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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4. 토너먼트Ⅰ(2)


“어제 시합 봤어?”
“당연하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 과연 질풍 기사단이야. 대단해.”
“한 시합도 놓칠 시합이 없지?”
“응, 모두 박진감 넘치는 시합이었어. 그중에서 특히 그 덩치 큰 기사 있지?”
“아, 피터슨 경 말이로군.”
“맞아. 그 피터슨이란 기사 정말 대단하던데.”
“그래? 나는 그레이슨 경이 마음에 들던데.”
마상 창 시합이 벌어지면 언제나 인기 있는 기사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틀에 걸쳐 벌어진 토너먼트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마음에 드는 기사를 정하고 그 기사를 응원했다.
그런 기사들 중에서 단연 인기가 있는 기사는 키가 2미터가 넘고 덩치도 좋은 피터슨이었다.
피터슨은 쇼맨십도 좋아서 시합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흥분에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런 피터슨의 시합이 맨 마지막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피터슨 경과 싸울 브란트란 기사는 어때?”
“브란트?”
“어? 나 그 브란트란 기사가 싸운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맞아. 나도 이틀간 시합을 쭉 봤지만 그런 기사 이름도 들은 적이 없어.”
“잠깐, 그러고 보니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기권승을 거둔 행운의 기사가 한 명 있다더니 바로 그 기사의 이름이 브란트였어.”
“뭐야, 시시하게. 이건 싸움도 안 되잖아.”
“하하하. 피터슨 경이 단 창에 날려 버리겠는 걸.”
“얼마까지 날아갈까?”
“이번에는 관중석까지 날려 버리지 않을까?”
“관중석? 하하하하!”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마지막 피터슨의 시합에 집중된 채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뿌우우우!
마상 창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양쪽 대기실에 대기 중이던 16명의 기사들이 긴장한 채 가장 앞선 순서의 기사 둘이 양편에서 말을 타고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마상 창을 겨누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심사관이 양쪽 기사의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자 황태자인 앤드류가 하얀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와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마상 창 시합장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놀라 말들이 흥분했다.
히히히힝!
기사들이 제어하고 있었지만 말들은 점점 더 콧김이 세지고 있었다. 그때 황태자가 들고 있던 손수건을 놓았다.
“타앗!”
“달려!”
순간 양쪽 기사가 일제히 말을 몰아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말들이 점차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두 기사는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던 두 기사는 격돌할 만한 거리에 이르자, 동시에 얼굴 가리개를 내려 쓰며 손에 든 마상 창을 상대의 기사의 방패를 향해 겨누었다.
두 개의 마상 창이 정확히 두 기사의 방패에 명중했다.
콰앙!
굉음이 울리며 두 기사 모두 말 위에서 휘청거렸지만 둘 다 유연한 허리로 충격을 줄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두 기사를 태운 말들이 서로 교차하며 지나쳤다.
“와아아아!”
마상 창 시합장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두 기사는 말 머리를 돌려 다시 돌격 자세를 갖췄다. 그리고 힘차게 상대 기사를 향해 내달렸다.
두두두두!
“와아아아!”
이렇게 기마의 말발굽 소리와 관중들의 열호와 같은 함성 속에 크라이머 백작가의 기사 조장을 뽑는 16강 토너먼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상 창 시합은 큰 이변 없이 승패가 갈리며 착착 진행되었다.
질풍 기사단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왜 티모스 제국 최강의 기사들인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매 경기마다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 넘치는 시합들을 펼쳤다.
“정말 대단해. 말을 달리는 속도와 부딪칠 때 그 힘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 왔던 그 어떤 마상 창 시합보다 한참 우위에 있어.”
“이봐, 그래서 최강 질풍 기사단이잖아.”
숨 가쁘게 진행된 시합은 어느새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상 창 시합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기사 피터슨의 경기가 이제 곧 치러질 예정이었다.
“기사 브란트. 출전 준비해 주십시오.”
심사관의 말에 대기실에 앉아 있던 브란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합장으로 걸어 나갔다.
“와아아아, 피터슨경이다.”
“저 덩치 좀 봐.”
“엄청나군. 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얼마나 대단할까?”
“이봐, 앞선 피터슨 경기 못 봤어?”
“응, 일이 바빠서.”
“피터슨 경을 상대한 두 명의 기사 모두 한 번의 차징에 다 낙마했어.”
“그래? 그럼 싱겁게 끝났겠군.”
관객 한 명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그 옆에 있던 관객이 흥분해서 말했다.
“무슨 말이야. 두 기사 모두 일어나서 검을 뽑아 들었지. 그러자 피터슨 경도 말에서 내려서 그 기사와 마저 결투를 벌였지. 결국은 피터슨 경이 이겼지만 치열한 검투였어.”
“우와. 과연 질풍 기사들이로군.”
기사 피터슨의 등장에 시합장은 한층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런 시합장의 분위기를 보고 앤드류 황태자가 말했다.
“하하하. 결승도 아닌 시합인데 이런 반응이라니. 과연 질풍 기사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재상?”
앤드류 황태자가 불쑥 재상인 달턴 공작에게 말하자 재상이 못내 대답했다.
“그, 그렇군요.”
“피터슨이라고 했습니까? 저 덩치 큰 기사의 이름이?”
이번엔 앤드류 황태자가 크라이머 백작에게 물었다.
“네. 이번 시합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입니다.”
크라이머 백작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하하하. 크라이머 백작께서 칭찬하시는 것을 보니 대단한 기시인 모양이군요.”
크라이머 백작이 피터슨에 대해 더 자랑을 늘어놓으려 할 때 심사관의 양측 기사 소개가 있었다.
“마상 창 시합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무적의 기사 피터슨과 기사 브란트의 시합을 곧 시작하겠습니다.”
크라이머 백작은 피터슨의 상대가 브란트란 소리를 듣고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그때 눈치 빠른 달턴 공작이 크라이머 백작을 보며 말했다.
“피터슨 경과 싸울 기사 역시 실력이 출중한 모양이군요?”
달턴 공작의 말에 앤드류 황태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크라이머 백작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정말 피터슨 경과 싸울 기사도 그렇게 대단한가요?”
크라이머 백작은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질풍 기사들은 모두 강합니다. 단지 누가 시합 중 실수를 적게 하는가로 승패가 갈리지 그 실력에는 큰 격차가 없습니다.”
크라이머 백작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하자 노련한 달턴 공작이 끝까지 크라이머 백작을 물고 늘어졌다.
“그럼 크라이머 백작께서는 내기를 건다면 누구에게 판돈을 걸 생각입니까?”
크라이머 백작은 그 질문이 불만스러운 듯 달턴 공작에게 입술을 실룩거려 보였다. 그때 앤드류 황태자가 그를 쳐다보자 이내 얼굴을 고치며 대답했다.
“하하하. 두 기사 모두 충성스런 저희 크라이머 백작가의 기사들인데 어찌 내기에 돈을 걸 수 있겠습니까?”
크라이머 백작의 말에 앤드류 황태자가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
“재상의 말씀은 크라이머 백작의 생각을 물은 것이 아닙니까? 그냥 누가 더 강한지 크라이머 백작의 견해를 말해 주면 될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앤드류 황태자의 말에 달턴 공작은 조소를 머금었고 크라이머 백작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황태자 전하. 저는 피터슨 경이 이긴다고 보는데 전하께서는 어떠십니까?”
달턴 공작이 기분이 좋아져서는 앤드류 황태자에게 물었다.
“내 생각도 공작과 같습니다. 저 두 기사의 덩치를 비교해 보세요. 벌써부터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에 달턴 공작이 크라이머 백작을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
“크라이머 백작, 혹시 이견이 있습니까?”
달턴 공작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크라이머 백작이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브란트 경이 이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앤드류 황태자가 깜짝 놀랐다.
“네에!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황태자의 물음에 크라이머 백작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이유는 시합이 끝나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황태자와 달턴 공작이 능청스럽게 웃고 시합장을 바라보고 있는 크라이머 백작에게 뭐라 더 말을 하려는 순간 마상 창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기사관에서 수련을 받으며 매일 마상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브란트도 예전 기사 시절의 승마 실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종자의 도움을 받아 말 위에 올라탄 브란트는 마상 창과 방패를 챙겨 들었다. 그러자 잠시 후 심사관이 시합을 진행해도 좋을지 물어 왔다.
브란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반대편 상대 기사 피터슨은 묵직한 마상 창을 한 손으로 들어 머리 위로 크게 휘두르며 괴력을 과시했다.
“와아아아!”
피터슨의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더욱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군.’
브란트는 처음 시합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이도 왔군.’
주위 눈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마당이었다.
‘쳇, 질 수 없는 시합인가?’
기사에게 명예란 중요했다.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의 공식적인 시합에서 패한다면 기사 브란트의 명예는 흙탕물에 빠진 신세가 될 터였다.
심사관의 요란한 소개가 있은 후 나팔 소리가 크게 사방으로 울렸다.
뿌우우우우!
“타앗!”
상대인 피터슨이 괴성을 내지르며 먼저 거구의 몸을 최대한 말에 밀착시키고는 마상 창으로 브란트의 방패를 겨냥한 채 달려오고 있었다.
브란트도 지체 없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렸다.
두두두두!
두 기사 간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두 기사가 막 격돌할 즈음 피터슨이 갑자기 마상 창을 올려 브란트의 투구를 겨냥했다.
피터슨은 앞선 두 시합에서 마상 창으로 상대 기사의 방패를 가격했다.
때문에 이번 상대인 브란트도 당연히 피터슨이 자신의 방패를 마상 창으로 때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피터슨은 바로 그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인 브란트는 피터슨이 앞서 누구와 싸웠는지 본 적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놀랄 것도 없었다.
마상 창으로 상대의 투구를 찌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하면 방패보다 큰 데미지를 상대에게 입힐 수 있었다.
평범한 실력의 기사들은 흔들리는 말 위에서, 방패보다 훨씬 작은 상대의 투구를 겨냥해서 찌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피터슨은 질풍 기사단의 일원으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아주 나빴다. 하필 브란트이라니 말이다.
피터슨은 정확히 자신의 마상 창을 브란트의 투구를 향해 찔러 넣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말 위에 드러누우며 아슬아슬하게 피터슨의 마상 창을 피했다.
그때 브란트의 마상 창이 빠르게 피터슨의 말 옆구리를 스쳤다.
파팟!
“헉!”
순간 맹렬하게 공격을 가했던 피터슨이 갑자기 말 위에서 휘청거렸다. 중심을 잃고 낙마하려 하자 피터슨은 들고 있던 마상 창을 버리고, 그 손으로 말머리를 껴안았다.
그렇게 겨우 말 위에서 자세를 잡은 피터슨의 왼쪽 발 등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브란트가 피터슨의 마상 창을 피하면서 말 옆구리의 등자 이음매를 끊어 버린 것이다.
두두두두!
피터슨이 중심을 잡고 말 머리를 돌리는 사이 브란트는 이미 피터슨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었다.
“치잇!”
피터슨은 마상 창이 없었지만 방패만 들고 일단 돌격을 했다.
방패로 마상 창을 받아 내며 힘으로 브란트를 낙마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승부는 말 아래에서 검투로 결정지을 요량이었다.
그때 브란트가 고맙게도 피터슨의 방패를 향해 마상 창을 겨누고 달려왔다.
두두두두!
‘됐다.’
충돌하는 순간 피터슨은 있는 힘껏 방패를 밀어 브란트를 낙마시키려 했다.
그러나 방패를 향해 찔러 들어오던 브란트의 마상 창이 갑자기 피터슨의 얼굴로 방향을 바꾸었다.
“허억!”
피터슨은 이내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마상 창의 둥그런 끝 부분을 보고 기겁했다.
머리를 피할 여유도 없이 브란트의 마상 창은 피터슨이 쓰고 있는 투구를 강하게 가격했다.
쾅!
굉음과 함께 피터슨은 투구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에 허공에 붕 뜨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거구의 피터슨이 허공에서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관람석을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쿠웅!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나가떨어진 피터슨은 충격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