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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3. 두 번째 기사(3)
자신들과 같은 보조 기사 브란트가 정식 기사 2명을 쓰러뜨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5명의 기사들이 먼저 무도관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교관 라울이 브란트를 쏘아보며 말했다.
“따라와라.”
브란트는 교관 라울을 따라 교관실로 향했다.
“오러를 사용할 줄 알았나?”
“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지?”
“묻지도 않았잖습니까?”
“이 괴물 같은 놈.”
라울은 뭔가 서류를 열심히 작성했다. 그리고 그 서류를 브란트에게 건네며 말했다.
“단장님께 이 서류를 건네도록.”
라울의 눈빛은 어느새 자카로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전 그럼 내일부터 여기 오면 안 되는 겁니까?”
브란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아는군.”
라울의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브란트는 이 자리에 더 있다간 그 불길에 휩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라울로부터 서류를 받아들고, 즉시 교관실을 빠져나갔다.
브란트는 정확히 10일 만에 다시 크라이머 백작가의 기사 단장 가르딘 앞에 나타났다.
가르딘 단장은 보조 기사 교관 라울이 보낸 서류를 보고 힐끗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오러를 사용할 줄 안다고?”
“네.”
“왜 진작 말하지 않고?”
“제가 기사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기사에도 수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든 아니든 기사인건 마찬가지였다. 이를 확인하지 않은 건 순전히 가르딘의 실수였다.
“그렇군. 내 부주의야, 인정하지. 내일부터 기사관에서 수련을 하도록. 참, 공방에 가서 필요한 무장은 갖추고.”
“알겠습니다.”
브란트가 오러를 사용한 이상 더 물어보고 자실 것도 없이 브란트는 크라이머 백작가의 정식 기사가 되었다.
체드 K. 레밍턴이란 이름으로 키로프 남작의 기사였던 그가 새로운 브란트 드 크라이머란 두 번째 기사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기사가 되면 더 이상 교관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훈련을 하되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기사단 단체 훈련을 받았다.
기사단 단체 훈련은 크게 마상 훈련과 진법 훈련으로 나뉘었다.
마상 훈련은 말 그대로 말을 타고 이뤄지는 훈련이고, 진법 훈련은 대열을 갖추고 밀집대형으로 적을 방어하기 위한 훈련이다.
두 훈련 모두 풀 플레이트 메일에 육중한 무게의 창과 방패, 검을 소지한 채 훈련을 받기 때문에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기사들인 만큼 그 정도 훈련은 끄떡없이 견뎌 냈다.
질풍 기사단은 특히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최강의 기사단으로 그들의 마상 돌격과 밀집대형은 공격과 방어에서 단연 최고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그 유명세를 지키기 위해서 질풍 기사단은 매일 마상 훈련과 진법 훈련을 받았다.
브란트도 크라이머 백작가의 기사가 된 이상 질풍 기사단의 단원으로 이제 매일 마상 훈련과 진법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해서 질풍 기사단의 기사들이 착용하는 풀 플레이트 메일에서 시작해 창, 방패까지 모두 세트로 제작해야 했다.
다행히 백작가의 공방에 가니 제작해 놓은 풀 플레이트 메일이 브란트에게 꼭 맞았다.
“창과 방패는 내일 아침까지 마련해 놓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기사관으로 창과 방패를 갖다 주게.”
“그렇게 하지요.”
공방의 대장장이의 대답을 듣고 브란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브란트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말을 타고 기사관으로 향했다.
기사관에 도착하자 마침 대장장이가 창과 방패를 건넸다.
그 창과 방패를 들고 브란트는 기사관 앞에 모인 80명의 질풍 기사단에 들어갔다.
“1조 20명, 출정준비 끝.”
“2조 20명, 출정준비 끝.”
“3조 20명, 출정준비 끝.”
“4조 21명, 출전준비 끝.”
브란트는 일단 4조에 들어갔다. 1, 2, 3조는 기사 조장이 있었지만, 4조는 아직 기사 조장이 없었다. 그래서 4조 기사 중 최연장자인 기사 베르토프가 현재 임시로 4조의 기사 조장을 맡고 있었다.
질풍 기사단의 마상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가르딘 단장이 기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4조 조장 선발까지 딱 20일 남았다. 기사 조장에 도전할 기사는 얼마든지 도전해도 좋다. 10일 후 1차 토너먼트를 통해서 최종 8명의 기사 조장 후보를 선발할 것이다. 오늘부터 토너먼트 참가 신청을 받는다. 자신의 실력이 기사 조장이 될 정도라고 생각하는 기사들은 반드시 참가해서 본인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토록 하라.”
가르딘 단장의 말이 끝나자 각 조장들이 조원들을 이끌고 백작가 뒤에 있는 마상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대열을 갖춘 후 돌격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또 말에서 내려 방패로 방벽을 만들어 적을 막는 진법 훈련도 실시했다.
그렇게 오전에 기사 훈련을 마침 기사들은 몸을 씻고 점심을 먹은 후 각자 개별 수련에 들어갔다.
브란트 역시 수영과 마나 로테이션을 마친 후 무도관에서 가볍게 검술로 몸을 풀었다.
“이봐, 신청서 낼 거야?”
“당연하지. 이번에는 작년과 달리 토너먼트에 마상 창 대결이 포함되었잖아. 이래 봬도 내가 말 하나는 잘 타잖아. 혹시 알아 토너먼트 결선에 올라갈지?”
“쳇, 꿈도 야무지다. 여기서 너보다 승마술이 떨어지는 기사가 몇명이나 있다고. 말 타는 건 다 비슷해. 오히려 힘이 좋은 녀석이 유리하지.”
“그런가? 그럼 피터슨이 제일 유리하겠군.”
“맞아. 피터슨은 힘과 검술에서 단연 발군이니 말이야.”
“아무튼 다 참가 신청하라고. 어차피 그때 봐서 대전 운이 나쁘면 포기하면 되잖아.”
“그래. 식사 끝내고 다 같이 가자.”
브란트는 그때 기사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사 후 다른 기사들과 같이 우르르 조장 선발 토너먼트 신청소에 가서 참가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그 사실도 까마득히 잊고 기사 훈련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그러다 10일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4. 토너먼트Ⅰ(1)
토너먼트에 참가 신청을 한 기사의 수는 브란트까지 모두 64명이었다.
첫날 토너먼트는 32개조로 나뉘어 치러졌다. 브란트도 대진표를 받았다.
“K조.”
그리고 자신이 싸울 상대가 누구지 살폈다.
“데네브?”
기사 중에서도 잘 모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브란트의 상대 기사 데네브는 브란트의 실력을 잘 알았다. 브란트는 기사 프레드와 베이튼을 대련에서 이겼다.
프레드는 몰라도 베이튼은 기사들 중에서도 중급 실력은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브란트의 상대인 데네브는 베이튼보다 실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데네브가 먼저 기권을 해 버렸다.
“기권승이라니?”
브란트는 어이가 없었다. 브란트는 지금의 기사 생활이 안정되고 편했다.
‘지금 나는 나의 생활에 만족한다. 기사들과 어울리는 것도 록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도 수영을 하고 늦은 저녁 책을 읽는 것도 너무 즐겁다.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주위엔 참 많은 것 같구나.’
감성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브란트는 딱 지금이 좋았다.
그는 당분간 이렇게 지내며 안정을 취하는 것도 좋겠다고 판단했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뛰기 위해 지금은 움츠릴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기사 조장 따윈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해서 브란트는 아예 토너먼트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먼저 기권을 해 버리는 바람에 브란트는 자동으로 첫날 토너먼트를 통과해서 32명이 겨루는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돼 버렸다.
“뭐, 내일 참석하지 않으면 되겠지.”
하지만 다음 날에도 브란트는 기권승을 거뒀다.
어제 하도 치열하게 싸워 부상으로 브란트의 상대 기사가 또 기권을 해 버린 것이다.
이길 때는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니 뼈에 금이 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도 브란트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기사 단장인 가르딘이 16명의 토너먼트 진출자들을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16강부터는 백작님께서 직접 참관하신다. 그러니 한 명도 빠짐없이 토너먼트에 참가해 주기 바란다. 백작님께서 귀한 손님들도 오신다고 하셨다. 토너먼트에 참가 안 하는 놈하고 대충 싸우는 놈이 있으면 나한테 반쯤 죽을 줄 알아.”
가르딘 단장이 내일 승부를 겨룰 16명의 기사들을 불러 놓고 대놓고 협박을 했다.
덕분에 브란트는 내일 토너먼트에 참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젠장, 기사들이 무슨 광대야 뭐야.”
브란트가 불평을 해 봐야 아무 소용없었다.
다음 날, 브란트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마상 창과 방패를 들고 출전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브란트도 결국 가르딘 단장의 협박에 광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휴우!”
브란트가 길게 한숨을 내 쉬고 있을 때, 백작가 뒤 기사단의 마상 훈련장에 간이 울타리가 쳐 지고 관람석이 마련되었다.
세력 있는 귀족가에서는 자신의 기사들의 위용을 알리기 위해 매년 유력 귀족들을 모아놓고 마상 창 시합을 열었다.
마상 창 시합은 검투장이 사라진 후 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합이 되었다.
마상 창 시합의 우승자에게는 귀족의 작위까지 내려질 정도였다. 때문에 각 기사단은 수련만큼이나 마상 창 시합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사단을 보유한 귀족가에서는 매년 여러 가문의 기사들을 초청해서 성대하게 마상 창 시합을 열었다.
크라이머 백작가 역시 이런 연례 행사를 빠뜨릴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질풍 기사단은 티모스 제국 최강의 기사단이다 보니 그 관심은 더욱 컸다.
그래서 제국의 황태자인 앤드류와 재상인 달턴 공작을 비롯해, 질풍 기사단의 아성에 도전하는 경쟁 기사단을 보유한 유력 귀족들이 많이 구경을 온 상태였다.
크라이머 백작은 이런 가식적인 행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기사단이란 명성이 중요했다. 그 명성은 전쟁터에서 얻어지지만 지금과 같은 평화의 시기에는 각종 시합을 통해 명성을 유지해야 했다.
크라이머 백작은 이왕 기사 조장을 뽑는 마당에 아예 마상 창 대결을 넣어서, 귀족가의 연례 행사인 마상 창 시합을 가름하려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토너먼트 대결이었다.
관람석 최상단, 제국의 황태자 앤드류와 재상 달턴 공작과 함께 마상 창 시합의 주인 자격으로 크라이머 백작이 앉아 있었다.
그때 황태자 앤드류가 말했다.
“하하하. 작년처럼 크라이머 백작가에서 마상 창 시합을 열지 않는 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오.”
그러자 재상인 달턴 공작이 그 말을 받아서 서슴없이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허허허, 그렇습니다. 올해도 마상 창 시합을 열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질풍 기사단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을 겁니다.”
달턴 공작의 말에 크라이머 백작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웃은 얼굴로 말했다.
“두 분께서 질풍 기사단을 아끼시는 마음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부디 즐겁게 보시고, 충고하실 바가 있으시거든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개선해서 더욱 훌륭한 기사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격식을 갖춘 크라이머 백작의 말에 앤드류 황태자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달턴 공작은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크라이머 백작을 쳐다보다가 정작 크라이머 백작과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그 시선을 시합장으로 돌렸다.
크라이머 백작가의 마상 창 시합은 이미 이틀 전에 시작되었다.
64강과 32강 시합이 양일간에 걸쳐 시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시합들을 관람했다.
크라이머 백작은 모든 사람들이 시합을 볼 수 있게 백작가 뒤 마상 훈련장을 개방했다. 그리고 예선 마지막 날인 오늘은 황태자와 재상까지 참석했다.
이번 예선이 끝나고 나면 일주일 후 8명의 기사들이 승부를 겨루는 본선이 시작되는데, 그때는 황제가 직접 참관하기로 되어 있었다.
크라이머 백작은 최종 결승전에서는 마상 창 대결을 없애고 결투 형식의 1대1 검투 대결을 통해서 우승자를 선발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