 보일 것이다. 잘 보도록.”
비록 하급 과정이지만 가르치는 기사들이나 배우려는 보조 기사들의 열의가 대단했다.
‘이러니 최고의 기사들을 배출해 낼 수밖에.’
브란트는 검술보다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브란트는 수영을 해 보고 바로 자신이 교관 라울에게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수영은 전신 운동으로 기사들의 뭉치고 경직된 근육을 풀어 주는데 효과가 좋았다. 그래서 브란트는 하루 한 시간인 수영을 하루 세 시간으로 늘렸다.
정신관에 들어간 브란트는 소드마나 운용법을 보고 마나 로테이션을 시도 중인 보조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정신관 안에는 모두 10권의 소드마나 운용법이 기록된 책이 있었다. 보조 기사들은 먼저 그 책을 정독하고 나서 마나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10권의 책을 보조 기사들이 모두 보고 있었기 때문에 브란트는 줄을 서야 했다.
모두들 너무도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브란트는 문득 제이콥과 수련 기사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소드마나 운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때 순서가 된 브란트는 크라이머 백작가의 소드마나 운용법을 볼 수 있었다.
‘마나는 모든 물질 에너지의 기본 구성 요소이다. 마나 배열의 형태에 따라 에너지 혹은 물질이 생성되며 배열 상태가 변화하면 다른 물질 혹은 에너지로 변화하게 된다.’
역시 초장에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소드마나란 기사들이 사용하는 마나로 정의하면 됐다. 중요한 것은 마나는 소멸되지 않고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나나 기사가 사용하는 마나는 다르다. 마나가 변화한 것이다. 그 이상을 생각하면 괜히 머리만 복잡해진다.
마나를 다루는 언어를 흔히 룬어, 혹은 마나 수식어라고 부른다.
소드마나 운용법을 배우려면 먼저 룬어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나 기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근육 덩어리에 텅텅 빈 머리다.
여기서 머리가 나쁜 기사는 결코 소드 익스퍼트가 될 수 없다. 보통의 검술서에는 룬어를 풀어 설명해 놓고 있다.
때문에 글만 알아도 배우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깊이의 차이가 있다.
상승 검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룬어에 정통해야 한다. 소드 마스터인 브란트는 당연히 룬어를 잘 알았다.
브란트는 해설된 내용은 보지 않고 전반적으로 룬어로 적힌 소드마나 운용법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페리어드 펜싱을 익히기 전 배웠던 소드마나 운용법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브란트가 익히고 있는 소드마나 운용법으로도 충분히 파르마잔 펜싱을 익힐 수 있을 듯했다.
브란트는 조용히 책을 덮고 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다른 보조 기사들과 같이 마나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보조 기사들이 한 번의 마나 로테이션을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다. 그러나 그 사이 브란트는 네 번의 마나 로테이션을 마쳤다.
가만히 지켜보면 다른 보조 기사들과 브란트의 차이점은 호흡에 있었다.
‘생명은 호흡지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숨 한 번 못 쉬면 그대로 생사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무시하고 산다. 호흡 한 번에 세상이 담겨 있고 생명이 담겨 있고 또한 마나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지.’
브란트의 소드마나 운용법은 호흡법에서 다른 소드마나 운용법과 그 방법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소드마나 운용법으로 마나 로테이션을 하게 되면 피부를 통해 공기 중의 마나를 몸으로 흡수해서 그 마나가 마나 홀로 인도된다.
그러나 브란트의 소드마나 운용법은 피부는 물론 입과 코로도 마나를 흡입했다. 때문에 다른 소드마나 운용법에 비해서 훨씬 많은 마나를 마나 홀로 끌어들일 수 있다.
부스럭!
브란트는 대충 자신과 같이 시작한 보조 기사가 일어나자 그때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영과 네 차례의 마나 로테이션을 통해 브란트의 몸은 최상의 상태였다.
‘이렇게 수련하면 곧 나머지 마나 홀에 마나도 가득 채울 수 있겠군.’
그러나 마나 홀에 마나가 찬다고 끝은 아니다.
소드 마스터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존재라고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그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 바로 검왕 필로얀과 같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강해지려는 것은 그것이 내 꿈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 주는 과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비록 그 길이 멀고 험하지만 열심히 걷다 보면 언젠가 내 꿈을 열어 주는 하나의 길로 이어질 거라 확신한다. 비록 지금은 갈 길은 멀지만 그 길을 알고 있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
브란트는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겼을 때 진정한 감동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현재 자신에 만족해하며 보조 기사로써 하루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록키가 그런 브란트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이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