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도학자 1권(6화)
Chapter 02.(3)


마그누스의 해답을 읽기 전에 스스로 그 해답을 찾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마그누스가 알아냈다면 내가 알아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울리히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동안 읽었던 학술 논문과 권위 있는 연구 서적들을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올렸다.
울리히는 매우 정밀하고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기억력이 어느 정도인지 예를 들자면,
그가 10년 전 읽었던 ‘열(불)과 유체의 흐름에 대한 상관관계’란 제목의 논문에―정확히 말하면 38쪽 위에서 다섯 번째 줄 첫머리에―비열(比熱, specific heat)이란 단어가 적혀 있다는 것까지 단번에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울리히는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기억 속에서 번개와 연관된 모든 문장을 찾아냈다.

―구름과 비가 번개를 부른다. 추측컨대 구름과 지면 사이에…….―
―번개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타고 지면을 향해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가 극도로 불안정해지면 안정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흐름(복원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되며…….―
―구름과 구름 사이, 그리고 구름과 땅 사이 무언가 마나의 불균형이 일어나며…….―

확인해 본 결과, 번개가 정확히 어떻게 발생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책은 없었다.
‘으음……. 아쉽게도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 논리적 추론해 보자.’
마도학 실험 방식에 익숙한 울리히는 자유롭게 가설을 세운 뒤 불가능한 것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을 즐겼다.

그날 이후로도 울리히는 고심했다.
하지만 쉽사리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긴 수십 세기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단 며칠 만에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그누스는 해답을 찾아냈어. 그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마그누스와의 천재성 대결은 울리히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것과는 별도로 엠브란트 교수에게 금속 연금술을 배우느라 몹시 바빴다.
울리히 같은 천재에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병행하는 건 기본!
실제로도 고작 2주 만에 스승의 가르침을 모조리 흡수하고 독자적으로 응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포쉴드의 성능을 개선할 새로운 합금을 개발해야 해!’
한시바삐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여 주어야 대우가 개선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법 금속 개발 연구에 지원하여 오르하르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았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일어났다.
평소 때처럼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울리히는 문득 몰려오는 극심한 피로감에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음, 피곤하군.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네! 그게 좋겠습니다.”
“울리히 학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
울리히는 실험 조수들의 노고를 가볍게 치하하며 기지개를 활짝 켰다.
‘파괴 강도 실험에서 꽤 높은 수치를 얻었으니 합금 비율을 조금만 달리하면 되겠어!’
며칠만 더 지나면 새로운 합금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식적인 연구 발표를 마치고 나면 계획대로 마법 금속 개발팀에 지원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연구실 입구 쪽에서 난데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연구실 문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악!”
파편에 맞은 사람들은 끔찍한 몰골이 되어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울리히는 마침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별다른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몹시 당황하는 순간, 입구를 통해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들어섰다.
수상한 사내는 명백한 적의가 담긴 눈빛으로 연구원들을 쏘아보며 다짜고짜 외쳤다.
“제국군에 협조하는 역겨운 벌레들은 모조리 죽어야 해!”
사실 적국인 테넨로베프 제국에 협조하는 자들은 마도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다들 변절자라고 할 수 있었다.
‘마도왕국과 관련된 조직에서 보낸 암살자인가?’
주어진 정보가 부족해 울리히가 추측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사내는 연구원들을 향해 느닷없이 손바닥을 내뻗었다.
“윈드 커터(Wind Cutter)!”
순간 마력으로 압축된 공기가 진동하며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슈아아아아― 파앗!
보이지 않는 칼날이 순식간에 연구원들의 목을 갈라 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이 머리를 잃은 고깃덩어리가 되어 털썩 허물어져 내린다.
울리히는 운 좋게 윈드 커터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팔다리가 절로 덜덜 떨렸다. 충격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듯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사내가 기분이 좋은 듯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짤막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죽어!”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된 듯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아아악!”
“끼아악!”
하지만 비좁은 실험실 안이라 달리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입구 쪽은 잔혹한 살인마(?)가 장악하고 있으니, 기껏해야 탁자 밑이나 기둥 뒤에 몸을 숨길 뿐이다.
사내가 또다시 바람의 마법을 발현했다.
“윈드 스핀(Wind Spin)!”
쉐에에엑―!
바람의 마나가 맹렬히 회전하며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회전력이 강해질수록 윈드 스핀의 지름이 줄어들며 독사의 독니처럼 뾰족해졌다.
파악―!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기둥과 머리가 동시에 꿰뚫리며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으아아악!”
겁에 질린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실험실 안을 우왕좌왕 뛰어다녔다.
바람은 무색무취!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언제 어디로 공격이 날아들지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공격은 더욱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울리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조금씩 정신을 수습하고 냉정을 되찾았다. 두려움과는 별개로 조금씩 두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징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야! 마력이 모이면서 미묘한 일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집중하면 충분히 방향을 예측할 수 있어. 또한 공격 패턴이 무척 단순하군. 마력 제어 수준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다.’
추측컨대 사내의 마력은 약 4서클 정도의 수준!
그렇다면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강자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평범한 연구원에 불과한 아군 측 사람들에겐 그와 대항해 싸울 능력(전투력)이 없다는 것이다.
‘참! 포쉴드(Force―Shield의 줄임말)가 있었지!’
포쉴드는 마나 저항력이 높은 아만다티움 합금으로 제작되었다. 즉, 포쉴드를 사용하면 바람(Air) 마법을 쓰는 침입자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것이다.
울리히는 황급히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포쉴드를 집어 들며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포쉴드를 써요!”
그의 충고에 사람들은 작업대를 향해 일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미처 포쉴드를 집어 들기도 전에 침입자의 마법이 구현되었다.
“에어 블래스트(Air Blast)!”
콰아아아앙!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며 작업대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을 덮쳤다.
민첩하게 포쉴드를 집어 든 사람은 얼마나 되지 않았다. 폭발에 휘말린 사람들은 살점과 내장이 터져 나가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악!”
비릿한 피 냄새가 비강의 점막을 자극했다.
울리히는 참혹한 광경에 오금이 저릿저릿 저려 와 주저앉을 뻔했지만 간신히 버텨 냈다.
‘조금만 견디면 병사들이 몰려올 거다! 어떻게든 버텨 내야 해!’
포쉴드를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침입자가 입꼬리를 비틀며 비아냥거렸다.
“후후! 발악해 보겠다. 이거지?”
희번덕거리는 침입자의 광기 어린 눈동자를 본 사람들이 기겁하며 울먹였다.
“흐흑! 사…… 살려 주세요!”
“그…… 그만해요! 제발!”
울리히는 공포에 질려 횡설수설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차분히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다들 얼이 빠져 있으니 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겠군! 다행히 마력의 강도는 포쉴드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몸이 버텨 낼 수 있을까?’
울리히의 몸은 조금도 단련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허약한 편이었다.
포쉴드는 기사인 포스 쉴더의 육체에 맞춰 표준화되어 있었다.
때문에 허약 체질인 그에겐 천근만근 무거운 무게였다.
하지만 무겁다고 투정 부릴 때가 아니니 그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버텨 볼 수밖에 없었다.
“사지를 먼저 절단해 주마! 추악한 변절자들아!”
침입자는 사람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마법을 펼쳤다.
“윈드 커터(Wind Cutter)!”
슈아아아아―!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바람의 칼날이 날아왔다.
‘온다!’
울리히는 그의 움직임에 온통 집중하고 있었다. 때문에 공기를 가르는 일렁임이 자신을 향해 곧장 뻗어 오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울리히는 재빨리 포쉴드를 들어 올리며 몸을 가렸다.
콰아아앙―!
“으윽!”
충돌의 순간 울리히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튕겨 나가 볼품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뚜둑―!
허약한 관절과 힘줄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았다.
‘휴우, 어쨌든 살았어!’
침입자는 공격이 가로막히자 화가 났는지 눈빛을 번뜩이며 마법을 시전했다.
“윈드 스피어(Wind Spear)!”
바람의 창이 단숨에 허공을 꿰뚫었다.
슈아아아―
콰앙! 콰앙!
침입자는 울리히를 집요하게 노리며 연거푸 마법을 펼쳤다.
“크윽!”
포쉴드를 들어 막아 냈지만 충돌할 때마다 적지 않은 충격이 허약한 몸에 전해졌다.
부실함(?)을 드러낸 건 단지 그의 육체뿐인 것은 아니었다.
쩌적―!
충격이 차곡차곡 누적되자 급기야 포쉴드마저 금이 갔다.
‘내구성이 이렇게 부실할 리가 없는데. 어째서? 벌써……. 앗! 그렇구나!’
포쉴드는 원래 포스 쉴더의 포스(Force)를 흡수하여 내구력을 강화한다. 즉, 포스를 주입하지 않은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나마 울리히가 집어 든 포쉴드는 새로운 합금으로 개량한 것이어서, 지금까지의 연속적인 충격에도 버틸 수 있었다.
‘젠장! 또 온다!’
쉐에에에―
순간 침입자의 마법이 울리히를 향해 곧장 날아왔다.
콰아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포쉴드가 산산이 부서졌다.
바람의 칼날이 울리히의 살과 뼈를 파악 갈라 버렸다.
“크아악!”


Chapter 03.(1)


쫘악―!
벌어진 상처에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울리히는 엉겁결에 쏟아져 나오는 자신의 내장을 손바닥으로 받아 들었다.
뜻하지 않게 내장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그 순간!
울리히는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을 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듯 오싹한 느낌이 들어 온몸에 저절로 닭살이 돋았다.
지금은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 젠장! 이 거지같은 상황은 뭐야?”
울리히는 실소를 터뜨리며 총기를 잃어버린, 어딘가 초점이 엇나간 듯 멍한 눈빛으로 침입자의 손을 바라보았다.
쫘악 펴진 손바닥에서 세찬 바람이 쏟아져 나오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주위가 일렁거렸다.
슈아아아아―!
매섭게 들이닥친 기운이 울리히의 눈앞에서 단단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주위의 풍경이 일렁이며 공기가 압축되었다.
우우우우웅―!
압축된 공기가 불안정해지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울리히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의미 없는 말을 웅얼거렸다.
“그…… 그러지 마! 하지 마…….”
무서웠다.
압축된 공기가 터진 직후,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될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울리히는 머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세밀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생생한 만큼 두려움도 커졌다.
“으으……. 그…….”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에어 블래스트(Air Blast)!”
콰아아아앙!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뜻밖에도 예상했던 충격은 없었다.
울리히는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실험실 입구를 통해 병사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병사들 덕분에 살았구나!’
그렇다! 절묘한 순간에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등 뒤가 불안해진 침입자는 우선 병사들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