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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7. 제5조 질풍 기사단(3)


“그건 아닙니다. 가능성이 있는 자들일 경우 그렇다는 말이지요.”
“가능성? 그래서 그 가능성 있는 보조 기사를 선발해 가겠다는 말이로군. 좋다, 데리고 가라. 어차피 백작님께서 허락한 일이니 내가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나도 검술을 배우는 기사로써 네가 어떻게 일 년 안에 20명의 정식 기사를 만들어 낼지 두고 보겠다.”
라울의 허락이 떨어지자 브란트는 무도관 안으로 들어갔다.
브란트는 보조 기사 생활을 할 때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보조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무도관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보조 기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기사 조장인 브란트를 신뢰하는 쪽과 불신하는 쪽으로 말이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 신뢰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확고히 묶어 주는 연결 고리와 같다고 말이야.’
브란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을 신뢰하는 보조 기사 15명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무도관을 나섰다.
수련 기사들과 같이 보조 기사들도 앞으로 함께할 기사 숙소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짐을 챙겨서 저녁까지 숙소로 올 것을 지시했다.
브란트는 보조 기사들과 함께 기사 숙소를 빠져나와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록키, 당장 내 짐을 싸라.”
브란트의 짐이라고 해 봐야 옷가지 몇 벌이 전부라 단출한 보따리 하나가 다였다. 오히려 시동인 록키의 짐이 더 많았다.
브란트는 록키와 같이 지내기 위해서 록키를 그의 전속 시동으로 삼았다. 브란트가 록키를 기사로 키우겠다고 하자 그 문제는 로베르토 총관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었다.
앞으로 일 년은 이 방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동안 정이 든 방이라 브란트도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창밖의 전경이 보기 좋았던 방이다.
“가요.”
오히려 록키가 브란트를 재촉했다.
“그래, 가자.”
브란트와 록키는 각자 보따리 하나를 챙겨 들고 기사 숙소로 향했다. 저녁에 기사 숙소로 20명의 수련, 보조 기사가 모두 모이자 브란트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질풍 기사단의 제5조 기사들이다. 나는 너희들을 일 년 안에 모두 정식 기사로 만들 것이다. 나는 목마른 너희들을 우물가로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결국 그 우물물을 먹을지 말지는 너희들이 결정해야 한다. 어떤가? 목마른 기사들이여, 내가 주는 우물물을 마시겠는가?”
“예!”
20명의 기사가 일제히 대답했다.
“좋다. 그럼 일 년 동안 너희들이 지켜 줘야 할 것이 있다. 다른 교관들처럼 내 말에 절대 복종하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 모두 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지내는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경쟁자가 아니다. 서로 보듬어 주고 감싸 줘야 하는 가족들이다. 너희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고, 내가 지시한 훈련들을 소화해 낸다면 우리 5조는 질풍 기사단의 다른 조에 절대 뒤지지 않는 최고의 기사들이 될 것이다.”
브란트는 하루라도 빨리 기사들을 친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사 한 명 한 명씩 나오게 해서 나머지 기사들에게 자신을 소개시켰다.
그렇게 브란트는 제일 먼저 20명의 기사들에게 가족과 같은 동료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20명의 새로운 가족을 가지게 되었다.

5조 기사들의 수련은 오전에는 주로 수영과 마나 수련을, 오후에는 검술 수련을 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브란트가 개별적으로 기사들에게 개인 지도를 해 주었다.
소드마나 수련법을 모르는 5명의 수련 기사들은 보조 기사들이 돌아가며 그들에게 크라이머 백작가의 소드마나 수련법과 가전 검술인 파르마잔 펜싱을 가르쳤다.
제이콥을 비롯한 4명의 수련 기사들은 다른 15명의 보조 기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일정 수준까지 오르자 그때부터 브란트가 직접 지도했다.
확실히 소드 마스터가 직접 지도하자 보조 기사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15명의 보조 기사 중 5명이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
브란트는 그 5명의 소드 익스퍼트들을 제이콥을 비롯한 4명의 수련 기사들의 전담 교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나머지 10명의 보조 기사들도 착실히 검술을 가르쳤다.
기사들은 무작정 수련할 때와 달리 하루의 반나절을 수영과 명상을 통해 몸을 풀어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훨씬 빠르게 검술을 배워 나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브란트도 많이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흘러서 나머지 10명의 보조 기사 중 5명이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 불과 두 달 만에 10명의 정식 기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대로라면 일 년이 아니라 반 년 만에 20명의 정식 기사를 키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5조에서는 더 이상 소드 익스퍼트가 배출되지 않았다.
그러자 브란트도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브란트는 왜 나머지 10명의 기사들이 더 이상 진전이 없는지에 대해 고심을 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10명의 기사들과 직접 상담을 해 보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브란트보다 더 느긋하고 차분했다.
“앞으로 8개월이나 남았잖습니까? 저도 그때까지는 소드 익스퍼트가 되어서 질풍 기사단의 정식 기사가 될 겁니다.”
10명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기사가 되겠다는 의지도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브란트가 수시로 살펴보아도 그들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정말 타고난 자질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브란트는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한 달 혹은 두 달 만에 소드 익스퍼트가 된 다른 기사들과 남은 기사들을 비교해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록키가 나타났다.
“저 왔어요.”
최근 브란트는 록키에게 기사가 되기 위한 기초 체력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아직 성장기에 있는 록키에게 브란트는 무리한 근력 운동보다는 뛰기와 수영, 그리고 기본적인 검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여전히 기사로써 교양을 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록키는 브란트의 열성에 마침내 모든 글을 깨우친 상태였다. 때문에 공용어로 쓰인 웬만한 책은 이제 다 읽을 수 있었다.
“주인님, 저를 귀족으로 만드실 생각이세요?”
록키는 까다로운 예절 교육 책과 대륙 역사서를 억지로 읽으라고 하는 브란트를 보며 투덜댔다.
그런 록키의 두 손에는 크라이머 백작가의 도서관에서 제법 두꺼운 책들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에구, 더럽게 무겁네.”
록키는 그 책들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한 뼘 두께의 책들을 보고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걸 다 읽으면 아마 제 얼굴이 폭삭 늙어 버리겠죠?”
“그럼 저런 책을 매일 하루 종일 읽는 학자들은 죄다 쭈글쭈글한 영감들뿐이겠구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공부해.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네가 저 책을 펴고 서문을 읽으면 이미 절반은 읽은 셈이란 뜻이다.”
“쳇, 말은 쉽지.”
“뭐?”
“아, 아닙니다. 읽는다고요, 읽어. 어어?”
허둥대던 록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책들을 쏟았다.
우당탕!
척!
그때 록키의 책 중 하나가 브란트의 발치에 떨어졌다.
록키의 다른 책들과 달리 그 두께가 얇았다. 아마 록키가 큰 책에 붙어 있던 이 책을 모르고 도서관에서 가져 온 모양이었다.
브란트는 일단 그 책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막 록키에게 건네려는데 책 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인간 자질에 대한 고찰!”
브란트는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쳤다.

인간은 똑같다. 왕과 귀족, 평민 모두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단지 태어난 환경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머리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뇌의 1%도 사용하지 못한다.
간혹 몇몇 사람들이 이 뇌의 기능을 더 사용하긴 한다. 우리는 그런 자들을 천재라 부른다.
그러나 그 특별한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태어날 때 모두 똑같은 능력을 지닌다.
하지만 학습이 이루어진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귀족의 자식과 평민의 자식에게 동시에 학문을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라. 당연히 귀족의 자식이 더 빨리 학문을 배운다.
귀족의 자식은 이미 글을 알고 있고 평민의 자식은 다르다. 이와 같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브란트는 꼼짝하지 않고 두 시간 동안 그 얇은 책을 정독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 체제를 비판하는 아주 위험한 내용이지만 일리가 있긴 하군.”
브란트는 그 얇은 책을 숙소 난로에 집어 던져 태워 버렸다.
왕과 귀족, 평민이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만으로는 아주 위험천만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일부는 브란트에게 도움이 되었다.
드르렁, 드르렁.
뒤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브란트가 고개를 돌려보니 록키가 두꺼운 책을 펼쳐 놓고, 그 위에 엎드려 코까지 골아 가며 자고 있었다.
브란트가 얇은 책에 빠져 있는 동안 브란트의 지시대로 예의범절 책을 읽은 모양이었다.
록키는 예의범절 책만 펼쳐 놓으면 30분 만에 곯아떨어졌다.
“후후후. 나도 저랬지.”
브란트도 처음 두꺼운 예의범절 책을 펼쳐 놓고 록키처럼 저렇게 책을 베개 삼아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브란트는 난로에서 화르르 불타고 있는 책을 보면서 자신이 어릴 적 잠시 학문에 심취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귀족이 아니라 더 깊은 학문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불쑥 학문에 대한 갈증이 났다.
‘책을 좀 봐야겠군.’
브란트의 어머니는 아무리 어려워도 브란트가 사달라는 책은 꼭 사 주셨다. 만약 그때 브란트가 책을 통해 지식을 쌓지 않았다면 지금의 브란트가 있었을까?
브란트는 문득 지금도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책을 읽기로 했다.

다음날 브란트는 수련 중인 10명의 기사를 불렀다.
이미 소드 익스퍼트가 되어 정식 기사가 된 10명의 기사는 브란트가 가르딘 단장에게 부탁해서 다른 조에 포함시켜 질풍 기사단의 마상 훈련과 진법 훈련을 받게 했다.
때문에 현재 기사 숙소에는 브란트와 10명의 기사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브란트는 그 10명의 기사 지식 수준을 개별 면담을 통해 알아 봤다.
그리고 질풍 기사단의 훈련이 끝나고 돌아온 10명의 기사에게도 똑같이 개별 면담을 통해 그 지식 수준을 알아봤다.
그랬더니 앞서 소드 익스퍼트가 된 기사들의 지식 수준이 남은 10명의 기사들의 지식 수준보다 현저히 앞섰다.
“역시 그랬군.”
브란트는 즉시 수련 시간을 줄이고 남은 10명의 기사에게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쳤다.
그러기 위해서 브란트도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란트는 10명의 기사를 학습시키며, 자신도 모자라는 지식을 터득하기 위해 크라이머 백작가의 도서관을 직접 찾았다.
그리고 매일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다음날 기사들에게 가르칠 내용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훌쩍 흘러 그동안 검술 경지에 전혀 진전이 없던 10명의 기사의 기초 지식이 쌓여 가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브란트는 아주 만족해하며 기사들에게 계속 열심히 공부를 시켰다. 브란트는 특히 10명의 기사에게 매일 일기를 쓰게 했는데 그것이 큰 효과를 보고 있었다.
기사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으면서 점차 자신의 주관이 생겼고, 생각하는 폭이 넓어졌다. 그러자 그것이 검술로 이어져 검술 실력은 물론 소드마나 수련에도 큰 진전을 보였다.
‘됐다. 이대로라면 한두 달 뒤면 모두 다 소드 익스퍼트가 될 수 있겠어.’
기사들을 학자로 키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사들이 어느 정도 지식과 교양을 갖추자 브란트도 기사들의 공부를 중지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계속 밤이면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싶었던 책들을 늦은 시간까지 읽었다.
크라이머 백작가의 도서관에는 수천여 권의 책들이 있었다. 그들 중 절반이 교양 서적이고 나머지는 종교와 귀족의 예절과 각종 행사에 대한 예법들이었다. 그리고 간간이 있는 기술 서적들과 마법 서적들도 있었다.
브란트는 기술 서적들을 통해서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기중기와 물을 이용한 수차는 브란트에게 과학의 힘을 알게 했다.
또 마법 서적은 브란트의 마나에 대한 생각을 바뀌게 했다. 브란트는 소드 마스터이기 때문에 소드마나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마법마나 역시 같은 마나였다. 대기 중에 골고루 분포하는 마나는 그 성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결국 하나였다.
브란트는 그렇게 우연히 마나의 본질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 마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브란트는 훨씬 수월하게 마나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에 브란트의 소드마나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하는 것이 훨씬 빨라졌고, 더 오랫동안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체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감이 훨씬 더 민감해졌으며 몸동작도 떠 빨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