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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7화)
Chapter 03.(2)
“으윽…….”
긴장이 풀렸기 때문인지 울리히는 신음을 흘리며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향했다.
‘느닷없이 공격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해!’
울리히는 이미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침입자는 병사들을 먼저 해치우기로 결심한 듯했다.
“스파이럴 토네이도(Spiral Tornado)!”
슈아아아아―!
침입자를 중심으로 세찬 바람이 일어나 입구를 향해 회오리쳤다.
두 개의 회오리가 이중 나선형으로 얽혀 들며 세차게 휘몰아쳤다.
“으아앗!”
소용돌이에 휘말린 병사들은 무시무시한 원심력에 의해 살점이 찢겨져 나갔다.
상처를 통해 피와 체액이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실로 엄청난 위력!
사실 바람 속성은 다른 원소 계열에 비해 파괴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다.
위력만 단순 비교하자면, 바람보다는 불(Fire)과 땅(Earth) 속성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위력을 보인다는 건, 침입자가 소유한 마력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래도 잘못 판단한 것 같군. 저 정도 마법을 구현할 정도라면 4서클이 아니라 5서클 이상이다! 조금 전까진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구나.’
울리히는 침입자가 어째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강력한 광범위 마법을 펼쳤다면 간단히 모두 해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실험실 안이 비좁아 딱히 피할 곳도 없었으니까.
‘지금도 마력 제어에 꽤 힘쓰고 있다. 마치 날 일부러 살려 두려는 것 같은…….’
울리히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하긴 원래부터 허약 체질인데다 내장이 쏟아질 정도의 부상을 입었으니 여태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특한(?) 일이었다.
울리히는 그로부터 꼬박 3일이 지난 후에야 깨어날 수 있었다.
그나마 연금술사들이 만든 포션 덕분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도 살아날 수 있었다.
“으윽……. 아파.”
깨어났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깨어난 시간은 잠시뿐, 울리히는 다시 의식을 잃고 잠들었다. 그렇게 자다 깨는 것을 몇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아는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엠브란트 교수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울리히는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다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아서 움직이는 건 무리였던 것이다. 엠브란트 교수는 황급히 그를 다시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
“아직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제가 다 설명해 드릴 테니 편히 누우십시오.”
곧바로 엠브란트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침입자를 놓쳐 버려서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다만 우리들의 조국인 체브멘티온 왕국에서 보낸 첩자인 듯합니다.”
울리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바람 속성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을 보았으니, 아마도 웬퉤리에스(바람 계열의 마법 학파)의 마법사겠죠.”
“조국에서 첩자를 보내 죽이려 하다니 씁쓸하군요. 완전히 변절자로 낙인찍힌 모양입니다.”
따지고 보면 제국군에 협조하기로 결정한 이상 그들은 조국을 배신한 변절자인 것이다.
하지만 울리히는 변절자가 될 마음도 없었고, 변절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것이 있어서 저들에게 잠시 협조한 것뿐인데 무슨 변절이란 말인가?’
울리히는 룬―스톤을 완성하여 마법을 익힐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되면, 자신을 핍박하고 곤경에 처하게 한 자들에게 받은 그대로 모두 되돌려 줄 생각이었다.
‘여하튼 지금은 살아남는 게 먼저다. 우선 눈앞의 의혹부터 해결해야겠다!’
울리히는 잠깐씩 정신을 차릴 때마다 침입자의 정체가 뭔지, 배후가 누구인지 골몰히 생각했다.
침입자는 분명 자신을 몰아붙였지만, 또한 일부러 살려 두었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대체 뭘까?
단서가 부족해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결과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 것은 가능했다. 즉,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득을 본 것은 울리히 자신뿐이었다.
‘침입자는 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으나, 결과적으로 난 제국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간 울리히는 마도병단에 소속되어 자신이 연구한 논문들과 마법 수식을 공개하는 등 충성심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마도병단의 수뇌부들은 적국인 마도왕국 출신이란 이유로 결코 100퍼센트 신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침입자의 공격을 받아 거의 죽다 살아나게 되자,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한층 옅어진 것 같았다.
‘제국군의 신임을 얻도록 도와주었다는 건 결과적으로 날 이용하겠다는 의도겠지?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통해 나를 이용하려는 것일까?’
자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
그렇다. 울리히는 바로 엠브란트 교수를 의심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울리히를 마도병단에 영입한 것도 엠브란트 교수였고, 연금술을 배울 수 있도록 줄곧 도와준 것도 그였다.
울리히는 엠브란트 교수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교수님도 습격을 받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자리를 비웠을 때라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운이 좋으셨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도 참 운이 좋은 편입니다. 침입자의 손에 죽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자상하게 보살펴 주시는 교수님이 있으니 전 정말 행운아입니다.”
“하하! 그리 생각해 주시니 고맙군요.”
울리히는 오래 끌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침입자의 배후에 있는 건 교수님이시죠? 도대체 제게 뭘 바라시기에 이런 일을 꾸미셨습니까?”
엠브란트 교수는 당황한 척 연기하는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역시 울리히 님은 머리가 좋으시군요. 과연 천재답습니다.”
“허튼소린 그만하시고. 원하는 게 뭡니까?”
“궁금하시다니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실 별건 아닙니다! 체브멘티온의 백성으로서 위기에 처한 왕국을 위해 기꺼이 봉사해 주시면 됩니다.”
지극히 당당한 교수의 태도에 울리히는 실소를 머금었다.
‘너 역시 왕국의 백성이 아니냐? 그러니 기꺼이 도와라 이건가?’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마도왕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첩자 짓을 할 만큼 충성스럽지는 않았다.
“제가 그 제의를 거절한다면 어찌할 계획입니까?”
엠브란트 교수는 무언가 믿는 바가 있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거절할 수 없을 겁니다. 울리히 님은 이미 우리의 동료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게 무슨?”
“한번 맞춰 보시죠? 최근의 일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면 어렵지 않게 맞추실 수 있을 겁니다.”
교수의 말에 울리히는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앗! 공동 연구 계약서!”
엠브란트 교수는 금속 연금술을 가르치는 대가로 공동 연구 발표를 요구했다.
연금술로 최초의 성과를 얻게 된다면 같이 연구한 것처럼 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그때는 단순히 연구 성과를 탐내는 것이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한 계약서도 써 달라는 대로 써 주었는데, 그것에 발목을 잡힐 줄은 몰랐다.
계약서엔 친필 싸인과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다.
‘사실은 계약서를 받아 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구나! 첩자와 공동 연구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 거기에 엠브란트 교수가 동지라고 우긴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것으로 엠브란트 교수의 정체가 절대로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가문의 인장까지 찍혀 있으니 발각될 경우 가문에까지 피해가 가게 되는 셈이다.
사실 울리히는 다소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음모나 모략이 능하지 못했다.
하긴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최연소로 교수 및 마도학자가 되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으니 다소 순진할 만도 했다.
또한 아예 넷째로 태어나 작위 승계의 더러운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었으며, 정계와는 무관하게 지냈기 때문에 음모와 모략을 겪을 일이 거의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이처럼 음모에 당하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심하고 있는 그에게 엠브란트 교수가 참으로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자! 어찌하시겠습니까? 울리히 님. 같이 자수할까요?”
울리히는 그의 뺨을 한 대 갈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으로 그쳐야 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엠브란트 교수를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협조하는 척하며 최대한 빨리 룬―스톤을 완성하는 수밖에 없겠다.’
룬―스톤으로 마법을 익혀 이곳을 탈출하는 것!
현재로선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울리히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좋습니다! 같은 체브멘티온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협조해야겠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울리히는 이번 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은 힘이 없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죽음의 공포를 생생히 경험하고,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마그누스와의 대결도 중요하지만, 지금같이 절박한 시기에 자존심만 생각할 때가 아니다! 계속해서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를 해석해 보자!’
울리히는 경쟁심 때문에 연구일지의 해석 작업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서까지 자존심 운운하는 건 오만이자 어리석음일 뿐이었다.
그래서 울리히는 즉시 마그누스의 일지에 숨겨진 문장들을 해석했다.
―번개의 생성 원리에 대해 이해하려면, 번개 속성 마나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번개 속성의 마나는 크게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편의상 양(+)의 마나와 음(-)의 마나로 부르기로 하였다. 이 양의 마나와 음의 마나는 원래는 하나의 본질이어서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며…….―
‘아아……. 그렇구나!’
울리히는 일지에 숨겨진 문장을 해석하며 마그누스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번개의 본질을 알게 되자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개념들이 명확해졌다. 그 명확한 개념을 토대로 그동안 번개 마법에 대해 자신이 세운 가설들을 분석해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연구하면 새로운 번개 속성 마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마법 연구에만 힘을 쏟을 때가 아니지.’
일단 룬―스톤을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다.
병상에서 일어난 울리히는 포쉴드 합금 연구를 서둘러 끝냈다.
좀 더 시간을 들이면 포쉴드의 성능을 한층 더 개량할 수 있었지만, 어차피 적국이 쓸 무기인데다 마음이 급했다.
‘어서 마법 금속 개발 연구에 지원하여 오르하르콘을 손에 넣어야겠다!’
울리히는 서둘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새롭게 개량된 포쉴드에 대한 반향은 그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컸다.
“천재는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르군!”
“그런데 울리히 학자의 전공은 마도학 아닌가? 금속 연금술에도 조예가 깊은 줄은 미처 몰랐군.”
“듣자하니 최근에 연금술을 배운 모양이던데?”
“뭐?! 그게 정말이야?”
이 일로 마도병과 연구원들의 시선과 관심은 단번에 울리히를 향하게 되었다.
울리히는 기대 이상의 반응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급한 마음에 전력을 다했더니……. 좀 적당히 할 걸 그랬나?’
이러다가 포쉴드 개량 연구에 평생 뼈를 묻으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울리히는 그리될까 걱정되어 황급히 마법 금속 개발 연구에 자원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된 상부에서는 자원 요청을 허락했다.
다만 울리히의 조수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연구실이 북적대게 되었다.
‘오르하르콘을 대충 하나 슬쩍하려 했더니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안 되겠군.’
원래 울리히는 적당히 실험 보고서를 꾸며 오르하르콘을 빼돌릴 계획이었다. 실험 횟수를 허위로 늘려 간단히 오르하르콘을 얻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험으로 위장해 오르하르콘을 조금씩 빼내는 수밖에 없구나.’
울리히는 그럴듯해 보이도록 실험 계획서를 짰다.
실험에 필요한 과정인 것처럼 꾸며 오르하르콘과 다른 금속들을 가루로 만들어 뒤섞은 뒤 남몰래 조금씩 빼돌렸다.
이 방식으로 충분한 양의 오르하르콘을 빼내려면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룬―스톤 하나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양을 빼돌렸을 때, 울리히는 갑작스럽게 상부의 호출을 받았다.
‘대체 무슨 일로 부르는 거지?’
찔리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