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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9화)
Chapter 03.(4)
사실 훈련의 강도는 정규군에 비하면 매우 가벼웠다.
하지만 허약한 학자들은 땡볕 아래에서 시키는 대로 뛰고 구르는 것만으로도 곧 탈진해 버렸다.
“우웩!”
특히 유난히 허약 체질이었던 울리히는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퍼져 버렸다.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아……. 몰라! 때려죽여도 더 이상은 못해.’
울리히는 무작정 버티다가 훈련 교관들에게 찍혀 더욱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가득이나 저질인 체력은 곧 한계에 달했다.
울리히는 훈련 도중 몇 번이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물벼락을 맞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급기야 교관들은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쯧! 사내놈이 그것도 못 버티나?”
“어이쿠! 환갑노인도 그것보단 잘 뛰겠다!”
모욕에 화가 난 울리히는 이를 부드득 갈며 생각했다.
‘으으……. 이 오크처럼 아둔한 것들이 감히 날 비웃어?!’
분하지만 폭발할 수는 없었다. 이미 충분히 교관들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괜히 그들을 자극했다간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훈련받게 될지도 모른다.
한낮이 되자 그야말로 지옥 같은 체력 단련이 끝났다.
점심 식사를 배급받았지만 울리히는 조금도 삼킬 수 없었다.
‘오후에 기초 훈련을 받으려면 조금이라도 먹어 둬야 해……. 안 그러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그래! 물에 말아서 먹어 보자.’
울리히는 빵을 잘게 찢은 뒤 물에 넣었다. 포크로 휘휘 휘젓자 묽은 스프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후루릅!”
간신히 급조한 스프(?)를 삼켰을 때 훈련 교관들이 외쳤다.
“다들 그릇 반납하고 연무장으로 집결해!”
“늦는 놈들은 책임지고 생지옥이 뭔지 확실히 보여 주지!”
절대 생지옥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울리히는 재빨리 연무장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저질 체력이라 겨우 꼴찌를 면했을 뿐이다.
“꼴찌로 들어온 놈 튀어나와!”
‘휴우……. 겨우 살았군.’
울리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교관 중 하나가 놀리듯 말했다.
“뒤에서 두 번째 놈도 나와!”
‘아……. 젠장!’
오후의 기초 훈련은 주로 검술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검과 방패(Sword&Buckler)를 쓰는 무기술을 가르쳐 주었는데, 허약한 참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주로 방어술에 치중되어 있었다.
참모들은 기사들과는 달리 숏 소드(Short Sword)―짧고 가벼운 검―를 썼고, 방패의 크기도 매우 작은 편이었다.
“한 번씩만 보여 줄 테니 잘 보도록 해라!”
“네! 교관님.”
이윽고 두 명의 훈련 교관이 연무장에 나와 검술을 시연해 보였다.
슈아앗―!
채앵!
정확한 동작을 보여 주기 위해 한 사람이 약속된 동작대로 공격하고, 한 사람이 막는 식이라 그다지 박진감은 없었다.
울리히는 저도 모르게 뭐든 분석하려는 평소 습관대로 그들의 동작을 살펴보고 있었다.
‘공격하는 부위에 맞춰 방어하기만 하면 된다 이거지? 별로 어려울 것 없군.’
솔직히 말해 울리히는 검술보다는 마법이 더 우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는 건 마도학자로서의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향인 마도왕국, 체브멘티온의 기사들의 검술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체브멘티온은 정통성을 가진 마법 학파들이 유지되고 있어서 대륙의 어떤 국가보다 마법이 발달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 교관들의 검술이 갑자기 바뀌었다.
슈아아앗―!
콰앙! 콰앙!
단순히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뿐인데 검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총교관이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좀 전에 보인 기술을 바탕으로 자유대련을 펼치는 것이다! 실전에서의 공격은 이것보다 거칠고 변칙적이지만, 우선 잘보고 느껴보도록 해라!”
지극히 단순해 보였던 동작이 각도를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수십 배는 날카로워졌다.
슈아아앗―!
시퍼런 검날이 날아들 때마다 마치 자신이 베일 것 같아 울리히는 오금이 저리는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콰앙!
그런데도 정작 대결하고 있는 상대는 방패로 정확히 검을 막아 냈다.
‘달라진 것 공격의 궤도뿐인가? 대체 무엇이 달라진 거지?’
호기심을 느끼자 울리히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집중력이 극도로 향상되었다.
주위의 풍경이 모두 지워지고, 보이는 것은 오직 검과 방패뿐이었다!
울리히의 눈에 검의 궤도와 그에 맞춰 들어 올리는 방패의 각도는 무슨 수학 공식처럼 느껴졌다.
수식과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궤도와 압력, 그리고 각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아내 수식으로 분석해 보자!’
울리히는 풀기 힘든 난제를 마주한 것처럼 충만한 도전 의식을 느꼈다.
이미 흥미와 몰입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의 이 행동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슈아아앗―!
콰앙!
교관들이 검과 방패를 부딪칠 때마다 원자료(Raw Data)는 쌓여 갔다.
울리히의 머릿속으로 입력된 자료는 그 즉시 통계적 자료로 분석되어 차곡차곡 분류되었다.
하지만 교관들의 동작은 기대한 것만큼 다양하지 않았다.
‘부족해!’
교관들이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울리히는 검술을 표준화된 데이터로 분석하고 싶은 갈망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몰입이 극대화되며 뇌세포가 극도로 활성화되었다.
번쩍―!
머릿속에 불이 들어오는 듯한 아찔함과 함께 상상 속에서 교관들의 검술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축척한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패턴을 창조해 낸다. 그리하여 직관적으로 정보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약적 도약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울리히가 천재 마도학자라고 불리게 된 진짜 능력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울리히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했다. 다만 어떤 문제에 몰입하여 고심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번뜩 새로운 발상을 얻게 되는 정도였다.
특히 의식의 작용이 약해지는 꿈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울리히에겐 이것이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자신의 능력이 아주 특별한 것이란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단, 흥미와 몰입이 이 특별한 능력을 일깨우는 키워드였다.
하지만 고도의 몰입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과부화를 받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고, 짧은 순간 과도한 생체 에너지를 소모한 대가로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가지에만 극도로 몰입한 상태라 몸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다가 결국 의식을 잃고 털썩 쓰러졌다.
“저 녀석은 상습적(?)으로 쓰러지는군.”
훈련 교관들은 그가 훈련 도중 자주 의식을 잃었기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자 그제야 급히 숙소로 옮기고 응급조치를 했다.
울리히는 한참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으윽……. 머리야!’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두통과 복통에 시달렸으며,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아직도 주위의 풍경이 일렁이는 듯 보여 몹시 어지러웠다.
조금이라도 덜 괴로운 자세를 찾아보려고 몸을 뒤적이던 울리히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어? 이건…….’
놀랍게도 머릿속에는 무기술에 대한 분석 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시범을 보인 교관들의 검술보다 한층 진일보된 자료와 수식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의식적으로 비약적 지식 도약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므로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울리히는 평소의 습관대로 상황을 분석하여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가 처음으로 한 것은 이 능력에 직감과 도약이란 단어를 합성하여 인튜이션―리프(Intuition―leap)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상황을 차분히 되짚어 보던 울리히는 몰입이 이 능력을 일깨우는 키워드라는 것을 막연히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몰입을 시도해 봐도 같은 현상이 다시 일어나진 않았다.
‘음……. 뭔가 빠뜨린 것이 있나?’
울리히의 능력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탈진에 가까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야만 인튜이션―리프가 발현할 뿐,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여하튼 추론만으로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명확했다.
‘왠지 머리 회전이 좀 더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인튜이션―리프를 경험하며 울리히의 두뇌는 뇌세포 간의 정보 전달이 이전보다 한층 원활해지는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5퍼센트 정도 전달 속도가 빨라진 것에 불과했다. 즉, 달라진 것을 명확히 체감할 수 없는 정도의 변화였다.
‘머릿속의 검술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실험해 보려면 검과 방패가 필요하다.
울리히는 그 길로 연무장으로 향하여 필요한 무기를 빌렸다.
그런데 검과 방패가 몹시 가벼운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빈약한 그의 몸에는 상당히 무거웠다.
부웅―!
“읏!”
간신히 들고 있을 수는 있었지만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검의 무게에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이것보다 더 가벼운 것은 없나요?”
“왜? 아동용(?)으로 가져다주랴? 큭. 큭.”
무기를 관리하던 교관이 노골적으로 그를 비웃었다.
울리히는 조금 화가 났지만 훈련 교관과 싸울 수는 없었다. 며칠 더 훈련 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관이 그를 비웃기는 했어도 곧 이전보다 작은 무기를 찾아다 주었다.
“이것도 무겁다고 엄살 피우면 다음은 진짜 아동용이니 각오해!”
교관은 끝까지 이죽거리며 그의 신경을 긁었다.
울리히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으며 검을 휘둘러 보았다.
슈아아―!
이번에는 다행히 검의 무게에 휘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좀처럼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왜 이러지? 어째서 머릿속으로 선명히 그릴 수 있는 동작이 자꾸만 어긋나는 걸까?’
자세가 엉망인 것은 물론 속도도, 위력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간단한 베기 동작도 정확히 펼칠 수 있게 되려면 천만 번은 휘둘러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전혀 검술 훈련을 하지 않은데다 몸조차 빈약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헉! 헉!”
저질 체력인 울리히는 열 번도 채우지 못하고 곧 지쳐 버렸다.
‘지겨워서 도저히 못하겠어!’
게다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지루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울리히를 지켜보던 교관들 중 하나가 그에게 소리쳐 물었다.
“거기, 이름이 뭔가?”
“울리히입니다.”
“기초 검술을 수련한 지는 얼마나 되었지?”
“오늘 처음 배웠습니다.”
“으음……. 검술이 뭔가 기묘한데, 그게 뭔지 딱 짚어서 말하긴 힘들군.”
울리히는 교관의 말에 속으로 당황했다.
‘앗! 교관들의 눈이 생각보다 날카롭구나.’
훈련 교관은 계속해서 말했다.
“몸놀림은 굉장히 서투르지만 기본 검술에서 한층 진일보된 응용 동작들이 많은 것 같던데, 어찌 된 건가? 혹시 따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나?”
스스로 그 정도의 응용 동작을 개발하려면 상식적으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정상이었다.
응용 동작은 수준급! 그런데 몸놀림 자체는 완전히 초보다.
울리히는 적당히 둘러대었다.
“아닙니다! 교관님들의 자유대련을 보며 한번 이런저런 응용 동작들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교관은 단 하루 만에 여러 개의 응용 동작을 만들어 냈다는 울리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훈련 교관은 울리히를 직접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연무장 위로 올라와라.”
“네? 저 말입니까?”
아무래도 검술을 겨루어 보자는 의도 같아서 울리히는 조금 당황했다.
‘내키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겠지?’
교관이 거듭 재촉하는 바람에 울리히는 마지못해 연무장으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