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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13화)
Chapter 04.(4)
“라이트닝!”
파지직― 쾅!
실험은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마법 수식은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뇌전 마력을 다루는 데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적은 양의 마력을 가늘게 뽑아낼 수 있었다.
갈수록 뇌전의 섬광과 충돌 소음이 작아지며 실험이 더욱 은밀해졌다.
‘마력 제어가 차츰 향상되고 있으니 목표 범위를 좀 더 좁혀 보자!’
울리히는 금속판의 그을음을 닦아 내고 가로세로로 금을 그어 여러 칸으로 나누었다.
이 작아진 칸 안쪽에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다면, 언제든 목표한 지점에 번개를 적중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니, 그건 아니지! 지금 사용하는 뇌전 마력은 지극히 적은 양에 불과하니까. 사실 조금씩 마나의 출력을 높이면서 실험해 봐야 하는데…….’
하지만 은밀히 실험해야 하기 때문에 뇌전 마나의 출력을 높일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마나 제어의 정밀도를 높이는 연습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창문 쪽을 본 울리히는 흠칫 놀랐다.
‘벌써 어두워졌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지?’
마법 실험에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커튼을 살짝 걷고 창밖을 내다보니 서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나면 금세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다. 주위가 캄캄해지면 창문에 뇌전의 섬광이 비칠 것이기 때문에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
‘몇 번만 더 연습해 보자.’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은밀히 연습할 시간을 가졌을 뿐.
앞으로 연습할 기회가 얼마나 자주 있을지 알 수 없으니,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연습을 해 둬야 했다.
마력을 조금씩 사용했기 때문인지 룬―스톤에 저장된 마나는 아직 꽤 남아 있었다.
‘룬―스톤의 성능 역시 개량해 둬야 해!’
엄밀히 말해 울리히는 아직 룬―스톤을 완성하지 못했다.
룬―스톤에 약간의 마나가 축척되다가 멈춰 버린 상태!
그 원인을 분석해 내고, 성능을 충분히 향상시켜 놓아야 했다. 그래야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뇌전 마법 훈련에만 신경 쓰자. 시간이 별로 없어!’
곧 해가 질 것이다.
울리히는 룬―스톤의 뇌전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펼쳤다.
“라이트닝!”
번쩍―!
희미한 섬광이 번뜩이며 머리카락같이 가는 번개 다발이 뻗어 나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집중력이 높아졌다. 그에 따라 번개 다발의 회전수도 지금까지 중에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덜컹―!
그런데 그때 갑자기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금속판이 갑자기 움직였다.
움직임이 마치 번개 다발을 향해 마주 당겨지는 듯하였다.
‘뭐지 이건?’
사실 당시 사람들은 자기장이나 자석(Magnet)에 대해 몰랐다. 전기장에 대한 개념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찌 자기장에 대해 알 수 있으랴?
나선 형태로 회전시킨 번개의 중심으로 자기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우연의 산물!
대륙 최초로 자기장에 대해 알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울리히는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때 하필 누군가가 방문을 힘차게 두드렸기 때문이다.
쾅! 쾅!
“울리히! 거기 안에 있나?”
전략 참모인 제뮤엘의 목소리였다.
‘제뮤엘이 갑자기 왜 찾아온 거지? 아무튼 좋은 의도로 찾아온 건 아니겠지?’
울리히는 그를 돌려보내고 싶어 일부러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얕은 수작은 통하지 않았다. 제뮤엘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할 말이 있으니 문을 열어 주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울리히는 재빨리 과녁으로 쓰던 금속판을 서랍 속에 숨기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로 친히 찾아오셨습니까?”
제뮤엘은 어쩐지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자네가 한번 맞춰 보게나?”
‘갑자기 찾아와서 다짜고짜 왜 저러는 거지?’
울리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른다는 말이지?”
“혹시 제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제뮤엘은 미소를 거두며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이런 쪽으로는 둔한 편이군! 하지만 이게 뭔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엇? 그건…….”
제뮤엘이 보여 준 것은 바로 엠브란트 교수가 숨겨 두었던 공동 연구 계약서였다.
“엠브란트 교수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실토했네. 그리고 자네가 직접 싸인한 공동 연구 계약서가 있더군.”
그 말을 듣고 울리히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이런! 고작 하루를 버티지 못했단 말이야?’
제뮤엘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계약서에 싸인하고도 공동 연구는 어째서 자네 혼자서 한 것처럼 발표한 건가? 아니, 그보다 첩자와 이리 밀접한 관계라니 자네 혹시…….”
제뮤엘은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며 은근히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울리히는 뭐라도 변명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했다.
“사실은 그동안 엠브란트 교수에게 협박당하고 있었습니다.”
울리히는 자신이 거짓말에 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거의 모든 것을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교수와 함께 첩보 활동에 참여했다는 불리한 정황 한 가지는 슬그머니 빼 버렸다.
오직 엠브란트 교수가 계약서를 미끼로 자신을 첩자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다행히 상황은 아직 희망적이었다.
‘만약 제뮤엘이 나를 처벌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따로 찾아와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엠브란트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이걸 미끼로 날 단단히 옭아매려는 거겠지.’
울리히의 짐작이 맞았는지 그의 해명을 듣고 난 뒤 제뮤엘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 나 역시 특별히 자넬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염려 말게.”
“저를 믿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심스런 정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 만약 이 일이 널리 알려지거나 누군가 이 계약서를 보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계약서는 안전하게 파기해 줄 테니 안심하고 내게 맡겨 두게!”
제뮤엘의 말에 울리히는 속으로 생각했다.
‘서약서를 미끼로 나를 단단히 틀어쥐겠다는 뜻이구나! 하지만 당장 첩자로 내몰려 처형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일단 위기를 넘긴 셈이다.’
울리히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제뮤엘 님이 맡아서 파기해 주신다니 정말 안심이 되는군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는 무슨!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요즘 자네에 대해 믿기 힘든 소문을 한 가지 듣게 되었네.”
“네? 무슨…… 소문입니까?”
또 무슨 소문인가 싶어서 울리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허허! 그저 뜬소문이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야! 내 말을 듣고 오해하진 말게.”
“제가 무슨 오해를 하겠습니까?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자네가 살바도르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울리히는 제뮤엘이 뭘 원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단히 약점을 잡혔으니 이제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차례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제뮤엘 님과 뜻을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 진심을 이리도 몰라주시니……. 서운합니다!”
“허허! 내가 자네를 잠시 오해했구먼!”
그리하여 울리히는 어쩔 수 없이 제뮤엘과 손을 잡게 되었다.
Chapter 05.(1)
엠브란트 교수가 공개 처형을 당한 지 며칠이 지났다.
결코 망각을 모르는 기억력을 가진 울리히는 그날의 참혹한 처형 장면을 잊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부쩍 수척해졌다.
지금도 조금만 방심하면 그 끔찍한 광경이 머릿속에 선연히 떠오른다.
엠브란트 교수는 산 채로 튀겨져서 죽었다.
가마솥에 부글부글 끓인 기름을 국자로 떠서 맨살 위에 조금씩 붓는다.
치이익―!
“크―아아아아악!”
뜨거운 기름에 생살이 바싹하게 튀겨지며 역한 냄새를 풍긴다. 한 번에 조금씩만 기름을 붓기 때문에 쉽사리 죽지도 못한다.
잔인하게도 조금씩 튀겨지며 죽어 가던 엠브란트 교수의 눈.
그 눈이 자신을 향할까 봐! 소리쳐 자신을 지목할까 봐!
그것이 두려워 울리히는 엠브란트 교수가 완전히 숨을 거둘 때까지 지독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혹시나 지목을 당하게 되면 자신 역시 산 채로 튀겨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이도 엠브란트 교수는 그냥 죽었지만, 지금도 그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으으……. 정신 차려! 울리히. 지금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전략 참모인 제뮤엘은 자신이 엠브란트 교수와 뭔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행히 별로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의심했다면 울리히를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계속 이상 반응을 보이면 분명 수상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또한 지금은 제뮤엘이 내린 첫 번째 명령을 성실히 수행해야 했다.
‘도대체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 학자들을 영입하라는 건지…….’
참모장 살바도르는 제뮤엘이 이번에 데려온 다른 학자들을 대부분 포섭해 버렸다.
울리히에게 내려진 명령은 살바도르에게 포섭된 학자들을 다시 설득하고, 거기다 연구소에 있는 다른 학자들까지 영입해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울리히는 사교성이 별로 없는 편인데다, 그다지 말재간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무슨 수로 그들을 설득하랴?
게다가 정말로 심각한 부분은 설득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뮤엘의 명령대로 학자들을 포섭한답시고 돌아다니다간 살바도르의 눈 밖에 확실히 날 수밖에 없었다.
참모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살바도르의 미움을 사게 된다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어쩌면 산 채로 튀겨지는 것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참혹하게 죽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제뮤엘이 공동 연구 계약서를 갖고 있는 한, 절대로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휴우……. 어쩔 수 없지, 뭐! 최선을 다하는 척 열심히 찾아다니는 수밖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만, 결코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비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름 약자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다가 울리히는 분한 듯 어금니를 부드득 갈았다.
‘지금은 힘이 없어서 살려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것들에게 당한 모든 수모와 치욕을 백배천배로 갚아 주리라!’
울리히의 마음속에서는 서서히 그들에 대한 증오가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보복하고 말고는 훗날 그럴 만한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복수를 하든 용서를 하든, 그건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오늘은 필립 교수에게 먼저 찾아가 봐야겠다.’
울리히가 필립이란 자를 설득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탐내지 않을 만큼 보잘것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즉, 아직 살바도르에게 포섭되지 않은 자를 찾다 보니 필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무능한 사람이면 뭐 어때? 어떻게든 제뮤엘에게 보여 줄 만한 실적(?)을 올려야 해.’
이미 대부분의 학자들이 살바도르에게 포섭되어 버린 상황!
일단 어떻게든 머릿수라도 채워 두자는 것이 울리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성적 판단과는 별개로 며칠 사이 만신창이가 된 몸이 말썽을 부렸다.
“우욱!”
잠시 후 울리히는 간신히 진정된 몸을 이끌고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현기증이 일어났지만 버터 내야 했다.
그를 도와줄 자는 없다.
어떻게든 활로(해결책)를 찾아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으으……. 덥군.’
이글거리는 햇빛이 머리를 녹여 버릴 듯했다.
또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살랑대는 바람결에 몸이 휘청거리는 듯했다.
원래부터 마른 체형이긴 했지만, 며칠 사이 체중이 훌쩍 빠져 버렸다.
“허억! 허억!”
숨결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쓰러질 것 같아! 잠깐 쉬었다 갈까?’
울리히는 문뜩 그늘을 찾아 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바꿨다. 지금 쉬려고 앉았다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살 피우지 마! 울리히. 내가 좀 허약 체질인 건 사실이지만 고작 며칠 굶었다고 죽진 않아. 게다가 딱히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기껏해야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돼!’
울리히는 그렇게 자신을 독려하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그를 소리쳐 불렀다.
“어이! 거기, 잠깐 멈춰 봐!”
‘뭐지?’
울리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상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우락부락한 체형의 훈련 교관이었는데, 어쩐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했다.