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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3. 두 번째 기사(2)
10년 동안 오직 검술만 수련해 온 브란트는 요즘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숙제는?”
브란트의 말에 록키가 찔끔 놀라며 고개를 슬쩍 딴 쪽으로 돌렸다.
“설마 땡땡이는 아니겠지?”
“그, 그게 레이첼 아가씨와 놀아 드리느라…….”
브란트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뭐라고 그랬지?”
“남자란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는 거라고…….”
“좋아, 숙제는?”
“못했습니다.”
“그럼 벌을 받아야겠군.”
브란트의 말에 록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방 한쪽으로 가더니 힘없이 회초리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 회초리를 브란트에게 건네고 바지를 들었다.
“훈계란 확실해야 하는 법이다. 몇 대지?”
브란트는 록키가 숙제를 하지 못할 경우 계속 회초리 대수를 높였다.
“10대입니다.”
브란트는 회초리로 록키의 종아리를 때렸다.
쫘악!
“아야!”
록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의 종아리에 난 선명한 상처를 보고 그곳에 침을 찍어 바르며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후웁! 푸하하하.”
그것을 보고 브란트는 너무 웃겨서 결국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웃어? 지금 내가 웃었단 말인가?’
브란트는 자신의 변화에 놀랐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싫지는 않았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게 너무 좋았다.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브란트는 수영과 소드마나 운용에 집중하면서 마침내 마나 홀을 가득 채웠다. 이제 실전 감각만 더 익힌다면 브란트도 당당히 제국의 소드 마스터라 자부해도 될 터였다.
웅성웅성.
오전에 수영을 하고 점심을 먹고 무도관에 간 브란트는 무도관 안이 시끌벅적한 것을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에는 정규 검술 수업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수련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대련 날이라고 했다.
그 상대는 바로 보조 기사들이 조교를 맡고 있는 질풍 기사단의 정규 기사들이다.
수업 시간이 되자 교관인 라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늘은 기사들과 대련을 할 것이다. 평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기 바란다.”
조교는 모두 다섯 명으로 각 5명의 보조 기사들이 1대1로 대련하게 되어 있었다. 검을 떨어뜨리거나 항복할 경우 자동으로 패배가 인정됐다.
교관 라울이 시작을 알리자 즉시 5명의 보조 기사들이 나섰다. 그리고 5명의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검에 날이 없고 검끝이 뭉텅하다고는 하지만 강철 검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그런 대련용 강철검이 부딪치자 이내 불꽃이 튀었다.
챙! 차앙! 챙!
퍽! 퍽! 퍽!
그러나 이내 5명의 보조 기사들이 뒤로 튕겨나서 널브러졌다. 서로 검을 부딪친 지 10초도 되지 않아서 기사들에게 당한 것이다.
“다음.”
보조 기사들은 교관 라울에 의해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라울은 보조 기사 중 가장 약한 순서로 기사들에게 도전을 시켰다.
때문에 뒤로 갈수록 기사들이 보조 기사들을 쓰러뜨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100여 명의 보조 기사들을 질풍 기사단의 5명의 정규 기사들은 불과 30분 만에 가볍게 제압했다. 그리고 마지막 4명이 남았을 때 교관 라울은 브란트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말했다.
“저쪽에 가라.”
브란트는 4명의 보조 기사 옆에 가서 섰다. 브란트가 상대할 기사는 5명의 기사 중 가장 변칙적인 검술을 사용하는 자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조 기사들에게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크게 상처를 입혀 왔던 기사였다.
“시작!”
라울의 외침과 동시에 5명이 보조 기사가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에 브란트도 끼어 있었다.
챙! 챙!
브란트가 상대하는 기사는 역시 처음부터 기괴한 수법으로 브란트를 현혹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브란트의 평정심을 깨지는 못했다. 브란트가 쉽게 자신의 수법에 걸리지 않자 상대 기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귀찮다는 듯 검을 크게 휘둘렀다.
부우우웅!
기사의 검이 브란트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것도 비스듬히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궤적이었다.
브란트는 검으로 비껴 흘려 막았다.
차창!
그러자 상대 기사는 그것을 미리 예상했는지 빠르게 공중에서 검을 돌려 잡으며, 아래로 내려쳤다.
브란트도 속으로 놀랄 만한 빠른 반응이었다.
‘대단한 임기응변이다.’
브란트는 뒤로 급히 물러나며 기사의 공격을 피했다.
이때 기사는 브란트의 자세가 흐트러진 것을 보고 날카로운 찌르기로 빈틈을 노렸다.
슈욱!
브란트가 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기사의 파상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카카캉캉!
상대 기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옆으로 이동하며, 브란트의 몸 주변을 돌면서 쉬지 않고 검을 몰아쳤다.
그러나 브란트는 묵묵히 기사의 공격을 막았다. 이때 브란트 옆에서 싸우던 보조 기사가 검을 떨어뜨렸다.
“크윽, 졌습니다.”
보조 기사의 고개가 바로 숙여졌다. 그것을 보고 브란트를 상대하던 기사는 더 조급히 브란트를 공격했다.
항상 다른 기사들보다 빨리 보조 기사를 쓰러뜨렸는데 이번에는 그것이 뒤바뀐 것이다.
기사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났다.
‘이 자식, 그냥 간단히 끝내려 했더니 안 되겠군.’
기사는 두 팔에 마나를 집중시키고 있는 힘껏 브란트의 검을 후려쳤다.
쩡!
브란트의 몸이 그대로 주르르 밀렸다. 기회를 잡은 기사는 단번에 끝내 버리기 위해 몸을 날렸다.
확실히 빨랐다. 언뜻 보기에도 브란트가 어떻게 검으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보였다. 기사는 자신을 귀찮게 만든 벌로 브란트의 어깨를 부숴 버릴 생각이었다.
부우우웅!
기사 검이 여지없이 브란트의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그때였다.
휘릭!
브란트가 그대로 몸을 비틀더니 상체를 숙이고, 그대로 왼발을 축으로 오른 다리를 위로 크게 들어 올렸다.
브란트의 어깨를 박살 낼 생각에 득의하고 있던 기사는 불쑥 날아온 브란트의 발에 두 눈을 부릅떴다.
퍽!
브란트의 발이 기사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걷어찼다.
기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듯 땅을 향해 수직으로 넘어졌다.
쿵!
순간 무도관이 정적에 휩싸였다. 이미 네 명의 수련 기사들은 기사들에게 패하거나 항복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대련에서 수련 기사 하나가 기사를 쓰러뜨리는 이변을 연출해 냈던 것이다.
“맙소사, 발차기라니!”
기사 중 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네 명의 기사들이 쓰러진 동료 기사의 상태를 살폈다.
“기절했을 뿐이다.”
“프레드, 정신 차려! 짝짝!”
동료 기사가 그의 뺨을 때렸다.
잠시 후 브란트에게 관자놀이를 가격당한 기사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 이건 승복할 수 없다. 다시 싸우겠다.”
프레드가 브란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한 번 급소를 가격당하면 회복하는데 몇 시간은 걸렸다. 그러나 프레드는 막무가내로 괜찮다며 자신이 싸우겠다고 했다.
“프레드, 내가 대신 싸워 주마.”
그때 네 명의 기사 중 한 명이 나섰다.
“베이튼!”
보조 기사들의 조교를 맡고 있던 기사들 중 가장 강한 베이튼이 나서자 프레드도 더 이상 억지를 피우지 않았다.
“기사 간의 대련에서 발을 사용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다. 해서 내가 다시 너와 대련을 하고자 한다. 승낙하겠나?”
베이튼이 브란트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교관인 라울이 브란트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기사가 당한 마당에 그 동료 기사가 브란트에게 좋은 감정일 리 없었다. 틀림없이 브란트가 크게 다칠 터였다.
“좋습니다.”
라울이 말렸지만 브란트는 무슨 생각인지 기사 베이튼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러자 베이튼이 브란트에게 말했다.
“이봐. 그만 본 실력으로 싸우는 게 어때?”
“…….”
베이튼의 말에 주위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브란트는 묵묵부답 그냥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서 있었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하지.”
베이튼이 먼저 자신의 검에 오러를 주입시켰다.
우우우웅!
베이튼의 검에 붉은 오러가 씌워졌다.
“무, 무슨……?”
라울은 깜짝 놀랐다. 보조 기사와의 대련에 어찌 기사가 오러를 사용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동시에 브란트의 검에서도 푸른 오러가 씌워졌다.
“저, 저…….”!
교관 라울을 비롯해서 보조 기사들 모두 브란트의 검에 맺힌 오러를 보고 경악했다.
“과연, 내 생각대로군.”
베이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브란트를 향해 다시 말했다.
“알량한 실력을 감추고 있으면 모를 줄 알았나? 흥! 내가 너의 그 오만을 꺾어 주마. 차앗!”
베이튼은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몸을 날리며 오러가 맺힌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브란트가 옆으로 스르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검을 돌려 베이튼의 검 옆면을 때려 튕겼다.
파파팟!
오러가 맺힌 검끼리 부딪치자 붉고 푸른 불똥이 튀었다.
카카카캉!
파파파팟!
베이튼이 주로 공격을 했고 브란트는 묵묵히 그 공격을 막았다. 브란트는 그러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 베이튼의 공격을 사전에 봉쇄하며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저, 저럴 수가……!”
“저자의 실력이 베이튼과 막상막하라니.”
브란트에게 이미 당한 기사 프레드와 나머지 3명의 기사들 모두 보조 기사 브란트의 실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브란트를 상대하는 기사 베이튼이었다.
‘뭐가 이렇게 강해!’
브란트와 싸우면 싸울수록 베이튼은 자꾸 주눅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브란트는 딴엔 숨긴다고 숨기고 있었지만 소드 마스터의 살기를 은연중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브란트는 베이튼이 발을 사용하는 것이 기사로써 명예롭지 못하다는 말에 찬성할 수 없었다.
검술이 반드시 검만 사용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단지 오러 때문에 상대적으로 검의 비중이 더 커진 것뿐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고 하려는 듯 브란트가 움직였다.
브란트가 파고들어 오자 베이튼은 반대로 뒤로 물러났다.
그때 브란트가 몸을 솟구쳤다. 그리고 베이튼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베이튼은 당연히 검을 쳐올려 브란트의 검을 막았다.
챙, 퍼억!
검끼리 충돌하는 소리와 타격음이 동시에 무도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나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이튼이 보였다.
베이튼의 입에서 얕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윽!”
베이튼이 브란트의 검을 막을 때 브란트의 발이 비어 있던 베이튼의 가슴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이 무슨……?”
가슴을 차여 아프다기보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베이튼이 뭐라 말하기 전에 이번에는 브란트의 검이 베이튼의 왼쪽 옆구리를 휩쓸었다.
부웅!
피하기 늦은 상황이라 베이튼은 검을 세워 브란트의 검을 막았다.
챙, 퍼억!
다시 검의 충돌음과 함께 베이튼의 몸이 허공에 ‘부웅’ 떠올랐다.
이번에도 브란트가 베이튼의 옆구리에 검으로 휘두름과 동시에 베이튼의 왼 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허억!”
베이튼은 다리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쿵!
그리고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런 베이튼의 목에 어느새 브란트의 검이 마중 나와 있었다.
“검을 쓸 때 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러에 발이 잘릴까 두려워서다. 그런데 세상에는 발이 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사들도 있거든. 그러니 발을 사용하면 명예롭지 못하다는 네 생각은 틀렸다. 그리고 내 오만을 꺾겠다고 했던가? 어쩌지, 네 자존심만 꺾인 것 같은데?”
브란트의 말에 베이튼이 얼굴을 찌푸렸다. 비록 믿기지는 않지만 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졌다.”
베이튼이 깨끗하게 승복을 하자 무도관에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100명의 보조 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