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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4화)
Chapter 02.(1)


간밤에 맥베스가 죽었다.
밤새 고열에 시달리던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울리히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하긴 맥베스의 입장에서야 아퀘리에스 학회에 피해를 입히려는 울리히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했으리라. 아마 조금이라도 움직일 기력이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울리히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을 것이다.
울리히에겐 참으로 악몽과도 같은 밤이 아닐 수 없었다.
맥베스가 죽기 전엔 악담과 저주에 시달렸고, 그가 죽고 난 후엔 시체와 같이 누워 있는 셈이라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직도 맥베스의 원혼이 근처를 배회하는 것 같아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흠칫 놀라 진저리쳐졌다.
‘심문하기 전에 일부러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건가? 고약하기 짝이 없군!’
짐작이 들어맞은 건지 울리히는 꼬박 하루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맥베스의 시체와 함께 지내야 했다.
철장 안은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기 때문에 몹시 더웠다.
때문에 맥베스의 시체가 빠르게 부패하며 말할 나위 없이 지독한 악취를 풍겨 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밀폐된 공간이라 악취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점점 더 짙어졌다.
그나마 밀폐의 좋은 점(?)은 벌레들이 꼬이지 않는다는 것이랄까?
“으으……. 우웩!”
울리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친 듯 토했다. 토하고 또 토하다가 결국은 정신을 놓고 혼절해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쫘아악―!
울리히는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도 정신을 잃은 사이 철장 바깥으로 끌려 나와 있었다.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병사들이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움직여!”
울리히는 휘청거리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을 잃은 사이 입고 있는 옷가지를 전부 벗겼는지 풀잎이 다리를 스치며 생채기를 냈다.
자잘하지만 예리한 통증에 울리히는 문뜩 정신이 들었다.
‘심문을 받게 하려고 끌고 가는 모양이구나!’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구는 것으로 보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꼼짝없이 첩자로 내몰려 개죽음을 당할 판이다.
으드득―!
울리히는 입술을 깨물어 입안에 가득 피가 고이게 했다.
비릿한 혈향이 비강까지 거슬러 올라가자 온몸에 잔뜩 배인 시취(屍臭,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조금은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피비린내를 도리어 향긋하게 느끼게 될 줄이야.’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에 울리히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하여튼 덕분에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잠시 후 울리히는 천막 안으로 끌려 들어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차가운 인상의 사내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름은?”
“울리히 디 쥐세페입니다.”
“출신은?”
“마도왕국, 체브멘티온의 백성으로, 오웬 백작의 넷째 아들입니다. 로열 아카데미 마도학 교수이자 응용 마도학을 연구하는 마도학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집요하고 상세한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심문자들끼리 교대하며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은 기본!
기록해 둔 답변과 대조해 보기 위해 같은 질문이 기습적으로 반복되었으며, 또한 넘겨짚어 단언하는 등 갖가지 유도 심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울리히는 워낙 천재적인 두뇌와 세밀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받은 질문을 통해 심문자들을 역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질문의 체계나 방향성이 명확히 통합되어 있지 않을 것을 보면, 딱히 날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만 더 버텨 보자!’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쫘아악―!
울리히는 물벼락을 맞고 문뜩 정신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심문받던 도중 몇 초 정도 졸았던 모양이다.
심문자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살벌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곧 높으신 분과 대면하게 된다. 각별히 언행에 주의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울리히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높은 분이라니 그게 누굴까? 설마 대장군이나 아말락기흄 황자가 이 누추한 곳까지 직접 찾아올 리는 없을 테고.’
정말 높으신 분이라면 그럴듯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만나 보려 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도학자로서 울리히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처럼 높은 직위에 있는 자들이 직접 찾아올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굳이 대면하려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든지 간에 자신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의미다.
뚜벅뚜벅.
울리히는 가까워지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으며 긴장감을 느꼈다.
생사가 심문자들의 손에 달렸기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촤락―!
천막이 열리며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다지 밝은 빛은 아니었으나 어둠에 적응되어 있던 터라 눈꺼풀을 연신 깜빡거려야 했다.
“내 이름은 제뮤엘이네.”
“…….”
심문자들 중 이름을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울리히는 잠시 당황해 응수하지 못했다.
“그렇게 경계할 건 없네! 난 자네에게 호의를 갖고 찾아온 거니까.”
제뮤엘의 갑작스런 말은 울리히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호의를 갖고 찾아왔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울리히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심문 수법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괜스레 당황해 횡설수설하기라도 하면, 꼬투리를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
별다른 대답이 없자 제뮤엘은 평범한 방식대로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은?”
“울리히 디 쥐세페입니다.”
심문을 받은 동안 울리히는 상대의 성격을 분석하려고 애썼다.
‘억양이 강하지 않고 말투가 느릿한 것으로 보아, 일단은 인내심 있고 느긋한 성격인 것 같구나.’
질문에 답하는 동안 서서히 빛에 적응되며 시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뮤엘의 외모는 추측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풍채가 좋고, 온화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울리히는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심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나를 살피려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울리히는 제뮤엘이 어떤 의도를 갖고 찾아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제뮤엘은 갑작스럽게 엉뚱한 말을 꺼냈다.
“자네에게 제안할 것이 있네.”
울리히는 잔뜩 긴장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그런데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리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순간, 진영 안에서 힘찬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우우―!
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는 것은, 적의 기습을 알리는 경계 신호였다.
“이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도록 하지!”
제뮤엘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적을 맞이하기 위해 황급히 천막을 뛰쳐나가 버렸다.
‘제안이라니,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만약 그의 말이 순수한 호의에서 나온 것이라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듯했다.
하지만 울리히는 제뮤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복잡한 일에 휘말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마도왕국 측의 기습을 받은 제국군은 곧바로 보복성 반격을 시도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며칠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제뮤엘이란 자 역시 몹시 바쁘게 지내고 있는 탓인지 그날 이후로 울리히를 찾아오지 않았다.
여하튼 울리히는 포로들과 함께 본진에서 반나절 정도 떨어진 성으로 호송되었다.
심문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 중단되어 버려서, 울리히는 지하 감옥에 임시로 갇히게 되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인지 감옥 안은 포로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덕분에 울리히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든 제뮤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애썼다.
‘참모부에 소속된 전략 참모였구나! 과거에 참모장(참모부의 수장) 자리까지 오른 대단한 인물이라 이거지?’
접촉할 수 있는 대상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 그 이상 자세히 알아낼 수 없었다.
사실 제뮤엘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당장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울리히는 룬―스톤 연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5년 동안이나 비밀 연구소에 갇혀 지낸 것도 그렇고, 제국군의 포로가 되어 이렇듯 고생하는 것도 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이용당하거나 제거될 뿐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이유로 울리히는 힘을 절실히 갈구하게 되었다.
룬―스톤을 만들어 마법을 익히게 된다면, 지금까지처럼 다른 사람의 의지에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울리히는 룬―스톤 실험에 번번이 실패했다.
‘돌파구를 찾으려면 뭔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해!’
그렇듯 고심하고 있을 때, 다행히 감옥에서 적당한 조력자(?)를 만나게 되었다.
“엠브란트 교수님 아니십니까?”
“울리히 학자님!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겠지만 반갑군요!”
울리히가 로열 아카데미의 교수로 일할 때, 엠브란트 교수와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엠브란트 교수의 전공은 연금학.
사실 전공이 서로 달라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교분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니, 같은 아카데미 교수라는 것만으로도 전우를 다시 만난 것처럼 각별하게 느껴졌다.
울리히는 엠브란트 교수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혹시 룬―스톤(Rune―Stone) 연구를 연금술 방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연금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금속의 성질을 바꿔 가치 있는―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값비싼―금속으로 만드는 금속 연금술!
다른 하나는 질병을 고치는 연금약액을 연구하는 약리 연금술이다.
연금술의 본질도 세르코데프메(Selcodepme)의 4원소설을 바탕으로 하는데, 사물에 깃든 속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성질을 가진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변성의 원리는 룬―스톤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울리히는 연금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간 마도학 연구에만 심취해 있었기에 다른 분야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연금학의 전문가가 눈앞에 있다.
엠브란트 교수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재 마도학자로서의 체면보다는 실리가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리하여 울리히는 지나가는 말처럼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연금술로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연구 방향을 잡으실 겁니까?”
엠브란트 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마나 저장체(Mana Reservoir)는 연금학의 오랜 난제들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물으신다 한들 대답해 드릴 말이 없군요.”
울리히는 그를 칭찬하는 척하며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엠브란트 교수님은 연금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와 명성이 높으신 분 아닙니까? 평소에 생각해 본 가설 몇 가지 정도는 있으시겠지요?”
“하하! 천재 마도학자로 명성이 자자하신 울리히 님께 그런 말씀을 듣게 되니 심히 부끄럽습니다.”
엠브란트 교수는 겸양하는 척했지만 칭찬에 기분이 무척 좋아진 것 같았다.
울리히는 계속해서 그를 부추겼다.
“마나 저장체에 대한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부족하나마 몇 가지 가설을 논해 보겠습니다. 유치하고 졸렬한 의견이라 비웃지는 말아 주십시오.”
“겸손이 지나치시군요! 고견을 들려주신다면 한 수 배우겠습니다.”
“허허! 이거 괜히 말을 꺼냈다가 망신당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겸양의 말이 오가고 난 후, 엠브란트 교수는 최선을 다해 마나 응축에 대한 가설을 이야기했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가? 가설들이 하나같이 진부하군!’
엠브란트 교수의 가설은 천재인 울리히의 귀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울리히는 질문의 방향을 살짝 바꾸었다.
“그런데 교수님! 마나 저장체가 응축한 마나를 견딜 수 있겠습니까?”
울리히가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물체에 마나를 응축하는 단계는 거의 성공이라 볼 수 있었다. 다만 룬―스톤이 응축된 마나를 버텨 내지 못하고 곧 부서져 버리는 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