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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12화)
Chapter 04.(3)


기사들은 아무리 봐도 허약해 보이는 소년이 고작 금속 상자 따위로 공격을 막아 낸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하지만 훈련된 기사들답게 의문을 접어 두고 곧이어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곧바로 찾아온 위기!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입었으나 울리히의 몰입은 깨지지 않았다.
울리히는 인튜이션―리프 상태로 뇌전 마법을 펼쳤다.
뇌세포 간의 전달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기 때문에 목표물을 챠지드(Charged) 상태로 유도하는 데 0.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선택한 목표물은 바로 기사들의 검!
“라이트닝!”
시동어와 함께 번개 다발이 검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갔다.
파직― 파지지직!
“크윽!”
번개에 맞은 기사들의 몸이 굳어 버렸다.
하지만 잠시 경직된 것뿐, 기사들은 포스를 끌어 올려 전격의 충격을 상쇄하고 있었다.
룬―스톤에 저장된 마나가 바닥나면 더 이상 기사들의 검을 막을 수 없다!
‘젠장!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인튜이션―리프 능력도 만능은 아니었다.
아무리 두뇌가 극도로 활성화되어 있다고 해도 마나도 없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건 무리였다.
파― 팟―!
결국 뭔가 해결책을 생각해 내기도 전에 마력이 바닥나며 번개 다발이 끊어져 버렸다.
“죽여 버리겠다!”
기사들은 이성을 잃은 듯, 이를 갈며 울리히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젠 마나도 없고, 아만다티움으로 코팅된 상자도 망가져 버렸다.
‘젠장!’
울리히는 몹시 분했다.
공격 경로를 간단히 예측해 냈지만 단련되지 않은 몸으로는 도저히 피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건? 거스트(Gust)다!’
바람은 울리히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가며 기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에어 블래스트(Air Blast)!”
콰아아아앙―!
“크아악!”
무시무시한 폭발에 휘말린 기사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윈드 스핀(Wind Spin)!”
쉐에에엑―!
두 줄기의 바람이 맹렬히 회전하며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파악―!
송곳 끝처럼 날카로워진 바람이 기사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확실히 확인 사살을 마친 셈이다. 거스트와 함께 되돌아온 엠브란트 교수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 다행히 무사했구먼!”
울리히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뭐라 할 말을 잊었다.
‘등 떠밀고 냅다 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이라니! 참 가증스럽군! 급히 되돌아온 것도 날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밀 서류 때문이겠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기라도 하듯 엠브란트 교수는 급히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수가 기밀 서류를 찾는 동안 거스트는 한 가지 의문에 빠졌다.
‘그런데 울리히는 기사들을 상대로 도대체 어떻게 버틴 거지? 비록 포스의 양이 형편없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기사들인데…….’
거스트는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울리히에게 막 질문을 던지려 할 때 엠브란트 교수가 다급히 외쳤다.
“거스트! 서류를 찾았네! 기사들이 몰려오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세.”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들은 즉시 방문을 나서려 했지만 복도 쪽에서 이미 병사들과 기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회의실로 돌아갑시다!”
거스트는 회의실에 도착하는 즉시 창문을 향해 바람을 일으켰다.
휘이이잉― 파아앙!
창유리와 창문틀이 한꺼번에 부셔져 나갔다.
“받아 줄 테니 뛰어내려요!”
거스트는 이 말만 남기고 자신이 먼저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울리히는 현기증이 일어날 듯 아찔한 높이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병사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져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아찔한 느낌에 핏기가 싹 가실 때 즈음 아래쪽에서 한 가닥 바람이 불어와 울리히의 몸을 감쌌다.
휘이이이잉―!
무사히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울리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병사들을 따돌릴 테니 두 사람은 일단 정원에 숨었다가 숙소로 되돌아가세요.”
거스트가 떠난 이후 울리히와 엠브란트 교수는 정원 안뜰의 화단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겼다.
곧 정원 곳곳에 병사들이 깔렸고, 기사들이 명령을 내렸다.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주변을 샅샅이 살펴라!”
“네!”
울리히는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절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을 수색하던 병사들 중 몇몇이 화단 쪽으로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제발 이쪽으로는 오지 마라.’
울리히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병사들 중 하나가 그가 숨어 있는 방향으로 곧장 다가오기 시작했다.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이제 병사와의 거리는 세 걸음, 아니 두 걸음…….
“에이취!”
꼼짝없이 잡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근처에 숨어 있던 엠브란트 교수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그런 까닭에 근처까지 바짝 다가왔던 병사도 소리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거기로군!”
“잡았다!”
불행히도 엠브란트 교수에겐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었다. 한밤중이라 엉겁결에 숨은 곳이 하필 꽃밭이었던 것이다.
울리히는 엠브란트 교수를 생포하느라 주위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살금살금 화단을 빠져나갔다.

작전은 기밀 서류를 빼돌리려던 엠브란트 교수, 본인이 잡혀 버림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울리히의 입장에선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간 울리히는 왕실의 첩자인 엠브란트 교수와 룸메이트로 지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부담스런(?) 그의 얼굴을 매일 보지 않아도 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또한 다른 요원들도 엠브란트 교수가 잡혔으니 당분간 조심하느라 울리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크게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엠브란트 교수가 나에 대해서 죄다 불어 버리면 어쩌지? 게다가 공동 연구 계약서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하구나!’
하지만 불안해해 봤자 별로 손쓸 수 있는 건 없었다.
엠브란트 교수가 끝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공동 연구 계약서가 발견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는 없었다.
울리히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뇌전 마법에 몰두했다.
‘운 좋게 인튜이션―리프가 발동해서 목숨을 건졌지만, 언제까지 우연에 내 목숨을 맡길 수는 없어! 뇌전 마법 구현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해!’
뇌전 속성의 마나는 확산하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원래 제어가 무척 까다롭다.
목표 지점을 챠지드 바디(Charged Body)로 만들어 이를 해결하려 했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마법을 발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계속해서 반복연습을 하다 보면 차츰 시전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이 방법만 믿고 느긋하게 기다릴 처지가 못 되었다.
최악의 경우 고문을 견디지 못한 엠브란트 교수가 자신을 걸고넘어질지도 모른다. 또한 살바도르에게 약속한 시간도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구나. 결국 이틀 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가?’
강요된 선택!
전략 참모 제뮤엘과 참모장 살바도르.
중립을 지킬 힘이 없으니 이 둘 중 하나의 세력을 선택해 어떻게든 무사히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쪽의 미움을 사게 되어 결국 공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아……. 골치 아프구나! 이럴 때는 차라리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해야겠다!’
울리히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뇌전 마법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의 머릿속에 축척된 수많은 기억들을 뒤져 발상의 씨앗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망각의 축복은 울리히에게 내려지지 않아서, 소름 끼치도록 탁월한 기억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동안 읽었던 전문 서적들과 논문들은 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들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사실 망각하지 못한다는 건 정신 건강에 썩 좋지 않았다. 기억에는 주관적인 감정과 인상이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도 잊지 못하니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틈날 때마다 자신의 기억을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기 때문이다.
완벽할 정도로 정리해 둔 뒤 기억이 무작위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일정한 키워드를 통해서만 머릿속의 정보에 접근하였다.
‘집중하자! 집중!’
창의적 발상을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반하게 되면 갑자기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갑작스럽게 직면하게 되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게―사랑에 빠졌음을―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울리히에게도 역시 그랬다.
평소 때처럼 머릿속의 정보를 검색하는 동안 느닷없이 머릿속에 불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지?’
슈아아아―!
머릿속에 시원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울리히는 거스트(Gust)의 마법인 윈드 스핀(Wind Spin)의 원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뇌전 속성의 마력에 회전관성을 적용해 보자!’
사실 윈드 스핀의 회전은 바람 속성의 마력을 압축해 관통력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울리히는 회전력의 다른 속성에 착안했다.
‘회전관성을 이용해 궤도 안정 및 방향성 유지를 유도할 수 있다!’
간단히 비유해 보자면 이건 맹렬히 회전하는 팽이가 쉽사리 쓰러지지 않는 원리와 같다. 즉, 뇌전 속성의 마력을 나선 형태로 회전시켜 쏘아 내면 일정한 범위에만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발상을 얻은 울리히는 곧바로 실험에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엠브란트 교수가 잡혀 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을 혼자 쓸 수 있었다. 울리히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연구에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혔다.
‘감시의 눈이 있을지도 모르니 번개를 최대한 약하게 뽑아내 보자.’
울리히는 룬―스톤에 축척된 뇌전 마력을 조금만 끌어냈다.
파지직―!
실낱같이 가늘게 뽑아낸 번개 가닥이 서로 뒤엉키며 작은 섬광이 일어났다.
낮 시간이라 커튼이 쳐진 창밖으로 섬광이 비춰질 정도는 아니었다.
‘좋아! 이 정도라면 들키지 않겠지?’
기존의 마법 수식들 중에 마력을 회전시키는 마법 스펠은 많았다.
울리히는 관련된 마법 수식들을 머릿속에 차분히 떠올렸다.
회전 수식은 메일스트롬(Maelstrom), 볼텍스(vortex), 윈드 스핀, 스파이럴 토네이도 등등 주로 물과 바람의 마법 스펠에 많이 응용되어 있었다.
충분한 흥미와 강력한 동기 때문인지 울리히의 집중력이 점점 높아졌다.
그리하여 머릿속에서 필요한 수식 자료를 통합하여 새로운 회전 수식을 만들어 내는 데 불과 몇 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안한 수식을 토대로 새로운 마법 스펠을 만들어 내는 데 약 5분이 걸렸다.
마법 수식 연산을 끝낸 후 울리히는 곧바로 나지막이 시동어를 내뱉었다.
“라이트닝!”
번쩍―!
울리히의 손끝에서 전격의 섬광이 번뜩였다.
그렇게 손끝에서 시작된 번개 다발이 나선 형태로 회전하며 힘차게 뻗어 나갔다.
쾅!
뇌전이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금속판에 명중하며 선명한 그을음 자국을 남겼다.
‘성공이다!’
발상이 단번에 들어맞았을 때의 쾌감이란!
울리히에겐 다른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통쾌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계산한 것보다 회전이 너무 느려! 방해 요인은 뭐지?’
회전속도가 지금보다는 빨라야 좀 더 정확한 방향 제어가 가능했다. 또한 뇌전 마력의 방출이 커질수록 더 많이 회전시켜야 정밀한 제어가 가능할 것이다.
울리히는 고심하여 마법 수식을 몇 군데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