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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7. 제5조 질풍 기사단(4)
브란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 있는 데다가 검술의 경지까지 상승하자 더욱 열심히 도서관을 찾아서 책을 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보다 보니 크라미어 백작가의 도서관에서 더 이상 볼 책이 없어졌다.
그래서 브란트는 직접 자신이 볼 책을 찾기로 했다. 크라이머 백작가를 나선 브란트는 제국 도서관을 찾았다.
티모스 제국의 수도 로산의 중앙 광장 주위에는 제국 아카데미, 제국 은행의 본점과 제국 귀족 회의장, 제국 도서관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중앙 광장을 거쳐 더 위로 올라가면 황제가 머무는 황궁이 나타났다.
브란트는 제국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한때 수도의 제국 아카데미에서 시동으로 오마르와 함께 살 때 브란트는 제국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오마르의 심부름으로 책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제국 도서관은 귀족들을 위한 곳이었다. 때문에 당시 평민이었던 브란트는 도서관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밖에서 책만 반납하고 돌아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브란트도 엄연히 귀족이었다.
“성함이?”
“브란트 드 라모스 남작이다.”
브란트가 자신의 신분증을 도서관 사서에게 보였다.
“라모스 남작님이시군요. 들어오십시오.”
신분이 확인되자 도서관의 출입이 가능해졌다. 브란트는 도서관 복도의 중앙에 나 있는 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다양한 문양의 그림이 그려진 문들이 복도 사이사이에 위치했다. 그리그 그 문 위에는 각각 황금 팻말로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다.
브란트는 그중에서 독수리 문양의 문 앞에 섰다. 문에는 ‘기사의 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는…….”
“창세기부터 오늘날 티모스 제국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기사들의 기록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도서관 사서가 열쇠를 들어 보이며 브란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브란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서관 사서가 웃으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 끝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불이 밝혀졌다.
문이 열리면 마법 등이 자동으로 켜지게 되어 있었다.
“아!”
브란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문이 열리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열리자 엄청난 넓이의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벽면과 그 사이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장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혹시 원하시는 책이 있으신지?”
도서관 사서가 친절하게 브란트에게 물었다.
“괜찮다. 내가 직접 찾겠다.”
“그럼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도서관 사서는 볼일을 보러 그 자리를 떠났다. 브란트는 이리저리 책장을 돌아다니며 책을 살폈다. 그리고 그중에서 10권의 책을 골랐다. 브란트가 고른 책은 창세기 이후 최강의 기사로 전설에 회자되는 인물들에 관한 기록이었다.
브란트가 그 10권을 고른 이유는 그 책들이 가장 많은 손때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법이지.’
이곳은 귀족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그렇다면 기사 출신 귀족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고 그들이 가장 많이 본 책이 바로 브란트가 고른 10권의 책이란 소리다.
그들이 읽은 책을 브란트가 봐 두면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브란트도 공감할 수 있을 터였다.
브란트는 자신과 같은 기사 출신 귀족들이 무슨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들이 가장 많이 본 책을 고른 것이다.
브란트는 그 10권의 책을 도서관 사서에게 건네며 대여하겠다고 했다.
“대여 기간은 한 달입니다.”
“알았다.”
간단히 주소를 기록하고 브란트는 책을 챙겨서 도서관을 나왔다.
“이거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어느 현자의 말이 이제 이해가 되는군.”
브란트는 도서관에서 빌린 10권의 책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 가건만 책만 봐도 뿌듯하니 배가 고프지 않았다.
8. 실종(1)
브란트의 예상대로 한 달 후 10명의 기사 중 5명이 먼저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 한 달 후에 나머지 5명도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 마지막에 소드 익스퍼트가 된 제이콥이 울면서 브란트에게 무릎을 꿇었다.
“흑흑흑. 저를 끝까지 믿어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조장님을 위해 이 한 목숨을 바치기로 말입니다.”
브란트는 눈물콧물 범벅이 된 제이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너의 충성심은 고맙게 받겠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란 것을 잊지 마라.”
“가족?”
“그래, 가족.”
“그, 그렇군요. 저에게는 19명의 가족이 있었군요.”
“가족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부터 질풍 기사단 5조에 합류하도록 해라.”
브란트는 제이콥까지 합류하자 모두 20명의 기사로 구성된 질풍 기사단 제5조 기사 조장이 될 수 있었다.
브란트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서 20명의 정식 기사들을 양성해 내자 크라이머 백작도 가르딘 단장도 모두 흐뭇해하며 브란트에게 무한한 신임을 보냈다.
그러자 다른 기사 조장들이 브란트를 대하는 것이 바뀌었다. 예전과 달리 브란트를 경쟁자로 생각한 것이다.
가르딘 단장은 소드 마스터가 되는 즉시 기사 단장 직을 그만두게 될 터였다. 브란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질풍 기사단의 단장 자리는 제1조 기사 조장인 헥크만이 유력했다. 그러나 브란트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상황이 변했다.
“큰 형님, 이대로라면 브란트가 단장이 될지 모릅니다.”
제3조 기사 조장 루크가 헥크만에게 말했다.
“브란트라니, 그는 엄연히 너의 형이다.”
“30년 만에 불쑥 나타난 녀석에게 형은 무슨…….”
브란트와 동갑인 제2조 기사 조장 레너드가 헥크만이 루크를 나무라자 루크를 두둔하며 말했다.
“크라이머 백작가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한다. 브란트가 나보다 나은 실력을 지녔다면 그가 기사 단장이 되는 것이 옳다.”
헥크만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하긴 녀석이 아무리 잘나 봐야 형님의 상대는 아니지요.”
“맞아요. 제가 잠시 흥분을 했습니다. 그가 너무 설쳐서 앞뒤 분간을 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큰 형님.”
“괜찮다. 브란트는 확실히 뛰어난 기사다. 나라도 일 년 만에 20명의 기사를 키워 내진 못했을 거다. 그런 브란트가 나를 돕는다면…….”
헥크만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헥크만을 보면서 레너드와 루크의 입가에 비릿하니 조소가 어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브란트는 자신 휘하의 20명의 기사를 이끌고 돌격했다.
두두두두!
히히히힝!
그리고 말을 멈춰 세우고 대열을 갖춘 후 다른 조의 질풍 기사들과 합류해서 진법 훈련을 실시했다.
제5조의 합류로 질풍 기사단의 수가 100명이 되었다. 10년 전 질풍 기사단의 정원은 100명이었다. 그러나 모슐 제국과 전투에서 60명의 기사가 전사함으로써 질풍 기사단의 수는 크게 줄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10년 만에 다시 100명의 정원을 채웠으니 크라이머 백작으로써는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이뤄 낸 일등공신인 브란트에 대한 크라이머 백작의 신임은 자연스레 높아졌다.
“서두르지 마라. 천천히 구호에 맞춰서 전진한다.”
질풍 기사단의 5명의 조장들이 휘하 기사들과 템포를 맞춰 가며 기사단 진형을 움직였다. 그런데 4조가 엇박자로 움직였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기사단의 진형이 계속 꼬였다.
한 달 전까지 4조 기사 조장 히스레이를 대신해서 4조 선임 기사 베르토프가 4조의 마상 훈련과 진법 훈련을 지휘했다.
그러다가 한 달 전 갑자기 히스레이가 기사 조장을 맡겠다고 나섰고 그 후 지금까지 히스레이는 질풍 기사단의 훈련에 방해만 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또 저 지랄이군.”
4조의 양측으로 각각 3조와 5조가 붙어 있었다. 3조의 기사 조장 루크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루크의 눈에 20명의 기사들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는 히스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 비해 5조 기사 조장인 브란트는 별로 화도 나지 않는지 묵묵히 4조에 붙어서 움직였다.
“제길, 베르토프.”
히스레이는 마상 훈련에 이어 진법 훈련마저 제 마음대로 지휘가 되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선임 기사 베르토프를 불렀다.
“허커와 레이는 측면으로 빠지고 브라이언과 론멜, 칼슨이 중앙으로 이동한다.”
베르토프가 나서자 진형이 다시 형태를 갖추었다. 그렇게 30여 분이 더 흐른 뒤 진법 훈련이 끝나고 질풍 기사단의 하루 훈련이 모두 끝이 났다.
브란트는 훈련이 끝나자 5조 기사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5조 기사들은 모두 정식 기사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사 숙소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되었다.
질풍 기사단의 정식 기사가 되면 매달 10골드에 달하는 월급과 종자를 지원받는다. 또 무장과 말 역시 크라이머 백작가에서 전부 지원한다.
기사들 중 가족이 있는 자들은 백작가로 출퇴근도 가능했다. 5조 기사들도 가족이 있는 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게 브란트가 배려했다.
브란트 역시 록키에게 예전에 자신이 사용하던 방으로 짐을 옮기게 했다.
브란트도 훈련이 끝나자 기사 숙소가 아닌 자신의 예전 방으로 향했다. 그러다 중간에 록키를 만났다. 그런데 록키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브란트가 다가가자 록키에 가려 있던 레이첼이 보였다.
“어머, 라모스 남작님!”
레이첼이 브란트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레이첼은 여전히 해맑고 귀여운 표정으로 브란트를 반겼다.
“어! 어, 그래.”
브란트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록키에게 말했다.
“짐 정리는 끝냈느냐?”
“아니요. 레이첼 아가씨를 만나는 바람에…….”
브란트가 차갑게 말했다.
“따라와라.”
브란트가 앞서 가자 록키가 당혹스러워하며 레이첼을 쳐다보았다. 레이첼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서 오지 않고 뭐하는 것이냐?”
브란트가 뒤돌아 소리치자 록키도 별 수 없이 브란트에게 달려갔다. 브란트는 총관인 로베르토의 충고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레이첼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주인님 아가씨께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록키의 말에 브란트가 매몰차게 말했다.
“너도 이제 내년이면 수련 기사가 되어야 한다. 한가하게 어린아이와 놀 시간이 없다. 그러니 가능한 레이첼과 거리를 둬라. 알겠느냐?”
마지못해 록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대답했다.
“……네.”
브란트는 애써 찜찜한 기분을 털어 내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은 먼지가 좀 쌓여 있었지만 창문과 방문을 열고 청소를 끝내고 나자 예전의 방으로 돌아갔다.
브란트는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브란트가 또 멍청하게 창가에 앉아서 바보짓을 하는 것을 보고 록키가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브란트는 한 달 대여 기간인 10권의 책을 불과 일주일 만에 도서관에 반납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도 보지 않은 먼지가 가장 수북이 쌓인 책 10권을 빌렸다. 역대 기사들에 관한 기록들은 비교적 책이 두껍지 않았다.
또 내용도 간략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브란트가 빌린 10권의 책들은 엄청나게 두꺼워서 브란트가 모두 들자 책이 그의 머리를 훌쩍 넘었다. 브란트는 별수 없이 마차를 불러서 그 마차를 타고 백작가로 돌아왔다.
창세 이후 수천 년. 파르마니안 대륙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었다. 그런 나라들을 최초로 통일한 대유스라 제국이 처음 인세기를 사용했다.
그 후 다시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 대륙에는 4개의 나라가 서로 동서남북으로 4등분한 채 서로 대치하며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다.
동부의 바이첸 왕국, 서부의 티모스 제국, 북부의 모슐 제국, 남부의 칼루스 왕국이 바로 그 4개 나라였다.
브란트가 고른 10권의 두꺼운 책들은 인세기 이후 티모스 제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수천 년에 걸쳐 대륙에 건국되었다가 멸망한 수많은 나라들과 그 당시에 유명했던 기사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브란트는 그 두꺼운 책을 차근차근 읽었다. 그 책에는 다양한 전투 기록과 전술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브란트는 따로 필사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