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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5. 토너먼트Ⅱ(4)


“결승에 진출했다.”
“이야!”
록키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
“상대가 누구예요?”
“기사 가렌.”
“아! 그 무지 빠른 기사 말이군요. 확실히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가 결승에 올라갔군요.”
재잘대는 록키를 브란트가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왜요? 제가 뭐가 웃겨요?”
자신을 보고 실실 웃는 브란트를 보고 록키가 말했다.
“아니, 숙제는 언제 하나 해서.”
“히익!”
록키는 오늘 중에 끝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후다닥 책상으로 달려갔다. 브란트는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결승에서 이기면 황제 폐하를 뵐 수 있는 건가?’
기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했다.
티모스 제국에서 기사로써 최종적으로 충성을 맹세할 존재가 바로 황제였다.
모든 권력의 정점이자 구심점인 황제!
그런 대단한 존재를 몇 시간 후면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생각에 브란트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6. 제국의 황제(1)


해가 지고 이내 어둑해졌지만 크라이머 백작가는 온통 불빛으로 환했다.
웅성웅성.
특히 시합장 쪽은 왁자지껄한 소리로 근처 사람의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 백작가의 뒤쪽에 마련된 마상 훈련장은 마상 창 시합을 위해 쳐 두었던 울타리가 모두 해체되었다.
대신 검투 시합을 위한 결투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 결투장이 바로 오늘 있을 토너먼트의 결승전이 펼쳐질 장소였다.
티모스 제국의 황제인 레기우스 1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결승전은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브란트와 가렌은 이미 결투장에 도착해서 초조하게 시합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기사대가 먼저 나타나고 뒤이어 황제를 상징하는 골드 드래곤이 조각 된 휘황찬란한 황금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차가 멈춰 서자 티모스 제국 최강의 기사로 알려진 황제 친위기사대장 리빙스턴 후작이 직접 마차 문을 열었다.
황제가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군중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 레기우스 황제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주위에 답례를 했다.
친위기사들의 엄중한 호위 속에 리빙스턴 후작의 안내로 관람석으로 걸어가던 레기우스 황제는 먼저 도착해 있던 각 대신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앤드류 황태자와 재상인 달턴 공작과 함께 관람석 최상석으로 올라갔다.
황제가 관람석에 모습을 드러내자 대결장 한가운데로 크라이머 백작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황제가 있는 관람석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 이렇게 친히 본가를 방문해 주셔서 저희 가문의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러자 황제도 큰소리로 말했다.
“크라이머 백작가의 기사들이 그렇게 뛰어나다 들었다! 해서 짐이 직접 보고 치하하러 왔노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크라이머 백작은 황제에 대한 격식을 갖추고 나서 황제가 관람석에 착석하자 직접 토너먼트의 결승전을 진행했다.
황제의 의전을 담당하는 궁내부 장관 포르테 백작이 특별히 크라이머 백작에게 부탁한 것은 가능한 한 시간 안에 모든 결승전을 끝내 달라는 것이었다. 해서 크라이머 백작이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직접 결승전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결승전을 치를 기사들은 나오라.”
잠시 후 기사 브란트와 기사 가렌이 대결장에 나타났다.
둘 다 평소 질풍 기사단에서 착용하던 흉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무기도 각자 한 자루의 검만 손에 들려 있었다.
황제에게 두 기사를 소개한 크라이머 백작은 두 기사를 대결장 한가운데 불러 놓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도록.”
브란트와 가렌이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크라이머 백작이 대결장에서 물러나자 곧바로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웅!
와아아아!
동시에 주위가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와 함께 브란트가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가렌도 천천히 검을 뽑았다.
브란트는 가렌의 검에 서린 푸른빛을 보고 그 검이 예사 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정도 검에 마나를 주입시키면 어지간한 검으로는 버티지도 못하겠군.’
브란트는 가렌이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저 보검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파괴적인 브란트의 오러 검에 대한 대책인 셈이다.

브란트는 사실 결승전에 참가하며 자신의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인 자신이 가렌 같은 기사에게 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앤트! 앤트! 앤트!”
“광속! 광속! 광속!”
개미 기사와 광속 기사를 연호하는 관객들을 요란한 함성 속에 브란트가 싸우기 위해 막 가렌을 쳐다보았을 때, 그의 귀로 냉랭한 가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할까?”
그러자 브란트도 심리전에 지지 않겠다는 듯 들고 있던 검을 까닥거리며 여유 있게 말했다.
“덤벼!”
그러자 가렌의 입가가 실룩였다.
“건방진… 타앗!”
기합 소리와 함께 가렌이 순식간에 브란트에게 접근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 검속이 어찌나 빠르던지 반짝하는 순간, 가렌의 검은 브란트의 얼굴 부분으로 짓쳐 들고 있었다.
가렌의 빠른 검격을 대비하고 있던 브란트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검을 들어 안면을 방어했다.
챙!
두 검이 부딪치자 불꽃이 피어났다.
대결장 주위로 많은 수의 횃불이 밝혀져 있었지만 대낮처럼 밝을 수는 없었다.
낮에 비해 훨씬 선명한 불꽃을 보고 관중들은 황홀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브란트는 가렌의 일격을 먼저 막아 낸 후, 반격으로 가렌의 자세를 허물어뜨려 제압할 생각이었다.
때문에 먼저 공격을 받자 이를 피하고 곧바로 반격을 위해 손에 힘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별안간 왼쪽 옆구리에 살기가 느껴졌다.
공격을 하려던 브란트는 본능적으로 검을 내려 왼쪽 옆구리를 보호했다.
차앙!
언제 움직였는지 가렌의 검이 브란트의 옆구리로 훑고 있었고, 다행히 브란트가 그 검을 막아 냈다.
이번의 예상치 못한 빠른 기습 공격에 브란트도 많이 놀랐다. 브란트는 힘껏 가렌의 검을 튕겨 내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을 정도로 박력 넘치는 시합을 보여 주었던 개미 기사가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관객들은 더욱 흥미진지한 눈으로 대결장을 주시했다.
“과연 결승답군.”
“젠장, 나는 광속 기사의 검을 보지도 못했다고.”
“그야말로 빛과 같군.”
“그런 빠른 검을 막아 내는 개미 기사도 대단해.”
가렌은 자신이 준비한 일격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거리를 좁혀 왔다.
몸놀림과 검속에서는 확실히 자신이 빠르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까다로운 상대로군.’
이런 상대는 소드 마스터의 순간 이동이나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기사인 브란트가 그런 소드 마스터의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가렌을 상대하기가 더 껄끄러웠다.
그렇다고 아주 상대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브란트는 소드 마스터답게 냉정을 되찾았다.
스팟!
그때 브란트의 검이 다시 반짝였다. 브란트는 신속하게 가렌의 빠른 검을 막았다.
차차차창!
자로 잰 듯 정교한 검격이 브란트를 몰아붙였다. 특히 사각을 찔러 들어오는 매서운 공격은 브란트도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처음에 많이 놀랐던 브란트도 어느새 싸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렌의 빠른 검이 서서히 그의 눈에 익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브란트의 검도 가렌 못지않게 빨라졌다.
차앙, 챙! 챙! 챙!
순식간에 십여 번의 검격이 교환되었다. 오러를 머금은 두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는데 그것이 워낙 빠르다 보니 불꽃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아!”
이를 악문 가렌은 검에 오러를 주입시켜 계속 휘둘렀다. 어렵사리 구한 보검이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가렌이 전력을 다하자 브란트가 그 힘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브란트의 함정이었다. 브란트는 가렌이 공격할 때 휘두르는 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이 좋다고 강한 것은 아니지.’
브란트는 일부러 오러의 힘을 뺐다. 그러자 가렌의 검이 브란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이 난 가렌이 더 거세게 브란트를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가렌의 마나는 점점 소비되고 있었다.
“타앗!”
가렌은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브란트의 배를 노린 일격이었다.
보통은 물러나지만 지금까지 브란트는 물러나는 것보다 막는 쪽을 선택해 왔다. 때문에 가렌은 브란트가 자신의 공격을 받아 낼 거라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브란트는 검을 똑바로 세워 막으려 했다.
“됐다.”
가렌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에다 마나를 주입시켜 선명한 오러 검을 형성시켰다.
보검에 최대한 오러가 맺히면 브란트의 검도 박살 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검이 부서지면 사실상 이 대결의 승부는 끝난 것이다.
푸캉!
불꽃이 튀기며 자세가 엇갈렸다. 브란트는 놀랍게 그 상황에서 검과 몸을 동시에 틀며 가렌의 검을 그대로 흘려보내 버렸다. 그리고 브란트는 검이 빗나간 뒤 자세가 헝클어진 가렌에게 잽싸게 왼 주먹을 내뻗었다.
브란트가 재차 검을 들어 공격했다면 몸동작과 검이 빠른 가렌이 충분히 그의 공격을 방어 해 냈을 터였다. 그러나 준비 동작 없이 몸이 얼킨 상태에서 바로 직선으로 내지른 브란트의 왼 주먹에 가렌은 속수무책 두 눈을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브란트도 준비되지 않은, 본능적으로 내지른 주먹인 만큼 제대로 힘을 실은 일격이 아닌 만큼 파괴력은 약했다.
퍽!
브란트의 주먹이 가렌의 입과 턱을 가격했다.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가렌의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그런데 피를 보자 가렌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
“이 자식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브란트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브란트에게 달려들었다.
브란트는 물 흐르듯 뒤로 물러나며 가렌의 빠른 검을 차분히 방어했다.
차차차차앙!
다시 대결장에 불꽃들이 춤을 추었다.
한참 정신없이 브란트를 몰아붙이던 가렌은 마나 홀의 마나를 절반 이상 소모하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이런, 내가 당했다!’
가렌은 여유 있는 브란트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흥분해서 필요 이상의 마나를 허비한 것을 깨달았다.
이를 악문 가렌이 검을 고쳐 잡았다.
이제 여유가 없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량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렌은 마지막 필살기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가렌은 모든 마나를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곧장 브란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앗!”
가렌이 살기를 뿌리며 덤벼들자 브란트도 약간 긴장한 듯 검을 고쳐 쥐었다.
챙! 차앙! 챙!
다시 접전이 벌어졌다. 가렌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브란트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브란트는 가렌이 상당한 마나를 소비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승부를 결정 짓기 위한 모험을 벌일 때가 되었다고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렌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가렌은 계속 자신의 검과 브란트의 검에 집중하고 있었다. 브란트를 공격하려면 브란트의 검보다는 브란트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다.
‘여전히 보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군. 좋아, 그럼 당하는 척해 주지.’
가렌은 어떻게든 브란트의 검을 박살 내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번처럼 브란트가 검을 흘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흠칫!
그때 재수 없게 브란트가 돌부리에 걸려서 중심이 무너졌다.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