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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9. 악연도 인연(3)


브란트는 그자를 앞세우고 통로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 끝이 나왔다. 그리고 문이 보였다.
“저기요.”
그자가 손짓을 하자 브란트가 뒤에서 그자의 뒷목을 내려쳤다.
퍽!
그자는 의식을 잃고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가 지혈시키며 막고 있던 가슴에서 진한 피가 흘러나왔다. 아마 몇 분 안에 죽을 것이 뻔했다.
“뭐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으니까.”
브란트는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브란트는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한 그자를 확실히 죽이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했다. 뭐 어차피 지금쯤 죽어 있을 테니 더 이상 그자를 욕할 필요는 없었다.
그자가 브란트에게 안내한 곳은 인신매매단의 조직원들의 숙소였다. 한마디로 동료들에게 지옥의 사신을 보낸 격이었다. 그 덕분에 브란트는 수십 명의 인신매매 조직원들을 베야 했다.
그로 인해 브란트의 몸은 온통 피 칠갑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결국 길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브란트는 마침내 레이첼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네놈들이 납치한 아이들이 있단 말이지?”
브란트가 한 조직원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조직원은 아직 어려 보였는데 피를 뒤집어쓴 브란트를 보고 겁에 질려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하긴, 조금 전까지 그와 같이 농담을 주고받던 동료 조직원들을 브란트가 토막 내놓은 것을 봤으니 떠는 것도 당연했다.
“네, 저기 지하 창고로 내려가면 있어요.”
어린 조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대답하자 브란트는 쥐고 있던 멱살을 풀고 말했다.
“여기서 당장 꺼져. 그리고 다시는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 조직에 가담하지 마라.”
브란트는 그 어린 조직원을 보자 록키가 생각나 차마 죽이지 못했다.
어린 조직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 살려라 달아났다.
브란트는 곧바로 레이첼이 있다는 지하 창고 쪽으로 내려갔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인 브란트에게 어둠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계단을 따라 얼마를 내려갔을까,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중에 울음소리도 있었는데 앳된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브란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쳐 죽일 놈들. 정말 아이들을…….”
실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격분한 브란트는 살기등등하게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제국의 수도 로산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규모의 인신매매 조직을 갖고 있던 울프만은 제 발로 빈민촌을 찾아와 준 예쁘장하게 생긴 귀족 여자아이 때문에 오늘은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외모면 20골드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한데 하필 오늘 수도에서 제일 변태 귀족인 메타모 백작이 보낸 총관이 물건을 보러 왔다.
메타모 백작은 물건들은 가장 험하게 다루면서 가격은 박했다. 그래서 인신매매 조직에서는 그를 가장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황제가 가장 아끼는 후궁인 모렐 궁부인의 친오빠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 메타모 백작은 수도 내성의 치안을 책임지는 치안감을 맡고 있었다.
제국의 수도를 지키는 병력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수도 외곽을 지키는 수도 방위군과 수도 내성을 지키는 자경대였다.
자경대의 수장은 치안총감으로 요직 중에 요직이었다. 메타모 백작은 바로 차기 치안총감이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런 자를 자극시켜 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울프만은 메타모 백작의 총관이 제시한 12골드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여아를 넘겨야 할 판이었다. 적어도 피칠 갑을 한 미친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화르르르!
지하 창고 입구 쪽 횃불 아래에 두 명의 조직원이 서 있었다. 브란트는 계단을 통해 지하 창고로 들어서며 곧바로 두 명의 조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조직원이 뭐라 입을 벌리며 움직이려 할 때 브란트의 검이 흔들리는 횃불을 따라 춤을 추듯 움직였다.
어둠을 가르는 그의 검은 빨랐다. 두 조직원은 갑작스런 공격에 몸을 피하려 했지만 브란트의 검은 최단 거리로 그들의 급소를 정확히 베고 찔렀다.
조직원의 목이 절반가량 베어졌고, 다른 조직원은 심장에 검이 박힌 상태로 고통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털썩!
두 조직원이 몸이 거의 동시에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브란트는 검에 묻은 피를 생명이 사라진 조직원의 옷에 대충 닦고 지하 창고 내부로 진입했다.
“누구냐?”
지하실 안은 양쪽 중앙으로 두 사람 정도 지날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그 통로 쪽에 석실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그 석실은 쇠창살로 입구가 막혀 있었는데 그 안에 아이들이 갇혀 있었다.
양쪽 통로 쪽에 아이를 감시하던 조직원 네 명이 브란트를 발견하고 손에 각종 무기를 챙겨들고 브란트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그 길이 그들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땅에 발을 디딘 순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브란트는 짐승처럼 갇혀 있는 아이들을 보고 분개해 있었다. 그래서 그가 휘두르는 검은 더욱 살벌했다.
서걱!
양날 도끼를 들고 브란트를 향해 휘두르려 했던 덩치 큰 조직원이 사선으로 몸이 잘렸다.
철퍼퍽!
덩치에 걸맞게 그는 많은 피와 내장을 바닥에 뿌렸다. 쇠방망이를 들고 있던 조직원은 어른 손목만큼 두꺼운 쇠방망이를 짚단 베듯 베어 버리는 브란트를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히익!”
동료 조직원 둘이 일방적으로 학살되는 것을 보고 뒤쪽의 조직원 둘이 뒷걸음질을 치며 통로 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브란트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기겁을 하며 안쪽으로 달렸다.
브란트는 그의 검에 토막 나서 죽은 조직원들이 흘린 도끼와 사선으로 잘린 쇠방망이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양쪽 통로로 달아나는 조직원 둘을 향해 도끼와 쇠방망이를 각각 던졌다.
퍽! 퍽!
“크악!”
“으아아악!”
날아간 양날 도끼와 쇠방망이가 조직원의 등판에 맞으며 조직원 둘이 동시에 단말마를 터뜨리며 쓰러졌다.
“사, 살려 주세요!”
그때 몇몇 석실에서 아이들이 브란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브란트는 레이첼을 찾으며 검으로 자물쇠를 잘라 주었다.
석실의 쇠창살이 열리자 아이들이 통로로 나와 곧바로 지하 창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바깥의 비명 소리를 듣고 석실 안에 있던 울프만이 석실 밖 통로로 나섰다. 그때 브란트는 석실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풀어 주며 울프만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브란트는 석실에 갇힌 아이들을 다 풀어 주고 마지막 인기척이 느껴지는 마지막 석실 쪽으로 다가가다가 그 석실 안에서 나온 울프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브란트는 울프만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과 그의 손발에 주렁주렁 매달린 값비싸 보이는 장신구를 보고 한눈에 울프만이 인신매매 조직의 두목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울프만은 발치에 양날 도끼에 등판이 깊숙이 박혀 절명해 있는 자신의 수하를 보고 마른 침을 삼키며 브란트를 쳐다보았다.
온몸에 피칠 갑을 하고 있는 브란트는 춤추듯 흔들리고 있는 횃불의 빛을 받자 더 섬뜩해 보였다.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누, 누구냐?”
울프만은 딴엔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러자 상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납치한 귀족가의 여자아이는 어디 있나?”
“여자아이?”
순간 울프만은 뇌리에 조금 전에 그가 나온 석실 안의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저자가 찾는 것이 그 여자 아이라면 일이 의외로 잘 풀릴 수도 있었다. 그 생각에 울프만의 입가에 실룩 미소가 어렸다.
“그 여자 아일 찾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인 죽는다.”
조금 전까지 당혹해하며 두려워하던 울프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번쩍!
브란트의 눈에서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브란트는 살짝 소드 마스터의 살기를 개방했다. 그러자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울프만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섬뜩한 브란트의 목소리에 울프만의 몸이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저놈은 정말로 나를 죽일 생각이다.’
울프만이 잠시 정신이 없을 때 브란트는 단숨에 울프만을 베어 버리려 했다.
울프만은 온갖 고생을 다해 가며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는 누구보다 눈치가 빨랐다.
울프만은 브란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브란트를 보자마자 바로 직감했다. 브란트가 살기를 내뿜을 때, 울프만은 괴로운 척하면서 석실 안으로 몰래 손짓을 보냈다.
석실 안에는 메타모 백작의 총관과 호위 기사가 있었다. 울프만의 손짓을 본 메타모 백작의 총관은 즉시 기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기사가 레이첼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챘다.
“아악!”
레이첼이 소리치자 그 소리를 듣고 울프만을 죽이려 했던 브란트가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때 석실 안에서 메타모 백작의 총관과 기사가 통로로 나왔다. 그런데 기사의 손에 레이첼이 있었다.
“그 아일 잘 잡고 있으시오!”
울프만이 기사를 향해 외쳤다. 기사는 즉시 검을 뽑아서 검날을 레이첼의 목에 갖다 댔다.
그 모습을 보고 브란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브란트가 울프만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브란트의 살기에 두려움에 떨던 울프만이 싱긋 웃었다.
‘웃어?’
브란트는 집중해서 울프만을 살폈다. 그러자 울프만의 몸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저자는 실력을 숨기고 있다.’
브란트가 살피는 레이첼의 목에 검을 갖다 대고 있는 기사보다 울프만의 몸속 마나가 더 많았다.
‘놀랍군. 범죄자가 체내에 저 정도 마나를 지니고 있다니.’
브란트는 울프만이 단순한 인신매매단의 두목 따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울프만이 말했다.
“대단한 실력이로군. 어디 가문의 기사지?”
대뜸 반말을 지껄이는 울프만을 보고 브란트가 실룩 웃었다.
“너야말로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브란트가 대답 대신 말하자 울프만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대단하진 않아. 내 몸 하나 지킬 정도지.”
울프만이 실력자란 것이 밝혀진 이상 이렇게 되면 레이첼을 구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저 여자아이를 구하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저 아이를 볼 수 없을 테니 말이야.”
울프만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했을 텐데.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무사치 못할 거라고 말이야.”
“뭐 죽기밖에 더하겠나?”
울프만이 넉살좋게 말했다. 브란트는 울프만의 눈빛을 보고 놈이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브란트는 이때 문득 키로프 남작과 오마르, 로가디스 후작처럼 울프만이 자신의 운명과 질긴 인연과 악연의 실타래가 엮여 있음 직감했다.
‘악연도 인연이다.’
브란트는 현재의 삶이 악연에서 시작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악연이 화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이제는 악연도 그에게는 삶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단지 예전과 달리 더 이상 악연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을 자신과 용기가 그에게 있었다.



10. 무투사Ⅰ(1)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돈 때문이다.
브란트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았다.
“얼마를 원하나?”
브란트의 말에 울프만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1만 골드!”
울프만의 대답에 오히려 뒤에 있던 메타모 백작의 총관이 오히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1만 골드면 메타모 백작가의 한 해 예산의 1/10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미쳤군.”
브란트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자, 울프만이 여전히 넉살좋게 말했다.
“넌 돈이 필요하지 않나?”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