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6화
7. 제5조 질풍 기사단(2)


그들의 주군인 크라이머 백작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기사들이 말이다. 기사인 브란트로써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그에 대한 모든 궁금증은 로베르토가 바로 해소시켜 주었다.
“히스레이 도련님의 외가인 로마네스 자작가는 제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상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백작님께서 제4기사 조장을 뽑겠다고 공표하기 전부터 로마네스 자작가에서 기사들에게 은밀히 물밑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질풍 기사단의 기사 조장은 그 조에 속한 모든 기사들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질풍 기사단의 오랜 전통입니다.”
로베르토의 말을 듣고 브란트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지 크라이머 백작을 쳐다보았다.
“사실이다. 이는 처음 질풍 기사단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질풍 기사단의 각 조는 한 가족과 같다. 때문에 조장을 선출하는 것은 내가 하지만 그들이 거부하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네가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이상 기사 조장인 것은 변함이 없다.”
“기사 조장이 거느릴 기사들이 없다면 그게 무슨 기사 조장입니까?”
브란트의 말에 크라이머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4조 기사들을 만나 보시겠습니까?”
브란트가 4조 기사들을 설득해 보겠냐는 소리였다.
로베르토의 말에 브란트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을 싫다고 하는 기사들은 브란트도 필요 없었다.
“뭐 굳이 아쉬운 소리 할 생각 없습니다. 그들이 싫다면 히스레이를 제4기사 조장으로 삼으십시오.”
브란트가 너무 쉽게 포기하자 크라이머 백작과 로베르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냐?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
크라이머 백작이 되묻자 브란트가 말했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뭐냐, 말해 보거라.”
“우선 제가 기사 조장인 것은 확실히 변함없습니까?”
“물론이다. 넌 토너먼트의 우승자다. 그 어떤 기사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원들은 제가 직접 뽑겠습니다.”
“뭐?”
“수련 기사들과 보조 기사들 중 20명을 선발해서 그들로 질풍 기사단 5조를 만들겠습니다.”
어이없다는 듯 로베르토가 대화 중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식 기사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브란트가 너무도 자신 있게 말했다.
“일 년 동안 그들을 모두 정식 기사로 만들겠습니다.”
브란트의 말을 듣고 크라이머 백작과 로베르토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크라이머 백작가의 많은 일들을 처리해 온 두 사람은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심하던 크라이머 백작이 결심을 한 듯 먼저 고개를 끄덕이자, 로베르토도 수긍하겠다는 듯 머리를 살짝 조아렸다.
그러자 크라이머 백작이 브란트를 쳐다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좋다. 하지만 일 년 동안 네가 선발한 자들 중 한 명이라도 정식 기사가 되지 못한다면 너의 기사 조장 자격을 박탈하겠다. 그래도 좋으냐?”
지금 브란트가 하려는 것은 자칫 질풍 기사단의 기본 구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크라이머 백작도 쉽게 허락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브란트가 만약 그 일을 이뤄 낸다면 질풍 기사단의 정규 기사가 20명이나 더 늘어나게 될 터였다.
“좋습니다.”
브란트는 바로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자 크라이머 백작은 브란트에게 20명의 제5조 질풍 기사들을 선발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리고 집무실을 나가는 브란트에게 말했다.
“고맙다.”
만약 브란트가 계속 제4기사 조장이 되겠다고 버텼다면 크라이머 백작의 입장이 많이 곤란해졌을 터였다.
크라이머 백작가는 처가인 로마네스 자작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히스레이에게 4조의 기사 조장이 되려는 것은 포기하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랬다가 자칫 로마네스 자작가로부터 지원이 끊기기라도 하는 날엔…….
“이로써 제4조의 기사 조장 문제는 해결되었군.”
크라이머 백작의 말에 로베르토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정말 다행입니다. 히스레이 도련님께서 기사 조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로마네스 자작께서 알게 되면 더 많은 지원을 해 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아비로써 나는 그 아이에게 또 희생을 강요하고 말았군.”
크라이머 백작이 침통하게 말하자 로베르토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브란트 님께서는 어제 황제 폐하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봐야 이름뿐인 귀족이 아닌가?”
황제는 언제든 귀족의 작위를 내릴 수 있었다. 이때 황제가 내리는 작위는 귀족 명부에 그 이름이 오르지만 자신의 대에 한해서만 단승 귀족으로 기록되었다. 당연히 영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황제가 귀족의 작위를 남발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티모스 제국은 방대하게 넓은 영토를 가졌고 인구도 많았다. 단지 그 넓은 영토를 10명의 대영주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또 황제가 작위를 내리는 자들은 대게 수명이 짧은 기사들이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우직해서 자신이 귀족이라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도 드물었다.
무엇보다 그 기사들의 주군들인 귀족들이 바로 황제의 신하들이 아닌가?
“그래도 귀족은 귀족이 아닙니까?”
“씁쓸하군. 지금까지 해 준 것도 없는데 또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30년 만에 찾은 아들에게 면목이 없어진 크라이머 백작이었다. 그런 크라이머 백작을 보고 로베르토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백작님께서는 죽어 가던 브란트 님을 살리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내가 그녀석의 아비인데.”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브란트 님께 백작님은 부친이니까요.”
“…….”
“다시 기회가 오면 그때 잘해드리십시오.”
“휴우, 지금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군.”
크라이머 백작은 씁쓸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크라이머 백작으로부터 질풍 기사단 5조 기사 선발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은 브란트는 먼저 수련 기사 훈련장으로 움직였다.
“타앗!”
텅! 텅! 텅!
수련 기사들은 여전히 보조 기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 중이었다.
“거기 멈춰라!”
브란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수련 기사 교관 자카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충고했을 텐데. 여기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말이야.”
자카로가 으르렁거리며 브란트에게 말했다. 그는 정말 브란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브란트는 귀찮지만 자카로에게 자신이 왜 수련 기사 훈련장을 찾았는지 설명을 해야 했다. 브란트의 얘기를 듣고 자카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지, 지금 수련 기사들 중 정식 기사를 뽑겠다는 말이냐?”
“5조 기사를 뽑는다고 했지 정식 기사를 뽑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내가 황제 폐하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는 점도 유념해 주시면 좋겠군요.”
“흥! 라모스 남작! 그런 귀족 작위라면 나도 가지고 있다네. 나는 아마 마루스 남작이었던가? 어째 폐하께선 성을 내려도 매번 그렇게 촌스러운지. 쯧!”
자카로는 자신도 기사 조장이 될 때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했다고 했다. 보통 기사 조장에서 은퇴를 하면 크라이머 백작가의 가신으로 백작 령 영지의 영주가 되거나 교관이 되는데, 자카로는 교관으로 남은 경우였다.
“백작님이 허락하셨다니 알아서 데리고 가.”
자카로가 뭔가 떨떠름한 얼굴로 길을 내어 주자 브란트가 수련 기사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오오, 이게 누구신가?”
“개미 기사 브란트 경이시다.”
“라모스 남작님께서 여기 어쩐 일이래?”
얼마 전까지 자신들과 같이 훈련을 했던 브란트는 이제 어엿한 질풍 기사단의 기사 조장이 되어 있었다.
수련 기사들 전부 부러운 눈으로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브란트는 수련 기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제이콥을 찾았다. 제이콥은 역시 주위 소란에도 묵묵히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다.
“제이콥!”
브란트가 제이콥을 부르자 그제야 제이콥이 수련용 목검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 브란트를 발견하고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크라이머 백작의 혈육이신 라모스 남작님께서 어쩐 일로 미천한 평민인 저를 다 찾으시는지요?”
브란트는 제이콥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서 자신이 크라이머 백작의 혈육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제이콥이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네가 이름을 묻기에 내 이름만 밝혔을 뿐이다.”
“흥, 그러시겠지요. 저는 훈련이 바쁘니 용건을 빨리 말씀하십시오. 라모스 남작님.”
제이콥은 단단히 삐쳐 있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자신의 용건을 제이콥에게 말해야 했다.
“나와 함께할 5조 기사들을 뽑고 있다. 네가 내 기사가 되어 주면 좋겠다.”
“……!”
브란트의 말에 제이콥이 놀라 들고 있던 목검을 떨어뜨렸다.
“지, 지금 기사라고 하셨소?”
“그렇다. 일 년 안에 너를 정식 기사로 만들어 주겠다. 나를 따르겠나?”
제이콥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졌다. 그러나 이내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변했다.
“왜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겁니까?”
제이콥의 물음에 브란트가 바로 대답했다.
“믿을 수 있으니까.”
“내 뭐가 믿을 수 있다는 겁니까?”
“넌 내 친구잖아.”
“친구!”
제이콥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브란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당신은 나를 믿어 주겠다고 말한 첫 번째 귀족이요. 당신에게 내 운명을 맡기겠소.”
제이콥이 무릎을 꿇으려 하자 브란트가 바로 저지했다.
“멈춰. 아직은 아니다. 기사의 충성 맹세는 신성한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있어서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리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좀 더 나를 지켜 본 후 그래도 내게 충성을 맹세해도 좋다고 판단되면 그때 해라.”
브란트는 제이콥에게 더 신중하게 주군을 결정하라고 했다. 그런 브란트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며 제이콥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브란트는 수련 기사들 중 네 명을 더 뽑았다. 브란트가 그 네 명의 수련 기사를 선정한 이유는 그들의 잠재적 가능성과 검술에 대한 욕심, 그리고 우직함이었다.
브란트는 제이콥을 포함한 다섯 명의 수련 기사를 데리고 수련 기사 훈련장을 빠져나와 새로 배정받은 기사 숙소로 향했다.
일종에 기사 합숙소였는데 브란트의 요구로 앞으로 이곳에서 5조 기사들이 생활하게 될 터였다.
“이곳이 앞으로 너희들이 묵게 될 숙소다.”
브란트도 오늘 중 5조 기사 숙소로 방을 옮길 계획이었다.
“짐들 챙겨서 저녁까지 다시 여기로 모이도록.”
브란트의 명령에 다섯 명의 수련 기사가 움직였다. 브란트도 숙소에서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브란트가 다음으로 간 곳은 보조 기사들이 검술 수업을 받고 있던 있는 무도관이었다. 보조 기사 교관인 라울 역시 수련 기사 교관인 자카로처럼 브란트를 반기지는 않았다.
“거기 서!”
라울이 무도장 입구에서 브란트를 막아섰다.
“여긴 어쩐 일이지?”
라울 역시 전대 기사 조장 출신이다. 아마도 자카로처럼 이름뿐인 귀족 작위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해서 브란트는 자카로처럼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라울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야 했다.
“으음…….”
브란트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라울은 자카로와 달리 관심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5조를 만들겠단 말이지, 네 혼자 힘으로?”
“그렇습니다.”
“이건 교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알고 있나?”
만약 브란트가 일 년 안에 자신이 선발한 20명의 수련, 보조 기사들을 정식 기사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그동안 수련 기사들과 보조 기사들을 훈련시키고 감독해 온 교관들의 자질이 의심받게 될지 몰랐다.
‘그래서 자카로 교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군. 그래도 수련 기사들을 순순히 내어 준 것은 좀 의외군.’
브란트의 생각과 달리 수련 기사 교관 자카로는 브란트가 혼자서 20명의 수련, 보조 기사들을 정식 기사로 키워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군말 없이 5명의 수련 기사를 내어 준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란트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보조 기사 교관 라울에게 대답했다.
“도전이라기보다는 수련 방식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호오. 너라면 일 년 안에 저들을 모두 소드 익스퍼트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로군.”
라울이 자신의 뒤쪽 무도관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보조 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