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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어제가 ‘숨겨진 진실’의 새 연재분이 올라오는 날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개인 사정으로 하루 연재를 미루었고, 아직까지 새 연재물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유진은 바삐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혹시……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서 원고를 날려 먹은 바람에 건강상의 이유를 빌미로…….”
뭔가를 알아냈다는 듯 눈동자가 커지며 위로 치떠졌다.
“며칠 잠수 타려는 거 아냐?”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들어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쿠궁쾅쾅! 문이 부서져라 발길질을 해 대던 그녀는 이윽고 다시 주먹으로 세차게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작가님! 작가님!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 있더라도 원고는 끝마치시고 생기셔야 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세요? 작가님! 혹시 쓰러지신 건 아니죠? 쓰러지셨더라도 원고는 끝내신 거죠? 작가님! 이러면 안 돼요! 작가님 원고에 제 목숨이 달렸다고요! 이번에도 마감 펑크 내시면 제 밥줄 끊긴다고요! 그건 알고 계시는 거죠? 뭐라 말 좀 해 보세요! 말하기 곤란하면 공이라도 문을 향해 던져 보시든가요! 제발요! 저 진짜 죽을 만큼 간절해요!”
순간 벌컥 열려 버린 문에 할 말을 잃고 멍해진 유진은 초점 없는 시선을 들어 짜증스레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곤 알 수 없는 적막이 둘 사이를 가르며 휘감겼다.
피곤에 절어 까칠한 얼굴엔 거뭇거뭇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 언제 미용실을 갔는지 짐작하기도 힘든 머리는 이미 눈을 반쯤 덮어 날카로운 눈매를 차분히 누르고 있었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에선 언뜻 싱그러운 향기가 퍼지는 것 같다.
붉게 반짝이는 입술에선 생기가 돌았지만 머리색과 닮은 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온기도 자리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하얀 피부는 이런 것들에 차가운 인상을 더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밀랍 인형처럼. 그리고…… 종이 인형과 다를 바 없는 만화 속의 인물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감정 없는 인형이 뚫어지게 직시한다. 공허한 두 눈에선 경악에 찬 놀라움이 들어차고, 유일하게 생기로 얼룩진 붉은 입술이 조금씩 달싹이기 시작했다.
“……나……리야…….”
무미건조한 도헌의 음성에 제정신을 차린 유진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곤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작가님.”
대략 세 걸음 사이로 둘은 무수히도 많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감정이야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유진은 확고하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 나갔다.
절대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흔들리는 눈동자 사이로 굳건한 마음이 스쳤다.
“정신 나간 척 연기하셔도 소용없어요.”
“뭐?”
멀뚱한 도헌의 시선을 무시하며 유진은 그를 지나쳐 작업실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야. 이런 식으로 진정한 프로의 작업실을 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우리 초면이죠? 항상 업무는 통화로만 이루어졌으니까요.”
유진은 온통 화이트 톤의 내부를 둘러보며 여전히 문고리를 잡은 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 도헌을 돌아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도헌 작가님. 두 달 전에 새로 바뀐 담당자 오유진입니다.”
“하……!”
“마감 원고를 직접 받으러 왔어요. 하도 연락이 안 되셔서.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절 보자마자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 주시고.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그렇게 정신 나간 척하셔도…… 마감은 늦춰 드릴 수 없겠는데요.”
점점 사색이 되어 가는 도헌과는 달리 심드렁한 유진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항상 주눅 들어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된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한없이 올라간 자존감 때문에 높이 턱을 치켜든 콧대 위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워졌다.
뭐, 뭐야? 어, 엄지? 흠칫 놀란 그녀의 눈앞에 도헌과는 또 다른 허여멀건 비주얼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매끈한 이목구비로 눈부신 미소를 흘리며 쌍 엄지를 허공에 둥둥 치켜든다.
“이야. 담당자님 기세 하난 최고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사랑해요!”
난데없는 사랑 고백으로 어안이 벙벙한 귓가에 잔뜩 독이 오른 도헌의 목소리가 울렸다.
“야! 강진수! 야! 야, 인마!”
“작가님 저 새벽 4시까지만 놀고 올게요! 오늘은 진짜 빠지기 힘든 모임이라 그래요! 사랑해요!”
“저, 저 새끼…….”
힘없이 잦아든 도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유진은 컴퓨터가 놓여 있는 방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뒤를 빠르게 따라붙으며 작게 욕지거리를 씹어뱉은 그는 제멋대로 뻗어 있는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헝클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가.”
“네?”
“그래. 잠시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거 사과할게. 그러니까 조용히 사라져. 지금 당장.”
“아까 제가 한 말 못 들으셨어요?”
“그 원고, 지금 웹하드에 올릴 테니까 꺼지라고.”
도헌의 강경한 태도에 살짝 주춤한 유진은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그, 그 원고가 연재분인지 출판용인지 제가 어떻게 알고 확인도 안 하고 가요? 아까도 제가 말했죠? 작가님 원고에 제 목숨이 달렸다고요.”
“자꾸 아까부터란 말로 말꼬리 잡는데 그만하지? 상당히 거슬리거든.”
“그러니까 제가 직접 무슨 원고인지 눈으로 확인하겠다고요.”
마뜩잖은 시선에도 아랑곳 않던 그녀가 휙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김도헌 작가가 까칠하다는 건 이 바닥에 하루만 있어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딱히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바짝 졸아들 유진이 아니었다.
이미 사무실을 벗어날 때부터 마음의 준비도 해 왔고, 박 팀장 밑에서 두 달 동안 눈칫밥 먹으며 맷집을 길러 온 영향도 컸다. 하지만 도헌은 달랐다. 점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지 붉어진 얼굴은 어느새 험악해져 있었다.
“이 여자가 진짜!”
사내의 힘에 거칠게 잡힌 가녀린 손목이 비명을 지르듯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야!”
순식간에 휘청거린 몸이 방과 거실 중간에 놓인 선반 위의 조그만 연필꽂이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던 안의 내용물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사이에 숨어 있던 커터 칼이 유진의 다리를 그으며 선명한 핏줄기를 만들어 냈다.
그 순간이었다. 하얀 다리 위에 검게 흐르는 피를 보자 모든 것들이 아득히 멀어졌다. 활활 불타던 의욕도, 금방이라도 정규직이 된 듯 흥분으로 들뜬 기분도, 모든 것들이 가능할 것 같기만 한 치솟은 자신감까지.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과도한 흥분으로 인해 기본적인 매너까지도 잊어버린 과한 행동들이 순간적으로나마 창피했다.
오유진. 진정하자.
앙다문 잇새로 거칠게 흐르는 호흡을 뒤로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너무 업되어 버린 기분 탓에 마음마저 허공에 붕 떠올랐다.
이래선 안 된다.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할 때다.
작게 숨을 고르자, 어느 순간 고요해진 주변에 마치 덩그러니 혼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심호흡하듯 천천히 눈을 떠 보니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던 도헌이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부터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주변은 고요했고, 온통 흰색뿐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흐르듯 주변을 둘러보자, 한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급상자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가라고 할 때 갔으면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잖아요.”
“병 주고 약 줘요? 작가님이 잠수 안 타고 전화만 잘 받았어도 내가 여기까지 찾아올 일은 없었다고요.”
“네네. 알겠습니다. 다리 좀 이쪽으로 뻗어 봐요.”
얼떨결에 그의 손길에 의해 소파에 몸을 묻은 유진은 그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소독약을 꺼내는 모습에 놀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뭐 하시게요?”
“칼날에 베였잖아요. 저거 다용도로 쓰는 거라 소독해야 돼요. 다리 좀 저한테 뻗어 봐요. 약 바르게.”
“아…… 저, 저기.”
빨개진 얼굴에 말까지 더듬는 그녀를 심드렁하게 올려 보던 도헌은 작은 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안 봐요. 그리고 종아린데 발목만 살짝 잡고 약만 바를게요. 저 그렇게 추잡한 놈 아닙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느새 알싸한 소독약의 냄새와 따끔거리는 통증에 말끝을 흐린 유진은 그에게 잡혀 있는 발목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진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는데 언제 이렇게 수그러든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손의 감촉이 부드럽고 얼굴만큼이나 흰 것 같다. 손이 따뜻한 남자는 마음이 차다던데……. 차가운 남자만큼 섹시한 것도 없지. 멍하니 그의 긴 기럭지를 훑어 내리던 그녀는 군침을 삼켰다. 그러곤 붉게 반짝이는 입술을 바라보며 살며시 입을 오물거렸다.
“원고는 다 끝내신 거예요?”
“아뇨.”
“아, 다 못 끝내셨…… 잠깐만요! 다 안 됐다고요?”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충격에 휩싸인 유진은 놀란 눈으로 도헌을 바라봤다.
“아까는 웹하드에 올리겠다고 하셨잖아요?”
“마감 일주일 연장됐잖아요. 그 안엔 마무리해서 올릴 수 있다는 말이었어요. 자, 밴드까지 붙였으니 응급처치는 끝났네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를 보며 유진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여, 연장된 건 어떻게 아셨어요?”
“문자요. 아까 박기량 팀장한테 마감 연장됐다는 문자 받았어요. 아, 그리고 저 원래 전화는 잘 안 받습니다. 자꾸 전화하시는데 앞으론 문자로 해 주세요.”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에 휩싸인 유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쩔쩔매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분명 박기량 팀장에게 업무를 인수인계받을 때만 해도 김도헌 작가는 전화 외엔 아무런 연락 방법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담당자인 자신만을 제외하고 서로 문자로 상황을 주고받았단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혼자 삽질해 댔구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도 유분수지 한순간에 이렇듯 무기력하게 만들어 놓다니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복잡한 속사정을 알 리 없던 도헌은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 지금 나가 봐야 하는데. 가시는 데까지 태워 드릴까요?”
“태우려면 박기량이나 활활 태워 버려요! 그리고 원고 받을 때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고 했잖아요!”
버럭 소리를 질러 댄 유진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화를 주체 못 해 황량한 거실을 휘휘 배회했다.
“내가, 기필코 원고 제대로 받아 내서 그 높은 콧대를 꺾어 버리고 말겠어! 진짜 이번에 사람 바보 만든 거 제대로 후회하게 해 줄 거야!”

□ ◆ □

주홍빛의 은은한 조명이 조그만 공간 속에 스미며 부드럽게 퍼져 나갔다. 그 속에 뜻을 알아듣지 못할 일본 가요가 조그만 소리로 낮게 울렸고, 마음마저 편안하게 풀어지는 향긋한 음식 냄새에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시원스레 오픈된 주방 안은 온통 활기로 가득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젊은 주방장이 열심히 육수를 우려내며 가게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랏샤이마세!’를 외치자 주방에 고여 있던 활력들이 가게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주변은 전부 서로에 대한 반가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도헌이 앉아 있는 테이블만은 마치 저들과 별개의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둡고, 음침한……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온몸을 옥죄는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이어져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한숨에 도헌은 마른세수를 했다. 뜻 모를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뻐근해진 눈가를 엄지로 누르면서도 좀처럼 미간에 잡힌 주름은 펴지질 않았다.
“이 사진들이 오늘 전화한 이유란 거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변사체의 사진을 바라보던 도헌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익숙한 기시감에 절로 소름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잊고 싶어도 절대로 잊히지 않는 하나의 장면이 눈앞에 잔상으로 스쳐 지나가며, 어김없이 지독한 두통을 만들어 냈다.
사진의 모든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천천히 훑어가는 눈동자는 형태도 없는 고통에 일그러져 갔다. 싸늘히 식어 버린 여인의 알몸이 몸서리치도록 무섭고 애틋하다. 도망치고 싶도록,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도록, 그리고 끌어안고 싶도록……. 강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그것에 차마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나리가 아님에도 나리가 차갑게 굳어 있는 기분. 마치 오늘 아침에서야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맞닥트린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얼굴이 형편없이 어두워질 때마다 마주 앉은 강율의 잇새로 나른한 호흡이 흘렀다.
“또, 나리…… 생각 하냐?”
강율의 물음에 도헌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러곤 입가에 피식, 힘없는 미소가 걸렸다.
“뭐……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잊으라고는 차마 못 하겠다만 이제는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냐? 그게 죽은 사람도 편할 거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머리론 이미 십 년 전에 정리했어. 마음이 문제지.”
“그래그래. 너라고 고통 속에 살고 싶진 않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이거 하나만 알아 둬.”
조금은 딱딱한 나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강율이 천천히 도헌의 말간 얼굴을 훑었다. 생기 있던 십 년 전에 비해 많이 야윈 현재의 얼굴. 시간의 흐름이 할퀴고 간 얼굴은 참담하리만치 마음속 상처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도헌은 변해 버린 자신의 변화에 무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들어 했다. 얼굴에 드러난 상처만큼 그녀를 사랑했던 자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넌 이만큼 한 여자를 사랑했다고 인정받는 느낌이 그나마 텅 비어 버린 마음의 공허감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고 있었다. 그런 도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강율만이 늘 지금처럼 답답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말이다.
강율은 여전히 변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 도헌을 향해 피곤으로 쩍쩍 갈라진 입술을 달싹였다.
“나리는 해결된 사건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
“…….”
“너도 잘 알겠지만 하루에 팀 하나가 할당받는 사체 수는 세 구 정도 돼. 대략적으로 그중에 두 구는 자살이고, 한 구는 살인이야. 그 많은 피해자들 중 진범을 잡아 수사가 시원하게 끝나 버리는 사건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물론 거의 용의자는 잡아들이지.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미제 사건이 훨씬 많아. 과학 수사 기술이 좋다고는 해도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사인이 그만큼 많고, 증거가 불충분한 사체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거야.”
“범인을 잡은 것만으로 만족해라?”
도헌의 반문에 강율의 미간이 들썩였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형.”
강율의 말을 자르며 도헌이 테이블로 향했던 시선을 들어 앞에 앉은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