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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날이 밝자마자 기숙사에 들이닥친 폴리스들은 윤재라는 학생을 찾았다. 그래, 나를 찾아온 것이다. 모질지 않을 거라고 중얼거렸던 큰아버지는 결국 우리를 포기했다.
“윤재 학생 맞으십니까?”
“네.”
“법정 보호인이 어제 일자로 당신의 보호를 포기하여 제국에서 당신을 보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폴리스는 겁먹지 말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상냥한 손짓과 다르게 말투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친절이라는 가면을 쓴 그들이 얼마나 무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제 동생은요?”
“동생이 있으십니까?”
“네, 윤경이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동생이 살던 구역이 몇 구역입니까?”
“13구역이요.”
“10구역에서 15구역까지는 10구역 관할이니 가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폴리스는 날 어디론가 인도했다. 제국마크가 크게 찍힌 폴리스카가 기숙사 앞에 서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들이닥친 폴리스가 호기심을 부추겼는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있었다. 어두운 내 표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이다.
기숙사에 도둑이 들은 거야?
자고 있는 사이에 살인이라도 났나?
저거 미친놈 아니야? 결국 미친놈이 일 쳤나 보네.
키득키득. 있는 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갑시다.”
우뚝 멈춰 선 나를 폴리스가 잡아끌었다. 나는 하릴없이 카 안에 탔다. 폴리스카 안에는 제국을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태양이 비친다. 어둡던 땅 위로 태양이 비친다. 위대하신 제국의 자비 아래 우리는 평등하다.
평등?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하,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폴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해방되자 그는 상냥했던 웃음을 지우고 무표정으로 시동을 걸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더는 상냥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고아 새끼가 건방지게 콧방귀를 껴?”
“죄송합니다.”
이럴 때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게 좋다. 제게 고개를 숙여 주자 기분이 좋았는지 그는 제국주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렸다. 그 제길스러운 노래를 몇 번이고.
***
제10 임시 보호소.
폴리스는 낡은 문패가 달랑거리는 정부 산하의 임시 보호소로 날 안내했다. 보호소 소속의 공무원에게 날 넘겨 준 폴리스는 밖으로 나갔다. 공무원은 나를 품평하듯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 지독한 시선에 꼭 꼬챙이에 꿰진 돼지고기 같은 느낌이 들어 소름 돋았다.
“사격부였네요?”
“네.”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고요.”
“네.”
흥미가 없는 것이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점수가 좋지 않을 수밖에.
“걱정 마세요. 재학생은 아마 군인 양성소로 갈 것 같으니까요. 저희 제국은 성적으로 학생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말이 좋아 군인 양성소지, 그곳이 제국군을 위한 총알받이를 양성하는 곳이란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혹시 윤경이란 애는 오지 않았나요?”
“윤경, 윤경이라.”
그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남자는 한 뭉텅이의 서류 속에서 말갛게 웃는 경이의 사진이 붙은 서류를 꺼냈다. 서류 중앙에는 보호소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말이 좋아 보호소지 그곳은 인간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같은 식민지인들이 사고 팔리는.
“아, 보호소에 가게 된 아이를 말하는군요.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습니다.”
그는 웃었고 내 얼굴 근육은 딱딱하게 굳었다.
“걱정 마세요. 좋은 곳으로 보내질 겁니다. 제국에서 내려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도 찔 거고, 따뜻한 옷을 입고 추위 걱정 없이 지내겠죠.”
그곳이 어떤 곳인지 뻔히 아는데 거짓말을 한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면 저도 보호소로 보내 주세요.”
“어째서요? 보호소보다는 군인양성소가 나을 텐데요. 제국군이 되면 승진 기회도 있고. 페이도 꽤 되니까요. 혹 동생이 걱정돼서 그런 겁니까?”
“네.”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보호소에 아이들이 모자랐는데 행운이네요.”
행운을 운운한 남자는 활짝 웃으며 내 서류 위로 보호소라는 낙인을 찍었다. 지옥을 마다치 않는 날 환영한다는 듯이 빨간색의 마크는 화염처럼 종이 위로 번져 나갔다.
***
제 신세들을 깨닫고 우울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사이에서 경은 구세주를 만난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형아, 형아. 안도감이 가득한 표정의 경의 얼굴엔 보라색 멍이 달려 있었다.
“한참 고추를 따는데 뒤돌아보니까 할머니가 코 자는 거야. 추울까 봐 미미에게 했던 것처럼 흙 이불을 덮어 줬는데 계속 일어나지 않는 거 있지. 그래서 옆집 아저씨를 불렀는데 병원차가 오고 큰아버지가 오고 날 막 때렸어. 내가 잘못한 거래. 내가 병신이라서 할머니를 죽인 거래. 나보고 살인자래.”
경이의 입에서 쏟아지는 두서없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박혀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큰아버지가 그런 거구나. 조금은 이해가 가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쓴 물이 올라오는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내가 나쁜 거야?”
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고인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었다. 할머니였다면 옛날 내 바지에 묻은 눈을 털며 네 죄가 아니라고 말해 주셨던 것처럼, 경이 보고도 네 죄가 아니라고 했겠지만, 나는 할머니가 아니었기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할머니를 잃었다. 입술이 저절로 깨물어졌다.
“형, 내가 잘못한 거야?”
그래, 엄청. 네가 우리의 유일한 버팀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네 순진함이 우리 할머니를. 그것이 베어서는 안 될 고목이라는 걸 몰랐다 해도 베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네가 원망스러웠다. 왜 너는 모자라게 태어나서 감당도 하지 못할 일을 벌이는 걸까.
“잘못했어, 형. 그러니까 경이 좀 봐. 내가 잘못했어.”
경이는 손을 모으고 싹싹 빌었다. 네가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사람은 할머니고 큰아버진데 경이는 내게 빌었다. 잘못했어. 잘못했어. 결국, 가느다란 경이의 어깨를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너를 버릴 수 없었으니까. 한참이고 내 품에 안겨 잘못했다며 서럽게 울던 경이는 부은 눈을 하고 잠이 들었다.
***
“딱 스무 명. 운이 좋아.”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말소리에 눈을 깜박이자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이 보였다. 밤이 깊었음에도 아이들은 잠을 자지 않았다. 주위를 빠르게 훑자 아이들 반이 줄어 있었다. 우울한 표정의 아이들은 부들부들 떨며 몸을 움츠렸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지 않으려 발악을 하는 것이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건장한 남자가 아이들에게 고함을 쳤다. 나는 자고 있는 경이를 흔들어 깨웠다. 졸음을 한껏 안은 눈동자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빨리 지하에 내려가라고!! 높으신 분들이 기다리신단 말이다.”
“일어나.”
심각성을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경이는 더 자겠다고 칭얼댔다. 화가 치솟는 것도 잠시 “이 새끼들이! 죽고 싶어?” 꾸물거리다 남자의 회초리에 사정없이 맞는 아이들이 보여 나는 우선 경이를 업고 아이들 틈바구니에 섞였다. 고개를 숙인 아이들 사이에는 훌쩍임만이 존재했다.
우리가 향한 지하는 습하고 어두웠다. 좋지 않은 누린내를 풍기는 그곳엔 이글거리는 화로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설마. 나는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황급히 지웠다. 그건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꾸물거리지 말고 한 명씩 옷 벗고 서!”
남자가 빽 소리를 질렀지만 남자의 말에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는 걸 못하는 남자가 근처에 서 있는 아이를 끌어당겨 옷을 걷어 내고는 화로에 담긴 쇳덩이로 살을 짓눌렀다. 머리를 스쳤던 영상이 사실이 되었다. 꺅. 아이의 비명이 습한 지하에 울려 퍼졌다. 남자는 아이를 밀치더니 외쳤다.
“이 새끼들이 빨리 안 와? 니들이 살아 있는 놈들인지 아냐? 보호소 도장이 찍힌 순간 너희들은 죽은 사람들이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눈을 파낼 거야. 빨리 오지 못해?”
으앙- 겁먹은 아이들이 사방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그 울음소리에 입에 손가락을 물고 잠이 들었던 경이도 눈을 부스스 떴다.
“쉿. 형이 하라는 대로 해, 경아.”
경이가 잠에 덜 깬 얼굴로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예뻐 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형이 저기에서 손짓하면 저쪽으로 건너와. 알았지?”
끄덕끄덕. 나는 오른쪽 어깨를 내리고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남자의 손에 들린 뜨거운 쇳덩이가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눌렀다. 눈알이 뒤집히는 고통이 오른쪽 어깨에서 전해졌다. 턱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악문 나는 쇳덩이가 멀어지자 낙인을 찍은 아이들 옆에 앉았다.
“이렇게 얌전하게 굴란 말이다. 다음.”
쇠가 떨어진 오른쪽 어깨가 활활 탔다. 열기를 머금은 어깨 쪽을 옷으로 끌어올리곤 경이 쪽을 바라봤다. 경은 착하게도 내가 손짓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가? 경이가 입을 벙긋거리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좀 혼란한 틈을 타서. 다섯. 여섯. 일곱. 순서대로 아이들의 어깨에 낙인이 찍혔다. 오줌을 지리는 아이도 있었고 아프다고 꺼이꺼이 울어 젖히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소란스러울 때.
“이 새끼가!”
겁에 질린 아이가 화로를 발로 찼다. 뜨거운 숯덩이가 바닥으로 흩어지자 낙인을 찍던 남자가 불처럼 화를 내며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지금이었다. 나는 얼른 경이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경이가 금세 내 쪽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여기 가만히 있어. 알았지.”
“무서워.”
“금방 올게.”
찰싹찰싹 마찰음이 지하 안을 메웠다. 남자는 짜증을 내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혼란을 틈타 나는 경이가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열아홉. 마지막 너 이리와.”
왼쪽 어깨를 걷었다. 말끔한 피부를 본 남자는 실실 쪼개더니 쇳덩이를 피부에 대고 눌렀다.
“마지막이니 오래오래 눌러 주마.”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참다못해 이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오자 남자는 쇳덩이를 멀리 던져 버렸다.
“스물. 축하한다. 너희들은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닌 게 되었다. 제국에 이바지할 거름이 될 거다.”
불에 타 죽을 것 같은 어깨를 맞잡으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맞물린 이가 갈리는 것도 모르고 잠시 몰려오는 고통에 신음해야 했다.
“너희들은 위대한 제국을 위해 일하게 될 몸이야. 영광으로 알거라.”
그래, 빌어먹을 영광이네. 빌어먹을.
***
“아파? 형아, 아파?”
응. 나는 응이라 대답하고 싶었다. 고통이 양어깨를 좀먹고 있어 아프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고 아파서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눈을 감고 꾸벅이는 내 어깨를 경이는 자꾸 흔들었다. 사각진 작은 방에 방치된 아이들은 화염에 휩싸였던 어깨를 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신음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방의 아이들 모두 성치 않았다. 나는 뜨거운 어깻죽지를 차가운 벽으로 가져다 대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며 애타게 물을 찾았다.
“물…… 물 좀 줘.”
애타는 손짓이 반복되자 입 안으로 미지근한 물이 넘어왔다. 어디서 물을 구해 왔는지 경인 내 입 안에 물을 흘려 주고 있었다. 성급하게 물을 먹는 바람에 기도로 물이 잘못 들어가 컥컥거렸다.
“어디서 구해온 거야…….”
“밖에 아저씨가 줬어.”
“함부로 말 걸지 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속도 모르고 방정맞게 나대는 경이의 엉덩이를 내려치고 싶었다. 그러다 그들의 눈에 띄어 내가 모르는 사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릴지 모르니까.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되는데……. 스륵 눈이 감겼다가 옷이 상처를 스치는 아픔에 번뜩 눈이 떠졌다. 옷이 스쳐 쓰라린 아픔보다 몸을 활활 태우는 열기가 나를 괴롭게 했다.
“형아!”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는 내게서 불안감을 감지했는지 경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실눈을 뜨자 초조한 얼굴을 한 경이가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옷자락이 흔들리는 것뿐인데 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아 쓴물이 올라왔다.
“흔들지 마. 토할 거 같아.”
“안 흔들 테니까, 눈 감으면 안 돼.”
한숨 자고 일어나면 홧홧한 열기가 사라질 것만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절로 감기는 눈을 애써 치뜨자 경이가 종알종알 말을 걸어왔다.
“있잖아. 아까 밥을 넣어 주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깐, 우린 곧 헤븐으로 갈 거래. 헤헤. 엄마랑 아빠와 살던 집이 있는 곳 말이야.”
우리 고향인 헤븐밖에 모르는 경이는 좋다고 웃어 젖혔다. 헤븐이 우리가 아는 고향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입을 다물었다.
“헤븐에 가면 그때처럼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거지? 응?”
아까의 불안감은 떨쳐 버리고 기대에 부푼 경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현실을 알았더라면 부풀지 않을 꿈이 부풀고 또 부풀다가 결국에는 터져 버리겠지. 쓰라린 마음에 마른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렇지? 응?”
응, 그래.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와아, 신난다. 경인 좋다고 내 품에 안겨 종알거렸다. 그 종알거림에 ‘응, 응, 그래.’라며 작게 대답을 해 주었다.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한참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던 경이는 어슴푸레한 새벽이 찾아오자 잠이 들었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신 지금에야 현실이 보인 나는 내 허벅지를 베고 세상모르게 자는 경이를 한쪽으로 치웠다.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 위해 사방을 눈으로 훑었다. 좁은 방에는 옹기종기 스물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이로 발을 조심스레 옮기자 호기심에 찬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무력한 그들은 몸을 늘어뜨리고 죽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 속을 헤집고 쇠문 앞에 서 문을 만지자 금속의 차가운 온도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탈출 통로는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창문과 쇠문이 다였다. 가진 것이라곤 몸 밖에 없는 나와 경이는 탈출하기 틀렸다는 이야기다. 톡톡 벽을 두드렸다. 벽 또한 콘크리트다. 제길. 소리 없이 그 말을 입술로만 말했다.
좁은 공간을 빙빙 도는데 멀리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말씀하신 대로 스무 명입니다.”
낙인을 찍기 전부터 우리의 행로는 정해져 있던 건가. 나는 서둘러 경이 곁으로 가 자는 척을 하며 실눈을 떴다.
“건강한 놈들로 준비해 달라 했는데 영 비실 해 보이는군.”
소름이 돋았다.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번뜩이는 검은 눈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던 걸까. 나는 책이라도 잡힐까 마른 침을 삼키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눈꺼풀을 내렸다.
“낙인을 찍은 후라 그럽니다. 시간이 지나면 팔팔 날아다닐 겁니다.”
“뭐, 그런 것도 같군.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도망치려고 킁킁거렸거든.”
들켰다. 나는 숨을 멈추곤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 남자. 우리에게 총구를 겨눴던 남자. 이유 불문을 내뱉던 남자. 스르릉 소리를 내며 문을 단단히 옥죄고 있던 쇠가 움직였다.
“어떤 놈이! 감히! 그놈을 갱생시켜 놓겠습니다.”
우리에게 낙인을 찍었던 남자는 흥분하며 들어오더니 주위를 휘휘 돌아보았다. 남자의 고함에 문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벌벌 떨며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번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여기 있는 것들로 하지.”
나는 경이의 작은 머리통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몸을 낮췄다. 지독한 한기가 문에서 흘러들어와 고개를 힐끔 올렸다. 순간 번뜩이는 눈과 마주치자 어쩐지 그의 입술 한 꼬리가 올라간 듯했다. 한기가 흘러나오는 문을 등지고 선 남자의 은빛가면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아래 움직이는 입술이 소름 돋게 붉어 오싹했다.
“사례는 나쁘지 않게 챙겨 넣겠네.”
“네, 네. 감사합니다.”
연신 조아리는 남자를 뒤로하고 남자는 뒤로 돌아나갔다. 남자의 옷은 군복이었다. 제국군이 버림받은 아이들을 비공식적으로 데려간다는 소문은 사실이었구나. 군인의 수가 모자라나. 아니다. 제국군이 모자랄 리 없었다. 식민지인들은 언제나 제국군을 동경했기에 그들의 군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때문에 더욱이 찾을 이가 없는 아이들을 찾는 게 이상했다. 그러면 어째서?
수많은 물음을 떠올리던 중 아이들의 어깻죽지에 찍힌 마크를 떠올렸다. 그것은 선명한 제국군 마크였다. 그 마크가 찍힌 순간 아이들은 모두 제국군 소속의 자산이 된 것이다. 나는 뒤죽박죽 떠오른 생각을 다시 천천히 나열했다. 윤곽이 잡힐 듯 말 듯 했다.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나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비공식이라는 말은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해주었으니까.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를 그런 것.
인생이 평지만 이어진다 싶더니 결국 이런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어 그랬던 거구나. 나는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그러다 이내 침울한 표정이 되어 경이를 내려다봤다.
“경아, 헤븐으로 간다던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었어.”
우리는 곧 지옥에 갈 거야. 불을 머금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말이야.
***
주로 동물들을 이송하는 데 이용하는 거대한 대형 에어카는 스무 명의 아이를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흔들림 없는 직사각형 공간 속에서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신께 기도했다. 제발 목적지에 닿기 전에 사고가 나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러나 나의 신은 언제나 그렇듯 죽어 있었다. 내 애타는 기도에도 카는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내 신은, 이 카에 탄 아이들의 신은 오늘만큼은 죽었다.
“텅텅.”
금속의 물질이 텅텅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밝은 빛이 눈을 아프게 찔러 오더니 새하얀 가운을 거친 남자 하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내려! 내리라고!”
우물쭈물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경이의 손을 잡고 내렸다. 꾸물거려 봐야 좋을 게 없다.
“이 새끼들이!”
카 안에 하얀 군복을 입은 군인 두 명이 들어가 아이들을 끌어내렸다. 버둥대는 아이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린 남자는 구석에 숨어있는 마지막 아이까지 밖으로 끌어내고는 욕을 뱉었다.
눈을 말갛게 뜬 경이가 내 팔을 잡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가느다란 팔을 보건데 새로운 환경에 겁에 질려 있었다. 눈을 아프게 찔러 오는 새하얀 복도는 나조차도 질렸다. 나는 경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형.”
“쉿.”
검지를 입술 위로 가져갔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주목을 외쳐 분산된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연구소에 온 걸 환영한다. 너희들에게 긴말 하지 않겠다. 그저 우리의 지시대로 따라 달라 말하고 싶군. 우리가 인간적인 대우를 할 때 따라오라는 말이다. 개와 돼지 같은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인간적인 대우? 쓴소리가 입술 밖으로 나갔다. 연구소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비공식적인 실험을 하려는 의도겠지. 그런 주제에 인간적인 대우를 운운하는 군인들에게 아득 이가 갈렸다. 아직도 옷이 스칠 때마다 찍힌 낙인이 아려 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말하라. 참고는 하도록 하지. 이의 있나?”
적막감이 도는 공간 속에서 그 누구도 반항적으로 나오는 이는 없었다. 그저 스무 명의 눈들이 겁에 질린 채로 남자를 주시했다.
“그럼 지시에 따라 자리를 옮기도록. 행여 연구원들이 공부만 하는 안경잡이라 생각하고 반항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보시다시피 주위에 제국군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
가운을 입은 자들은 연구원. 제복을 입은 자들은 군인. 명확하게 하는 일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뜻은 똑같다. 결코 우리에게 유하지 않다는 점.
우리는 총부리를 대고 선 군인들이 인도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총 네 번의 소독기를 거쳐 도착한 곳은 대형 목욕탕이었다. 하얀 타일이 발린 목욕탕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했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목욕탕에 왔으면 씻어야 할 거 아냐?”
호통이 이어지자 놀란 아이들이 허겁지겁 뛰어가 샤워부스에 들어갔다. 그 속에서 나도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근처의 샤워기를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지만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가 옷을 벗었다.
그러다 문득 경이의 등에 낙인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옷을 벗어 던지고 있는 경을 잡아당기자 눈물을 가득 단 경이 힘없이 딸려 왔다.
“거기 누가 둘씩 들어가라고 했나? 부스 하나당 한 사람인 거 모르나?”
감시봉이 샤워부스를 내리쳤다.
“죄송합니다. 동생이 약간 모자라 제가 씻겨 줘야 합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경이를 내려다본다. 닮은 얼굴 두 개가 눈을 내리고 있자 남자는 콧방귀를 뀌고는 뒤로 물러났다. 같이 씻어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나는 경이를 앞에 세운 뒤 군인들을 등지고 옷을 벗어 던졌다. 사람을 인식한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경아, 하얀 옷 입은 사람들 보이지?”
“응.”
“저 사람들에게 등을 절대 보여 주어선 안 돼.”
“왜?”
“네가 남들에게 다 있는 낙인이 없거든. 특별해서 시샘할지도 몰라.”
겁에 질린 눈을 하곤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던 경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다. 나는 경이의 머리에 거품을 냈다.
“여기가 헤븐이야?”
“아니.”
“그렇지? 여기가 헤븐이 아니지? 아저씨는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들.”
거짓말쟁이를 외치는 목소리의 끝자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것은 겁에 질린 목소리라기보다 서러움이 묻은 목소리였다.
날이 밝자마자 기숙사에 들이닥친 폴리스들은 윤재라는 학생을 찾았다. 그래, 나를 찾아온 것이다. 모질지 않을 거라고 중얼거렸던 큰아버지는 결국 우리를 포기했다.
“윤재 학생 맞으십니까?”
“네.”
“법정 보호인이 어제 일자로 당신의 보호를 포기하여 제국에서 당신을 보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폴리스는 겁먹지 말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상냥한 손짓과 다르게 말투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친절이라는 가면을 쓴 그들이 얼마나 무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제 동생은요?”
“동생이 있으십니까?”
“네, 윤경이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동생이 살던 구역이 몇 구역입니까?”
“13구역이요.”
“10구역에서 15구역까지는 10구역 관할이니 가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폴리스는 날 어디론가 인도했다. 제국마크가 크게 찍힌 폴리스카가 기숙사 앞에 서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들이닥친 폴리스가 호기심을 부추겼는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있었다. 어두운 내 표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이다.
기숙사에 도둑이 들은 거야?
자고 있는 사이에 살인이라도 났나?
저거 미친놈 아니야? 결국 미친놈이 일 쳤나 보네.
키득키득. 있는 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갑시다.”
우뚝 멈춰 선 나를 폴리스가 잡아끌었다. 나는 하릴없이 카 안에 탔다. 폴리스카 안에는 제국을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태양이 비친다. 어둡던 땅 위로 태양이 비친다. 위대하신 제국의 자비 아래 우리는 평등하다.
평등?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하,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폴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해방되자 그는 상냥했던 웃음을 지우고 무표정으로 시동을 걸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더는 상냥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고아 새끼가 건방지게 콧방귀를 껴?”
“죄송합니다.”
이럴 때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게 좋다. 제게 고개를 숙여 주자 기분이 좋았는지 그는 제국주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렸다. 그 제길스러운 노래를 몇 번이고.
***
제10 임시 보호소.
폴리스는 낡은 문패가 달랑거리는 정부 산하의 임시 보호소로 날 안내했다. 보호소 소속의 공무원에게 날 넘겨 준 폴리스는 밖으로 나갔다. 공무원은 나를 품평하듯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 지독한 시선에 꼭 꼬챙이에 꿰진 돼지고기 같은 느낌이 들어 소름 돋았다.
“사격부였네요?”
“네.”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고요.”
“네.”
흥미가 없는 것이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점수가 좋지 않을 수밖에.
“걱정 마세요. 재학생은 아마 군인 양성소로 갈 것 같으니까요. 저희 제국은 성적으로 학생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말이 좋아 군인 양성소지, 그곳이 제국군을 위한 총알받이를 양성하는 곳이란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혹시 윤경이란 애는 오지 않았나요?”
“윤경, 윤경이라.”
그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남자는 한 뭉텅이의 서류 속에서 말갛게 웃는 경이의 사진이 붙은 서류를 꺼냈다. 서류 중앙에는 보호소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말이 좋아 보호소지 그곳은 인간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같은 식민지인들이 사고 팔리는.
“아, 보호소에 가게 된 아이를 말하는군요.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습니다.”
그는 웃었고 내 얼굴 근육은 딱딱하게 굳었다.
“걱정 마세요. 좋은 곳으로 보내질 겁니다. 제국에서 내려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도 찔 거고, 따뜻한 옷을 입고 추위 걱정 없이 지내겠죠.”
그곳이 어떤 곳인지 뻔히 아는데 거짓말을 한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면 저도 보호소로 보내 주세요.”
“어째서요? 보호소보다는 군인양성소가 나을 텐데요. 제국군이 되면 승진 기회도 있고. 페이도 꽤 되니까요. 혹 동생이 걱정돼서 그런 겁니까?”
“네.”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보호소에 아이들이 모자랐는데 행운이네요.”
행운을 운운한 남자는 활짝 웃으며 내 서류 위로 보호소라는 낙인을 찍었다. 지옥을 마다치 않는 날 환영한다는 듯이 빨간색의 마크는 화염처럼 종이 위로 번져 나갔다.
***
제 신세들을 깨닫고 우울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사이에서 경은 구세주를 만난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형아, 형아. 안도감이 가득한 표정의 경의 얼굴엔 보라색 멍이 달려 있었다.
“한참 고추를 따는데 뒤돌아보니까 할머니가 코 자는 거야. 추울까 봐 미미에게 했던 것처럼 흙 이불을 덮어 줬는데 계속 일어나지 않는 거 있지. 그래서 옆집 아저씨를 불렀는데 병원차가 오고 큰아버지가 오고 날 막 때렸어. 내가 잘못한 거래. 내가 병신이라서 할머니를 죽인 거래. 나보고 살인자래.”
경이의 입에서 쏟아지는 두서없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박혀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큰아버지가 그런 거구나. 조금은 이해가 가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쓴 물이 올라오는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내가 나쁜 거야?”
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고인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었다. 할머니였다면 옛날 내 바지에 묻은 눈을 털며 네 죄가 아니라고 말해 주셨던 것처럼, 경이 보고도 네 죄가 아니라고 했겠지만, 나는 할머니가 아니었기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할머니를 잃었다. 입술이 저절로 깨물어졌다.
“형, 내가 잘못한 거야?”
그래, 엄청. 네가 우리의 유일한 버팀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네 순진함이 우리 할머니를. 그것이 베어서는 안 될 고목이라는 걸 몰랐다 해도 베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네가 원망스러웠다. 왜 너는 모자라게 태어나서 감당도 하지 못할 일을 벌이는 걸까.
“잘못했어, 형. 그러니까 경이 좀 봐. 내가 잘못했어.”
경이는 손을 모으고 싹싹 빌었다. 네가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사람은 할머니고 큰아버진데 경이는 내게 빌었다. 잘못했어. 잘못했어. 결국, 가느다란 경이의 어깨를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너를 버릴 수 없었으니까. 한참이고 내 품에 안겨 잘못했다며 서럽게 울던 경이는 부은 눈을 하고 잠이 들었다.
***
“딱 스무 명. 운이 좋아.”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말소리에 눈을 깜박이자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이 보였다. 밤이 깊었음에도 아이들은 잠을 자지 않았다. 주위를 빠르게 훑자 아이들 반이 줄어 있었다. 우울한 표정의 아이들은 부들부들 떨며 몸을 움츠렸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지 않으려 발악을 하는 것이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건장한 남자가 아이들에게 고함을 쳤다. 나는 자고 있는 경이를 흔들어 깨웠다. 졸음을 한껏 안은 눈동자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빨리 지하에 내려가라고!! 높으신 분들이 기다리신단 말이다.”
“일어나.”
심각성을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경이는 더 자겠다고 칭얼댔다. 화가 치솟는 것도 잠시 “이 새끼들이! 죽고 싶어?” 꾸물거리다 남자의 회초리에 사정없이 맞는 아이들이 보여 나는 우선 경이를 업고 아이들 틈바구니에 섞였다. 고개를 숙인 아이들 사이에는 훌쩍임만이 존재했다.
우리가 향한 지하는 습하고 어두웠다. 좋지 않은 누린내를 풍기는 그곳엔 이글거리는 화로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설마. 나는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황급히 지웠다. 그건 사람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꾸물거리지 말고 한 명씩 옷 벗고 서!”
남자가 빽 소리를 질렀지만 남자의 말에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는 걸 못하는 남자가 근처에 서 있는 아이를 끌어당겨 옷을 걷어 내고는 화로에 담긴 쇳덩이로 살을 짓눌렀다. 머리를 스쳤던 영상이 사실이 되었다. 꺅. 아이의 비명이 습한 지하에 울려 퍼졌다. 남자는 아이를 밀치더니 외쳤다.
“이 새끼들이 빨리 안 와? 니들이 살아 있는 놈들인지 아냐? 보호소 도장이 찍힌 순간 너희들은 죽은 사람들이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눈을 파낼 거야. 빨리 오지 못해?”
으앙- 겁먹은 아이들이 사방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그 울음소리에 입에 손가락을 물고 잠이 들었던 경이도 눈을 부스스 떴다.
“쉿. 형이 하라는 대로 해, 경아.”
경이가 잠에 덜 깬 얼굴로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예뻐 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형이 저기에서 손짓하면 저쪽으로 건너와. 알았지?”
끄덕끄덕. 나는 오른쪽 어깨를 내리고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남자의 손에 들린 뜨거운 쇳덩이가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눌렀다. 눈알이 뒤집히는 고통이 오른쪽 어깨에서 전해졌다. 턱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악문 나는 쇳덩이가 멀어지자 낙인을 찍은 아이들 옆에 앉았다.
“이렇게 얌전하게 굴란 말이다. 다음.”
쇠가 떨어진 오른쪽 어깨가 활활 탔다. 열기를 머금은 어깨 쪽을 옷으로 끌어올리곤 경이 쪽을 바라봤다. 경은 착하게도 내가 손짓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가? 경이가 입을 벙긋거리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좀 혼란한 틈을 타서. 다섯. 여섯. 일곱. 순서대로 아이들의 어깨에 낙인이 찍혔다. 오줌을 지리는 아이도 있었고 아프다고 꺼이꺼이 울어 젖히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소란스러울 때.
“이 새끼가!”
겁에 질린 아이가 화로를 발로 찼다. 뜨거운 숯덩이가 바닥으로 흩어지자 낙인을 찍던 남자가 불처럼 화를 내며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지금이었다. 나는 얼른 경이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경이가 금세 내 쪽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여기 가만히 있어. 알았지.”
“무서워.”
“금방 올게.”
찰싹찰싹 마찰음이 지하 안을 메웠다. 남자는 짜증을 내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혼란을 틈타 나는 경이가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열아홉. 마지막 너 이리와.”
왼쪽 어깨를 걷었다. 말끔한 피부를 본 남자는 실실 쪼개더니 쇳덩이를 피부에 대고 눌렀다.
“마지막이니 오래오래 눌러 주마.”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참다못해 이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오자 남자는 쇳덩이를 멀리 던져 버렸다.
“스물. 축하한다. 너희들은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닌 게 되었다. 제국에 이바지할 거름이 될 거다.”
불에 타 죽을 것 같은 어깨를 맞잡으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맞물린 이가 갈리는 것도 모르고 잠시 몰려오는 고통에 신음해야 했다.
“너희들은 위대한 제국을 위해 일하게 될 몸이야. 영광으로 알거라.”
그래, 빌어먹을 영광이네. 빌어먹을.
***
“아파? 형아, 아파?”
응. 나는 응이라 대답하고 싶었다. 고통이 양어깨를 좀먹고 있어 아프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고 아파서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눈을 감고 꾸벅이는 내 어깨를 경이는 자꾸 흔들었다. 사각진 작은 방에 방치된 아이들은 화염에 휩싸였던 어깨를 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신음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방의 아이들 모두 성치 않았다. 나는 뜨거운 어깻죽지를 차가운 벽으로 가져다 대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며 애타게 물을 찾았다.
“물…… 물 좀 줘.”
애타는 손짓이 반복되자 입 안으로 미지근한 물이 넘어왔다. 어디서 물을 구해 왔는지 경인 내 입 안에 물을 흘려 주고 있었다. 성급하게 물을 먹는 바람에 기도로 물이 잘못 들어가 컥컥거렸다.
“어디서 구해온 거야…….”
“밖에 아저씨가 줬어.”
“함부로 말 걸지 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속도 모르고 방정맞게 나대는 경이의 엉덩이를 내려치고 싶었다. 그러다 그들의 눈에 띄어 내가 모르는 사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릴지 모르니까.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되는데……. 스륵 눈이 감겼다가 옷이 상처를 스치는 아픔에 번뜩 눈이 떠졌다. 옷이 스쳐 쓰라린 아픔보다 몸을 활활 태우는 열기가 나를 괴롭게 했다.
“형아!”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는 내게서 불안감을 감지했는지 경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실눈을 뜨자 초조한 얼굴을 한 경이가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옷자락이 흔들리는 것뿐인데 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아 쓴물이 올라왔다.
“흔들지 마. 토할 거 같아.”
“안 흔들 테니까, 눈 감으면 안 돼.”
한숨 자고 일어나면 홧홧한 열기가 사라질 것만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절로 감기는 눈을 애써 치뜨자 경이가 종알종알 말을 걸어왔다.
“있잖아. 아까 밥을 넣어 주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깐, 우린 곧 헤븐으로 갈 거래. 헤헤. 엄마랑 아빠와 살던 집이 있는 곳 말이야.”
우리 고향인 헤븐밖에 모르는 경이는 좋다고 웃어 젖혔다. 헤븐이 우리가 아는 고향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입을 다물었다.
“헤븐에 가면 그때처럼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거지? 응?”
아까의 불안감은 떨쳐 버리고 기대에 부푼 경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현실을 알았더라면 부풀지 않을 꿈이 부풀고 또 부풀다가 결국에는 터져 버리겠지. 쓰라린 마음에 마른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렇지? 응?”
응, 그래.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와아, 신난다. 경인 좋다고 내 품에 안겨 종알거렸다. 그 종알거림에 ‘응, 응, 그래.’라며 작게 대답을 해 주었다.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한참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던 경이는 어슴푸레한 새벽이 찾아오자 잠이 들었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신 지금에야 현실이 보인 나는 내 허벅지를 베고 세상모르게 자는 경이를 한쪽으로 치웠다.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 위해 사방을 눈으로 훑었다. 좁은 방에는 옹기종기 스물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이로 발을 조심스레 옮기자 호기심에 찬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무력한 그들은 몸을 늘어뜨리고 죽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 속을 헤집고 쇠문 앞에 서 문을 만지자 금속의 차가운 온도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탈출 통로는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창문과 쇠문이 다였다. 가진 것이라곤 몸 밖에 없는 나와 경이는 탈출하기 틀렸다는 이야기다. 톡톡 벽을 두드렸다. 벽 또한 콘크리트다. 제길. 소리 없이 그 말을 입술로만 말했다.
좁은 공간을 빙빙 도는데 멀리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말씀하신 대로 스무 명입니다.”
낙인을 찍기 전부터 우리의 행로는 정해져 있던 건가. 나는 서둘러 경이 곁으로 가 자는 척을 하며 실눈을 떴다.
“건강한 놈들로 준비해 달라 했는데 영 비실 해 보이는군.”
소름이 돋았다.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번뜩이는 검은 눈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던 걸까. 나는 책이라도 잡힐까 마른 침을 삼키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눈꺼풀을 내렸다.
“낙인을 찍은 후라 그럽니다. 시간이 지나면 팔팔 날아다닐 겁니다.”
“뭐, 그런 것도 같군.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도망치려고 킁킁거렸거든.”
들켰다. 나는 숨을 멈추곤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 남자. 우리에게 총구를 겨눴던 남자. 이유 불문을 내뱉던 남자. 스르릉 소리를 내며 문을 단단히 옥죄고 있던 쇠가 움직였다.
“어떤 놈이! 감히! 그놈을 갱생시켜 놓겠습니다.”
우리에게 낙인을 찍었던 남자는 흥분하며 들어오더니 주위를 휘휘 돌아보았다. 남자의 고함에 문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벌벌 떨며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번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여기 있는 것들로 하지.”
나는 경이의 작은 머리통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몸을 낮췄다. 지독한 한기가 문에서 흘러들어와 고개를 힐끔 올렸다. 순간 번뜩이는 눈과 마주치자 어쩐지 그의 입술 한 꼬리가 올라간 듯했다. 한기가 흘러나오는 문을 등지고 선 남자의 은빛가면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아래 움직이는 입술이 소름 돋게 붉어 오싹했다.
“사례는 나쁘지 않게 챙겨 넣겠네.”
“네, 네. 감사합니다.”
연신 조아리는 남자를 뒤로하고 남자는 뒤로 돌아나갔다. 남자의 옷은 군복이었다. 제국군이 버림받은 아이들을 비공식적으로 데려간다는 소문은 사실이었구나. 군인의 수가 모자라나. 아니다. 제국군이 모자랄 리 없었다. 식민지인들은 언제나 제국군을 동경했기에 그들의 군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때문에 더욱이 찾을 이가 없는 아이들을 찾는 게 이상했다. 그러면 어째서?
수많은 물음을 떠올리던 중 아이들의 어깻죽지에 찍힌 마크를 떠올렸다. 그것은 선명한 제국군 마크였다. 그 마크가 찍힌 순간 아이들은 모두 제국군 소속의 자산이 된 것이다. 나는 뒤죽박죽 떠오른 생각을 다시 천천히 나열했다. 윤곽이 잡힐 듯 말 듯 했다.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나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비공식이라는 말은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해주었으니까.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를 그런 것.
인생이 평지만 이어진다 싶더니 결국 이런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어 그랬던 거구나. 나는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그러다 이내 침울한 표정이 되어 경이를 내려다봤다.
“경아, 헤븐으로 간다던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었어.”
우리는 곧 지옥에 갈 거야. 불을 머금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말이야.
***
주로 동물들을 이송하는 데 이용하는 거대한 대형 에어카는 스무 명의 아이를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흔들림 없는 직사각형 공간 속에서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신께 기도했다. 제발 목적지에 닿기 전에 사고가 나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러나 나의 신은 언제나 그렇듯 죽어 있었다. 내 애타는 기도에도 카는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내 신은, 이 카에 탄 아이들의 신은 오늘만큼은 죽었다.
“텅텅.”
금속의 물질이 텅텅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밝은 빛이 눈을 아프게 찔러 오더니 새하얀 가운을 거친 남자 하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내려! 내리라고!”
우물쭈물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경이의 손을 잡고 내렸다. 꾸물거려 봐야 좋을 게 없다.
“이 새끼들이!”
카 안에 하얀 군복을 입은 군인 두 명이 들어가 아이들을 끌어내렸다. 버둥대는 아이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린 남자는 구석에 숨어있는 마지막 아이까지 밖으로 끌어내고는 욕을 뱉었다.
눈을 말갛게 뜬 경이가 내 팔을 잡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가느다란 팔을 보건데 새로운 환경에 겁에 질려 있었다. 눈을 아프게 찔러 오는 새하얀 복도는 나조차도 질렸다. 나는 경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형.”
“쉿.”
검지를 입술 위로 가져갔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주목을 외쳐 분산된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연구소에 온 걸 환영한다. 너희들에게 긴말 하지 않겠다. 그저 우리의 지시대로 따라 달라 말하고 싶군. 우리가 인간적인 대우를 할 때 따라오라는 말이다. 개와 돼지 같은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인간적인 대우? 쓴소리가 입술 밖으로 나갔다. 연구소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비공식적인 실험을 하려는 의도겠지. 그런 주제에 인간적인 대우를 운운하는 군인들에게 아득 이가 갈렸다. 아직도 옷이 스칠 때마다 찍힌 낙인이 아려 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말하라. 참고는 하도록 하지. 이의 있나?”
적막감이 도는 공간 속에서 그 누구도 반항적으로 나오는 이는 없었다. 그저 스무 명의 눈들이 겁에 질린 채로 남자를 주시했다.
“그럼 지시에 따라 자리를 옮기도록. 행여 연구원들이 공부만 하는 안경잡이라 생각하고 반항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보시다시피 주위에 제국군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
가운을 입은 자들은 연구원. 제복을 입은 자들은 군인. 명확하게 하는 일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뜻은 똑같다. 결코 우리에게 유하지 않다는 점.
우리는 총부리를 대고 선 군인들이 인도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총 네 번의 소독기를 거쳐 도착한 곳은 대형 목욕탕이었다. 하얀 타일이 발린 목욕탕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했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목욕탕에 왔으면 씻어야 할 거 아냐?”
호통이 이어지자 놀란 아이들이 허겁지겁 뛰어가 샤워부스에 들어갔다. 그 속에서 나도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근처의 샤워기를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지만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가 옷을 벗었다.
그러다 문득 경이의 등에 낙인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옷을 벗어 던지고 있는 경을 잡아당기자 눈물을 가득 단 경이 힘없이 딸려 왔다.
“거기 누가 둘씩 들어가라고 했나? 부스 하나당 한 사람인 거 모르나?”
감시봉이 샤워부스를 내리쳤다.
“죄송합니다. 동생이 약간 모자라 제가 씻겨 줘야 합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경이를 내려다본다. 닮은 얼굴 두 개가 눈을 내리고 있자 남자는 콧방귀를 뀌고는 뒤로 물러났다. 같이 씻어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나는 경이를 앞에 세운 뒤 군인들을 등지고 옷을 벗어 던졌다. 사람을 인식한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경아, 하얀 옷 입은 사람들 보이지?”
“응.”
“저 사람들에게 등을 절대 보여 주어선 안 돼.”
“왜?”
“네가 남들에게 다 있는 낙인이 없거든. 특별해서 시샘할지도 몰라.”
겁에 질린 눈을 하곤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던 경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다. 나는 경이의 머리에 거품을 냈다.
“여기가 헤븐이야?”
“아니.”
“그렇지? 여기가 헤븐이 아니지? 아저씨는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들.”
거짓말쟁이를 외치는 목소리의 끝자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것은 겁에 질린 목소리라기보다 서러움이 묻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