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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얼마 가지 않아 좁은 골목길에 멈춰 선 보영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두 남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야, 772번. 너 내가 인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뭔 짓을 한 거야?”
“하…….”
“당장 안 풀어?”
화가 난 듯한 남자와 아무 표정이 없는 남자가 보영의 눈에 들어왔다.
“대장.”
“뭐. 왜.”
“문제가 있어.”
“문제? 당연히 있지. 네가 그 인간 영혼을 당장에라도 회수하면 되는데 괜히 끼어들어가지고…….”
“인간화가 안 풀려.”
보영은 알 수 없는 대화에 미간을 찌푸리며 두 사람이 있는 골목길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두 남자는 그녀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대화를 계속했다.
“뭐?”
“인간화가 안 풀린다고.”
“너 장난하지 말…….”
“이게 지금 장난 같아? 안 된다니까?”
열이 뻗친 대장이 772번의 멱살을 잡았다. 놀란 보영은 그대로 두 남자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두 남자의 시선이 보영에게로 향했다. 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영의 시선은 정확히 대장에게로 향해 있었다.
“……뭐?”
“아니, 왜 이 남자 멱살을 잡아요? 그리고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무슨 짓을 했기에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거예요?”
“너…… 내가 보여?”
대장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대장의 흔들리는 눈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 장난해요? 당신 도대체 뭐냐니까? 그리고 이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772번의 멱살을 잡고 있던 대장의 손이 스르르 풀리더니 보영 쪽으로 팔을 뻗었다. 보영은 움찔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어느 샌가 그녀의 등은 벽에 맞닿아 있었다.
“저, 저기요! 지금 뭐 하는…….”
“너 지금 내가 보이니까 눈이 마주치는 거지?”
“장난해요?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래도 내가 사람이라 생각해?”
“그게 무슨…….”
대장의 손이 그대로 보영의 어깨를 통과했다. 놀란 보영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대장을 바라보았다.
거짓말.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데?
상황을 가늠하기 위해 보영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아까 경찰서에선 내가 당연히 보였겠지. 인간화했으니까, 불 끄기 위해서.”
“인간화?”
“지금은 인간화를 풀었으니까 네 눈에 내가 보이면 안 되는 거야. 그게 맞는 건데…….”
“잠깐만요. 인간화를 하고 푼다는 게…….”
“저승사자.”
“네?”
대장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보영이 대장과 눈을 마주하곤 두어 번 깜빡였다.
“나 저승사자라고.”
“뭐…….”
“인간은 볼 수 없는 저승사자. 네 눈에 보여서는 안 될 저승사자라고, 내가.”
보영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대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틀어 자신을 구해 준 남자,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혹시 이 미친 사람이랑 아는 사이예요?”
다급한 보영의 목소리에도 772번은 덤덤하게 시선을 돌려 보영과 마주했다. 갈색 눈동자를 지닌 772번과 눈이 마주치자 보영은 이상하게 자신의 주변 공기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어. 내 담당자거든.”
“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영이 반문했다. 여전히 772번은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이었다.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
“그건 또 무슨…….”
“그게 내 이름이야.”
“야, 772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대장이 772번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보영이었다. 저승사자라는 단어에 이어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이라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황당한 미소만 지었다. 보영은 애써 웃으며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대장이라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 그래요. 당신들이 지금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본데…….”
“오늘 생일이잖아.”
자신의 이름과 생일을 언급한 772번을 향해 보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거야 아까 경찰서에서 내가 말한 거잖아요. 내 인적 사항.”
“앞으로 1년이야.”
“네?”
“앞으로 1년 안에 너는 죽어, 돌연사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772번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보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1년 안에 돌연사로 죽는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기가 찰뿐이었다.
“저기요. 자꾸 이런 식이시면…….”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얘기하는 게 서로한테 좋을 것 같은데. 자리를 좀 옮기는 건 어때? 가능하면 사람들 눈이 없는 곳으로, 우리 셋이서만 대화할 수 있는.”
대장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가 그대로 손을 펴 보였다.
“잘 봐요. 저승사자는 아무것도 접촉할 수 없어.”
“네?”
대장은 손바닥을 벽으로 천천히 옮겼다. 보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장의 손바닥으로 향하였다. 거짓말처럼 그의 손은 벽을 통과해 일부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 제 몸을 통과한 건 어찌어찌 마술 비슷한 것으로 넘긴다 치더라도 재차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래도 못 믿겠어요? 내가 저승사자고, 저 후보생 담당자라는 거.”
“말도 안 돼.”
“그 말도 안 되는 얘기, 우리도 당신한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진 않은데 일이 커져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
“자리 옮겨요. 얘기 좀 합시다, 우리.”
* * *
결국 보영은 자신들이 저승사자이며 저승사자 후보생이라 우기는 두 남자를 데리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저 이 순간이 꿈이길 바랐다. 아니면 더위를 먹어 자신이 미친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취방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쯤이면 저승사자니, 뭐니 하던 미친 두 남자가 사라져 있을 거야. 이건 꿈이니까.
보영의 바람과는 달리 뒤를 돌아보자 두 남자가 묵묵히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결국 보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저승사자라는 거야?
반신반의하다보니 보영은 어느새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보영은 들어가자마자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수라도 마시고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수통을 꺼내 든 순간, 저승사자 후보생이라는 남자가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것을 본 보영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뭐해요? 벗어요, 신발.”
“뭘 벗어?”
“지금 그쪽이 신고 있는 거. 구두요.”
보영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772번이 신고 있는 구두를 가리켰다. 772번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자신이 신고 있는 구두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짝다리를 짚으며 보영을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왜?”
“네?”
“왜 벗어, 이걸?”
772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772번은 물었지만 그건 보영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이 엉키며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772번, 인간화되었을 땐 인간들처럼 행동해야해. 너 지금 인간화 안 풀렸잖아. 빨리 벗고 들어가.”
결국 772번 뒤에 있던 대장이 말하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772번은 고개를 끄덕이곤 구두를 벗어 현관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았다. 무개념인 저승사자인 건가 싶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모습을 보자 보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런 건 또 잘 배웠네.
보영은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을 들고 여유분의 머그잔을 꺼내기 위해 찬장으로 손을 뻗었다. 잘 쓰지 않았던 탓에 하필이면 너무 높게 올려놓았던 머그잔이어서 까치발을 들어도 쉽게 닿지 않았다.
낑낑대던 보영은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고개를 돌려 저승사자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장과 772번을 번갈아 바라보다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이거 좀 꺼내 줄래요?”
그나마 772번보단 대장과 대화하는 편이 쉽겠다고 생각한 보영은 대장을 보며 말했다. 부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데, 대장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나는 지금 인간화를 안 해서 인간 세계 물건을 아무것도 만질 수 없어. 쟤한테 해 달라고 해.”
대장이 가리킨 ‘쟤’라는 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보영을 바라보고 있는 772번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한 보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냥 꺼내는 편이 낫지.
보영은 방향을 틀어 찬장으로 손을 다시 뻗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그잔은 닿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의 눈앞에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놀란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보았다. 가까이에 772번의 얼굴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보영은 쉽게 꺼내지 못했던 머그잔을 가볍게 꺼내 건넸다.
“자.”
“저기, 두 개 더…….”
“아아, 우리는 필요 없어. 저승사자들은 인간하고 달라서 뭐 안 먹어.”
어느 샌가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대장이 말했다.
정말 뭐 안 줘도 되나?
고민하던 보영의 앞을 772번이 무심하게 슥 지나쳐 거실 테이블 앞에 가 앉았다. 보영은 거실 테이블에 버젓이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 한 번 들이지 않은 집에, 게다가 자신들이 저승사자라고 말하는 남자를 두 명이나 이 공간으로 데리고 온 것인지.
탁, 큰 소리가 나게 머그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보영이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설명, 아니 나를 이해시켜 봐요. 그러니까 당신들이 저승사자고, 내가 1년 안에 돌연사로 죽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미쳤지, 그 말을 덥석 믿고 이 둘을 집 안까지 들였으니까.
얼마 가지 않아 좁은 골목길에 멈춰 선 보영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두 남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야, 772번. 너 내가 인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뭔 짓을 한 거야?”
“하…….”
“당장 안 풀어?”
화가 난 듯한 남자와 아무 표정이 없는 남자가 보영의 눈에 들어왔다.
“대장.”
“뭐. 왜.”
“문제가 있어.”
“문제? 당연히 있지. 네가 그 인간 영혼을 당장에라도 회수하면 되는데 괜히 끼어들어가지고…….”
“인간화가 안 풀려.”
보영은 알 수 없는 대화에 미간을 찌푸리며 두 사람이 있는 골목길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두 남자는 그녀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대화를 계속했다.
“뭐?”
“인간화가 안 풀린다고.”
“너 장난하지 말…….”
“이게 지금 장난 같아? 안 된다니까?”
열이 뻗친 대장이 772번의 멱살을 잡았다. 놀란 보영은 그대로 두 남자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두 남자의 시선이 보영에게로 향했다. 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영의 시선은 정확히 대장에게로 향해 있었다.
“……뭐?”
“아니, 왜 이 남자 멱살을 잡아요? 그리고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무슨 짓을 했기에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거예요?”
“너…… 내가 보여?”
대장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대장의 흔들리는 눈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 장난해요? 당신 도대체 뭐냐니까? 그리고 이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772번의 멱살을 잡고 있던 대장의 손이 스르르 풀리더니 보영 쪽으로 팔을 뻗었다. 보영은 움찔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어느 샌가 그녀의 등은 벽에 맞닿아 있었다.
“저, 저기요! 지금 뭐 하는…….”
“너 지금 내가 보이니까 눈이 마주치는 거지?”
“장난해요?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래도 내가 사람이라 생각해?”
“그게 무슨…….”
대장의 손이 그대로 보영의 어깨를 통과했다. 놀란 보영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대장을 바라보았다.
거짓말.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데?
상황을 가늠하기 위해 보영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아까 경찰서에선 내가 당연히 보였겠지. 인간화했으니까, 불 끄기 위해서.”
“인간화?”
“지금은 인간화를 풀었으니까 네 눈에 내가 보이면 안 되는 거야. 그게 맞는 건데…….”
“잠깐만요. 인간화를 하고 푼다는 게…….”
“저승사자.”
“네?”
대장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보영이 대장과 눈을 마주하곤 두어 번 깜빡였다.
“나 저승사자라고.”
“뭐…….”
“인간은 볼 수 없는 저승사자. 네 눈에 보여서는 안 될 저승사자라고, 내가.”
보영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대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틀어 자신을 구해 준 남자,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혹시 이 미친 사람이랑 아는 사이예요?”
다급한 보영의 목소리에도 772번은 덤덤하게 시선을 돌려 보영과 마주했다. 갈색 눈동자를 지닌 772번과 눈이 마주치자 보영은 이상하게 자신의 주변 공기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어. 내 담당자거든.”
“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영이 반문했다. 여전히 772번은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이었다.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
“그건 또 무슨…….”
“그게 내 이름이야.”
“야, 772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대장이 772번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보영이었다. 저승사자라는 단어에 이어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이라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황당한 미소만 지었다. 보영은 애써 웃으며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대장이라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 그래요. 당신들이 지금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본데…….”
“오늘 생일이잖아.”
자신의 이름과 생일을 언급한 772번을 향해 보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거야 아까 경찰서에서 내가 말한 거잖아요. 내 인적 사항.”
“앞으로 1년이야.”
“네?”
“앞으로 1년 안에 너는 죽어, 돌연사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772번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보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1년 안에 돌연사로 죽는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기가 찰뿐이었다.
“저기요. 자꾸 이런 식이시면…….”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얘기하는 게 서로한테 좋을 것 같은데. 자리를 좀 옮기는 건 어때? 가능하면 사람들 눈이 없는 곳으로, 우리 셋이서만 대화할 수 있는.”
대장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가 그대로 손을 펴 보였다.
“잘 봐요. 저승사자는 아무것도 접촉할 수 없어.”
“네?”
대장은 손바닥을 벽으로 천천히 옮겼다. 보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장의 손바닥으로 향하였다. 거짓말처럼 그의 손은 벽을 통과해 일부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 제 몸을 통과한 건 어찌어찌 마술 비슷한 것으로 넘긴다 치더라도 재차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래도 못 믿겠어요? 내가 저승사자고, 저 후보생 담당자라는 거.”
“말도 안 돼.”
“그 말도 안 되는 얘기, 우리도 당신한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진 않은데 일이 커져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
“자리 옮겨요. 얘기 좀 합시다, 우리.”
* * *
결국 보영은 자신들이 저승사자이며 저승사자 후보생이라 우기는 두 남자를 데리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저 이 순간이 꿈이길 바랐다. 아니면 더위를 먹어 자신이 미친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취방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쯤이면 저승사자니, 뭐니 하던 미친 두 남자가 사라져 있을 거야. 이건 꿈이니까.
보영의 바람과는 달리 뒤를 돌아보자 두 남자가 묵묵히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결국 보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저승사자라는 거야?
반신반의하다보니 보영은 어느새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보영은 들어가자마자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수라도 마시고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수통을 꺼내 든 순간, 저승사자 후보생이라는 남자가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것을 본 보영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뭐해요? 벗어요, 신발.”
“뭘 벗어?”
“지금 그쪽이 신고 있는 거. 구두요.”
보영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772번이 신고 있는 구두를 가리켰다. 772번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자신이 신고 있는 구두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짝다리를 짚으며 보영을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왜?”
“네?”
“왜 벗어, 이걸?”
772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772번은 물었지만 그건 보영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이 엉키며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772번, 인간화되었을 땐 인간들처럼 행동해야해. 너 지금 인간화 안 풀렸잖아. 빨리 벗고 들어가.”
결국 772번 뒤에 있던 대장이 말하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772번은 고개를 끄덕이곤 구두를 벗어 현관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았다. 무개념인 저승사자인 건가 싶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모습을 보자 보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런 건 또 잘 배웠네.
보영은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을 들고 여유분의 머그잔을 꺼내기 위해 찬장으로 손을 뻗었다. 잘 쓰지 않았던 탓에 하필이면 너무 높게 올려놓았던 머그잔이어서 까치발을 들어도 쉽게 닿지 않았다.
낑낑대던 보영은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고개를 돌려 저승사자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장과 772번을 번갈아 바라보다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이거 좀 꺼내 줄래요?”
그나마 772번보단 대장과 대화하는 편이 쉽겠다고 생각한 보영은 대장을 보며 말했다. 부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데, 대장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나는 지금 인간화를 안 해서 인간 세계 물건을 아무것도 만질 수 없어. 쟤한테 해 달라고 해.”
대장이 가리킨 ‘쟤’라는 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보영을 바라보고 있는 772번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한 보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냥 꺼내는 편이 낫지.
보영은 방향을 틀어 찬장으로 손을 다시 뻗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그잔은 닿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의 눈앞에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놀란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보았다. 가까이에 772번의 얼굴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보영은 쉽게 꺼내지 못했던 머그잔을 가볍게 꺼내 건넸다.
“자.”
“저기, 두 개 더…….”
“아아, 우리는 필요 없어. 저승사자들은 인간하고 달라서 뭐 안 먹어.”
어느 샌가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대장이 말했다.
정말 뭐 안 줘도 되나?
고민하던 보영의 앞을 772번이 무심하게 슥 지나쳐 거실 테이블 앞에 가 앉았다. 보영은 거실 테이블에 버젓이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 한 번 들이지 않은 집에, 게다가 자신들이 저승사자라고 말하는 남자를 두 명이나 이 공간으로 데리고 온 것인지.
탁, 큰 소리가 나게 머그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보영이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설명, 아니 나를 이해시켜 봐요. 그러니까 당신들이 저승사자고, 내가 1년 안에 돌연사로 죽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미쳤지, 그 말을 덥석 믿고 이 둘을 집 안까지 들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