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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6. 제국의 황제(2)


가렌은 전력을 다해 보검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오러가 선명하게 맺힌 보검이 그대로 브란트의 검을 후려쳤다.
쩡!
파파파팟.
브란트의 검이 박살이 나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겼다!’
가렌이 희열을 느낄 때, 그의 안면으로 브란트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헉!”
놀란 가렌이 급히 머리를 틀었지만 너무 빠른 브란트의 발차기를 피할 수 없었다.
퍼억!
그 일격이 어찌나 강했던지 가렌의 고개가 완전히 뒤로 젖혀지면서 그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크게 휘돌아 바닥에 처박혔다.
쿠웅!
“크윽!”
가렌은 충격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브란트가 몸을 낮춰 가렌의 발목을 걷어찼다.
“헉!”
가렌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오고 그의 몸이 또 공중에 부웅 떴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철퍼덕!
충격이 상당한 듯 가렌은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이 브란트가 가렌에게 다가갔다.
가렌은 두 차례에 걸쳐 몸에 타격을 입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검을 굳게 쥐고 있었다. 브란트가 그런 가렌의 팔을 걷어찼다.
빠각!
“크악!”
가렌도 결국 팔이 부러지자 고통에 겨운 비명과 함께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대신 가렌은 팔의 통증 때문에 정신을 되찾았다.
“크윽!”
브란트는 가렌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그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때 가렌이 브란트의 다리를 걷어차고 몸을 일으켰다.
퍽!
다리에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브란트는 가렌의 공격에 적잖게 놀랐다.
브란트는 뒤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이런 상태에서 공격을 가하다니 대단한 근성이군.’
팔이 부러지고 두 차례 땅바닥에 내쳐지며 받은 데미지가 상당히 커서 정신도 없을 텐데 가렌은 끝내 몸을 일으켰다.
‘과연 질풍 기사단의 기사다운 모습이다.’
브란트는 가렌의 투지와 집념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승부를 끝내기 위해 가렌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와아아아!”
“광속! 광속! 광속!”
“가렌! 가렌!”
가렌의 투지는 관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동정심에 관중들이 일제히 광속 기사 가렌을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일방적인 응원이 승부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가렌의 눈에 다가오는 브란트의 모습이 몇 개로 겹쳐 보였다.
그만큼 가렌이 입은 데미지는 컸다. 가렌의 머리에서 몸에게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가렌의 몸은 그것을 따라 주지 않았다.
브란트가 가렌의 정면에 섰다. 그러자 가렌이 주먹으로 브란트를 쳤다.
툭!
그러나 주먹으로 브란트를 때린 가렌이 오히려 뒤로 비틀거리며 밀려났다. 그것을 보고 순간 관중들이 조용해졌다.
브란트는 다시 가렌에게 다가갔다. 가렌은 또 주먹으로 브란트를 쳤다.
툭!
그러나 역시 밀려나는 것은 가렌이었다.
이미 가렌의 마나 홀은 텅 비어 있었고, 체력도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툭!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던 가렌은 결국 세 번째 브란트의 가슴에 주먹을 내지르고는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턱!
그런 가렌을 브란트가 감싸 안았다. 그리고 기절해 버린 가렌을 안아 들었다.
“와아아아!”
그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패배한 가렌을 바로 공격해서 쓰러뜨리지 않고, 기절할 때까지 기다려 준 브란트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앤트 기사 멋지다.”
“기사 브란트. 역시 진정한 우승자다운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크라이머 백작이 다시 대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란트는 대결장을 정리하러 나온 병사들에게 기사 가렌을 넘겼다. 그리고 크라이머 백작과 함께 대결장 한가운데 나란히 섰다.
크라이머 백작이 사방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우승자는 기사 브란트!”
크라이머 백작은 브란트의 오른손을 잡고 번쩍 치켜들었다.
“우와아아아!”
짝짝짝짝!
토너먼트의 최후 우승자인 브란트를 향해 관중들이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우레 같은 박수를 쳤다.
그때 관중석 맨 위에 앉아 있던 레기우스 황제가 일어나서 대결장으로 걸어 내려왔다.
황제의 주위에는 황제 친위대가 겹겹이 호위를 하고 있었고, 황제의 옆에는 리빙스턴 후작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잠시 후 황제가 대결장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이머 백작이 황제 곁으로 물러나자, 브란트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승을 축하한다. 기사 브란트.”
“황공하옵니다.”
황제의 축하의 말에 브란트는 살짝 가슴이 설레었다.
“머리를 들라.”
황제의 명령에 브란트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 훌륭한 무위를 보인 기사 브란트에게 짐이 적절한 포상을 하고자 한다. 기사 브란트에게 남작의 작위를, 그리고 끝까지 투지 있게 싸운 기사 가렌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각각 내리도록 하겠다. 리빙스턴 경, 검을 주겠나?”
황제의 옆에 있던 리빙스턴 후작이 자신의 검을 뽑아 두 손으로 황제에게 바쳤다. 그러자 황제가 그 검을 받아 들어 브란트의 오른쪽 어깨에 검을 올려놓았다.
“기사 브란트여, 그대의 풀 네임을 말하라.”
그러자 브란트가 차분히 자신의 풀 네임을 밝혔다.
“브란트 드 크라이머입니다.”
브란트의 대답에 황제도 그 옆에 있던 리빙스턴 후작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내 그런 기색은 지우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곧 황제가 브란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크음, 기사 브란트여. 그대는 주신 다온과 제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너의 충정을 믿노라. 티모스 제국의 주인인 황제 레기우스가 기사 브란트에게 라모스란 새로운 성과 함께 남작의 작위를 내리노라.”
“와아아아!”
황제가 브란트에게 작위를 내리자 관객들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작위 수여가 끝나자 황제는 검을 리빙스턴 후작에게 건넨 후 크라이머 백작에게 부럽다는 듯 말했다.
“백작은 복도 많구려. 이런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니 말이요. 아무튼 이런 행사를 주관하느라 수고가 많았소.”
황제의 말이 끝나자 크라이머 백작이 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때였다.
“폐하!”
작위 수여가 끝났음에도 계속 무릎을 꿇고 있던 브란트가 말했다.
“라모스 남작, 짐에게 할 말이 있는가?”
“부디 저에게 곁에서 폐하를 모실 기회를 주십시오.”
“무엄하다!”
돌발적인 브란트의 행동에 리빙스턴 후작이 살기 어린 눈으로 브란트를 쏘아보며 말했다.
브란트에게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어차피 제국에서 황제가 곧 권력이다. 그러니 황제 옆에 있으면 자연 최상류층 권력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브란트의 생각이었다.
“하하하! 라모스 남작의 충성심은 내 고맙게 받겠노라.”
황제는 그냥 가볍게 웃으며 넘어가려 했다.
이대로라면 브란트는 혈기 넘치는 기사로밖에 황제에게 인식되지 않을 터였다.
“폐하, 언제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 저를 찾아 주십시오.”
불쑥 브란트가 의미심장한 말을 더 했다.
“이놈이!”
소드 마스터인 리빙스턴 후작의 눈에서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소드 마스터의 살기는 자칫 주위 사람들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리빙스턴 후작은 그 살기마저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리빙스턴 후작은 살기를 브란트에게 집중시켰다.
그때 크라이머 백작이 슬쩍 브란트의 앞을 가로막으며 리빙스턴 후작의 살기를 소드 마스터인 크라이머 백작이 자신의 기운으로 흩어 버렸다.
“크라이머 백작!”
그러자 발끈하며 리빙스턴 후작이 크라이머 백작을 쏘아보았다.
“그만!”
그때 레기우스 황제가 리빙스턴 후작과 크라이머 백작을 말렸다.
“폐하, 저놈을 벌하게 해 주십시오.”
리빙스턴 후작이 강경하게 레기우스 황제에게 주청했다.
그러자 크라미어 백작이 즉시 나서 그의 아들인 브란트를 옹호했다.
“폐하, 철없는 기사의 충정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리빙스턴 후작과 크라이머 백작이 동시에 레기우스 황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하하하. 리빙스턴 후작, 이런 좋은 날 그렇게 인상 써서 좋을 게 뭐요. 그만 화를 푸시오.”
황제가 크라이머 백작의 편을 들자 리빙스턴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황제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리빙스턴 후작은 무조건 이를 수용해야 했다. 리빙스턴 후작은 일단 화를 누그러뜨리며 브란트를 쏘아보았다.
“네놈이 아니어도 폐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기사들은 여기 수두룩하다.”
리빙스턴 후작이 자신 휘하의 친위대 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브란트는 왜 리빙스턴 후작이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바로 눈치챘다.
‘권력을 나눠 갖지 않겠다는 뜻이로군.’
황제의 옆에는 자신과 그의 기사들이 있으니 다른 기사는 얼쩡거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브란트는 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뜻은 분명히 황제에게 전달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괜히 여기서 더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폐하. 어서 황궁으로 가셔야 합니다. 타국 사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궁내부 장관 포르테 백작이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다.
“알았다.”
황제는 떠나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렇게 막 한 걸음 내딛던 황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브란트에게 말했다.
“라모스 남작. 그대의 이름이 뭐라 했지?”
황제의 물음에 브란트가 즉시 대답했다.
“브란트입니다.”
“브란트! 좋은 이름이군. 그럼 다음에 보지.”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황제의 행동에 리빙스턴 후작과 그 휘하의 친위대 기사들의 표정이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황제가 크라이머 백작가를 떠나자 크라이머 백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앤드류 황태자와 여러 귀족들이 시합장에 남아 있었다.
“따라와라.”
크라이머 백작은 브란트를 데리고 귀빈들을 찾아가 일일이 인사를 했다.
브란트는 앤드류 황태자와 여러 귀족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크라이머 백작가의 치열했던 토너먼트도 막을 내렸다.



7. 제5조 질풍 기사단(1)


토너먼트가 끝난 다음날, 크라이머 백작은 그의 집무실로 브란트를 불렀다.
브란트가 집무실에 들어가니 크라이머 백작과 총관인 로베르토가 머리를 맞대고 뭔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브란트가 나타나자 이내 대화를 중지했다.
“이리 와라.”
크라이머 백작이 브란트를 가까이 불렀다.
“약속대로 우승했으니 너에게 제4기사 조장을 맡기겠다.”
크라이머 백작이 얘기하고 나자 바로 로베르토 총관이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브란트가 말없이 총관인 로베르토를 쳐다보았다.
“실은 제4조의 기사들이 라모스 남작님이 아닌 히스레이 경을 제4기사 조장으로 삼게 해달라고 청원을 해 왔습니다.”
“히스레이? 청원?”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브란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재빨리 생각했다.
히스레이라면 크라이머 백작의 두 귀족 부인이 낳은 3명의 아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이 무슨 청원 같은 것을 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