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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10화)
Chapter 03.(5)
긴장하는 것이 역력히 느껴졌는지 교관이 다소 부드러워진 어조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너무 긴장할 것 없다! 그저 네 검술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그러니 자유롭게 공격해 봐라!”
울리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관 앞에서 연습했던 동작은 총 7개! 그 이상을 보여 주면 더더욱 이상하게 여길 테니, 7개의 동작을 활용해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오히려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만 주게 될 것이 분명했다.
울리히는 교관을 향해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슈아아―!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동작에 자세도 엉망진창!
언뜻 보기에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동작이지만 보기보다 예리했다.
훈련 교관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속도가 좀 더 빨랐더라면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한 공격이다! 직접 상대해 보니 옆에서 봤을 때보다 더욱 놀랍구나.’
하지만 울리히의 검은 무척 느렸기 때문에 교관은 어렵지 않게 방패로 쳐 낼 수 있었다.
파앙―!
검이 방패에 가로막혀 튕겨 나오는 순간!
울리히는 즉시 다른 응용 동작으로 연결해 공격을 펼쳤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변형된 검술은, 어떤 경우에도 각 동작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쉐엑―!
울리히의 검은 여전히 느릿느릿했지만 이번엔 둘 사이가 워낙 가까웠기에 대응하기 무척 힘들어졌다.
교관은 검을 휘둘러 간신히 공격을 막아 냈다.
콰앙!
하지만 간신히 막아 낸 것에 불과하기에 자세가 크게 흐트러졌다.
울리히의 검은 계속해서 연결 동작으로 이어졌다.
느리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결! 계속되는 공격에 훈련 교관은 수세에 몰려 겨우겨우 방어했다.
그나마 검에 실린 힘이 매우 약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뿐이다.
‘이거 제법 통쾌한데?’
훈련 교관의 당황한 표정을 보자 울리히는 짜릿할 정도로 통쾌했다.
지옥 같은 훈련에 대한 소심한 앙갚음(?)이랄까? 혹은 일종의 보상 심리랄까?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지만 짜릿함 때문에 피로감도 잊었다.
어색했던 동작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그럭저럭 손에 익었다.
흥미와 몰입, 그리고 한계상황!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춰지자 조금씩 인튜이션―리프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주위의 풍경이 잠시 일렁이는 듯하더니 곧 지워져 버렸다.
보이는 것은 오직 훈련 교관과 자신의 검뿐이었다.
파아앗―!
두뇌가 활성화되며 자신의 공격에 대처하는 교관의 다음 수가 예측되었다.
다음 수는 또 그다음 수로!
무한히 가지를 뻗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 같아선 더 괴롭혀 주고 싶지만……. 이쯤해서 끝내는 것이 좋겠지?’
울리히는 상황을 최대한 빨리 끝낼 경로(Route)를 찾아냈다.
슈아아― 파앗!
“크윽!”
결국 교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었다.
“엇?!”
“저…… 저럴 수가?!”
연무장 근처에는 어느새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훈련 교관이 허약해 보이는 사내와 맞붙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관은 계속해서 수세에 몰렸다.
울리히의 자세가 매우 엉터리였고, 검에 실린 힘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짜고 검무(Sword Dance) 연습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교관이 어깨에 부상을 입고 쓰러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짜 맞춘 검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저……. 괜찮습니까? 교관님.”
“젠장! 괜찮으니까. 저리 꺼져!”
혈관을 건드려 피가 터졌지만 상처는 그리 깊지 않은 편이었다.
그것보다 교관은 그에게 졌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어떻게 그렇듯 정교한 응용 동작을 창안해 냈는지 따져 물을 정신도 없었다.
그것이 울리히가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성격인 것 같으니, 나중에도 창피를 무릅쓰고 따져 묻지는 않겠지?’
한편 간단히 승리를 얻은 것처럼 보이는 울리히 역시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체력이 모두 바닥난 것은 물론 근육을 혹사당해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울리히는 빨리 몸을 눕힐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런데 교관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려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불렀다.
“잠깐! 자네 나와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겠나?”
울리히는 언뜻 그를 살펴보았다.
상당히 덥고 습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머리에 두건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다.
거기다 마치 사막의 여인들처럼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한 쌍의 눈동자만 드러나 보였는데,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눈빛이 차갑고 매서웠다.
‘저렇게 입고 덥지도 않은 건가? 어떻게 차려입건 저마다 개성(?)이라지만 취향이 참 유별나군!’
어쨌거나 입고 있는 옷은 상당히 고급스런 옷감으로 된 것이기에, 상대의 신분이 꽤 높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때문에 울리히는 조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근육통이 심해 잠시 쉬려 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지.”
사내는 다짜고짜 근처의 병사를 불러 포션을 가져오게 했다.
“이걸 마시면 근육통 정도쯤은 금방 해결될 걸세.”
“근육통 따위에 포션을 써도 되겠습니까?”
연금술사들이 만들어 낸 포션은 종류에 상관없이 가격이 무척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상관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근육통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견딜 만하면 그냥 참고 이야기하든지 마음대로 하게!”
‘이 사람 자기중심적인데다 완전히 막무가내인 성격이구나.’
울리히는 마시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에 포션을 마셔 버렸다.
꿀꺽―!
화끈한 감각이 전신에 펴지며 근육통이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의 검술을 눈여겨보았네. 보아하니 교관들에게 지급되는 기본 검술을 응용한 것 같은데……. 혹시 자네가 직접 고안해 낸 것인가?”
숨긴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라 울리히는 솔직히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원래 마도학 분야에서 나름 천재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검술 분야 역시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응용 동작을 몇 개 만들었을 뿐입니다.”
본인 입으로 천재라 말하는 것은 뻔뻔스런 일이었지만, 오해가 생기는 것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나았다.
“그런 것이었군. 사실 나 역시 자네의 천재성을 느끼고 흥미를 갖게 되었네! 그런데 자네의 이름은 뭔가?”
“울리히 디 쥐세페입니다.”
“아! 자네가 바로 천재 마도학자인 울리히였군!”
사내는 곧바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참모장을 맡고 있는 살바도르란 사람이네. 물론 제뮤엘 님께 내 이름을 들었겠지?”
울리히는 흠칫 놀랐다.
‘아!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구나.’
제뮤엘의 설명대로라면 살바도르는 이민족 출신이라 제국인들과는 생김새가 크게 달랐다.
소수의 이민족들은 그 이질적인 생김새 때문에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는 하였다.
“살바도르 님이셨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 그리 당황스러워할 필요는 없네.”
울리히는 현재 살바도르의 스승이자 옛 참모장인 제뮤엘에게 영입된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뜻하지 않게 제뮤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살바도르와 마주치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거기다 살바도르는 그를 향해 다짜고짜 더욱 당혹스러운 제의를 했다.
“나는 자네가 제뮤엘 님을 따라 나와 적이 되지 않길 바라네! 사실 자네가 제뮤엘 님에게 충심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영리한 자네라면 알겠지, 지금 누구와 손을 잡는 것이 더 자네에게 이익일지!”
살바도르는 기습적인 말에 충격을 받아 혼란스러워진 울리히를 향해 곧이어 말했다.
“제뮤엘 님이 자네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모르지만, 내게 온다면 무조건 제시한 조건의 10배 이상을 보장하지! 참고로 다른 사람들에겐 3배를 보장해 주었고, 70% 이상이 이미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네.”
살바도르는 제뮤엘이 회유하려던 학자들을 발 빠르게 포섭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어떻게든 세력을 모으려는 제뮤엘의 의도를 방해하려면 이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도 없으리라.
‘살바도르가 참모부의 실권을 잡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 그것이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에 서게 된다 하여도 다른 편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이다!’
울리히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며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뮤엘은 울리히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원한다면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지!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아 두게. 중립을 지킨다는 것도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네! 자네는 반드시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고, 어차피 선택해야 할 것이라면 빨리 결단을 내리는 편이 더 큰 보상과 좋은 대우를 받게 되는 길이네!”
제뮤엘은 이미 울리히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의 말이 옳았다. 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중립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리하려면 최소한의 힘이 필요했다.
사실상 포로 신세에 불과한 울리히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현명한 판단 기대하고 있겠네.”
Chapter 04.(1)
울리히는 인튜이션―리프를 통해 진일보된 검술을 얻게 되었지만 막상 실속은 없었다.
훈련 교관을 이겼다고는 하지만 진짜 실력자나 기사들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고된 체력 훈련과 검술 훈련을 반복할 의지나 의욕도 없었다.
‘그나저나 룬―스톤 제작은 이번에도 실패인 셈인가?’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실패라고는 할 수 없었다.
지난번보다는 많은 양의 마나가 룬―스톤에 축척되었고, 오르하르콘으로 제작해서 그런지 부서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룬―스톤에 약간의 마나가 축척되다가 돌연 멈춰 버렸다.
이 정도의 마나로는 1서클 마법을 2∼3번 정도 쓸 수 있을 뿐이었다.
이번엔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울리히는 룬―스톤을 분해하여 안쪽에 새긴 마법 수식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이럴 때 인튜이션―리프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인튜이션―리프의 발현 조건은 흥미와 몰입, 그리고 한계상황!
하지만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몰입하려 시도하면 할수록 ‘몰입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완전한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룬―스톤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면 과연 둘 중 누구의 편에 서는 게 좋을까?’
선택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뿐이다.
전략 참모 제뮤엘과 참모장 살바도르,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든 다른 한쪽의 미움을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차라리 마법 수식을 붙잡고 밤새 골머리를 썩이는 것이 낫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답이 없었다. 어찌 보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수학의 난제들보다 풀기 어려운 듯하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엠브란트 교수가 찾아와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