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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4. 토너먼트Ⅰ(3)


“와아아아!”
브란트가 피터슨을 낙마시키고 말을 멈춰 세우자 이내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정말 대단해!”
“저 거구를 날려 버리다니!”
“브란트! 브란트! 브란트!”
얼마 전까지 피터슨을 열호하던 관객들이 일제히 브란트를 목 놓아 소리쳤다.
꿈틀!
그 소리에 의식을 잃었던 피터슨이 정신을 차렸다.
피터슨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이내 시합장에 다시 정적이 찾아 들었다.
브란트는 피터슨이 일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창!
피터슨도 이내 허리에 차고 있던 투 핸드 소드처럼 보이는 큰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가 기사이기 때문에 피터슨은 망설이지 않고 대검에 바로 마나를 주입시켰다.
우우우웅!
피터슨의 대검에 자줏빛 오러가 희미하게 맺혔다.
그러자 브란트의 검에서도 푸르스름한 오러가 맺혔다. 브란트와 피터슨은 검을 들고 천천히 접근해 갔다.
관객들은 그 모습을 숨 죽이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켜보았다.
차앙! 챙!
검과 대검이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무기에 서린 다른 색의 오러가 서로 작렬하며 불꽃이 튀었다.
파파파팟.
브란트와 피터슨은 빠른 속도로 부딪히며 서로 강렬한 일격을 주고받았다. 그 한 번의 공방으로 피터슨은 브란트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전과 같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무식한 공격을 퍼붓지 못했다. 대신 피터슨은 신중하게 브란트의 허점을 찾았다.
브란트는 피터슨에 비해 느긋했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마나 홀이 더 큰 것은 아니다.
피터슨은 브란트에 비해 훨씬 큰 대검에 마나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마나 소비량이 더 많은 것이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피터슨은 마나가 고갈될 것이고, 승리는 브란트의 차지였다.
브란트의 느긋한 모습에서 피터슨은 브란트가 노리는 것이 뭔지를 알 수 있었다. 피터슨이 이를 악물었다.
‘저놈이…….’
그러나 급한 쪽은 분명 피터슨이다.
“이얍!피터슨이 기합과 함께 브란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방향을 고쳐 잡고 있던 브란트에게 일직선으로 돌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브란트가 피터슨을 끌어들이기 위해 취한 행동일 뿐, 브란트는 망설이지 않고 피터슨의 대검을 맞받아쳤다.
창! 차앙! 창!
검끼리 연속적으로 부딪히며 자욱하게 불똥이 튀었다.
‘오러는 쓰면 쓸수록 빠르게 소진되지.’
브란트는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맞서면서 피터슨의 마나를 고갈시키고 있었다.
피터슨의 대검에는 엄청난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브란트는 묵묵히 그 대검을 막았다.
‘너도 사람이면 곧 내 검을 피하겠지.’
피터슨은 바짝 긴장한 채 자신의 힘을 믿고 대검을 여기저기 힘차게 휘둘렀다.
그가 사용하는 대검은 중병기였다. 그런 대검을 막다 보면 두 팔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브란트가 피터슨의 힘에 밀리는 순간 피터슨은 단숨에 브란트를 몰아붙여서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채앵!
아니나 다를까? 브란트가 충격을 받은 듯 뒷걸음질을 쳤다.
“하앗!”
피터슨의 대검이 브란트의 검의 밀쳐 내고 그의 어깨를 일직선으로 갈랐다.
그러나 브란트는 이미 피터슨의 검의 궤적을 슬쩍 벗어난 상태였다.
“이런……!”
브란트는 피터슨의 예상보다 훨씬 몸이 빨랐던 것이다. 브란트는 피터슨의 검을 피하며 피터슨이 조금이라도 쉬려 하면 지체 없이 공격했다.
“제길, 좀 맞아라!”
피터슨이 연신 분통을 터뜨리며 브란트에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브란트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관중석의 관객들은 두 기사의 치열한 접전을 정신없이 관전했다.
손아귀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태반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터슨의 오러도 위력을 잃어 갔고, 그의 몸동작도 굼떠지기 시작했다.
이미 10분이 넘게 대검에 오러를 유지했으니 몸 속의 마나가 고갈될 만도 했다.
브란트의 늘어지는 접전법에 피터슨은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헉헉!”
반면 브란트의 호흡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나를 적절히 제어한 덕분이다.
“이제 시작해 볼까?”
브란트는 이제 치고 빠지는 공격 대신 적극적인 공세로 돌입했다.
슈리리릭!
브란트의 과감하게 찔러 들어간 검이 피터슨의 대검과 맹렬한 공방을 벌였다.
창! 차차창!
피터슨의 마나가 고갈된 때문인지 브란트의 검도 이제 더 이상 대검에 밀리지 않았다.
휘청!
브란트의 힘이 실린 공격을 막아 낸 피터슨의 몸이 주르르 밀려났다. 브란트의 검에 실린 힘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상대의 약세를 눈치챈 브란트는 머뭇거림 없이 달려들어 맹공을 퍼부었다.
차자자자창!
폭발하듯 허공에 흩뿌려지는 푸른 불꽃들.
질풍 기사단의 기사 피터슨은 힘겹게 브란트의 공세를 하나하나 막아 냈다. 그의 놀라운 정신력에 브란트도 속으로 그를 칭찬했다.
그러나 피터슨은 대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마나가 소진되었고, 체력 또한 급격히 저하되어 갔다.
“타앗!”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듯, 연신 호통을 쳐 댔지만 이미 승산은 브란트에게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콰직!
피터슨의 대검이 힘없이 튕겨 나며 그의 갑옷 오른쪽 어깨에 충격이 전해졌다.
“큭!”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렬한 아픔에 피터슨은 이를 악물었다.
뒤이어 브란트의 검이 그의 얼굴로 날아왔다. 오른팔을 움직일 수 없어 피터슨은 왼팔로 대검을 고쳐 잡고 브란트의 검을 막았다.
챙!
브란트의 검이 피터슨의 대검을 후려치자 그 힘을 왼팔 하나 만으로 견디지 못한 피터슨이 검을 놓쳤다.
챙그렁!
대검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척!
그리고 브란트의 검이 피터슨의 목에 닿았다.
“져, 졌다.”
피터슨이 즉각 항복을 선언했다. 브란트가 검을 치우자 시합장 안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브란트는 그 함성에 가슴이 끓어올랐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브란트가 거구의 피터슨을 낙마시켰을 때 앤드류 황태자는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진 브란트와 피터슨의 검투를 넋을 놓고 쳐다보던 앤드류 황태자는 피터슨이 결국 대검을 떨어뜨리고 항복하자 자신의 신분도 잊고 관중들과 함께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 정말 대단하군요. 저 브란트란 기사 말이에요.”
앤드류 황태자가 잔뜩 흥분해서 크라이머 백작을 쳐다보며 말했다.
“…….”
크라이머 백작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러자 재상인 달턴 공작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라이머 백작은 저 브란트란 기사가 저렇게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런 겁니까?”
황태자의 물음에 크라이머 백작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브란트 경은 저희 가문의 정식 기사가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상 창 시합의 참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뭐, 뭐라고요?”
크라이머 백작의 말에 황태자와 달턴 공작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달턴 공작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기사가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저 정도 실력이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달턴 공작의 말에 황태자도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크라이머 백작이 진지한 얼굴로 황태자를 보고 말했다.
“전하, 제가 왜 브란트 경이 이길 것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경이 시합이 끝나고 나면 밝히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시합이 끝났으니 이제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브란트 경의 이름은 브란트 드 크라이머입니다.”
크라이머 백작의 말에 황태자의 얼굴이 환해졌고, 달턴 공작의 얼굴은 이내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하하하. 과연 그렇군요. 비록 기사가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브란트 경이 크라이머 백작가의 자제라면 충분히 강한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재상?”
앤드류 황태자가 재상인 달턴 공작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달턴 공작은 여전히 얼굴은 찌푸린 채 입꼬리만 웃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브란트는 졸지에 질풍 기사단 내에서도 유명한 기사가 되었다.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바로 앤트(Ant:개미) 기사였다. 개미는 자신보다 훨씬 큰 곤충도 가볍게 들고 다닌다.
브란트가 마상 창 시합에서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기사 피터슨을 날려 버리면서 생긴 별명이었다.
“앤트, 앤트, 앤트!”
‘이것도 그리 나쁘진 않군.’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브란트는 관중석에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유까지 부리며 천천히 기사 대기실로 들어갔다.
브란트는 한 번의 시합으로 마상 창 시합을 구경 온 모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또 토너먼트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5. 토너먼트Ⅱ(1)


앤트 기사라는 별명에 자신의 인기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정작 그 주인공인 브란트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가끔 록키가 뭐라고 브란트에 대해 떠벌렸지만 그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브란트는 평상시와 같이 생활했고 6일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봐, 단장님께서 찾으신다!”
수영장에서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던 브란트에게 동료 기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브란트는 수영을 멈추고 무자맥질을 하면서 그 동료 기사에게 물었다.
“왜 찾는데?”
“너만 아니라 토너먼트 최종 참가자 8명 전부를 불러 모으셨다.”
‘또 뭐야?’
브란트는 투덜거리며 물 밖으로 나온 후, 몸에 묻은 물기를 닦고 기사 단장실로 향했다.

가르딘 단장은 8강 토너먼트 진출자 8명이 모두 모이자 입을 열었다.
“내일 드디어 최종 토너먼트의 결승전이 치러진다. 오전에 8강전이 그리고 오후에 준결승전에 이어 저녁에 황제 폐하께서 참관하시는 자리에서 최종 결승전이 펼쳐질 것이다.”
가르딘 단장의 말에 브란트를 제외한 7명의 기사들의 얼굴에 비장함과 긴장감이 묻어났다.
“내일 멋진 시합이 펼쳐진다면 황제 폐하께서 최종 우승자에게 귀족의 작위를 내리실지도 모른다.”
“꿀꺽!”
가르딘 단장의 말에 기사들이 일제히 마른침을 삼켰다.
이때 브란트도 눈빛을 빛냈다. 브란트는 백작의 자제이지 백작은 아니었다. 현재 그는 귀족이지만 순전히 반쪽자리 귀족이었다.
그런데 내일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게 되면 정식 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귀가 솔깃한 얘기였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인 브란트는 언제든 자신의 진짜 실력을 밝히면 제국의 소드 마스터로써 그에 합당한 귀족의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
더 이상 귀족이 되는 것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쯧, 내 위치를 잊고 있었군.’
그 생각이 들자 이내 토너먼트 우승에 대한 열기도 식었다. 그러자 가르딘 단장이 그런 브란트에게 관심이 생길 만한 소리를 내뱉었다.
“전쟁이 없는 현 시점에서 기사가 언제 황제 폐하 앞에 설 수 있겠느냐? 또 황제 폐하로부터 직접 귀족 작위를 받는 영광을 누리겠느냐?”
가르딘 단장의 말에 브란트를 제외한 7명의 기사들이 모두들 활활 투지를 불살랐다.
브란트도 생각해 보니 이건 좋은 기회였다.
‘황제 폐하를 가까이서 뵐 수 있겠군.’
제국의 모든 권력은 황제로부터 나왔다. 브란트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면 어쨌든 황제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황제 폐하께 눈도장을 찍어 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